이런 이야기 좋아한다. 권선징악 같은 데 얽매이지 않고, 수위 조절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징그럽고 비린내 나게 막 나가는 무서운 이야기. 복고풍이라는 느낌을 받은 걸 보면 요즘은 이런 작품들이 잘 안 나오는 거 같다. 몇몇 인터넷 서점에서는 성인 인증을 하지 않으면 책 표지를 볼 수도 없다. 그 정도는 아닌데. 그런데 그 중 한 인터넷 서점에서 성인 인증 없이 전자책으로 읽었다.
넷플릭스는 고사하고 비디오테이프 플레이어도 없던 어린 시절, 가족이 함께 본 드라마 중에 ‘조선왕조 오백년’이 있었다. 부모님이 시청을 북돋운 유일한 TV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역사를 배운다거나 심각한 교훈을 얻는다는 생각 없이, 권력을 둘러싼 군상극이 재미있어서 봤다. “이 손 안에 있소이다” 같은 유명한 대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G. F. 영의 저작 ‘메디치 가문 이야기’(현대지성)은 ‘조선왕조 오백년’과 흡사한 책이다. 15세기 초부터 18세기 중엽까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메디치 가문의 흥망을 상세히 그린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굵직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마키아벨리 같은 유명 인사들도 조연으로 등장한다.
권력자가 존경을 얻는 길, 명문가를 일구는 비결, 문화예술 후원,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사항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도 물론 좋다. 그러나 교훈을 찾겠다는 강박 없이, 역사 드라마를 보듯이 즐기기에도 충분하다. 그런 면에서는 반듯한 선조들을 찬양하는 분위기인 전반부보다, 개인적인 흠결이 있거나 시대의 한계에 부딪혔던 후손들이 나오는 후반부가 더 재미있다.
저자는 남자들뿐 아니라 카테리나 스포르차, 안나 마리아 루도비카 같은 메디치가 여인들의 삶도 비중 있게 다룬다. 특히 프랑스 왕비가 된 카테리나 데 메디치는 이 책에서 가장 길고 깊이 있게 묘사되는 인물로, 전체 768쪽 중 100쪽 넘는 분량이 그녀 얘기다. 종교전쟁 시기, 거듭되는 위기를 헤쳐 나가며 섭정으로 훌륭한 정치를 펼쳤으나 인기는 없었고 개인사도 불운했다. 이 부분만 따로 떼어 읽어도 흥미진진한 평전으로 손색이 없다.
이 책은 한국에서는 1997년 ‘메디치’라는 제목으로 처음 번역 출간됐다. 박명곤 현대지성 대표가 해외 서점에서 읽고 수입을 결정했다고 한다. 2017년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바꾸고 교정도 새로 작업한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메디치 가문 이야기’로 변경했다. 박지성 현대지성 이사는 “1만 부 이상 팔리며 꾸준히 사랑 받은 책”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잠 - 아이유
때 이른 봄 몇 송이 꺾어다
너의 방 문 앞에 두었어
긴 잠 실컷 자고 나오면
그때쯤엔 예쁘게 피어 있겠다
별 띄운 여름 한 컵 따라다
너의 머리맡에 두었어
금세 다 녹아버릴 텐데
너는 아직 혼자 쉬고 싶은가 봐
너 없이 보는 첫 봄이 여름이
괜히 왜 이렇게 예쁘니
다 가기 전에 널 보여줘야 하는데
음 꼭 봐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빼곡한 가을 한 장 접어다
너의 우체통에 넣었어
가장 좋았던 문장 아래 밑줄 그어
나 만나면 읽어줄래
새하얀 겨울 한 숨 속에다
나의 혼잣말을 담았어
줄곧 잘 참아내다가도
가끔은 철없이 보고 싶어
새삼 차가운 연말의 공기가
뼈 틈 사이사이 시려와
움츠려 있을 너의 그 마른 어깨를
꼭 안아줘야 하는데
내게 기대어 조각잠을 자던
그 모습 그대로 잠들었구나
무슨 꿈을 꾸니
깨어나면 이야기해 줄 거지
언제나의 아침처럼 음
-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나가는 일과, 그런 세상에 남겨지는 일에 대해 유독 여러 생각이 많았던 스물일곱에 스케치를 시작해서 몇 번의 커다란 헤어짐을 더 겪은 스물아홉이 돼서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다.사랑하는 가족, 친구, 혹은 반려동물을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서 맞이하는 첫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써 내려갈 플롯이 명확해서 글을 쓰기에는 어렵지 않은 트랙이었지만 그에 비해 완성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을 쓰고 싶지도, 그렇다고 너무 피상적인 감정만을 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녹음 시간이 가장 길었던 곡이다.평소 레코딩에서는 최대한 간결한 표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 곡은 굳이 감정을 절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움을 극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곡의 후반부가 아닌 중간 인털루드에 전조를 감행하는 나름의 과감한(?) 편곡을 시도했다. 다른 곡들과는 달리 피아노 기반의 곡으로 담은 것도 그 이유에서다.내 세상에 큰 상실이 찾아왔음에도 바깥엔 지체 없이 꽃도 피고, 별도 뜨고, 시도 태어난다. 그 반복되는 계절들 사이에 '겨울잠'이 있다.이 노래를 부르면서 이제는 정말로 무너지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그들은 알아주겠지. (아이유님 곡 소개)
읽으려고 리스트에 올려놓고 잊었다가(...) 좀 늦게 읽게 되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다만, 자기가 정의라고 믿는 사람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비판하는 주인공도 비판과 고뇌를 피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한 번은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했던 요코의 과거가 나오고, 미코시바가 생각보다 더 흔들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만 재미를 느끼기에는 참으로 어둡다. 사적 제재라는 것이 지금 시류와 맞물리기도 하니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는데 앞 페이지의 씁쓸함이 계속 입 안에 남는다. 검사나 형사들, 기자들은 시치리 월드에 등장한 이상 반드시 어딘가에 나왔거나 나오겠지만, 그런 재미를 즐기기엔 지금 내가 너무 지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 긴이의 말에 언급된 속편이 슬슬 번역이 나올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하며 기다린다. 요코의 말처럼,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믿고, 나도 바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일상 속 악은 희미하게 냄새를 풍긴다. 어떤 순간에 그 냄새를 맡고 구역질이 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역함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먼발치에서 봐라봐야 짙어지기 때문이다.
음향과 시각 연출이 대비를 이루며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게 인상적이다. 영화에선 아우슈비츠 내부가 한번도 나온 적이 없고, 학살의 현장은 빈 화면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비명에 가까운 노래를 듣고나면 소름이 돋는다.
가보지 않은 도시를 더듬어 가는 건 어려운 일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보적 없는 건물 사이를 상상하는 일은 말이다. 언제가의 언제가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를 두고 ‘언제가’라는 마음을 먹게 했다. 오래된 카페에서 소박한 커피를 마시며, 베토벤이 살았던 수십개의 집들 사이로 미끌어지듯 걷고 싶었다. 이젠 말러는 생각하면 헤어질 결심이 생각나지만, 말러가 만들어둔 훌륭한 음악도 배경 이 되어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라 들었지만, 천천히 오래 있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날이 서 있던 문장들을 무디게 쓰시 시작하면서, 뾰족했던 말들이 뭉게지면서 청춘을 잃은 느낌이었다.
감성에 젖어 있던 문장들도, 신념에 차 있던 단어들도 더이상 현재 진행형이 아닐 때처럼 청춘을 잃은 느낌이 들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단어와 문장을 구태여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잃어버린 무언가는, 그 잃어버린 말들 속에 있는 거 아닐까 싶다.
책이 들리지 않고, 읽히지 않을 때 피식피식 웃게 하는 유영만 선생님 글이 위로가 되었다. 잠식해 가는 많은 것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이야기 해주는 그런 위로.
사람들의 말 소리, 간간히 흘러 나오는 음악, 경적소리, 엔진음, 차 안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과, 그리고 갑자기 찾아오곤 하는 적막. 예상되는 소리들과 예상하지 못한 소리들로 하루를 채울거라 생각하며 오늘 아침은 뭘 들어야 오늘의 나와 내 뇌 속의 주파수를 맞출 수 있을까 생각하며, 책도, 음악도, 팟캐스트도 고르곤 한다. 정처없이 방황할 때도, 안정된 무언가를 찾을 때도 갇혀 있는 어둠을 걷어내는 기분이 드는 건, 소리라는 매개로 세상과 연결하는 트리거를 찾는 안도감때문이다.
귀로 들어 마음을 울리지만, 이 모든 것들이 뇌가 만들어내는 화음을 뿐이라는 짐작하지만 믿을 수 없는 그런 설명들을 따라가본다. 의학적 용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근사한 화음같은 또는 하루를 엉망으로 만드는 소음같은 오늘의 소리들로 하루를 채우는 감사함도 잊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좀 억지로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