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미세 좌절의 시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요즘 그믐 덕에 나를 고쳐 쓰고 있는 중.
<미세좌절의 시대> 아직 제대로 못 읽었는데 한시라도 빨리 읽어야 한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했다. 학원에서 오는 딸을 기다리면서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김창완 아저씨의 책. 그렇고 그런 위로의 말들 같지만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
이번에 굿네이버스라는 NGO 단체에서 독서모임을 개설했다는걸 우연히 보고 재밌을거 같아서 신청했는데 너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
평소 책에 관심이 없었는데 해당 활동을 시작으로 책에 재미를 붙여서 그믐까지 왔네요:)
저는 체험단으로 진행을 했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1기를 모집한다고 하네요~~ 모두들 참여하셔서 즐거운 러닝을 즐겨보세요~~!!
‘~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얇은 책을 내고 있는 땅콩문고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저자는 1인 출판사 대표이고 독서모임 기획자이고 강연자이기도 하다. 그믐을 준비할 때 HJ와 함께 읽었다.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지만 결석에 대한 규칙이라든가 분위기 전환용 이벤트에 대한 부분들을 읽으며 얻은 게 많았다.
22개 주제를 놓고 과학자와 인문학자나 예술가, 시민운동가 등 다른 분야 전문가가 대화한 내용을 엮은 대담집. 과학기술이 우리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나날이 커지고 있으므로, 좋은 삶을 살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그 영향력을 고찰해야 한다. 알베르트라슬로 바라바시와 제임스 파울러가 소셜 네트워크에 대해 이야기한 내용을 흥미롭게 읽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스페인어 번역가님들이 하시는 「데이터 시대의 사랑」 번역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다들 작품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번역 워크숍을 할 때마다 한국어에는 없는 개념이 참 많구나, 언어의 뉘앙스라는 게 참 미묘하구나, 하고 매번 놀랍니다.
6월 28일 금요일 16:30~18:00, 안양예술공원 특별전시관에서 ‘살고 싶은 마을 상상하기’를 주제로 북토크를 합니다. 『아무튼, 현수동』에 썼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마을공동체를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 행사입니다. 더 좋은 마을을 상상해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j4SXmwVSUj8xbUS0IA8qWelHWX2QSi-C1UxIvmhZc6JuaSA/viewform
[공감]자유로운 몸의 문화 - 경향신문 (khan.co.kr)
독일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나체가 그 자체로 성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우나가 남녀공용으로 운영되고 수영장·탈의실 등은 성별로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아 모두 섞여 옷을 갈아입는다.
이것은 ‘자유로운 몸의 문화’를 뜻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나체주의 운동 에프카카(FKK; Frei-korper-kultur)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세기 말 레벤스레폼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FKK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벗은 몸으로 만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반권위주의 운동이었다. 아무래도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지금도 독일 전역에는 국가가 지정한 FKK 해변과 공원, 사우나 등이 많다.
몇주 전 나는 2박3일 동안 열린 나체 축제에 다녀왔다. 평소 다니던 요가원에서 우연히 이 행사를 알게 되었는데 순전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혼자 가보기로 한 거였다. 축제는 베를린에서 약간 떨어진 아름다운 호숫가 근처에서 열렸다. 축제 이름이 ‘나체-차-축제’였던 만큼 우리는 2박3일 동안 자주 차를 마실 예정이고 사람들은 예쁜 찻잔에 자기 이름을 써서 맨몸에 목걸이처럼 매고 다녔다. 곳곳에서 각종 요가와 명상 워크숍, 댄스 파티가 열렸다.
행사를 시작하며 주최 측은 사람들에게 축제가 열리는 동안 공개된 곳에서, 그리고 숙소에서 성적인 행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벗은 몸이 너무나 오랫동안 과잉성애화되었기 때문에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이 공간을 탈성애화(desexualized)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다.
간단한 말이었지만 이 말이 내게 미친 파장은 컸다. 그 얘기를 듣자 나의 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초등학생의 몸일 때부터 타인에 의해 성적인 대상으로 여겨졌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나조차도 나의 나체를 중립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참가자의 절반은 남성이었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아시아 여성이었다. 덩치 큰 남자들이 있는 곳에서 벗고 있으니 몸이 계속 떨렸다. 벗은 몸으로 남자들 사이에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낀 적이 아기 때를 빼놓고는 없었으니 몸이 끊임없이 경계 신호를 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는 내 마음을 정직하게 털어놓았고 그 덕분에 여러 생각과 감정을 통과하며 몸의 자유를 되찾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지속된 축제에서 나는 만 하루를 우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속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슬픔을 지켜보면서. 나중에는 내가 우는 것이 나의 슬픔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번은 호숫가 옆 작은 정자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스위스에서 온 부부가 앉아 있었다. 둘이 잘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와이프인 여자가 울기 시작했다. 남자는 조용히 다독였다. 나는 벗은 몸과,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기억을 애도하는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녀의 슬픔은 나에게도 옮아서 나도 같이 울었다. 그러자 차를 따라주던 내 앞의 독일 여자도 같이 울었다.
토요일 오후쯤 되자 다 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축제를 즐길 시간이었다. 요가, 명상 등 신비롭고 이국적인 ‘동양’ 문화를 가져와 풍요롭게 살아가는 백인 유러피안을 미워하는 것도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었다. 지구상에 상처 없는 곳은 없고 내 몸에는 행복한 기억도 많으니까. 나는 호수로 뛰어들었다. 맨몸 구석구석을 감싸는 물의 느낌이 몹시 관능적이었다. 호수에서 충분히 수영하다가 올라와 따뜻한 햇살 아래에 누워 몸을 말렸다. 아침 숲속 들리는 새소리가 오케스트라 같았다.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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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라는 말 - 경향신문 (khan.co.kr)
이를테면 한국에서 살아갈 때는 여성이란 정체성이 중요했지만 독일에 가면 동양인이란 정체성이 더 눈에 띄며, 독일에서 나고 자란 백인 여성보다 베트남 이민 2세 남성에게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또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서구와 관련된 걸 더 세련되게 생각해왔을까? 왜 사람들은 한국의 문제에 대해 백인 남성이 답하면 신뢰할까? 왜 서점에는 우리처럼 식민지 역사를 겪은 다른 국가의 책이 이토록 한정적일까? 이런 질문을 안고 돌아와 강남역 앞 테헤란로를 걷다 보면 커다란 전광판에 띄워진 광고를 보게 되는 것이다. 파운데이션 화장품을 소개하는 광고판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를 보태 노랑을 누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띄워지는 백인 여성의 얼굴.
언젠가 지하철을 탔는데 이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변을 둘러보시고, 임산부나 교통약자가 계시면 자리를 양보하는 여유를 가져 보심이 어떨까요? 모두가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는 우리 모두를 기분 좋게 합니다.” 언뜻 평범하게 들리는 이 문구가 내게는 무척 충격적으로 들렸다. 첫째로 “모두가 힘들지만”이라는 당연한 전제에서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누적된 피로가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이라는 표현 때문이었다.
고통은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라 수량화해서 타인의 것과 나의 것을 비교할 수 없다.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말은 대체로 위로가 되지 못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불행을 경쟁하게 만든다. 안내방송은 지하철을 탄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말하는 듯했다. “너만 힘들어? 다들 힘들어. 분위기 망치지 마.” 자신의 고통이 인정받지 못하고 엄살로 치부될 때 사람들은 억하심정을 갖고 타인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는다.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일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고통은 그것이 마음의 통로가 되어 타인과 연결되게 만들 수도 있고, 자기 안에 갇혀 고립되게 만들 수도 있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얼마나 잘 애도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 전쟁 이후 수없이 벌어진 각종 참사와 비극들이 제대로 애도되지 못하고 유령처럼 한국 사회를 떠도는 것을 본다. 개개인의 고군분투, 알코올 중독이나 쇼핑 중독, 각종 항우울제와 마음 챙김 등을 넘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곁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감을 회복할 방법은 뭘까? 우리는 뭘 잃어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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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군인이면서 어머니인 여자가 전쟁 영화 주인공일 때 - 경향신문 (khan.co.kr)
다큐멘터리 영화 <Darvazeye Royaha>(페르시아어로 ‘꿈의 문’이라는 뜻)는 1989년생 이란 태생의 쿠르드족 여성 감독인 네긴 아마디가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ISIS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쿠르드족 민병대에 들어가며 시작한다.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메데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뿌리 깊은 민족이면서 3000만명이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등 주로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자그로스산맥 지역에 산다. 쿠르드족이 머무는 지역, 쿠르디스탄은 30만㎢로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20세기 이후 터키 쿠르드족의 역사는 탄압과 대량 학살, 강제 동화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자치를 위해 30년간 싸워온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 단체로 간주하며, 터키 인구 5명 중 1명을 차지하는 쿠르드인을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화시키거나 말살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니까 쿠르드족은 디아스포라 중의 디아스포라다. 고향을 잃은 민족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고향을 가져본 적도 없는 민족. 아마디의 영화는 그중에서도 쿠르드족 여성들을 찍은 것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와장창 부쉈다. 이 영화에는 전쟁에 대한 스펙터클이 없었다. 물론 전쟁터에서 찍은 영화이니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진다. 그러나 군복을 입은 채로 빨래하고 밥을 차리는 일상 속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여군들은 빨래하고 밥을 해먹이고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고 어쩌다 얻게 된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고 부상당한 전우를 돌본다. 감독이 여군들이 집안일을 하는 장면을 화면의 중심으로 두고서야 새삼 알았다. 그렇다. 전쟁터에서도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으며 잘해봐야 본전인 그 집안일을.
우리가 별일 없는 듯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도 동시에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당최 빠져나갈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아마디 영화 속 인물들은 지루하지만 똑같아 보이는 매일과 그것을 지탱하는 단순하고도 평가절하된 여성들의 노동을 해내는 동시에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들은 군인이면서 어머니이기도 했다. 떡 벌어진 어깨, 다리를 벌리고 앉은 품새, 단호한 표정. 그 표정 뒤에 서 있을 그녀의 새끼들. 한 여자 안에 머무는 두 역할의 공존이 전쟁에 대한 내 머릿속 관념에 균열을 내는 듯했다. 두꺼운 중년 여성의 몸이 전쟁터에서 이토록 강인해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본 곳은 2023년 베를린 영화제. 막이 내리고 제작진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영화에 큰 감명을 받은 이가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질의응답이 좋았다. 그러다 마지막 질문으로 한 백인 여성이 손을 들고 유창한 영어로 아마디에게 물었다.
“감독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당신은 지금 쿠르드족의 이야기를 아주 서구적인, 바로 이곳 베를린에 와서 상영하고 있어요. 이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가 당신의 영화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기를 원하나요?”
질문을 들으며 이유를 콕 집을 수 없이 불쾌했다. ‘그래서, 뭐. 우리 보고 어쩌라고.’ 이런 태도라고 느껴져서 그랬을까? 그러나 아마디의 대답이 미묘한 불쾌감을 날려주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디어에서 필터링된 전쟁과 여성이 아닌 전쟁의 진실한 모습을요. 내가 보여준 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장내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수자로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보일 때 처하게 되는 곤란을 돌파하는 멋진 대답이었다.
별 떨어진다(I Do) - 도경수(D.O)
밝은 빛은 별 뿐인
고요한 오늘 밤
잔잔한 풀벌레 소린
멋진 노랫말
내 어깨 위로
살짝 기대진 너의 온긴
맘을 괜히 들뜨게 해
설렘 끝에 번지는 기대감
소원 빌래? 별 떨어진다
잠깐이라 또 놓쳤지만
금방 더 떨어지겠지
밤이 끝날 때까지
원하는 게 딱 하난데 난
내 소원 듣게 되면 I do I do
웃으며 대답해 줘 I do I do
둘이 아닌
우린 어떤 모습일까
꼭 하나인 것 같이
서로를 잘 알아
수없이 많은 기억들이
똑같을 너와 나
상상만 했는데
다 이뤄진 것 같아
넌 아무거나 마구 빌어도 돼
내가 전부 듣고 이뤄줄게
저 별을 갖고 싶다
말하면 따다 줄게
맘으로만 혼자 빌어도 돼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게
네 마음이 눈에 보였음 해
하늘에 저 별들처럼
소원 빌래? 별 떨어진다
(네 옆으로)
잠깐이라 또 놓쳤지만
금방 더 떨어지겠지
밤이 끝날 때까지
원하는 게 딱 하난데 난
내 소원 듣게 되면 I do I do
웃으며 대답해 줘 I do I do
너만 좋다면 좋아
그게 뭐라도
네가 간다면 따라가
어딜 간대도
오랜 시간 흘러가도
함께 있으면 좋겠어
너는 나 난 네 옆에서
소원 빌래? 별 떨어진다
(다시 네게 온다)
잠깐이라 또 놓쳤지만
(널 보느라 놓쳤지)
이젠 뭐 상관없겠지
이미 눈치챘으니
원하는 건 너 하나뿐야
(너뿐이야)
영원히 함께해 줘 I do I do
웃으며 대답해 줘 I do I do
I do I do
중요한건 그딴 일로 사랑에 겁을 먹으면 안 된다는 거다.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선생님이야.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지. 학교 따윈 그만둬도 되지만, 여자를 사랑하는걸 그만두면 안돼.
그건 안돼. 중요한 때 남에게 기대서는 아무것도 안되는거야.
시게루, 진심으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저신이 상처받을 각오를 먼저 해야 하는 거다. 아직 어린 아이라 아버지도 가엾게 생각한다만, 누구나 좋은 데서 좋은 사람이랑 항상 같이 살 수 있는 건 아니거든.
강하고 약하고는 힘으로 정하는게 아니다. 아무리 힘이 세도 마음까지 때려 잡을 순 없는거야. 너도 마음까지 진 건 아닐테지?
응. 그럼 강하다는 건 뭐예요?
그건 스스로 알아봐라. 뭐, 오늘 같은 분통한 마음과 아픔이 조금씩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가겠지만.
그래도 넌 아직 약하다. 눈앞의 일에 당황하거나 무작정 달려들어선 아무것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