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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 | 류휘석, 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

문학동네시인선 206 (240624~240627)


❝ 별점: ★★★★☆

❝ 한줄평: ‘살아 있자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 (「유실물」, p.83)

❝ 키워드: 재생 | 도망 | 마음 | 죽음 | 사랑 | 미래 | 비 | 빛 | 쉼 | 여름 | 반복 | 탈출 |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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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휘석 시인의 첫 시집 『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를 읽었어요. 잔잔하지만 종종 퐁당 조약돌을 던져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사라지는 여운들을 마음에 남기는 시들이 많았던, 그래서 참 좋았던 시집이었어요.


✦ ‘살아 있자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 (「유실물」, p.83)라는 구절이 마음에 확 와닿더라고요. 희망을 잃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이들이 너무 많은 오늘날, 그래도 살아 있자고, 우선 살아서 사라지지 말자고 말하는 화자가 조금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면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다’라는 구절처럼 ‘너’와 ‘내’가 우리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덜 쓸쓸하고 외롭지 않을까요. 우리 함께 살아 있자, 사라지지 말자, 이렇게 말해주고픈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 곧 장마철인데, 비와 장마 이야기가 나오는 시도 좀 있어서 이때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ㅎㅎ [📝 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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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남은 것들로 잘 살아볼 생각입니다. 흰 물컵에 따듯한 물을 붓고 옷장 속에 두었던 편지를 꺼내봅니다. 보관의 매뉴얼은 늘 건조하고 서늘하므로 우리는 빛도 없이 멋지게 갈변해 잘 말라 있습니다. 바깥에 수북이 쌓인 눈도 결국 녹아, 마르고 따듯한 날이 오겠지요. 말린 계절을 다 더하면 우리가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볕 고르기」 부분 (p.72)


✴︎

 우리는 차갑게 식었다가 금세 녹아내리는 손을 몰래 털어내면서

 어디론가 돌아가고 있었다


 손잡을까?

 여름이잖아

/ 「물의 과녁」 부분 (p.76)


✴︎

 지구는 선택되었다고 한다

 아무도 거리로 나와 사랑을 외치지 않으면서

 오로지 지구에서만 사람이 살 수 있다고


 나는 텅 빈 소행성이고

 지구에는 물과 사람과 사랑이 가득하다

/ 「거울에는 내내 텅 빈 것이 비치고」 부분 (p.78)


✴︎

 밝고 환한 어른이 되자 하루빨리 이곳을 탈출하자

 작고 가벼운 우리를 더 잘게 부숴 타지 않는 연습


 우리의 유일한 슬픔은 우리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뿐이야

/ 「체득」 부분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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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우리를 우리라고 부르면 덜 외로운 기분이 든다

✎ 「재생」 ⛤

✎ 「유기」

✎ 「우리가 상상했던 저녁은 옥상에 없겠지만」

✎ 「마지막 타자」

✎ 「Zoomb:e」

✎ 「포코 아 포코(poco a poco)」 ⛤

✎ 「도시괴담」


2부 | 모르는 사람들이 우산을 나눠 쓰기도 합니까

✎ 「도랑의 빛 다량의 물」

✎ 「가만하기 기억되기」

✎ 「믿음」

✎ 「볕 고르기」 ⛤

✎ 「물의 과녁」 ⛤

✎ 「거울에는 내내 텅 빈 것이 비치고」 ⛤

✎ 「유실물」 ⛤

✎ 「신기록」

✎ 「생일 편지」

✎ 「홀」

✎ 「시소」

✎ 「애칭」

✎ 「편도」

✎ 「원래 엔딩은 다 슬퍼」


3부 | 선망은 반쯤 부서진 작은 석상 같고

✎ 「실내등과 마른미역」

✎ 「새 인형 공장」

✎ 「빈 저택」

✎ 「역할극」 ⛤

✎ 「체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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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
우리 그때 말했던 거 있잖아
24-060 | 엘러리 퀸, X의 비극

검은숲 (e-book, 240624~240626)


❝ 별점: ★★★★

❝ 한줄평: 재미있는데 범인 혼자만 알지 말고 빨리 알려줘요.. 

❝ 키워드: 드루리 레인 | 배우 | 셰익스피어 | 탐정 | 독순술 | 연역 추리 | 추리 | 미스터리 | 스릴러 | 살인 | 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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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루리 레인이 활약하는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를 읽기 시작했어요. 『X의 비극』은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 


✦ 비가 쏟아지는 오후, 42번 스트리트의 붐비는 전차 안에서 갑자기 죽은 주식 중개 회사 사장인 할리 롱스트리트를 시작으로 줄줄이 이어지는 살인 사건들에서 중심을 잡고 진상을 파악해 나가는 사람은 드루리 레인 단 한 명이었는데요. 추리한 범인을 자기만 알고 알려주지를 않아서 답답하면서도 또 범인을 알아내는 과정을 따라가는 게 소름 끼치고 재미있었어요 ㅋㅋ 비극 시리즈는 쭉 읽어볼 예정! [📝 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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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알겠습니다. 모든 것을 잊으십시오. 적어도 내일 아침까지는 말입니다.”

 “언제나 내일 아침이란 있는 거겠죠?”


✴︎ 

 “브루노 씨, 당신의 머릿속에선 죽었을 겁니다. 그리고 경감님, 당신의 머릿속에서도 죽었을 테죠.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는 멀쩡하게 살아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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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비극
X의 비극
사랑하는 나에게

TO. 사랑하는 나에게



"그래서인가, 꿈을 가진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거 진짜 귀한 거거든요.
힘들지만 세상에서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게 존재한다는 거요."



이런 편지도 참 어색하다.

어떤 말을 쓰는 게 좋을까.


꿈이 있다는건 진짜 귀한거래.


나에게 어릴적 꿈이 있었나?

지금은?


우울했던 유년 시절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녀서 삶이 무기력하고 불안이 가득한 삶을 살았었지. 작년쯤인가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내 삶에 변화가 많아지고 있어.


특히 올해는 읽고 쓰는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보기로 했어.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해 보기로 했어.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진정 원하는게 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들뜨는 것 같아.


24년 올해는 내가 이룰 꿈을 생각하며 매일을 다채롭게 채워가고 싶어.


힘들지만 세상에서 나를 설레게 만드는 나의 꿈을 생각하며 버틸거야.

내가 원하는 아늑하고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 포기하지 않을거야.


지치지 않게 나만이 속도대로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나의 어제와 오늘을 비교하며 성장하길 바라며.



-24년 6월 27일, 커피 향이 좋은 카페에서 늦은 오후에 나에게 쓰는 편지-





























편지 가게 글월
편지 가게 글월
(24/6/27~24/9/19)
  • 24/6/27
  •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 2장. 완벽한 고요가 건네는 위로

  • 3장.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 67p 위안과 고통
  • 어머니는 늘 잘 울었다. 결혼식에서나 영화관에서나 눈물을 흘리곤 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가 심장이 부서지는 동시에 충만해져서 그렇게 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림이 어머니 안의 사랑을 깨워서 위안과 고통 둘 다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 경배, 통곡
  • 우리는 '경배'를 할 때 아름다움을 이해한다. '통곡'을 할 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지혜의 의미를 깨닫는다. 위대한 그림은 거대한 바위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냉혹하고 직접적이며 가슴을 저미는 바위 같은 현실 말이다.


  • 4장. 사치스러운 초연함으로
  •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 24/8/7
  • 146p 개방적인 태도
  • 내가 갈팡질팡하며 설명하는 동안 남자는 그런 이야기에 굶주린 듯 귀를 기울인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아는 척을 하거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의 충돌을 반기는 사람. 나는 온종일 감탄했던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남자의 개방적인 태도에 더 탄복한다. 남자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 후 떠났고 그때부터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
  • 그는 듣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은 말하는 사람들이다. 간혹 말을 하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 148p
  • 한편 사람들은 내 마음을 읽는 데도 꽤 능숙하다. 내가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면 그들은 대부분 나를 혼자 내버려둔다.
  • 최근에는 내 표정에 뭔가 개방적이고 환영하는 듯한 느낌이 생겼는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한테 물어보자'라는 흔한 대사 같은 말을 내뱉으며 다가온다.
  • 나는 사람들이 당황하여 나에게 질문하는 것을 특히 즐긴다. 사람들의 당황한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 당황한 사람들은 놀라운 것들을 보고 놀란다. 
  • 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 24/8/8
  • 164p
  •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 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너겟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 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의 〈곡물 수확》을 떠올 리게 한다.
  • 그림을 즐기는 방식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 24/8/9
  • 제일 재밌는 챕터
  • 블루칼라 직종과 달리 화이트칼라 직업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얘기, 직업에 대해 좋아하는 점이 나랑 비슷하다고 느꼈고 자부하는 점은 나와 다르다. 매트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여는 행사들이 특별해 보였다.
  • 나이많고 특별한 경험을 한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느꼈던,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는 태도들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진심으로 즐기면서도 늘 진심이기 위해 하는 노력들도 인상깊었다.
  • 비탄에 빠진 부분을 일상의 리듬으로 메꾼다는 비유도 마음에 들었다. 지난 챕터에서 중요한 존재를 잃고 가벼운 애정들로 채운다는 감상을 남긴 나 자신에게 ‘일상의 리듬’이라는 표현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 그와 나의 다른 점 중 중요한 부분은 그는 숨어들기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지만 ‘고집했던 고독’을 깨는 ’일상의 리듬‘을 수용하고 감사히 여겼고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는 나의 고독에 취해서 오히려 고집을 깨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고, 그가 리듬이라 표현한 것들을 방해꾼처럼 귀찮은 것들로 치부해온 일상들이 떠올랐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고독을 지키려 했을까? 그것이 나에게 주는 건 안정감이었던 것 같다.
  • 비유하자면 같은 재료들로 같은 주제에 관한 작품을 만들며 전혀 다른 색의 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만든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심미안을 느끼게 하는 것이고. 내가 만든 것들은 보고 있기 괴로운 실패작이다.
  • 191p
  • 동료 경비원들이나 관람객들과 나눈 짧은 소통에서 찾기 시작한 의미들은 나를 놀라게 한다. 부탁을 하고, 답을 하고, 감사 인사를 건네고, 환영의 뜻을 전하고••· 그 모든 소통에는 내가 세상의 흐름에 다시 발맞출 수 있도록 돕는 격려의 리듬이 깃들어 있다. 비탄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리듬을 상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 그는 얼마간의 ’한동안‘을 지냈을까?
  • 9장.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지 이해하려고 할 때
  • 24/8/10
  • 206p
  • 메트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이곳의 주된 역할이 미술사 박물관이 아니라는 걸 더욱 확신하게 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관심 영역은 하 늘 높이 솟았다가 지렁이가 기어다니는 지하 무덤까지 내려가고, 그 둘 사이의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어떤 느낌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거의 모든 측면과 맞닿아 있다. 그런 것에 관한 전문가는 있을 수 없다. 나는 우리가 예술이 무엇을 드러내는 지 가까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비로소 예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믿는다
  • 예술의 역할과 예술을 누리는 방법
  • 10장.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하는 날들
  • 24/8/23
  • 256p
  • 이제 이런 순간들은 예전만큼 자주 오지 않고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슬퍼진다. 위대한 그림은 경외감, 사랑 그리고 고통 같은 잠들어 있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은 메자닌의 골동품들에 대한 호기심과는 다르다. 이상하게도 나는 내 격렬한 애도의 끝을 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내 삶의 중심에 구멍을 냈던 상실감보다 그 구멍을 메운 잡다한 걱정거리들을 더 많이 생각한다. 아마도 그게 옳고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 상실감이 잡다한 것들로 매꾸어져 가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표현한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행복보다는 고통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던 날이 떠올랐다. 남의 말로 그 감정을 들으니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상실감이 원래 사랑이었다는 것이다. 형을 잃은 상실감이 그만큼 큰 것이어서, 애도는 남은 애정을 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옅어져 간다는 것이 섭섭하구나 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상실감이 옅어지는 것에 대해 섭섭해하는 그 감정에 고스란히 공감할 수 있다. 내가 했던 첫번째 실수는 상실감이라는 감정이 원래 사랑했던 것에서 온 마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고, 두번째 실수는 그게 옅어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그 안에서만 지내려고 한 것. 세번째는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어째서 나는 주변에 흔히 널린 사랑과 행복을 마다하고 이 고통에 머물기를 고집하는 걸까?하고 스스로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새롭게 배운 상실감을 다루는 방식을 정리해보자면, 내가 상실이라는 고통에 아플때마다 아픔만으로 그 시간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것이 원래 사랑이었음을 알고 그것을 음미한다는 생각을 1에서 50, 50에서 60, 60에서 80으로 점점 넓혀가는 것에 집중할 것, 그리고 상실감이라는 감정이 옅어져 갈 때 내가 사랑했던 마음이 비로소 다했음을 알고 섭섭함과 함께 고통의 끝이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릴 것.
  • 11장. 완벽하지도 않고 완성할 수도 없는 프로젝트
  • 24/8/28
  • 작은 병실 안에서 그야말로 중대하고 신비로우면서도 평범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의 대부분은 그냥 앉아서 어리둥절하며 침묵 속에서 견뎌내는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것도 전과 마찬가지다.
  • 올리버가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신생아는 품에 안기에도 연약한 존재이고, 잘못하면 부러져버릴까 두려울 것이라 생각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고, 강력하고, 강건한 느낌을 주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부대 자루, 수십억 개에 달하는 세포 더미였다.
  • 지금까지는 사소한 것에 거의 신경 쓰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그 삶에서는 내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는 세상을 그냥 둘러보기만 하면 됐다. 그러니 부모 노릇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수없이 많은 사소한 일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내가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보라. 산더미 같은 빨래, 계속되는 병원 출입, 끝없이 반복해서 기저귀 가방을 쌌다 풀었다 해야 하는 일상. 나는 농부들이 느꼈을 법한 기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노동이 너무고 단해서 그 결실을 음미할 여유조차 없는 느낌 말이다.
  • 감정이란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를 배우고 있다. 어린아이가 맑음과 폭풍우 사이를 얼마나 예상치 못하게 빠른 속도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지, 어른도 얼마나 그와 비슷한지를 깨우친다.
  • 메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첫 몇 달을 돌이켜보면 내가 한때 날이면 날마다 많이 뭔가를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를 그토록 오래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아마 그것은 커다란 슬픔이 가진 힘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날마다 수많은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요즘 같아서는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사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더 이상 처음 미술관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처럼 단순한 목표만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살아나가야 할 삶이 있다.
  • 그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처럼 세밀한 밑그림과 저멀리 보이는 지평선 위로 가볍게 채색되기 시작한 하늘에 감탄한다. 아마도 뛰어난 물건을 볼 때 가장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감각한 그는 작품에 사로잡혀 열중한다.
  •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실력과 인내심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결국 그것이 넘칠 정도로 좋은 것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무엇이 됐든 그것을 정말로 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얼마나 열심히 해야 하는지, 수월해 보이는 외양을 지니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우리는 잘 안다. 내가 자랑스러웠던 이유는 아마도 인간이 수많은 단점 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꽤 자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 듯하다.
  • 페트 브로이어 미술관은 결국 계약 기간을 끝내지도 못하고 문을 닫았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관람객 숫자가 고르지 않다는 이유로 불과 4년 만에 폐관했다. 메트처럼 엄청난 기관이라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면 실험을 해야 하고, 실패를 하기도 한다.
  • 12장. 무지개 모양을 여러 번 그리면서
  • 24/9/19
  • -292p
  • 미켈란젤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매일 메모하는 작은 수첩과 함께 매일 그림을 그릴 작은 수첩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302p
  •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바로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미켈란젤로 시대의 피렌체, 심지어 미켈란젤로 시대의 로 마마저 이런 면에서는 로레타 페트웨이가 살던 시절의 지스 벤드와 다르지 않다.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르네상스와 같은 개념을 빌어 생각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새로 만든 회반죽을 바르 고,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회반죽을 조금 더 바르고, 거기에 그림을 조금 더 그리는 한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 13장.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구름이님에게

to. 구름이님


구름이님 안녕하세요^^

저도 요즘 구름이님처럼 오락가락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밝은 햇님 같았는데 금새 먹구름이 찾아오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경험이 부족하고 서툰 사람이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에 두려움도 만만치 않아서 이도저도 못하는 그런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처럼 말도 늘 횡설수설이에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고..그래도 올해는 그런 제 자신을 조금씩 꺼내보이려고 용기내고 있어요.


저도 올해는 구름이님처럼 제 마음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에게 집중하는 한 해를 보낼 생각이에요.


구름이님의 편지는 일상을 참 다양하게 잘 채워가시는분일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처럼 '몽글몽글'하고 예쁜 하루하루를 채워가시면서 달콤한 한 해를 보내시길 바랄게요.




-24년 6월 27일 목요일, 익명의 펜팔 친구가-








편지 가게 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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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묻는 주혜씨에게

주혜씨 안녕하세요^^

뜨거운 여름 밤 저의 취향을 소개하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어요


저는 겉보기에 굉장히 얌전하고 수줍음이 많은 사람인데 노래 취향은 시원하게 지르는 락앤롤을 좋아해요.


노래방 가서 신나게 질러대면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랠때가 많았어요. 특히 체리필터의 '낭만 고양이' 부르는 걸 좋아한답니다.


기분이 들떠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거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보내고 싶을 때 노래방을 자주 갔었는데 근래 언제 갔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저의 일상도 주혜씨처럼 집, 회사, 집, 회사 이런 루틴이었거든요. 내일이면 회사에서 정식 퇴사하는 날이라서 이제 좀 여유가 생길 것 같아요.


취향대로 딸 아이와 노래방도 가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즐기는 시간이 많길 바래보며 편지를 마칠게요.



-6월 어느날 꿈꾸는하루가-




편지 가게 글월
편지 가게 글월
멋진 일이란, 너의 행복이었으면

표지만 봐도 마음이 명랑해져 골라보았다. 제목은 또 얼마나 근사한지. 레고 무비같은 느낌에 책장을 열면, 우주 모험의 꿈을 꾸는 열 여섯 소녀가 등장한다. 마치 나의 괴로움을 날려주려 나온 책인가 하는 망상까지 잠깐 했고...똘똘한 가출 계획과 새 친구, 미지의 세계, 카세트 테이프와 녹음기(이제는 이게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도 많겠지)에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제목을 봤을 때 이미 알아야 했다. 작가의 명성을 생각해도 그리 단순하고 얇은 이야기일 리가 없는데...

픽션의 세계라도(...픽션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세상을 구한다는 건 분명 보람있고 대단한 일이고, 때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이 명작이라거나 스스로의 선택이 어떻다거나 하는 점은 아무래도 좋다.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희생하는 것은 반칙이 아닌가. 세상에 미성년의 시련을 다룬 책이란 셀 수 없으니, 이런 소리만 하다간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지만...상상 속에서만이라도, 아이들은 그저 현재진행형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비틀린 독자는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정해연 장편소설 『용의자들』(위즈덤하우스)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목이 졸려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사망자 주변인 모두가 용의자다.

사망자의 부모, 남자 친구, 남자 친구의 엄마, 담임선생, 베프까지.


가장 용의자와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이 용의선상에 차례로 오르고, 또 올라야 할 이유도 충분하다.

용의자들 중 누가 범인일지 추리하다 보면, 페이지 넘기는 속도에 미친 듯이 불이 붙는다.

재미도 재미인데 가독성이 엄청나다.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니 말이다.


사실 목차를 보면 누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핵심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첫 목차와 마지막 목차에 실린 이름이 같았으니 말이다.

쓸데없이 눈치가 빨라 해당 목차에 실린 이름이 범인이겠거니 하며 이야기를 따라갔다.


목차가 바뀔 때마다 인간애가 쿠크다스처럼 박살 난다.

입에서 "와! C8!" 소리가 몇 차례나 나왔는지 모른다.

욕을 하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침내 비밀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 온다.


아... 

내가 예상한 용의자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결정적인 인물이 맞았다.

그런데 그 용의자에게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 용의자를 범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상황.

그 상황 앞에서 1g 남아 있던 인간애마저 사라진다.


내가 한때 쓰면서 집착했던 '읽을 땐 재미있지만, 읽고 나면 몹시 기분이 찝찝해지는 소설'에 200% 부합하는 작품이다.

오랜만에 읽는 재미와 더러운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여름에 킬링타임용으로 딱이다.

그 어떤 호러 영화보다 소름 끼친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

용의자들
용의자들
고우리 산문집 『편집자의 사생활』(미디어샘)

출판 시장에 넘쳐나는 게 산문집이라지만, 늘 새롭게 다가오는 종류의 산문집이 있다.

내겐 직업을 다룬 산문집이 그렇다.

나는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하고, 그 일로 정직하게 밥을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랑한다.

내겐 EBS '극한직업'이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감동적이다.

이 책은 책을 만드는 사람, 편집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산문집의 내용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

이미 많은 리뷰가 있는 산문집이어서 거기에 비슷한 칭찬을 보태는 것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더 신선할 것 같다.


나는 신문기자로 11년 일했고, 그중 2년은 편집기자 경력이다.

편집기자는 신문 지면의 레이아웃을 짜고 제목을 단다.

제목을 잘 달면 대단하지 않은 기사인데도 잘 읽히고, 잘 못 달면 좋은 기사인데도 묻힌다.

편집기자가 생각하는 좋은 제목과 취재기자가 생각하는 좋은 제목이 다를 때가 종종 있다.

취재기자와 편집기자를 모두 경험해 본 결과, 이런 경우 대체로 편집기자의 의견이 옳다.

취재기자가 기사를 쓰지만, 편집기자가 오히려 그 기사를 더 잘 이해할 때가 많다.

취재기자는 해당 기사에만 매몰돼 있지만, 편집기자는 여러 기사의 맥락을 읽어낸 뒤 종합적인 판단을 통해 레이아웃을 짜고 제목을 달기 때문이다.

취재기자가 단 가제대로 제목을 다는 편집기자는 월급루팡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집기자 경험이 나중에 취재기자로 일할 때 많은 도움이 됐다.

편집기자가 지은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때로는 편집기자의 마음을 읽어 나도 원하고 편집기자도 원할만한 제목을 먼저 제시할 때도 있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나는 책을 만들 때 편집자에게 전권을 맡기고 편집자의 의견 대부분을 그대로 따르는 편이다.

그리고 내가 지은 가제가 실제 책의 제목이 된 경우도 꽤 많다.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다시, 밸런타인데이』 『젠가』 『왓 어 원더풀 월드』, 소설집 『괴로운 밤, 우린 춤을 추네』, 산문집 『안주잡설』 등은 모두 내가 가제로 지었던 제목이 그대로 출간 때까지 이어진 사례다.

편집자를 이해하면 작가도 편하다.


작가라면 누구든 편집자와 인연을 맺게 된다.

편집자를 향한 작가의 감정은 꽤 복잡하다.

고마울 때도 있지만 미울 때도 있고,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없이 멀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직업 산문집은 해당 직업 종사자를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값싼 방법이다.

편집자가 밉고 멀게 느껴지는 작가라면 이 산문집을 일독해 보기를 권한다.

그 어떤 편집자도 자기가 만드는 책과 작가가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구보다 책이 대박 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편집자라는 사실을 이 산문집이 알려줄 것이다.

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편집자의 사생활 - 업무일지가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문지혁 소설집 『고잉 홈』(문학과지성사)

한국이 아닌 어딘가(아마도 미국?)의 풍경, 배경에 깔린 어스름한 새벽의 박명, 소설집의 제목을 담은 간판.

책을 덮고 다시 표지를 보니 소설들과 잘 어울리는 표지다.

소설집을 읽기 전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표지인데, 읽은 후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애틋한 기분이 들었다.

올해 들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표지다.

'작가의 말'을 보니 작가가 원래 의도한 제목은 이 제목이 아니었나 보다.

편집 과정에서 제목이 바뀐 건 탁월한 선택이다.


소설집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 모두 고국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의 설렘과 불안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작가의 전작인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처럼 단편 대부분이 작가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쓴 듯 현장감이 상당하다.

장편보다 유머(라고 쓰고 허무 개그)는 덜하지만 잔향은 길어서 오래 페이지를 붙잡게 한다.


한국 소설에서 부족한 부분을 꼽으라면 한국이 아닌 장소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 드물다는 점인데, 작가는 꾸준히 타국을 배경으로 '디아스포라' 문학을 선보여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고향을 떠났지만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아이러니한 심리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며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냐고.

만약 소설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이런 질문이 굉장히 심심하게 다가왔을 테다.

매력적인 소설집이다.

고잉 홈
고잉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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