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한다는 사람 중에 추리소설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몇몇 이유를 들어 SF나 판타지, 로맨스 장르를 읽지 않는다는 독서가는 봤지만 추리소설을 피한다는 이는 못 봤다. 애서가들의 독서 편력을 들어보면 열에 아홉은 어릴 적 읽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말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추리소설보다 ‘범죄소설’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탐정소설, 형사소설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탐정, 형사, 혹은 ‘추리’가 나오지 않아도 훌륭한 범죄소설들이 있으니. 범인 찾기, 트릭 풀기에서 눈을 돌리면 감상의 폭이 더 넓어지는 작품도 많다. 범죄는 강렬한 드라마를 일으키며, 늘 얼마간은 사회적 요소를 품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추리소설 걸작선』 1, 2권을 읽는 일은 이중으로 즐거웠다. 수수께끼 풀이의 쾌감, 한국 추리문학의 계보와 선배 작가들의 분투를 발견하며 얻는 감흥도 물론 컸다. 동시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 사회의 모습과 한국인들의 심리를 쫓아가며 읽어내는 독서도 흥미진진했다. 해외 범죄소설, 혹은 어느 작가의 단독 단행본을 읽으면서는 얻지 못했을 재미다.
전체 1,484쪽 분량인 책 두 권에 모두 44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국경 밖에서 자유로운 상상을 신나게 펼치는 작품들도 있지만, 역시 한국의 범죄에 눈길이 간다. 김성종의 「회색의 벼랑」은 냉전 시대를, 서미애의 「반가운 살인자」는 외환위기 이후 파괴된 가정의 풍경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 여성을 소재로 한 한이의 「체류」, 갑질 문제를 다룬 송시우의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진지하고 날카로운 사회비판 소설이기도 하다.
상당수 작품들이 아내의 불륜에 대한 가부장의 분노(혹은 공포)를 다룬다는 점은 흥미로운 분석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그 순간의 독특하게 습하고 탁한 분위기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2012년에 나온 선집이라 네이버와 미다졸람은 나오지만 소셜미디어와 펜타닐은 아직 언급이 없다. 언젠가 3권이 나온다면 2020년대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범죄로 어떤 것이 등장할지 상상해본다. 소재가 부족하지는 않으리라.
『눈먼 자들의 경제』(한빛비즈)는 필진의 명단만으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책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퓰리처상 수상자인 도널드 발렛과 제임스 스틸, 『머니볼』과 『빅숏』을 쓴 베스트셀러 논픽션 작가 마이클 루이스, 논쟁을 몰고 다니는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데’ 하는 우려는 접어두시길. 이 책, 정말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어떤 단행본 기획이 이런 스타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을까. 책의 주제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다양한 현장과 그 의미다. 아무래도 의미를 분석하는 글보다 현장을 전하는 르포와 인터뷰에 더 점수를 주게 되는데, 특히 미국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스의 몰락 과정이나 나라 전체가 망하다시피 한 아이슬란드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월가의 거물들에 대한 초상도 흥미롭다.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를 위기에 빠트린 조셉 카사노의 이야기는 블랙 코미디 그 자체다. 반면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금융위기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에 대해서는, 정책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그 처지나 판단을 둘러싼 고뇌가 충분히 이해가 가며 연민의 마음마저 인다. 번역본으로 708쪽인 이 책에서 4분의 1 가까운 분량이 버나드 메이도프 사기사건을 다루는데, 이 부분만 따로 떼어내 한 편의 입체적인 비극 작품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금융위기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보다 더 큰 질문, 예컨대 ‘금융이란 무엇인가’, 혹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그 답변을 얻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것 하나는 분명히 알게 된다. 거대한 숫자의 금액 앞에서 사람들은 현실감을 잃는다. 그래서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한심하고 기괴한 짓을 저지르고야 만다. 탐욕에 빠져 눈이 멀었다며 당사자를 비판하기야 쉽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 시스템 전체가 사람들을 탐욕에 빠뜨리며, 바로 그 탐욕에 의해 굴러가는 것은 아닌지.
읽는 사람 느긋해질 시간이 한 페이지 넘어가기가 힘든 것도, 주인공들이 참 놀라운 방식으로 선악을 넘나드는 것도 여전한 친절한 요나손 씨의 책. 하나하나 키워드를 따지면 왕년의 아침 시간 드라마가 연상되는데 그것들을 묶어 이런 결과가 나온다니 당신이 해리 포터...초반에 형 캐릭터에 속이 부글부글 꿇어서리 이 인간 머리에 도끼가 꽂히거나 체르노빌에 버려지기를 간절히 바랐다만 뭐...벌을 받기는 받았으니께...생각해보면 이렇게 주인공들이 별 짓을 다 하는 작품에서 하나하나 권선징악한다면 준조연 가리지 않고 싸그리 형무소에 가거나 핵전쟁으로 지구가 증발하는 결말일텐데 그런 건 즐거움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어쨌든, 평소에 잘 챙겨먹고, 몸 뺄 땐 잽싸게 빼더라도 정의 구현을 가끔 시도라도 해보고,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주는 성의도 보이며 살아가다보면 내 인생도 좀 더 웃을 일이 생기겠지. 마법의 북유럽 치즈나 비밀계좌 속 돈뭉치가 없어도, 오늘이라도 기프티콘과 인사 한 마디는 던질 수 있으니 즐거운 시간은 생각보다 가깝다.
나는 아들과 아빠의 관계는 영영 딸과 엄마의 관계를 닮을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아직도 여자와 남자가 유별하기에, 재학생 동의 없이 여대를 공학으로 전환하려하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가 멀다하고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는 뉴스가 나오기 때문에.
엄마가 엄마이기를 거부할 때 받는 비난과 아빠가 같은 일을 할 때의 비난은 그 정도가 다르다. 그래서 엄마는 할머니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또 존중하기로 한다. 단편 ‘내 할머니의 모든 것‘은 배정심 여사, 나의 할머니가 엄마이기 앞서 하나의 개인으로 존재하기로 결심한 그 시간의 외로운 각오를 짐작하며 흘러간다.
엄마를 사랑하기도 또 미워하기도 잘 하는 딸을 위한 단편.
와일드 시드를 일요일에 다 읽었다.
금요일에 이미 몇 페이지 남지 않았기에
그때 다 읽을 수도 있었지만
왠지 일요일에 결말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택이 참 잘 내린 결정이었다.
조용하고 평온한 일요일 오전에
결말을 읽으니 감정과 상황이 더 깊게 다가왔다.
그 전에도 소설을 읽고 가끔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찡한 경우가 있었지만
눈물이 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해 유튜브를 찾아봤다.
한 채널의 업로더가 하는 말이 공감이 갔다.
"이 책은 날 철저히 망가뜨렸다."
"모든 페이지 하나 하나가 날 끝장내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나니 나 또한 끝나는 기분이었다."
등장인물이 겪어야 했던 상황과 감정의 억압을
따라가며 같이 답답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던
순간들이 마지막에 가서 뒤집히며 녹아내린다.
말 그대로 무너진다는 말이 무엇인지
와닿는 순간이었다.
옥타비아 E. 버틀러의 책들 중 더 뛰어난 작품들이 있겠지만
와일드 시드만큼 절절하지는 못했다.
사람이 사랑을 갈구하고 그러면서 남을 소유하고자 하고,
소유하려다 보니 통제하고자 하고,
통제하려다 보니 억압하게 되는 관계의 문제를
노예제, 문명과 야만, 사회의 억압이라는 사회적 차원으로
그리고 가족과 결속력이라는 인간의 문제까지
이 책은 아우르고 있다.
11월은 나에게 '콧물 대잔치' 시즌이다. 늦가을 찬 공기로 계절성 비염이 시작되면 콧물이 줄줄, 재채기가 연거푸 터진다. 오늘 외출은 따뜻한 햇살 덕에 콧물 비상 상황을 겪지 않아 다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