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 전쯤 일이다.
학교에서 반지하방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오른손에 붕대를 감은 채 괴로운 표정으로 식탁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서 어머니가 울고 있었다.
그날 아버지는 일을 하다가 원형톱에 검지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다급히 봉합수술을 시도했지만 잘린 부위의 오염이 심해 실패했다.
그때 아버지는 내게 침통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안 그러면 이렇게 된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아버지가 당시 당한 사고는 엄연히 산재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사고 책임을 본인에게 돌릴 뿐, 일터에 묻지 않았다.
당시 분위기가 그랬다.
근무 환경이 어떻든 간에 사고는 본인 책임이라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빈소에 들러 영정 앞에서 절하는 아버지 친구분 중에 손가락 10개가 모두 성한 분이 드물었다.
그분들이 일터에 책임을 물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야만의 시대였다.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몇 년 전 고용노동부 출입기자로 일하며 기획 기사 아이템을 찾으려고 각종 통계를 뒤졌는데, 산재 발생 건수 및 사망률이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매년 낮아지는 추세이긴 했지만, OECD 국가와 비교하면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았다.
산재를 당했지만 신청할 수 없어서 통계에 잡히지 않은 건수까지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은 산재와 직간접적으로 엮인 17명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한 희곡이다.
이 작품의 '작가 노트'는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통계는 아무리 자릿수가 많아도 잘 와닿지 않는다.
그런 통계를 인용하는 기사 역시 잘 와닿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통장에 숫자로만 찍혀 있는 1000만 원보다 내 주머니에 있는 10만 원이 더 크게 느껴지는 법이니 말이다.
이 작품은 증언, 재판, 청문회 속기록 등 실제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그대로 편집해 엮어서 드러내기 때문에 희곡이지만 희곡이 아닌 실제 상황 같은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배우는 인터뷰이를 역할을 하지만 인터뷰이와 거리를 둬서 연기이되 연기가 아닌 듯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그동안 통계에 가려져 있었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실제 인터뷰이의 녹취 음성이 재생되는 가운데 2023년 3월에 일어난 산재 사망 기록이 자막으로 길게 이어진다.
직접 세어보니 무려 66건이다.
그리고 그 위로 자막 하나가 오버랩돼 무거움을 더한다
2,223/130,348
2022년도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 재해자 수다.
'작가 노트'의 서두에 적혀 있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말이 다시 무겁게 울린다.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다."
문학동네시인선 207 (240624~240702)
❝ 별점: ★★★★☆
❝ 한줄평: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시는 그림이며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다.’ (해설_김지은, 시가 기르는 작은 시, p.89)
❝ 키워드: 꿈 | 밤 | 어린이 | 동물 | 사랑 | 빗방울 | 해 | 눈송이 | 파도 | 슬픔 | 행복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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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지은 시인의 첫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을 읽었어요. 제목을 봤을 때는 몽글몽글하고 동화 같은, 아이들이 읽는 그림책 같은 시가 가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느낌의 시도 많았지만 아프고 슬픈 시들도 있었어요. ‘그림 없는 그림책’이라는 시와 시집의 제목은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집에서 가져왔다고 하네요. 시집 제목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 김지은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시집에는 그림이 없지만 시는 그림이며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다.’ (p.89)라고 말하는데요. 시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이미지로 떠올리고 읽으면서 시를 더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저는 이 말이 정말 공감됐어요. ‘시인은 글을 쓰는 화가’라는 표현이 정말 아름답네요. 시가 어려우신 분들은 시를 이미지처럼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시집의 마지막 시는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라고 말하지만 그런 심정은 이내 비워내고 마음을 새롭게 채우며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마트료시카」 부분, p.86)이라는 구절로 끝나는데요. 가끔은 슬프고, 쓸쓸하고, 외롭지만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힘이 나더라고요. 이 시집을 읽으며 그런 행복을 찾으셨으면 해요.
✦ 벌써 남지은 시인의 다음 시집이 기다려지네요. 기대되는 시인이 있다는 것도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중 하나겠지요. [📝 24/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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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강한 다리를 갖고 싶어요
이 밤을 정중겅중 건너뛰고 싶어요
지난밤
지지난밤
멀고먼 밤에도
그건 작은 토끼의 꿈이었다
숨죽이고 지나는 밤이
어린 토끼들에게 있는 일이다
/ 「비상계단」 부분 (p.12-13)
✴︎
울고 싶은 사람은 어디로 갈까
울고 싶은 사람을 울게 하는 약은 어디 있을까
어른들의 기도는 깊어지고
햇님의 토사물이 색유리에 튑니다
/ 「말하기에 대한 강박」 부분 (p.45)
✴︎
파도를 이고
파도를 이고
너는 돌아오곤 했다 마주보면 평원보다 넓게 열리던 것을 믿자고 했다 먼 곳을 보듯 나를 보는
너를 망치고 싶지 않아
더는 웃을 수만은 없는 순간이
기어코 오고야. 노을과 함께이다
너와 누우면
기울면 쏟아지던 파도들
왜 이런 슬픔은 누워서야 알아차리나
/ 「헹가래, 헹가래」 부분 (p.60)
✴︎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 「마트료시카」 부분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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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어린 독일가문비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쓰인다
✎ 「귀신의 집」
✎ 「비상계단」 ⛤
✎ 「모조」 ⛤
✎ 「흉」
✎ 「도마뱀」 ⛤
✎ 「일치」 ⛤
✎ 「호각」
✎ 「오르간」 ⛤
유리 그리기
✎ 「잼잼」 ⛤
✎ 「넝쿨장미」
✎ 「말하기에 대한 강박」 ⛤
✎ 「재생」
✎ 「코스튬」
✎ 「커터」 ⛤
그럼에도 흰 눈이 그리는 곡선
✎ 「성호를 그으며」 ⛤
✎ 「헹가래, 헹가래」 ⛤
✎ 「전염」 ⛤
✎ 「캄파눌라」 ⛤
✎ 「수평의 세계」 ⛤
✎ 「기척」 ⛤
✎ 「복기」 ⛤
✎ 「그림 없는 그림책」 ⛤
✎ 「크로키」 ⛤
✎ 「새벽 탈출」
✎ 「테라스」 ⛤
✎ 「혼자 가는 먼 집」
✎ 「마트료시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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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까지 소설로 다뤄졌을 법한데 다뤄지지 않은 소재로 자기 영역을 개척해 왔다.
여성 직장인의 시점을 교차시키며 일과 직장의 의미를 물었던 장편소설 『백 오피스』,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전문직 여성의 고뇌를 담은 연작소설 『먼 빛들』이 대표적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최근에는 소설로 거의 다뤄지지 않았던 통일과 탈북자 문제에 주목했다.
시베리아 벌목장을 배경으로 다룬 장마리 작가의 장편소설 『시베리아의 이방인들』 외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최근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최근 한국 문학에선 낯선 주제다.
아무래도 청년세대에게 잘 와닿지 않는 문제라는 게 소설로 다뤄지지 않았던 이유일 테다.
남북이 갈라져 사실상 다른 나라로 자리잡은 지 70년이 넘었다.
청년세대는 북한을 가끔 미사일을 쏘거나 오물풍선을 날리며 도발하는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고, 심지어 통일을 당위로 여기는 사람을 '틀딱'으로 취급한다.
작가가 이 문제에 핀 조명을 비추기 위한 선택은 낯선 곳에서 바라보기다.
작가는 독일에 정착한 탈북 여성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전직 경찰 출신인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통일과 탈북자 문제를 파고든다.
주인공은 마치 수사를 하듯 의문사의 배경을 추적하고, 자연스럽게 분단 문제가 현재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고 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반추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과거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일했던 남한 출신 교민이 경험했던 경계인의 삶,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탈북자의 아슬아슬한 삶이 자연스럽게 딸려 나온다.
작가는 한반도에 발붙이고 사는 한민족의 문제를 이방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해 보여준다.
그 끝에서 나는 누군가의 삶이 어디에서 태어나고 자랐느냐로 불행해져선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다른 독자는 다른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구름이 잔뜩 회색빛 하늘을 올려다본 기분이 들었다.
가본 적도 없는 독일의 하늘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책을 덮을 땐 두꺼운 구름을 뚫고 가느다란 빛이 땅에 닿는 풍경이 떠올랐다.
지난해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던 장편소설 중 하나는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매년 챙겨보긴 하면서도 최근 당선작은 조금 아쉬웠는데,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그런 아쉬움을 확 털어낸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올해 수상작은 어떤 작품일지 꽤 많은 기대를 했다.
세계문학상 수상자는 생짜 신인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랬다.
이야기의 겹이 많고, 등장인물의 심리를 다루는 필치가 섬세하다.
익숙한 공간인 한국과 낯선 공간인 프랑스를 오가는 배경 속에서, 보편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운 사랑이 펼쳐지다가 접히더니, 마침내 맑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이 모든 과정이 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다채롭다.
마치 밤새 내린 비에 젖은 식물의 푸른 잎을 새벽에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작 가 이름을 가리고 읽었다면,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착각할 뻔했다.
작품을 읽기 전에는 나무 아래 두 여자가 앉아 있는 표지에 실린 그림(메리 카사트의 1869년 작 'Two seated woman')이 뜬금없어 보였는데, 다 읽고 나니 왜 이 표지를 골랐는지 알 것 같다.
탁월한 선택이다.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지만, 공부도 안 하고 접접도 없는데 뭔가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 학문 중 톱 클라스가 고고학이 아닐까 싶다. 인디아나 존스가 고고학자라 생각한 시절도 있었지만 나이들어 다시 보면 문화 유적의 보존과 발굴 측면에서는 국제 수배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 유적 발굴 영상 좀 봤다고 고고학을 안다고 하는 것도 택도 없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읽었다. 학술 용어를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고, 소개된 유물 유적들은 기본적으로 일본 중심이다만 유익한 안내서다. 높은 학문 수준과 더불어 과학 지식도 필요하고, cm 단위로 땅을 파고 표시하는 미친 노동을 감수해야 하며, 그 고생해놓고도 내 연구 방향을 반박하는 유물이 나오면 어떻게 할 길도 없는 험난한 학문이라는 걸 이해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어쨌든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찾아 발굴을 하지만, 그 해석에는 항상 위험성이 있다는 것도...
굉장히 신기했던 산소동위원소비 연륜연대법(발음도 한 번에 제대로 못하겠다...)를 보면 아아, 레이저 쏘는 것만 첨단 연구가 아니라 이런 거 있구나! 싶고. 석기에서 철기로 가면서 무기가 나오는 걸 설명하는 부분에 '살상인골로 복원한 검의 사용법' 그림이 나오는데, 사실 그림 자체도 골때린다만 그냥 인간의 존재가 슬퍼진다. 무기가 무디고 쓰기 썩 편치 않아도 상대를 죽여야겠다는 일념에 효과적인 방법을 찾고 집단으로 학습하는 것이 인간인가 싶어서...
모든 학문이 다 대단하지만, 고고학 분야에 대한 존경심이 쭉 올라간다.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들 덕분에 편하게 책 보았다.
- 한기호님 블로그 발췌 메모
왜 사람들은 책읽기를 싫어할까? 질문이 틀렸다. 사람들이 책읽기를 싫어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인류는 수 백만 년 동안 먹고, 마시고, 놀고, 짝짓기에 몰두하도록 진화한 동물이다. 책읽기가 소수의 특권 계층이 아니라 대중의 여가 활동으로 자리 잡은 것도 고작 150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거꾸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어떤 사람은 책읽기를 좋아할까?’
실제로 그랬다. 스마트폰이나 유튜브가 없던 때도 책읽기에 몰두했던 사람은 전체 인구를 염두에 두면 소수였다. 책읽기를 먹고 마시는 일만큼이나 탐닉하는 이들은 극소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지만, 여전히 책읽기에 몰두하는 소수가 있다. 그들을 책읽기로 끄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기획회의>가 주목한 독서 ‘모임’에 답이 있다. 방금 나는 독서 대신 ‘모임’을 강조했다. 전국 곳곳에서 중구난방 유행하는 독서모임을 둘러싼 이야기 속에서 정작 강조되는 것은 ‘책읽기’ 자체가 아니다. 책 읽는 ‘사람’과 그런 이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연결’이 중요하다. ‘사람’과 ‘연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이 그렇듯이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연결을 원한다. 같은 책을 읽고서 감상을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흔든 또 다른 책과 작가를 타인과 공유하고 싶은 욕망. 책이 더 이상 소통의 중심에 서 있지 않은 시대에 역설적으로 이런 욕망은 더욱더 강해진다. 그래서 그들은 책 읽는 다른 사람을 찾아서 연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때로는 책읽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조차도 책을 통한 연결을 갈망한다. 책읽기가 희소해진 시대에 그것이 역설적으로 ‘힙hip’해졌기 때문이다. 모두 책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시대에 책은 ‘티내기’ 좋은 수단이다. 그런 힙한 일을 함께하고 싶어서, 또 그렇게 힙한 사람과 연결하고 싶어서 누군가는 독 서모임을 찾는다. 그러니 “독서모임에서 책은 뒷전이고 사교나 연애가 우선한다”고 눈을 치켜뜨는 일이야말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다. 지금 그런 모임에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가 바로 책읽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책 읽는 ‘사람’, 또 그런 사람과의 ‘연결’에 관심이 쏠린 탓이니까.
[출처] 책 읽는 사람의 느슨한 독서 공동체|작성자 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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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텍스트를 스마트폰으로 보건 피디에프(PDF) 파일로 보건 종이책으로 보건 어떤 형태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길고 복잡한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여부인데, 갈수록 독자들이 짧은 글만 선호하고 있어 걱정”이라는 그는 “길고 복잡한 글을 읽을 수 있는 능력, 또 어떤 글을 읽을 건지 말 건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문해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문해력이 민주주의의 토대”라고 강조했다고 하는데 이것도 나와 생각이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출처] “사람들은 ‘이야기’(story)를 계속 좋아할 것”이라 “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작성자 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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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장은 여성들이 도서전에 몰리는 이유를 ‘연결되고 싶은 욕구’에서 찾았다. 그는 “개인이 각자의 생존을 고민하며 홀로서기 하는 ‘핵 개인’의 시대에 차별과 불안을 극복해야 하는 젊은 여성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다”며 “비슷한 고민과 정서를 지닌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욕구가 있고, 책이 그 정서의 매개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출처] ‘인스타용’이라도 좋다… 서울국제도서전 역대급 흥행|작성자 한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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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셋길이 막힐까 두려워하면서 마지못해 이 프로젝트를 맡은 지역 출신 30대 공무원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지방’ ‘지역’ 혹은 ‘로컬’에 유행처럼 접근하는 세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작가의 목소리가 깔려 있다. 이번 이슈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을 기획하면서 이 소설에 대한 반론을 듣고 싶었다. 내가 틀렸었다. ‘로컬 브랜딩’을 다양하게 접근하는 여러 글에서 똑같이 강조하는 키워드는 ‘삶’이다. 지역주민의 삶이 빠진 ‘로컬’ 심지어 그것을 ‘브랜딩’하는 일은 존재할 수도 없을뿐더러 지속 가능할 수 없음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로컬’ 전문가 여럿이 한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I의 비극』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이 떠난 지 6년이 지난 빈 마을, 그러니까 지역 주민의 삶이 사라진 곳에다 전국 곳곳에서 모인 제각각 이질적인 삶을 이식하는 발상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삶이 사라진 마을은 그대로 잊히는 게 맞았다. 삶이 지역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슬쩍 궁금하지 않은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뻔했던 81세 노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빼어난 가창력으로 요양원의 인기 스타가 되었단다. 80대에 또래에게 주목받다가 세상을 뜬 그의 말년은 고향 마을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행복했을 테다. 역시, 중요한 건 삶을 지속하는 일이다.
[출처] ‘로컬’보다 더 중요한 것|작성자 한기호
“오랜 시간 아이들을 대하며 느낀 것은 질문이 많은 아이가 성장의 폭도 크다는 것이다. 똑똑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영재원에서도 이런 아이들은 유독 눈에 띈다. 궁금한 것에 파고드는 의욕도, 지치지 않고 공부에 매달리는 열정도 다른 아이들이 따라가질 못한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을 때도, 망설임없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간다. 이런 아이들을 상담해 보면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사소한 질문을 해도 환영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다는 것이다.”
『무엇이 행복한 영재를 만드는가』(김성훈, 나비스쿨에듀)의 저자는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하루 한 시간 대화하기’라는 룰을 언제, 어디서든 지켜왔다는 『미래 언어가 온다』(조지은, 미래의창)의 저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은 언어 발달이 느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들이 있다”고 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아이들은 디지털 기기에 더 많이 노출되고, 실제로 사람을 만나서 상호작용을 할 기회를 많이 놓쳤다. 청소년이나 성인에게 디지털 언어 학습은 대면 언어 학습을 대체해줄 하나의 기회일 수 있지만, 어린이는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먼저 부모 혹은 양육자와 함께 정보나 감정을 주고받고 대화를 하면서 상호작용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 이것이 이뤄진 토대가 있어야 비로소 디지털 언어도, 새로운 언어 습득도 가능한 것이다. 미래 언어에서는 디지털 세상과 현실 세상 사이의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쉽지가 않다. 아이들이 말할 기회를 마음껏 주면 좋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직접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경우에도 나에게 질문을 하거나 대들던 아이와는 지금도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 혼자서 묵묵히 잘 커준 아이의 속마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릴 때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잘못 말했다 얻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나는 묵묵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물론 수많은 책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최근에도 나에게 질문을 하는 이들이 늘었다. 토론 수업을 할 때 질문이 많으면 그 수업은 반드시 성공한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이들이 있으면 얻는 것이 무척 많았다. 어제 저녁에는 회의가 있었는데 질문이 많았다. 어차피 다른 환경에서 일해 온 사람들의 생각이 똑같을 수는 없다. ‘생각의 차이’가 컸는데 그걸 하나로 모으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의 차이가 바로 상상력이다. 그러니 차이를 드러내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출처] 행복한 아이로 키울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작성자 한기호
[인터뷰] 사실을 캐서 치열하게 쓴다, 월급사실주의 소설가 장강명을 만나다 (naver.com)
월급사실주의라는 조어를 만들고 동인을 꾸려 소설집을 기획한 이는 소설가 장강명이다. 2011년 <표백>으로 데뷔한 그는 원작 소설로도 잘 알려진 <한국이 싫어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댓글부대>, 신문기자 출신답게 르포집 <당선, 합격, 계급>, 1, 2권 합쳐 800쪽이 넘는 장편소설 <재수사>, 관심사인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F소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까지 다양하게 써왔다. 그러나 장르가 무엇이든 원류는 동시대 한국 사회였다. 그는 “내가 보는 대로 쓴다”고 말하는 소설가다. 그렇기에 장강명의 문장은 에두르지 않으며 간결하고 표현과 단어 쓰임이 정확하다. 그래서 장강명 소설은 빠르다. 환부를 찔러 아프지만 곪은 부위를 터뜨려 후련한 느낌을 준다.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 출간을 기해 장강명을 만났다. 인터뷰 당일인 지난 6월18일에도 그는 여전히 한국을 징글징글해하면서도 끈질기게 걱정하고 한국 사회에 대한 치열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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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대의 현실을 ‘미세 좌절의 시대, 혼미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개인적으로 미세 실패가 아닌 미세 좌절인 것이 특히 흥미롭다.
= 미세 실패와 붙이니 미세 좌절이 더 선명해진다. 미세 실패가 뭔가라도 해볼 수 있는 거라면 미세 좌절은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느낌이다. 강덕구 평론가의 책에서 그가 2010년대를 ‘시간이 흐르지 않는 시대’라고 쓴 구절을 읽은 적 있는데 공감한다. 정치에서도 사회에서도 비전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 그렇다. 나아갈 길을 모르니 매일매일 느리게 퇴행하고 꺾이고 있음에도 막을 방법을 찾지 못하고 이렇다 할 시도 한번 없이 그저 멍하니, 혼미한 상태에 머무는 거다.
- 2024년으로 특정했을 때 한국 사회의 가장 깊은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전체 조망은 어렵다. 다만 ‘적을 알아야 내가 누군지도 알 수 있다’고 했던 새뮤얼 헌팅턴처럼 개인적인 적은 알았다. 긴 글을 믿고 수호하고 싶은 나의 적은 SNS고 숏폼 콘텐츠이고 짧은 글이고 스마트폰이다. 요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책 100권을 한 페이지씩 찢고 그걸 또 한 문장으로 찢어서 한방에 뿌린 상태와 같다. 그 쪼가리들을 다 읽는다고 해서 책 내용이 이해될까. 아마 머리에 들어오기는커녕 뭘 읽었는지 더 모르는 상태가 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건 정보이지 지식이 아니다. 그렇기에 현대인이 하루 동안 여기저기서 읽는 글자가 책 한권 분량이기 때문에 책 안 읽어도 된다는 소리는 말이 안된다.
🚩12주차 완료
📍 /낭독회🌟
-대본
네, 안녕하세요.
멋진 송정희 성우님께 소개 받은 낭독 기초반, 방장 000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먼저 월요일(워료일) 저녁시간 낭독회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가 오늘 들려드릴 책은 서혜정 성우님과 송정희 성우님이 쓰신, 내 마음에 들려주는 목소리-, "나에게 낭독"입니다.
저희 낭독기초반은 올해 3월말부터 함께하게 됐고요.
다양한 이유와 열망으로 가지고서 낭독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 책에서 1장과 2장의 이야기를 들려드릴 거고요.
그 먼저 "내가 만난 낭독"를 낭독가분들께서 소개해드리고 이어서
낭독을 하겠습니다.
처음이라는 건, 정말 설레기도, 떨리기도 한데요. 그래서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이 더 귀하고 즐거운 자리라고 생각이 드네요. 저희 낭독기초반에 첫 낭독회이자 낭독과 만나게 된 저희의 모습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듣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데요. 귀 기울여 들어주세요. 저희 낭독기초반 낭독회 잘해보겠습니다.
그러면 본격적으로 첫번째 낭독를 시작해주실 선생님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아 저희 첫 번째 낭독 선생님은 고상한 목소리의 소유자이시고, 또, 순수한 매력도 겸비하고 있으신대요.
낭독에 대한 열정으로 성실하게 수업을 함께해오신, 정00 선생님입니다.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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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난 낭독은요.
가끔 서툰 나에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치유하게 하는 도구고요.
걷고, 읽고, 웃으며 쉼이 있는 즐거운 놀이입니다.
누워서 들어도 자신의 목소리가 좋아지는, 나를 사랑하는 마법이고요.
침묵의 언어에도 귀 기울이게 하는, 나를 위한 시간입니다.
낭독을 통해 깊이 새겨지는 텍스트로 스스로의 목소리도 확인하다 보니
2024년 7월 1일, 지금 이순간까지의 저의 삶이 묻어나는 소리가 되었네요.
낭독과 함께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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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의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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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끝으로 저희 반의 낭독은 여기까지 입니다.
늦은 시간 함께 해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번 낭독회 포스터를 만들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
낭독이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구를 가져와봤는데요.
오늘이 그 마음이 실현한 첫 순간이네요. 함께 해주셔서 기쁘고요.
저희 앞으로도 낭독! 함께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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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송정희 성우님과 함께하는 낭독기초반 낭독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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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반 강의 후기
낭독에 대해서 배우면서 새로운 게 많이 보였어요. 평소에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고 모자란 스스로를 타인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데요. 애써 소리치는 데도 제 이야기가 가닿지 못했던 이유 중에선 저의 표현 방식의 문제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전에는 자주 세상 탓, 상대방 탓만 하곤 했는데 말이죠. 뻔한 말이죠? 그렇지만 막상 내 일로 깨닫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낭독 덕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 정확하게 의미를 표현한다는 것. 낭독을 배우면 배울수록 삶에 중요한 도구를 만난 것 같아요. 그래서 들뜨는 마음. 조급한 마음. 내 목소리에 실망하기도 하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요. 어떤 문장을 낭독할 땐 이런 욕심도 잊어버리고 몰입하다가 저도 모르게 위로 받기도 했습니다. 어렵고 재밌고 두렵고 신나는 낭독. 앞으로도 잘 해볼게요.
12주 동안 유쾌하고 따스하게 낭독을 알려주신 송정희 성우님 감사합니다. 더불어 함께 낭독을 시작한 기초반 동기 선생님들도 감사하고요. 덕분에 무사히 완강했습니다. 함께 낭독하던 목소리와 열심히 움직이던 표정들이 머릿 속에 생생하네요. 오늘 낭독회도 화이팅이에요! :)
씨네21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주로 월급사실주의에 대해 이야기했네요. 횡설수설했는데 기자님이 아주 잘 정리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채 기자님, 감사합니다! ^^
“먹고사는 현장을 취재해서 쓴 소설 <산 자들>(2019)을 냈을 때 평소와 달리 반박하고 싶은 평이 두개 있었다. 하나는 사실대로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는 평이었다. 동의할 수 없었다. 리얼리즘, 그러니까 현장에 가보거나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난한 사람과 여성의 삶,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대로 쓰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설득력이 생긴다. 또 하나는 왜 노동자 편을 안 드냐는 평이었다. 무조건 노동자는 옳고 경영진은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주장이었고 이는 2020년대 한국 노동자의 현실을 글로 배워 선입견에 빠진 사람이 할 법한 소리였다. 오래전부터 나는 현실감각이 많이 떨어지는 한국 문학계에 발품 팔아 당대를 말하는 소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주장의 지향점을 보여주고 이러한 작품들이 이제는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름을 붙였다. 작가들을 모으기 위해서도 이름은 필요했다.”
#월급사실주의 #씨네21 #인터뷰 #그믐 #리얼리즘
https://m.entertain.naver.com/article/140/0000052984
반야심경 해설서.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들이 한자어 병기를 통해 환기되는 순간이 있는데 고해苦海가 '고통의 바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도 햄릿에서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고통의 바다를 언급한 걸 떠올리면서 바다와 고통이라는 대상들에 대한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공통된 인식이 흥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