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46 (240602~240624)
❝ 별점: ★★★★★
❝ 한줄평: 슬픔을 헤아리고 어루만져주는 강한 사람의 시들
❝ 키워드: 여름 | 돌 | 호수 | 언덕 | 열매 | 영혼 | 질문 | 시간 | 슬픔 | 그리움 | 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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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시집 『당근밭 걷기』를 읽기 전 꼭 여름에 읽고 싶었던 시집을 꺼내 읽었어요. 시인께서 사인을 해주시며 ‘여름 언덕에 오르면 그게 뭐든, 다 괜찮을 거예요’라고 적어주셨던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오래오래 아껴가며 읽은 시집입니다.
✦ ‘슬픔을 세는 단위를 그루라 부르기로 하고, 눈앞에 너무 많은 나무가 있으니 영원에 가까운 헤아림이 가능하겠다’(「열과(裂果)」 부분, p.135)고 말하는 화자처럼 시인은 슬픔을 계속해서 헤아리는 사람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울면서도 ‘계속 가보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구르는 돌」 부분, p.128) 계속해서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고, ‘펑펑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된다’(「슈톨렌」 부분, p.131)고 말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 시인의 말에서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고 말하셨는데, 저는 평생 이런 노래를 부를 시인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여름 언덕을 오르는 일은 고통스럽고, 힘들고, 때로는너무 슬플지도 몰라요. 하지만 언덕을 다 오르고 난 후에는,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또 언덕을 잘 내려올 힘을 얻기도 하는 거니까요. ‘여름 언덕’을 마음에 품고 잘 살아가고 싶어 졌어요. [📝 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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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
나는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은 내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 「업힌」 부분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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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쪼그려 앉아 호수를 보았다 묘사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아름다웠고 처음 보는 빛으로 가득했다 호수를 곁에 두고 우리는 전에 없던 대화를 나누었다 반딧불이의 숲은 어땠어? 어떤 반짝임에 대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생각할수 있는 길이었어 그런데 너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어? 네 최초의 기억은 뭐야? 같은,
/ 「알라메다」 부분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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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환상 속에 두지 마세요
어린 시인은 단호히 말한다
쓰러진 물컵 속에는 물 외엔 아무것도 없다
슬픔이나 절망 같은 건 더더욱 없다
/ 「영혼 없이」 부분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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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폭을 맞추며 씩씩하게 나아갔다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은 온갖 종류의 그리움 같아 내가 말하면
구름이 아름다운 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때문이겠지
핑퐁을 치듯
/ 「실감」 부분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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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펑 울고 난 뒤엔 빵을 잘라 먹으면 되는 것
슬픔의 양에 비하면 빵은 아직 충분하다는 것
너의 입가엔 언제나 설탕이 묻어 있다
아닌 척 시치미를 떼도 내게는 눈물 자국이 보인다
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 「슈톨렌」 부분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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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제1부
✎ 「불이 있었다」 ⛤
✎ 「소동」
✎ 「업힌」 ⛤
✎ 「면벽의 유령」
✎ 「선잠」
✎ 「미동」
✎ 「알라메다」 ⛤
✎ 「사랑의 형태」
제2부
✎ 「자이언트」
✎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
✎ 「빛의 산」
✎ 「역광의 세계」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p.54)
✎ 「불씨」 ⛤
✎ 「표적」
✎ 「단란」
✎ 「폭풍우 치는 밤에」
✎ 「에프트」
✎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거야」
✎ 「영혼 없이」 ⛤
✎ 「내가 달의 아이였을 때」 (p.86)
✎ 「실감」 ⛤
✎ 「아침은 이곳을 정차하지 않고 지나갔다」
제3부
✎ 「반려조(伴侶鳥)」
✎ 「덧칠」
✎ 「태풍의 눈」
✎ 「스페어」
✎ 「호두에게」 ⛤
✎ 「알혼에서 만나」 ⛤
✎ 「나의 규모」
✎ 「구르는 돌」 ⛤
✎ 「슈톨렌」 ⛤
✎ 「열과(裂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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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미미디어 (240623~240624)
❝ 별점: ★★★★☆
❝ 한줄평: 마을의 평화를 지켜내는 일의 어려움이란
❝ 키워드: 추리 | 시골 | 자연 | 미스터리 작가 | 소방단 | 방화 | 화재 | 죽음 | 태양광 발전 | 슈퍼 내추럴 | 유령 | 형태 | 실체 | 종교 |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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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딩님 필사 챌린지 완주 후 선물 받은 도서인 이케이도 준의 장편소설 『하야부사 소방단』을 읽게 되었어요. 이케이도 준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 그 드라마 원작 작가라고 해서 놀랐네요 ㅎㅎ
✦ 등장인물이 많으면 이름 정리가 꼭 필요한데 책 시작 부분에 주요 등장인물 소개가 있어서 좋았어요. (주요 등장인물에 겐사쿠가 없었던 건 조금 의외) 또 시골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지 계절, 풍경이나 하늘, 꽃 등 아름다운 자연 묘사가 자주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주인공인 미마 다로의 집이 벚꽃 저택이어서 그런지 다채로운 꽃 묘사가 많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 책을 다 읽고 나니 692쪽이나 되는 엄청난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긴장감을 유지하며 결말까지 끌어가는 능력이 있는 작가란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어서 물 흐르는 듯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계속해서 범인과 상황을 추리하면서 읽었는데 1/3 정도만 맞춘 것 같네요 ㅋㅋ 주인공 미마 다로가 연재하고 있는 『도시에서 우는 뻐꾸기』의 내용도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ㅎㅎ
✦ ‘우리’ 하야부사 마을을 지켜내고 말겠다는 다로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케이도 준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즐거웠습니다!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 24/06/24]
(*최초딩님 필사 챌린지 참여 후 도서를 증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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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눈에 보이는 형태를 지닌 것에 실체는 없고, 실체가 없는 것이 눈에 보이는 형태를 지닌 것이라면, 과연 그날 다로가 경험한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나카야마다가 읊고 있는 반야심경 세계가 ‘깨달음’의 경지라면, 형태가 있는 것에 휘둘리고, 실체가 없는 것에 실체를 추구하는 다로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에서 헤매고 있는 것 아닐까.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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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기행'을 읽으며 소개를 받아서 바로 도서관에서 빌렸다. 소재들이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과학적 핍진성이 높다(고 생각한다ㅎ.ㅎ). 작가는 세계의 시스템을 일종의 기계들로 보는 것 같다. 과학기술뿐 아니라 법률 제도까지도. 기존 SF가 과학기술의 어두운 면을 부각해 주인공을 디스토피아와 싸우게 만들었다면, 켄리우의 단편에서는 과학기술의 더 나은 활용과 인간의 적응을 말한다. 또한 소프트 SF들과 다르게 역사적 논쟁처럼 무거운 주제들도 잘 풀어낸다. 무거운 주제 너머의 작은 개개인을 조명하는 이야기들이어서 더 와닿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켄 리우식 결말처리가 너무 좋다. 소재들이 마지막 장면에 모이면서 메시지를 폭발시키는 느낌이었다! 최근 '은랑전'이라는 신작도 나왔는데 이미 우리집 책꽂이에서 대기 중이다.
유유히 출판사의 에디터리 편집자님을 처음 만난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까마득한 그날, 에디터리 편집자님은 하와이에 '빅웨이브' 라는 정말 맛있는 맥주가 있다고 눈을 반짝이며 알려주었다.
이제는 편의점 3캔 맥주로 들어올 정도의 유행이니 이 얼마나 앞서가는 심미안인가! 당시 처음 듣는 맥주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빅웨이브'라고 핸드폰에 적어 두었고 이후 에디터리 편집자님을 (속으로) 빅웨이브라고 불렀다. 어디 맥주뿐일까? 풋살, 수영 등 못 하는 운동이 없다. 거기에 팟캐스트 진행에 뉴스레터 발행까지! 아니 이 사람,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 싶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 잘 하는 건 바로 본업인 책 만들기!
이번에 나온 유유히의 신간 <작업자의 사전>도 기대된다. 잘 읽을게요. 감사합니다.
베이징도서전 다녀왔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 홍보도 하고, 출판사와 에이전시 분들도 만났습니다. 김초엽 서윤빈 작가님, 이시아 번역가님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습니다. 올림픽공원 인공 호수 앞에 앉아 밤바람 쐬며 용정차 수제 맥주를 테이크아웃으로 마시며 이야기 나눈 경험은 오래도록 못 잊을 거 같아요. 중국은 10번 정도 간 거 같은데 갈 때마다 사람들 옷차림이나 행동, 거리 모습이 몰라보게 바뀌어 있어 늘 놀랍니다.
환대해주신 중국 편집자님들,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베이징도서전 #김초엽작가님 #서윤빈작가님 #이시아번역가님 #당신이보고싶어하는세상
사랑하는 조카 도경아!
네가 입대한 지 벌써 2주가 돼가는구나.
더운데 고생 많지?
널 생각하면 얼마 전에 상관의 가혹 행위로 안타깝게 죽은 병사도 생각나구..
옛날 고모부 처음 만났을 때도 생각나구..(고모랑 고모부가 군대에서 처음 만난 거 알고 있지?^^)
군대...군인...이런 단어를 떠올리면 고모는 참 많은 생각이 든단다.
우리 도경인 어릴 때부터 참 똑똑하고 자기 할 일을 똑부러지게 했었지.
대학 입학이라는 관문에서 비록 한 번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또다시 절치부심해서 당당히 원하던 의대에 합격하는 모습을 봤을 때,
얼마나 자랑스럽고 대견하던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늘 시험과 사투를 벌이는,
만만치 않은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널 보고 참 안쓰러웠는데
너는 힘든 기색 한 번도 안 하고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어.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음질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어른인 고모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의료 사태가 터지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네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깝더라.
너의 그 방황이 계속될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어느 날 갑자기 네가 군 입대를 한다고 선언했을 때 처음엔 다들 놀랐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네 상황을 알고 너의 선택을 존중해주기로 했어.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둠이 거치고 아침이 오듯,
이 터널이 지나면 그 끝에는 밝은 태양이 떠오를 거라 믿는다.
복무하는 동안 계획한 대로 다음을 준비하고
재충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군대 생활 잘하고 와라.
힘들지만 너를 설레게 하는 그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길 응원할게.
고모도 요즘 설레게 하는 일을 만나서 매일매일 그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단다.
고모는 고모 자리에서 너는 너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가
네가 멋진 민간인이 되는 날
우리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결이도 내년쯤이면 입대를 할 것 같아.
네가 선배님이니까 군생활 잘하는 노하우 좀 알려주라...^^
오늘처럼 위문(?) 편지 종종 쓸게.
다음 편지 보낼 때까지 건강해라.
from. 울 도경이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는 고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