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번역가, 에세이스트인 인터뷰어와 티베트 불교 스님인 인터뷰이의 대담집. 기독교에 대해서만큼이나 불교 교리에 대해서도 얼마간 마음을 닫은 터여서일까. 인터뷰이의 답변보다 인터뷰이의 솔직한 고민들을 읽으며 오히려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 장 디톡스와 10년 일기장에 관심이 생겼다.
한국어판 제목이나 표지는 뭔가 서정적인데, 책 목차에서 알콜 섭취에서 세계 정상급의 명성이 있는 아이리쉬의 기개가 느껴지니 아이리쉬 버전 부코스키의 회고록같은 건가 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다. 84세에 한 자리서 저 술을 다 먹으면 급성 간염 오는 게 아닌가 싶다만, 인물들의 대화로 보건대 주인공은 항상 이 정도는 마시는 설정인 듯 하니 역시 아이리쉬다 생각은 했다만.
사랑도 상실도 죄책감도 정말 세피아색 사진들처럼 흘러간다. 보통 주인공이 투박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우직함과 깨끗한 양심,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되는 천사같은 부인이 한 세트인데 여기에 들어가면서도 또 벗어나는 부분이 있는 것도 매력이고...동전 하나를 둘러싼 드라마에서, 사실 모리스가 정말 죄를 지은 것인지 아닌지 솔직히 판단하지 못하겠다. 토마스의 행적이나 토니의 장례를 생각하면 동전 따위 문제도 아니지만, 그 집착에 관련도 없는 후손들이 괴로워하게 되었고...에밀리와 힐러리는 책망하지 않았지만, 용서를 받았으니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직전에 읽은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도 노년에 과거를 돌아보는 설정인데 박자도 온도도 너무 달라서 두 소설이 한층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도, 소설 속 세계에서라도 우직히 살며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좋거나 싫거나 이게 나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따스하다. 좋은 시간이었다.
기분이 끈적끈적할 때는 악을 두들겨 부수는 책이나 왕년의 포카리스웨트 광고 같은 뒷맛을 주는 에세이의 약발이 좀 필요하다. 새하얀 표지와 짧고 편안한 글, 중간 중간 책 이야기. 우연히 매일 마주치던 이에게서 그 사람의 인생 책 이야기를 듣고, 식당 에서 편지를 쓰는 여인과 친구가 되고, 평생 자신을 이끌어주는 친구같은 책이 있고...여름의 카페 테라스 그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기분을 이 더위 속에서 살짝 맛본다.
집 근처 평소 다니던 골목 말고 우연히 다른 길로 갔다가 눈을 드니 바로 앞에 그믐달 이 보였다. 파랑새는 가까이에, 아니 그믐달은 바로 옆에 있었구나. 샛노란 그믐달과 함께 적혀있는 영롱한 세 글자. 달/ 닭/ 발/
안 가볼 수 없잖아. 며칠 뒤 방문. 아담한 실내에 테이블은 약 5개, 십여 년 전 가요 씨스타, 빅뱅이 흥겹게 흘러 나온다. 조명이 아주 밝지 않아 좋다. 벽유리에 쓰인 문구 "지금 힘들다면 잘하고 있는 것이다" 흠, 나는 아주 잘 하고 있나 보다. 😁
숯불 닭발 세트와 생맥주를 주문했다. 무뼈 닭발이 생각보다 매운데 맛있게 맵다. (혀의 통각만 자극하는 무의미한 매운 맛 아니고.)
집 근처에서 그믐달을 발견해서 괜히 기분 좋다.히히.
뭐라고 적어야 들어오실래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로 써 주세요!
직접적인 묘사는 적나라하지 않은 데 독자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심히 변태스러운 장면들이 있다. 사회파 소설가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하지만,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사회 비판이 아니라 그 변태적 장면들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도 해본다. 세이초와 하루키를 비교한 권말 해설은 이렇게 볼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너무 다른 두 작가를 비교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읽고 나서 작가의 나이를 다시 확인했다. 79년 생. 프랑스에서 2014년에 출간된 걸 생각하면, 늙음과 회한을 논하는 내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공사 양면으로 노년층과 자주 접한 경험이 있다지만, 이 정도로 쓸 수 있다는 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있어서일까?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흔하지만, 언젠가부터 유쾌한 방향이 주류가 되고 가끔은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묘사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고령화사회가 되고 의학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지내는 노년층 인구가 많아서 그렇겠다만, 아직은 모두가 그렇게 지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 아닌가. 마음같아서야 나도 잭 리처처럼 환갑 넘어서도 주먹을 자랑하고 체력이 남아돌았으면 좋겠지.
육체적 고통, 사회의 구성원 자리에서 밀려나는 데서 오는 소외감, 노인들끼리 모인 환경에서 오는 불안과 우울,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는 존재의 부재...인생 막바지에 맞닥뜨려야할 피할 수 없는 과제들이 있고 첫 페이지부터 계속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울한 것은 아니다. 내용과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즐거운 대목이 없다면 한국어판 표지가 이렇게 깨발랄할 수는 없을테니까.(...그래도 오해를 부르는 표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쾌한 분위기만 따진다면 투석기를 자기 내연녀라고 소개하는 로제가 주인공이어야하겠다만, 틈만 나면 독설에다 간호사 대상의 성희롱적 독백이 혐오스러운 독거노인이 주인공이어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곰씹어볼 문장들이 많았고, 닥쳐올 미래도 그렇지만 지금의 고통이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거친 삶을 경험하고 책이나 이론을 신봉하지 않는 레옹이, 책 오덕 잭과 벌이는 티키타카 부분들도 잠깐이지만 볼거리다.
- 책은 야만과 맞서는 마지막 성벽이야.
- 매우 훌륭한 얘기로군. 하지만 자네 말대로라면 국민을 고생시키는 비열한 정치가들은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사상가들의 책을 읽지 않은 게 분명해. 과거의 황제도, 현대의 독재자도 틀림없이 형편없는 문맹일 거라고.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분량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는 '초선' 아닐까.
초선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는 판짜기가 없었다면, 『삼국지연의』는 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테다.
초선은 남성 호르몬으로 가득 찬 『삼국지연의』의 초반을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이지만, 이후 행적은 캐릭터의 존재감에 맞지 않게 묘연하다.
박서련 작가는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다.
등단한 지 10년이 안 됐는데, 그사이에 내놓은 단행본 수가 10개가 넘는다.
무시무시한 생산력이다.
그만큼 쓸 이야기도 많고, 관심사도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작가가 메가 임팩트만 남기고 빠르게 『삼국지연의』에서 퇴장한 초선에 주목한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은 사도 왕윤의 명을 받아 연환계를 펼쳤다고 나온다.
초선이 직접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긴 해도, 어디까지나 이 계책은 왕윤의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초선이라는 캐릭터를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캐릭터로 새롭게 연출한다.
사극인데도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가 아닌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다뤘다는 점도 매우 신선하다.
이런 시도는 학창 시절에 즐겨 읽었던 무협지 이후로 처음 본다.
이 작품 속 초선은 냉정해야 할 땐 망설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손에 넣기 어려운 높은 지위를 욕망하고, 성적인 욕망(그게 여자든 남자든)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생존 그 자체에 특화된 캐릭터다.
주변인 모두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사라져도 초선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아 뒷이야기를 전한다.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로 불리는 서시, 왕소군, 양귀비의 삶은 모두 비극으로 끝났다.
그런데 초선은 나머지 셋과 달리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공인물이다.
마침 『삼국지연의』에는 연환계 이후 초선의 삶은 나오지 않으니 작가가 상상력을 더할 여지가 많았을 테다.
작품 마지막에 뒷이야기를 전하는 초선은 예상치 못한 모습이어서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대단히 인간적이었다.
스타일리시한 장편소설이다.
계속 그러면 일주일 안에 자네를 나무 조끼 속에 집어 넣게 될 거야. 사람들은 정겹게도 그걸 '관'이라고 부르지. 82p
이 책은 오늘은 읽을 예정이 없었다.
대여 만료 기간이 코 앞인 책을 읽어야 하는데, 유튜브가 방아쇠를 당겼다. 여름에 어울리는 곡을 모아 둔 플레이 리스트 듣는데, '일 포스티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원작으로 한 영화) ' OST가 2연속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아 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게 된 것이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쌓여 있던 인터넷 서점 적립금을 해치울 적당한 금액, 파블로 네루다라는 시인에 대한 궁금증이 있던 시기, (네루다의 시를 읽은 적 없다.), 영화로 만들어진 문학은 재미가 보장되어 있다는 확신.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 구입했다. 그런데, 책을 사고 얼마나 관심이 없었던 건지 e-북으로도 샀다.
분명,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영화 콘티도 잘 그렸을 것이다. 문장을 읽는 내내 장면과 인물의 표정이 그려져 책이 아닌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페이지마다 피식 웃게 되는 농담과 연출이 돋보였다. 과연, 영화 감독에게, '영상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욕심이 들게 만드는 좋은 장면들이 많았다.
베아트리스에게 말도 못 걸면서 네루다에게 결혼식 대부가 되어달라는 마리오, 문제의 베아트리스를 처음 만난 네루다, 의문의 계란 씬, 마리오가 녹음한 테이프의 마지막 소리, 네루다의 노벨상 수상날 화끈한 밤, 네루다와의 이별,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먹먹한 마지막 장면. 마지막 장면은 '대체 칠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라는 궁금증에 불을 지폈다. 결국, 나는 위키디피아를 통해 짤막한 칠레의 현대사를 검색했고, 배경을 알고 난 후, 마지막 장면은 더욱 슬퍼졌다.
젊었을 때 그 노래를 얼마나 불렀는지. 늘 이 음반을 구하고 싶었는데 뜻을 못 이뤘었지. '기다리겠어요.'란 노래인데, 리나 케티가 불렀어. 가사에 '밤낮으로 기다리겠어요, 돌아오시기를 항상 기다리겠어요.'라는 부분이 있다네.
칠레를 떠난 네루다가 마리오에게 이슬라 네그라에서 지내며 들어오던 풍경 소리가 그립다는 음성 편지에 리나 케티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마리오에게 답신이 오길 밤낮으로 기다리겠다는 은유도 되겠지만, 역으로 네루다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마리오의 마음을 담은 듯해서 노래를 들으며 몇 페이지를 읽었다. Rina ketty - J'attendrai (기다리겠어요) ***
남미 문학은 몇 권 읽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모두 낭만이 장난 없다. 이게 바로 남미인가 싶을 정도로.
나는 글쓰기는 재능보다는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타고난 재능이라는 게 있다는 걸 부정하지 못하겠다. 『파도가 닿는 미래』를 읽었을 때도 했던 얘기지만, 이 작가는 아이디어들도 좋고, 아이디어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좋다. 특히 어떤 문장 감각들이 부러웠다. 친하게 지내야지.
논쟁적인 주제에 둥글둥글한 인물과 둥글둥글한 서사. 적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된 2028~2031년 한국이 배경이다. 최후의 만찬주를 선택할 수 있는 은혜를 얻는다면 뭘 마셔야 할까나. 마시던 대로 맥주? 운치 있게 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