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인이나 시카리오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고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다만, 나에게는 이 책에서의 묘사가 이때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충격적이다. 마약 카르텔과 형사들은 직업상 폭력을 많이 보고 접할 수밖에 없지만, 그냥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 1이 매일 보는 풍경이 이랬을 거라고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경력이나 이름으로 봐서 작가 본인이 모델인 화자의 말이 독한 편이라 처음엔 그냥 독설가 캐릭터인가 했는데 (당장 새벽에 축구 보고 기력이 쇠한 와중에, '인류가 텔레비전 앞에 오래도록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스물 두 명의 유치한 어른들이 공을 차는 걸 지켜본다면, 희망은 없는 거야' 같은 소리 읽으면 이빨 사이로 소리가 샌다...) 그렇게 한 마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귀국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희망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끔찍함이 더하다. 설정상 양심적인 주인공도 아니다만(이게 귀국해서 너무 절망한 나머지 이렇게 바뀐 건지 원래부터 이런 성격인 것인지는 언급이 없지만, 후자의 설정이 아니길 바란다...) 이 정도까지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랄하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다가...
젊은, 아니 어린 알렉시스나 윌마르의 삶은 대체 뭐라고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비극이라고 쓰면 이상하게 드라마틱하고 얄팍하게 느껴지고, 이 얇은 책 속의 인생들에 대해 표현할 어휘력이 모자란 것이 한스럽다. 내일이 무언지도 모르고, 대단한 이유도 없이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총을 쏴대고, 그러면서도 개 한 마리를 쏘지 못하며 오래살기는 커녕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도 멋진 옷을 입고 가전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살인마들. 그 와중에 무슨 무속이나 고대 신앙마냥, 시카리오들이 용서와 보호를 구하면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에 감상을 표현할 단어를 다시 찾지 못한다. 화자도 솔직히 다른 소설이었으면 어디 문제 있는 악당으로 나올 법한 정신상태인데 성모에게 자신을 의지하라고 하질 않나(그 아들과 카톨릭을 그렇게 깠으면서...) 읽으면서 목이 탄다. 해설에 의하면 주제가 비슷해보이는 작가의 나머지 작품들이 지금까지 번역이 안 된 걸 보면 너무 절망적인 내용은 역시 판매가 잘 안 되는가 싶다. 영화화도 되었다길래 검색해서 트레일러를 보았다. 영화의 평가가 좋은 걸 보니 오히려 더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절망스런 이미지들을 시각적으로까지 접하면 내 멘탈을 확인사살하게 될 것 같아서...
지방에서 광고 회사를 운영한다는 게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저자는 10년 넘게 고향인 대구를 기반으로 광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간 수주한 광고 프로젝트들에 관한 소소한 포스트모템. 주요 포트폴리오가 지역 사회의 병원, 버스 광고판 광고 들이라 대구 시 민이 아닌 이상 처음 보는 것들.
검은숲 (e-book, 240712~240714)
❝ 별점: ★★★☆
❝ 한줄평: 결말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 키워드: 드루리 레인 | 배우 | 셰익스피어 | 탐정 | 독순술 | 추리 | 미스터리 | 스릴러 | 살인 | 범인
———······———······———
✦ 엘러리 퀸의 비극 시리즈 마지막 책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 멱살 잡고 왜 이렇게 마무리 지었냐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 비극 시리즈 중 세 권의 책은 ‘XYZ의 비극’이란 제목으로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어서 판매하면서 이 책은 왜 같은 시리즈인데 배제됐나 궁금했는데요... ㅎㅎ 작품 내의 사건 추리 과정의 완성도와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운 결말이었어요. 물론 만족하시는 분도 있겠지만요.
✦ 다른 아쉬운 점 한 가지. 네 권 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오탈자가 종종 눈에 띄더라고요. 대여해서 읽은 거라 굳이 출판사에 문의하지는 않았는데 종이책도 이렇다면 소장이 고민될 것 같네요.
✦ 비극 시리즈 마지막 책의 아쉬움과 별개로 X, Y, Z의 비극은 읽어볼 만한 고전 명작이라 생각해요! 이미 엄청나게 유명한 Y의 비극도 재미있지만 X, Z의 비극도 매력적인 작품이니 한번쯤 읽어 보시길 추천해요! [📝 24/07/17]
———······———······———
✴︎
레인의 맑은 눈 깊숙한 곳에서는 불가사의한 승리의 빛이, 아니, 환희에 가까운 광채가 빛났다. 레인이 입을 열려는 순간, 경감이 먼저 기묘한 어조로 “3HS, 소문자 w에 대문자 M······.”이라고 중얼거렸다. 마치 소리를 내어 읽으면 그 숨겨진 의미가 드러나기라도 할 듯이······.
✴︎
“도끼를 휘두른 사람은 무의식중에 자기의 비밀을 드러내버린 꼴이 되고 말았어요. 그 자신은 까맣게 몰랐겠지만 분명한 실수를 저질렀던 거예요. 말하자면 운명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래요. 운명이란 것이 싸구려 자명종시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나타났던 거라고요.”
———······———······———
🚩심화1반 1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6주 동안 '긴긴밤' 책 한 권 마스터할 수 있도록 스케줄 짜서 연습하기
(ex. 30페이지씩 연습 후 녹음, 서사를 이끌고 가기)
📍 '긴긴밤' 처음 타이틀부터 p.27까지 녹음파일을 올려주세요.
(다음주 월요일(7/15) 오후 3시전까지)
민음사 (240701~240712)
❝ 별점: ★★★★★
❝ 한줄평: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칠월」, p.77)
❝ 키워드: 지옥 | 삶 | 죽음 | 비 | 희망 | 꿈 | 절망 | 좌절 | 분노 | 사랑 | 자유 | 빛 | 어둠 | 슬픔 | 외로움 | 소년 | 청춘
———······———······———
✦ 「칠월」이라는 시가 실려 있어 매년 칠월에 꼭 읽고 싶은 시집. 김경주 시인의 발문에 있는 ‘시인은 외사랑을 하는 자다. 외사랑은 상대에게 자신이 사랑하는지를 모르게 지속해야 하기 때문에 외로운 사랑이다.’(p.121)라는 문장처럼 이 시집의 화자는 세상을 향해 좌절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슬퍼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고 아직 희망을 품고 있기에 세상을 향한 외사랑을 하고 있는 듯했어요.
✦ 시인은 첫 시집인 이 시집을 출간한 후 13년의 긴 침묵을 깨고 두 번째 시집 『나쁜 소년이 서 있다』를 출간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 한 권의 동시집, 한 권의 시선집 등을 내며 꾸준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아직 다섯 번째 시집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와 이 시집만 읽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시집이 너무 궁금해요. 최근 시집으로 올 수록 ‘나쁜 소년’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을 것 같아 기대되기도 합니다.
✦ ‘쏟아지는 여름날의 비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과, 또 땅바닥을 구르는 지옥 같았던 눈물.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속에서도 얼마나 여름을 사랑하는지’(「칠월」, p.76-77) 말하는사람. 이 슬프지만 찬란한 구절들 때문에 칠월이면 이 시를, 그리고 허연 시인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 24/07/14]
———······———······———
✴︎
내게서 채 사라지지 않은 것들을 불태우거나 묻어 버리며 여기까지 이 빗속까지 왔네. 하나같이 가슴 뜨겁게 했고 대가를 치른 사랑이었지만 돌아서면 까맣게 잊기도 했네
/ 「장마ㆍ장마ㆍ장마 — K를 추모함」 부분 (p.19)
✴︎
멀리 완행열차가 가슴으로 달려드는 소리가 들렸고 크고 작은 별들이 음표처럼 머리맡으로 쏟아지곤 했다. 온갖 빛깔의 꿈들이 야간 비행에 열중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때로는 인간의 사랑이나 신념이 아름답기도 했지만그건 언제나 검은 여백이었을 뿐 눈이 떠지질 않으면 노래를 부르거나 연어 떼 같은 사랑을 적는 게 고작이었다 강물도 기차도 다시 오지 않던 그날 저녁 나는 세상의 옆구리를 뚫고 일어서고 싶었다
/ 「경원선」 부분 (p.24)
✴︎
밤을 달리는 모든 건 숙명이다.
/ 「Midnight Specialㆍ2」 부분 (p.55)
✴︎
다시 돌아온 너에게, 말 없는 눈발로 내 옆에 서 있었던 쓸쓸함을 묻지 않으리라. 어느 날 막막한 강변로에서 다시 너를 잃어버리고 창문 틈에 너를 기다린다는 연서를 꽂아 놓을 때까지, 네가 내 옆에 없음을 알고 전율할 때까지
낡은 자명종의 태엽을 감으며,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준다고 했다」 부분 (p.65)
———······———······———
🗒️ 좋았던 시
1부
✎ 「지옥에서 듣는 빗소리」
✎ 「내가 나비라는 생각」
✎ 「장마ㆍ장마ㆍ장마 — K를 추모함」
✎ 「무반주」
✎ 「경원선」 ⛤
✎ 「나는 빛을 피해 걸어간다」 ⛤
✎ 「K」
✎ 「그날」
2부
✎ 「권진규의 장례식」
✎ 「구상(具象)」
✎ 「공작 도시 — 손상기의 그림에서」
✎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가장 희망적이셨습니다」 ⛤
✎ 「손상기는 곱추가 아니다」
✎ 「GOGH」
✎ 「대화」
✎ 「오 샹젤리제」
✎ 「Midnight Specialㆍ1」 ⛤
✎ 「Midnight Specialㆍ2」
✎ 「그 거리에선 어떤 구두도 발에 맞지 않았다」
✎ 「이사」 ⛤
3부
✎ 「너는 사라질 때까지만 내 옆에 있어 준다고 했다」 ⛤
✎ 「저녁, 가슴 한쪽」
✎ 「참회록」
✎ 「별곡ㆍ2」 ⛤
✎ 「교정(校庭)」
✎ 「칠월」 ⛤
✎ 「내 사랑은 언제나 급류처럼 돌아온다고 했다」
✎ 「진부령」 ⛤
✎ 「나를 가두지 마」
✎ 「내 사랑은」 ⛤
4부
✎ 「거미와 나」
✎ 「벽제행」 ⛤
✎ 「편지」 ⛤
✎ 「나무」
✎ 「그해 폭설」
———······———······———
우르르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다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시너지가 좋은 아마추어 탐정단. 작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지.
어떤 점이든 시간을 충분히 투여한 것에 대해서는 존경을 하게 된다. 그게 나이가 될수도 있고, 연차가 될수도 있다. 허나 이제는 그것말고 현재도 그만큼의 전문성을 갖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묻게되는 것 같다.
인생도 창업가처럼 살아가야하나보다.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는가를 비교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내몰다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 대한 마음챙김이 필요하게 될 것 같고 말이다.
저자는 일간지 기자 출신의 과학 칼럼니스트. 설렁설렁 읽기에 나쁘지 않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얼음이 녹고 나면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저렴한 새 해양수송로가 생길 테니 그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식의 관점이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