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진 곳에서 개최되는 파티라면 줄초상이 나겠지 했는데 빗나갔고, 현란한 추리도 없었다. 하지만 천천히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과정도, 주변에 오만가지 불행을 뿌린 이가 천벌을 받는 것도 만족스럽다. 행적에 비하면 너무 자애로운 결말이다만...단독 주연은 아니더라도 해나가 좋았기 때문에 좀 더 밝은 결말이길 바랐다만, 원인이 없어졌다고 고통이 싹 지워지지 않는 것도 인생 이야기니...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매우매우 궁금하다.
이 짧은 한 문장에서 이토록 많은 상념이 쏟아져 나온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싶다. 아직은 결혼도 출산도 어느 것 하나 원치 않는 나지만, 이것 하나만은 명확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출산에 대한 책임감이 결혼보다 훨씬 더 무겁게 느껴진다는 것. 낳지 않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애국이라는 말 좀 그만, 제발 쫌!), 낳고 난 후를 말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볼 수조차 없는데, 내가 누군가를 이 세상에 데려올 권리와 자격이 있나?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엄마에게 유독 자주 들어왔던 말이 있다. 레퍼토리는 대체로 비슷한데, 결론은 늘 이쪽이다.
"너는 내가 낳고 키워준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대전제가 너무나 절대적이라 나의 의견 하나 말하는 것조차 일일이 검열당했다. 자유롭지 못 했다.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감히 토를 단다고, 스스로 생각하지 말고 하라는 대로 그저 가만히 따르라고. 엄마는 내게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말은 "근데 너는 염치가 없다."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말 또한 늘 한결같았다.
"내가 널 낳고 키워준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태어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없잖아. 그럼 책임지는 것도 당연... 까지는 아닐지언정, 나를 억압하고 굴복시키는 도구로 써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엄마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말을 주변에 종종 하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변에 숨이 턱 하고 막힐 때가 많았다. 그저 모녀간의 가벼운 투닥거림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아서. 근데, 근데 말이다. 나는 그 정도였으면 그 집을 벗어나려 발버둥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이제는 사회적 문제로 강력히 자리 잡은 '데이트 폭력'이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여겨지는 '고부간의 갈등'처럼, 가정 안의 불화나 부모의 폭력적 언행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전히 미미하다. "원래 가족끼리는 다 그렇게 부대끼고 사는 거야"라는 시시한 푸념쯤으로 여겨진다. 쓴웃음이 난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 하나하나를 일일이 통제하려 들었고, 그걸 따르지 않으면 나를 굴복시키기 위해 어떠한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뒤가 없는 사람 같았다. 물러섬도, 어떠한 미안함도 없었다. 나는 철저하게 그 공간에서 엄마의 소유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밤이고 낮이고 새벽이고 그런 것 따위는 엄마의 안중에 없었다. 내가 새벽에 잠들어 있으면 무작정 불을 켜고 방에 들어와 나를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지금 당장 할 말이 있다고,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계속 그래왔다. 내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이 북받치는 날이면 학교고 회사고, 나의 어느 것 하나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
머리가 자라면서 아는 게 많아지고, 차근차근 나만의 생각을 가치관으로 정립해가면서 엄마와의 부딪힘은 잦아졌다. 더 정확히는 엄마가 나를 억압하려 드는 강도가 세졌다. 어릴 때는 몸을 때리면 내가 아파했지만, 성인이 되고부터는 몸을 때려도 아픈 걸 티 내지 않았다. 티 내면 그걸 약점 삼아 더 때릴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는 몸이 아닌 얼굴이나 뺨, 머리를 때렸다. 이건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모욕감이 드는 행위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를 철저하게 굴복시키는, 인간 대 인간의 대화가 불가능한 폭력적인 행위들. 30살이 되어 그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엄마는 참지 않았다. 감정이 쏟아지는 날이면 옆에 있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하루는 그 둔탁한 물건에 맞아 귀 뒤가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다. 오빠가 와서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면, 평생 지우지 못할 흉터를 안고 살아야 했을지도. 그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내 노트북도 산산이 부서졌다.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은 엄마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으면서도 다 내 탓이라고 말했다. 내가 자신을 화나게 해서, 감히 말대꾸를 해서. 그때마다 너는 정말 염치가 없다고 말했다. 키워준 걸 감사히 여길 줄 모른다고 했다.
엄마와의 지난한 관계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끊어주지 않으면, 엄마가 그토록 외치던 염치라는 것. 그게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자기연민이 과하면 그렇게 별로라고, 주변에서 그러던데 말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하자, 적당히.
엄마가 나를 상처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를테면 "너 따위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와 같은)은 나열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럼에도 유독 자주 했던 말이 있다.
"니 까짓게"
그냥 농담처럼 하는 말이 아니다. 저 말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건, 폭력이었다. 니 까짓게 감히 나를 가르치려 들어? 머리 좀 컸다고 감히 나를? 네가? 보여줄게. 네 위치가 어딘지. 네가 아무리 나이를 먹고 밖에서 인정 좀 받았다고 해서 뭐라도 된 줄 알지? 아니, 틀렸어. 너는 고작 이 따위 인생밖에 살고 있지 못해. 내 말을 듣지 않았으니까, 내 말을 따르지 않았으니까! 라고 소리치면서.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맞으면서 입을 닫고 아무런 반응하지 않는 것. 참는 것. 엄마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는 것.
왜냐하면,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하니까.
엄마가 낳고 키워준 걸 감사해야 하니까. 엄마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태어나고 싶냐고 한 번도 물어본 적 없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태어난 걸 감사히 여겨야 한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지.
그치, 염치가 있어야 한다. 근데 염치 없게도 나는 감히 이 글을 쓰고 있다. 서평이라고 하기에는 고작 한 문장에서 뻗어난 상념들을 활자로 풀어내 이 공간에 올리는 게 과연 옳은가, 염치 없는 거 아닐까, 이 무해한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또 깊어진다.
아빠가 만약 나에게 태어나고 싶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했을까. "네"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을까. 살아보지도 않은 세상을?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누군가 나에게 태어난 걸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그럼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나마 대답할 수 있는 건(대답하고 싶은 건) 태어남은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죽음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니까 제발. 그럼에도 가족이잖아, 부모잖아, 라는 말을 함부로 건네지 말기를. 나의 엄마를 겪어보지 않았으면서 가르치려 들지 말기를.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다. 원가족에서 벗어나기까지 30년이 걸렸다. 혼자 살면서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다. 늦은 밤 나를 따라오던 남자, 문을 두드리던 남자, 현관의 비밀번호를 누르던 남자, 헤어지고도 집 앞에 찾아와 나올 때가지 집에 가지 않겠다고 겁을 주던 지난 연인들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둠 속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핸드폰 창에 112를 대기시켜 놓는 것.
하지만 그 모든 위태로운 순간에도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그곳에 가는 날은 명절과 생일, 그마저도 관계가 괜찮아졌을 때만 유효하다. 다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내 가족으로 허락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곳을 빠져나왔고, 다시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뒤늦게 읽은 책이지만, 습기차고 더운 시기 셀프 납량특집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시작부터 개점 목적이 평화롭지 못한 서점이고, 예상하는 VIP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하나같이 상태가 안 좋으니 아무리 소설 속 장소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나 상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만...쫓고 쫓기는 사이에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이 책 사랑이라는 게 신박하기도 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한국 옛 잡지나 책이야기들이 신기하기도 하여 스르륵 다 읽었다. 다 끝나갈 때 뜬금없이 중요해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찾아보니 다른 작품 주인공의 까메오 출연인듯. 긴 여름 끝나기 전에 찾아봐야겠다.
[마음 읽기] 색소폰을 배웠던 시간 (naver.com)
확실히 10대 시절에 듣던 시끄럽고 과격한 헤비메탈은 40대가 되면서 잘 듣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즈나 색소폰에 푹 빠지지는 않았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취미로라도 악기를 배우려면 그 정도 열정으로는 부족하다. 연주하는 악기와 음악 장르를 사랑해야 한다.
결국 15년여 만에 원점에 돌아왔다. 여전히 록을 사랑한다. 언제 들어도 위안이 되는, 너무나 개인적으로 느껴지는 블루스 록 노래가 몇 곡 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언젠가 그런 곡을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소망이지만, 그런 종류의 소망은 투입 비용 대비 효과 같은 개념과 애초에 타협할 수 없는 것 같다. 전엔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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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을 통째로 긍정해야 하는 걸까? 슬프고 괴로웠고 끝내 상처만 남긴 순간들까지 껴안아야 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야 한다고 가르친 현자도 있었고,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해보이니 인생을 재미있는 농담이나 수수께끼로 여기고 어깨 힘을 빼라는 이도 있었다. 다른 말 같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상당 부분 겹치는 조언이다. 푸시킨의 시구대로, 노하거나 서러워 말라는.
때로는 산다는 게, 어떤 선율이 될지 모르면서 한 음 한 음 소리를 내는 긴 즉흥 연주 같다. 때로 불협화음이 어쩔 수 없이 끼어들며, 불협화음 없이 좋은 곡이 될 수는 없다. 거기까지는 알겠고, 그 다음부터는 잘 모르겠다. 굳은살이 생기는 손가락처럼 마음도 단단해지기를 바랄뿐. 그러면 그 즉흥 연주 솜씨도 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 24/7/17
- ~p104
- 스토너의 어린시절 이야기, 부모님, 자란 환경에 대한 이야기, 공부하게 된 계기,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야기, 이디스와 처음 알게 된 일, 사랑에 빠지던 과정, 청혼하고 결혼하기 까지의 이야기.
- 뒷내용이 궁금하지만 반납시간에 쫓겨 여기까지 읽었다.
- 이디스의 유년기와 이디스가 자라면서 받아온 가정 교육, 도덕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거친 일들로부터 누군가에게 보호받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보호 해주는 사람의 우아한 장식품이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교육을 받았다는 이야기. 성적으로 뭔가를 금지하려는 의도를 숨긴 도덕교육에 관한 이야기.
-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훌륭한 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해 길러졌지만 대학을 가 자신의 길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욕망과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기 보다 주어지는 상황의 변화와 다른 인물들과의 관계에 따라 유연하고 안전한 선택들로 삶이 흘러갔다.
- 배움의 발견에서 타라가 부모의 세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뿌리 내리려 애쓰던 것과,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유복한 환경에서 쫓겨난 것만 같은 혼란함과 불안함 속에 보낸 시간들이 스토너에게는 없었다는 점에서 스토너의 삶은 단조롭고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고 느꼈다.
- 끝까지 읽지는 못했지만 책의 뒤표지에 적힌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라는 문장에서 ‘슬픔과 고독’이 이런 스토너의 단조로운 삶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타라나 싱클레어의 성장보다 훨씬 더 고된 성장이었을 것 같다는 예상으로 스토너의 다음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 이디스를 자신의 사랑으로 알아보고 사랑에 빠졌음을 느끼고 청혼을 하고 결혼하기까지의 과정에서도 한 번의 혼란도 겪지 않았다는 점이 놀랍다. 반면 이디스에 관한 묘사에서 스토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초점없이 허공을 보는듯 했던 몇 장면들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모습들 때문에 이디스의 내면세계에 더 큰 호기심이 든다.
- 책의 남은 장에서 이디스와 스토너가 꾸린 둘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어떤 절망과 고난으로 전개될까. 다른 소설을 읽을 때와 다르게 행복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도 지금까지의 스토너 삶의 단조로움이 나에겐 더 큰 비극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포일러 매우 많음]
최근 장강명 작가 읽기를 혼자 하고 있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림.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했다. 도입부가 좀 끔찍해서 초반에 조금 읽다가 잠시 쉬고 일주일 정도 지나서 다시 읽었다.
SF계에서 이 소재, 초능력을 갖춘 새로운 인류의 등장이라는 설정은 전혀 새로울 게 없겠지만 그런 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나로서는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 새로운 능력이 생겨났는지 명확히 단정짓지는 않았지만 소설 속 인물 천슈란의 가설-인구밀도가 높고 경쟁이 극심한 곳에서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상당히 그럴싸해 보였다. '진화'는 우연의 산물이므로 호모도미난스가 반드시 '더 진보한' 존재라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새로운 변종일 뿐.
동일한 능력을 얻어도 인간은 다 다르게 반응한다. 처음 그 능력을 발견한 류잉춘과 저우환위는 처한 상황은 비슷했지만(동시에 능력을 얻고, 둘 다 의사이며, 함께 신능력에 대해 탐구한다), 각자의 성향과 비전에 따라 다른 길을 걷는다. 류잉춘에게 능력을 물려맏은 안시현, 저우환위에게 능력을 받은 캄팻도 마찬가지이다. 캄팻은 저우환위의 휴계자로 일찌감치 지목되어 저우환위와 오래 함께 방바재단 일을 했음에도 막상 능력을 물려받았을 때는 비슷해 보이나 역시 다른 길을 간다. 천슈란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스스로 제 능력에 대해 탐구하고 백원단이라는 모호한 지도부의 정체를 캐고 집요하게 권력을 추구한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안시현은 그 중 가장 '히어로'에 걸맞는 인물이지만-잘생기고, 도덕성이 뛰어나고, 사리사욕을 부리지 않는다- 그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황쿤의 말대로 그는 지나치게 고지식하다. 하지만 그게 히어로가 지녀야 할 덕목일지도 모른다.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 힘을 마구 휘두르는 것은 악당이고, 그 힘을 옳은 데에 쓰더라도-과연 옳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판단을 과신한다면 결국 추락하고 만다. 안시현은 결국 다른 흰원숭이들보다도 우월해지지만 매우 신중하게 행동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 폭주하고 마는 스스미, 딱히 성찰도 목적의식도 없이 자신의 사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이명준 등 모든 인물들이 개연성이 있어서 비현실적인 소재임에도 현실감과 흡인력이 뛰어났다.
(쓰다 보니 '이명준'이라는 이름이 왠지 의미심장하다. 최인훈의 '광장' 주인공과 이름이 똑같잖아... 뭐 둘의 캐릭터는 매우 다르지만 말이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이데올로기의 대립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도 하지 못하고 결국 중립국행을 택해 가는 길에 바다에 뛰어든다. 그런 점에서는 마지막에 풀려난 이명준의 행보를 괜히 짐작해보게 하지만, 사실 광장 이명준의 재질은 어딘가 안시현과 비슷하다. 과묵하고 생각이 많아서 그런가? 물론 안시현은 고뇌하기 전에 행동하는 사람이지만.)
마지막에 탈북자를 돕는 백원단은 누구일까? 안시현은 은퇴를 하고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기증했으므로 그는 아닐 것이다. 그의 뒤를 계승한 황쿤과 리원이 주축이 되어 안시현이 하고 싶어했던 탈북자 구호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소설은 무엇도 결론 내리지 않지만 그래도 이 탈북자 구호 장면은 약간의 희망을 암시하는 결말이 아닐까 싶다.
중국, 라오스, 한국, 일본 등 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SF라는 점도 매우 흥미로운 요소였다. 처음 신능력이 발현된 것으로 짐작되는 구룡성채의 설정도 매우 눈길을 끄는 요소였고(구룡에 대해 들어보긴 했는데 진짜로 여기가 이렇게 막 나가는 치외법권은 아니었겠지....?), 아시아 독자의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를 배경으로 한 것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배경이 아시아이고 초능력, 연구소 등의 소재가 나와서 그런지 '삼체'가 떠올랐다. 안타깝게도 나는 '삼체'를 조금밖에 안 읽었는데(영 흥미가 생기질 않았다), 이 소설이 스케일은 훨씬 작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더 재미있었다. 물론 '삼체'도 더 읽으면 재미있을지도 모르지만.
도미넌스dominance는 '우세, 지배, 압도'를 뜻한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천슈란이 자신들과 같은 특징을 지닌 '흰원숭이'에 대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 지배하는 인간 호모 도미난스이다'라고 이름 붙인다. 흰원숭이들의 능력이 발휘되면 상대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와 있어서 '압도'라는 뜻과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참 중학생 독후감 같은 리뷰로구만.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황보름 작가님이 7월 10일자 국민일보 [너섬情談]칼럼에 그믐과 작가님이 그믐에서 열었던 독서 모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는 슬로건 아래 이제 막 운영을 시작한 온라인 지식공동체 ‘그믐’. 여기선 벽돌책 위주로 읽어보자고 결심을 한 후 바로 모임을 만들었다. 첫 모임에 선정한 책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에 몇 번 언급한 적 있는 에이모 토울스의 신작 ‘링컨 하이웨이’.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도 무려 820페이지에 달하면 읽기를 최대한 미루게 되는데 이 책도 그러던 차였다. 모임을 만들면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 완독하게 되리라는 기대가 컸다. 물론 이 두꺼운 책을 함께 읽어줄 사람이 있어야겠지만.
다행히 신청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들 덕에 첫 독서모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모임에도, 또 그다음 모임에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전국의 독서가들은 내가 만든 방에 들어와 함께 책을 읽어주었다. 매번 방을 만들 때마다 한 명도 안 오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매번 사람들은 벽돌책이라는 큰 산을 함께 올라주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20504886
*황보름 작가님과 함께 했던 모임 링크는 아래에 있습니다. 함께 읽기를 이끌어 주신 황보름 작가님, 그리고 참여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작품은 무척 좋았고, 나의 독서는 안 좋았다. 내 독서가 안 좋았던 이유는 마지막에 대단한 반전이 나온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반전이 뭘까, 놓치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모든 문장들을 의심하며 읽는 바람에 이 소설의 묘미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 반전은 과연 대단했으나 반전이 없었더라도 상찬 받아 마땅한 소설이었다.
자기가 하는 일의 가치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수익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단단하게 아는 사람의 직업 에세이는 늘 즐겁다. 그리고 짬밥에서 나오는 통찰들은 꽤 감동적이기도 하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원고 문장을 업로드하다가 팔로워가 많아지면 계정 이름을 저자 이름으로 바꾸고 그때 책을 펴내는 방식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참…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화1반 2주차 완료/이번주 미션
📍 '긴긴밤' p.28~p.46까지 녹음파일과 셀프 피드백을 함께 올려주세요.
(ex. 발음이 부족한 음가 처리가 있었다. 어떤 부분이 강세가 어긋나서 어려웠다 등)
‼ 6주차에는 '긴긴밤' 한 권 낭독회를 하고, 7주차 부터는 다른 교재로 수업할 예정이에요. 그때까지 '긴긴밤' 책 한 권 마스터할 수 있도록 각자 스케줄 짜서 연습해야 합니다.‼
(ex. 30페이지씩 연습 후 녹음, 서사를 이끌고 가기)
(다음주 월요일(7/22 오후 3시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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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내용
▶호흡을 누적해서 들어오기. 10일 후에 낭독을 이어한다고 해도 걸리는 거 없도록!
▶ 노든이 눈을 떴을 때
- 노든이 본 것은 뭐지? 따고 가기.
▶ ~한 '것'에, ~ 한 '곳'에
- '것'과 '곳'에 강세가 잘못 찍히는 경우가 많다. 오늘 수업 때도 총 5번 정도 언급된 듯.
- '~한'에 강세를 두기!
▶ '앙가부' 출현.
- 새로운 인물. 잘 출현 시켜주기. 끊어읽기, 포즈, 강세를 활용.
▶ "너랑은 상관없잖아, 저리 가. 내버려 둬."
- 전체 책을 읽음으로써 노든의 대사를 통해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
- 이 대사에서는 종결어미를 밀어 붙이지 말고, 혼잣말로 툭툭.
- 아버지 캐릭터 상상하기. 보이스톤 묵직하게.
▶ *누가요? 어디서요? 그래서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서 낭독 이어가기
- 내 쪼대로 낭독하지 x, 물러서서 질문하고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림 그리며 낭독
- 질문, 주어, 그림
- 내가 지금 누구를 보고 있는지 생각하고 가기.
- 노든의 시선으로 갔다가 앙가부의 시선으로 가는 거 확실하게 보여주기
- 질문하고 답하면서 직관적이고 쉬운 언어화 만들기
- 이러면서 끊어읽기를 찾는 것!
- 쉼표도 끊어읽기 다 해주기.
▶ 복수? 어떤 복수?
- 딸과 아내의 복수. 쉽게 꺼낼 수 없는 말.
▶ 앙가부의 톤은 다가가는 호흡으로
▶ 긴긴밤은 쉬운 소설. 과감하게 나를 확장할 필요가 있음. 확장한 후에 절제하는 작업을 하면 됨.
▶ '노든은 쇠 울타리 가까이로 다가갔다. 사실 쇠 울타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 군데군데 굵은 철봉을 박아 놓고 그 사이를 가는 막대와 철사로 막아 놓은 모양이라서 허술한 철사 울타리에 불과했다'
- 노든의 행위. 호흡으로 디테일하게 살아내야 함.
▶ 노든의 재촉에 앙가부는 울타리 출입문을 향해 달렸다. 앙가부는 발구리기도 어설펐고, 조준마저 빗나가서~
- 사건이 앞으로 나아가는 걸 알려줘야 함.
- 앙가부는 동물원에서만 살아서 바람처럼 달려가본 적이 없음.
- 앙가부는 이런 입장이고, 노든은 이런 입장(상황)인 걸 인지하고 보여줘야 함.
▶ 탈출 시도는 허무하게 실패했고, 코뿔소 울타리는 새것으로 바뀌었다.
- '새것으로' 노든과 앙가부의 좌절. 그걸 표현해주기. 레이어를 더 넣어서.
▶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시 해 보자."
- 이야기의 끝에 파란 지평선이 있다. 한번도 나가지 못한 앙가부의 결심, 의지를 표현해주기.
- 이야기의 길목마다 죽음이 깔려있다. 노든, 치쿠, 윔보. 그 경계와 길목을 보여주기.
▶ '계획' ㅎ 음가
- 호흡을 써야 함. 위해/위에 'ㅎ음가'에는 공기와 함께 내뱉기
▶'접속사'에 서브 텍스트가 많이 있다.
- 접속사를 독립적으로 표현하기
- 차라리 뿔을~ 하고 말아버리지 말고, 차라리/ 뿔을 이렇게
▶"별거 아니야. 금방 돌아올게."
- 별 꺼 x 별 거 o
- 이후에 앙가부는 죽음. 노든 앙가부를 귀찮아했고 밀어냄. 하지만 앙가부는 노든에게 계속 다정하게 다가감. 그래서 둘의 관계가 이렇게 깊어졌고, 초반에 앙가부를 귀찮아했던 노든의 대사가 이렇게 변함. 이 부분은 더 상징적임. 더 다정하게 표현해주기.
▶다음 날 아침 일찍, 물안개가 가시기 전에/ 앙가부가 있는 우리로/ 돌아왔다.
- 말맛 살리며 호흡 쓰기
▶ 코뿔소 우리로 돌아온 노든은 처음에는, 다시 악몽을~
- 이 부분은 이미 결말을 안 상태의 내레이션으로.
- 우리는 내레이션을 읽어 가면서 알아차리면 x 미리.
▶ 성대는 점막, 인대, 근육으로 이루어짐.
- 성대는 신경이 x, 가장 늙지 않는 구간이기도 함.
- 책은 내적 작업
- 소리 구축은 외적 작업.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소리가 나옴.
- 복식호흡→깊은 호흡(따뜻한 호흡) : 성대를 보호해 줌.
- 입으로 숨 쉬지 말고 코로 숨 쉬기
- 문장의 시작과 끝에는 온점. 입을 다물어 줘야 침이 돌고, 따뜻한 공기가 맴돌아서 성대가 아프지 않음(건조하지 않아서)
▶긴 문장이지만 서사를 알려줘야 청자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치쿠' 이름이 센 음가가 반복
- 문장 안에서 치쿠 음가를 녹여내서 표현하기
- 화술의 완성은 서사
- 어쩔 때는 절제도 필요하다.
- 음가가 다 들리는 것만이 도는 아니다.
▶ 조금 더, 얘기 하지면 x / 조금 더 얘기하자면
~~~~~~~
▶ 치쿠가 눈을 다친 건지, 윔보가 눈을 다친 건지 이 부분은 헛갈림
- 정확하게 보여줘야 함.
▶ 46페이지 엔딩 문장. 여운을 남기지 말고, 전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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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후 생각한 것들
▶ 선생님이 낭독 들으면서 하는 손짓 따라하면서 혼자 낭독 연습해보기.
📍셀프피드백 240717
내용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입이 먼저 가서 자꾸 말을 절고 버벅거리며 오독하는 듯하다.
주의력 부족, 집중력 저하 때문인 거 같은데.. 컴퓨터 앞에 8시간 동안 있으면서 온갖 딴짓을 해서 그럴까.
선생님이 하나 하나 짚어주면서 읽을 때는 좀 읽혔는데 혼자 하려니 자꾸 어긋난다. 너무 뚝뚝 끊어 읽을까 봐 조급해지고 내용을 자꾸 말아 읽는다. 아니 소리내어 읽는 걸 왜 이리 못하니. 당황스럽다. 으휴휴.
📍셀프피드백 240718
- 노든은
- 횡설수설하고
발음이 어려워서 혼났다.
여전히 발음이 안 되고 오독 나고 뚝뚝 끊어 읽게 된다. 에휴. 그래도 어제보단 좀 감이 잡히는 게 매일매일 낭독하는 게 역시 중요한 거 같다. 그동안은 월요일 수업 듣고 평일 그냥 보내고 일요일 밤부터 낭독 과제를 하니 항상 몸이 피곤했고 낭독 수업 예독도 안했다. 생각해보면 그러니까 당연히....! 나에게, 낭독 책을 보니 충분한 예독이 필수적이더라. 100번 읽으라는 말도 있다고. 하루 10문장 암송도 좋고. 발음 튀는 부분은 표시해두고 여러 번 연습해두는 게 필요하다고. 발음도움기구로 혀 스트레칭 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한다. 혀 스트레칭은 안했었는데 해야겠다. 아랫배에 힘을 줘서 깊은 호흡을 하는 습관도 들여야 한다. 운동을 빼니까 여유 시간이 생겨서 낭독하기가 좋긴 한데 운동도 해야 하는데.... 아무튼 개판이지만 녹음한 내 낭독을 듣다가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더 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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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다는 데 목소리는 화난 목소리가 아니다. 순수하다. 내용에 더 이입해서 표현해야겠다. 노든과 치쿠 문답은 어색하고 어렵다. 긴긴밤 낭독하신 오디오북을 좀 들어봐야겠다.
📍셀프피드백 240722
낭독할 때 제 목소리가 어리고 순수하다고 느꼈어요.이때의 순수함은 긍정적인 순수함이라기 보다는 몰이해에서 오는 순수함 같았네요. 분명히 절절하고 슬픈 내용을 이해했는데 낭독은 왜 따로 가는지! 노든이 가족을 잃고 슬픔과 분노에 차있는데 제 목소리가 너무 해맑습니다. '총알을', '출입문' 이런 단어에서 어조가 올라가고요. 그럴 때마다 목소리가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소리의 중심을 잘 잡아야겠어요. 붙여읽기, 끊어읽기가 여전히 어렵고요. 노든과 앙가부의 문답에서 나름 구상해놓은 캐릭터(노든: 지쳐있는 듬직한 아버지/ 앙가부: 성격 좋은 작은 아버지)가 뒤로 갈수록 사라지고 그냥 김누리로 말하고 있더라고요. 집중력을 잃지 않고 캐릭터를 끌고 가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발견한 점은 낭독하기 전에 묵독으로 찬찬히 짚고 시작하니 덜 버벅인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들 화이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