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시인선 152 (240718~240728)
❝ 별점: ★★★★☆
❝ 한줄평: 손을 잡으면 눈이 녹지만 손을 잡으며 사랑을 해
❝ 키워드: 마음 | 눈 | 숨소리 | 빛 | 어둠 | 시간 | 물 | 사람 | 사랑 | 영화 | 별 | 고요 | 잠 | 파편 | 슬픔 | 기쁨 | 빗금 | 비밀 | 밤 | 꿈 | 우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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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양 시인의 첫 시집 『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를 읽었어요. 문학동네 시 레터 ‘우리는 시를 사랑해’에 시 「연말상영」이 소개되어 알게 된 시집인데요. 밤새 소복소복 조용히 내려 쌓인 흰 눈에 첫 발자국을 내는 듯한 설렘을 느끼며 시집을읽어 내려갔어요.
✦ 제가 읽어 본 문학동네시인선 중엔 처음으로 해설이나 발문이 없었던 시집이었네요. 온전히 시인의 언어로 가득 채워진 시집이라 그게 또 좋았어요. 손을 잡으면 눈이 녹지만, 손을 잡으며 우리는 사랑을 하죠.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커다란 혼자’라는 시인의 말에서 이어지듯 이 시집은 사랑으로 가득차 있어요. 사랑을 선물하고 싶을 때 저는 이 시집이 생각날 것 같아요. [📝 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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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커다란 혼자
/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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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눈사람처럼
시간은 처음의 모습으로 반짝이기 시작한다.
/ 「연말상영」 부분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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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 빛난다면 우리가 다 잊을 때쯤 우주에선 한 개의 조명이 켜질 테니까
/ 「휴일」 부분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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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은 관측되며 속도를 잃고 페이지에서 멎어갔어. 여전히 너는 스위치가 없으면 밝아지지 않는 방에서 살고 사람들은 모두 발신지를 찾는 여행을 그만두었지. 불빛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온정溫情을 믿기 위해. 이제 안으로 난 문을열면 너와 숨을 나눴던 사람의 몸을 만날 수 있어. 그곳에서 너는 너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과거가 되고, 세계는 온 곳에서부터 똑같이 뒤집히네. 차츰 반짝임을 읽는 일을 멈추며. 빛의 중간에서 끝을 발굴하며. 흐려지는 원을 모두 밤의 안주머니에 넣으며. 천천히.
/ 「사람행」 부분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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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로의 빛에 신호를 혼동한다
파란불 다시
나를 도망치고 싶게 만들었던 사람
언제든지
처음의 미소를 짓고
처음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내 신발로 놓여 있고 내 양탄자로 누워 있던 사람
유일하여 이곳까지 자라난 머리카락을 그림자의 점이 누르고 지나간다
/ 「lesson」 부분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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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안전제일
✎ 「유리체」
✎ 「플루트」
✎ 「신년 인사」
✎ 「연말상영」 ⛤
✎ 「사랑의 조예」
✎ 「수요일」
✎ 「나란한 시」
✎ 「여는 시」 ⛤
✎ 「정원」
✎ 「Pi-하고 있는」
✎ 「유저 인터페이스」
✎ 「중학생의 별」
✎ 「미소」
✎ 「휴일」 ⛤
✎ 「빛의 운」
2부 | 진짜 밤
✎ 「연강—땅」 ⛤
✎ 「여읜 시」 ⛤
✎ 「선물」
✎ 「이어year」
✎ 「사랑의 뉘앙스」
✎ 「편지화」
✎ 「우산이 있는 소품」
✎ 「소다수의 삶」
✎ 「사람행」 ⛤
✎ 「언니의 밤」
3부 | 작고 불 켜졌고 사라지지 않는
✎ 「섬광의 시」
✎ 「소라」
✎ 「물 룸」
✎ 「lesson」 ⛤
✎ 「네이처」 ⛤
✎ 「실루엣의 시」
✎ 「캐치!」
✎ 「모자키스」
✎ 「티라와 오브, 그리고 티라와 오브의 아름다운 세계」 ⛤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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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미국 대공황부터 근래의 중국 부동산 위기까지 세계 금융 위기의 주요 사건을 훑는다. 대공황 이후 회복되기까지 거의 25년이 걸렸는데 사실상 어떤 세대가 이런 재난과 맞닥뜨린다면 수습하기 쉽지 않은 문제.
여러 국제 정세를 조합했을 때 또다른 금융 위기의 발생은 불가피해보이고 그런 시대를 살아가게 될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는 잘 모르겠다.
연동되는 두 이야기가 한 권이라 훅 넘어가는 책이다. 나름 엽기 살인도 반전도 있지만 끌리는 것은 고립과 구원을 바라는 탐정 쪽이다. 꽤나 페이지가 넘어간 뒤에나 나오는 진짜 주인공은 유머도 없고 '스스로를 사회의 낙오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 캐릭터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았겠다 싶어 아쉽다.
"어떤 결과든 그걸 선택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어. 결과는 선택한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거야. 자기 힘이 미치지 못하는 데 책임을 떠넘기는 것, 자신을 초월한 존재에게 구원을 바라는 건 도피에 지나지 않아. 하긴 편하기야 하겠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결론 내면 방황하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테고. 죽으면 모든 것에서 해방될지도 몰라. 하지만 비겁한 짓이야. 자신의 나약함과 선택을 전부 운명 탓으로 돌리다니."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기일에 완독했다. 100년 전 소설가가 이렇게 현대적으로 다가온다는 게 신기했고, 1920년대 한국 소설 중에 여기에 비길 수 있는 작품이 뭐가 있을까 솔직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아쿠타가와의 작품들이 이토록 위화감 없이 다가온다는 것은, 그의 작품에 그만큼 그가 살았던 시대가 별로 담겨 있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최민석 작가의 유머를 좋아하고, 그가 벌이는 엉뚱한 도전들도 응원한다. 이번에는 여행 잡지를 ‘창간’했다. 창간호라고 하는 이 단행본에는 오로지 최민석 작가 혼자서 여러 에세이를 썼는데 뒷부분에는 소설이 네 편 실려 있다. 에세이도 좋았지만 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그리고 기차에서 생맥주 마시는 이야기는 에세이 파트에도, 소설 파트에도 없다. 도대체 이 책은 정체가 무엇인가!
지인으로부터 언젠가 자녀 교육이야말로 상속세를 회피할 수 있는 최고의 절세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한국적인 에너지가 집약된 대치동을 배경으로 그곳의 내부자인 동시에 외부자인 저자의 에세이.
대학교 시절 쑥고개 반지하에 살며 교수를 꿈꾸었던 저자는 50대의 돈에 집착하는 지도 교수의 현실을 목격하고 돈을 벌기로 하고 우연히 대치동에 입성해 논술 대표 강사가 된다. 그 과정에서 만났던 학생들의 성인 이후의 삶의 이력까지 짚게 되는데 새삼스럽지만 이래서 한국이 쇠락하는구나 싶음.
세 번째로 읽은 장강명 작가의 책. 같은 작가의 책을 세 권째 읽으니 이제 확실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술술 읽히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고 집요하기도 하다. 때로 감정이 크게 느껴지는 부분도 좋았다. 이를테면 창비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진솔한 태도 때문일까.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책, 문학, 희망에 대한 진심을 조금 더 믿게 됐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왜 한국문학은 북한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강형욱 이후 TV로 진출해 성공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나응식 수의사의 고양이 에세이. 고양이 전문 동물 병원에 관한 일상을 담는 듯 싶지만 고양이와 관련한 기본 지식들이 의외로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 다.
거짓말로 밥 먹고 사는 여자와 우주의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살아가는 남자. 닐 암스트롱이 달에 발자국을 찍기까지 그 뒤에서 고군분투한 나사의 인물들과 수많은 음모론을 생동감있게 그려냈다. 결말부에 이르러 모 버커스가 '외계인은 있다'고 말한뒤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부르며 춤추는 장면이 가장 좋았다. 진실은 가려져도 진실이고, 거짓은 모든 이들이 믿어도 거짓에 불과하다는 결말. 누가 뭐라하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믿고 밀고 나가는 게 곧 삶인 것 같다.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4년 7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 1년이 지났지만 / 글쓴이: 박현경(화가, 교사)
지난 7월 18일은 서이초 선생님 순직 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청주 소나무길 앞,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검정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한데 모였다. 식전 행사로 추모 리본 묶기가 진행되었고, 추모 시 낭송에 이어 세 분 선생님의 현장 발언이 있었으며, 추모 춤 공연과 노래패 공연이 이어졌다. 내 양옆의 선생님들은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 밖에도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나도 마음이 많이 아팠다.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랬다.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서이초 순직 선생님을 비롯해 악성 민원과 교육 활동 침해로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어떤 심정이셨을지……. 사실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겪어 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으면 싶은, 내일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하는 암담함을 말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녹색병원은 서이초 선생님 순직 사건이 있고 난 2023년 8월,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2023년 9월 5일 발표했다. 6,024명이 설문에 참여하고, 조사의 신뢰성을 위해 변별을 통하여 3,505명의 답변을 분석한 이 조사의 결과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교사는 이미 소진[Burnout] 상태’라는 것이었다.
학교 내 폭력 경험 항목에서 전체 응답자의 66.3%가 언어폭력을 경험하였고, 신체 위협 및 폭력 경험 18.8%, 성희롱 및 폭력 경험 18.7% 등으로 나왔다. 이는 일반 산업 노동자 대상 근로 환경 조사 결과인 언어폭력 경험 3~6%, 신체 위협 및 폭력 0.5%, 성희롱 및 폭력 경험 0.4%에 비하면 훨씬 높은 수치이다. 정신건강 평가 항목 중 우울 증상에 대해서는 경도의 우울 증상(유력, probable) 24.9%, 심한 우울 증상(확실, definite) 38.3%로 나왔다. 이는, 같은 조사 도구로 실시한 일반 성인 대상 대규모 연구의 심한 우울 증상 유병률 8~10%의 3~4배에 달하는 비율이다. 또한, 자살 의도와 관련된 질문에서 교사의 16%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4.5%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일반인의 자살 생각이 3~7%, 자살 계획이 0.5~2% 수준으로 조사된 점을 감안할 때, 교사들의 상황이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황폐해진 마음을 다시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 건강을 위한 개인적 조치들이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노오력’으로 마음 건강을 챙길 것을 권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 결과에 대하여 ‘이는 개인적 자질이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없는 사회구조적 위협 요인이 분명하며 사회·국가적 지원과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현장의 교사들이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교육여건 개선을 지속해서 요구했던 이유는,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여건과 환경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작년 여름, 전국의 수많은 교사들이 토요일마다 검은 점이 되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외친 결과, 교권 보호 5법이 개정되었다. 교권 보호 5법이란 교원지위법, 초·중등교육법, 유아교육법, 교육기본법, 아동학대처벌법을 말한다. 개정된 사항으로는 민원 처리를 책임지는 주체로 학교장(유치원의 경우 원장)을 명시했고, 교원의 생활지도권(법령과 학칙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는 권리. 법 개정 전까지는 교사에게 이런 권리가 없었던 것!)을 신설했으며, 정당한(법령과 학칙에 따른) 교육활동과 학생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고, 교원이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당한 경우 교육감이 의견서를 제출하게 하며, 사법 경찰관과 검사는 그 의견서를 참고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들 수 있다.
이 모두가 어렵게 얻어 낸 소중한 성과이나, 학교 현장에서는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장 및 원장이 민원 처리를 책임진다고 법률로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교사 개인이, 그것도 주로 담임교사가 민원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교사에게 그중에서도 특히 저연차 교사들에게 버거운 상황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교사 개인의 민원 대응 부담이 경감되었는지에 대한 교육청의 확인은 없었다. 교원의 생활지도권 신설 및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에 따라 교육 활동 방해 학생에 대한 분리 조치가 각 학교 학칙으로 새로이 정해졌으나, 학칙을 정하는 과정에서 학교 내 교사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는지, 학칙으로 정해진 교육 활동 방해 학생 분리 장소 및 분리 지도 담당자가 합당한지, 해당 조치가 교육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교육청의 확인 역시 없었다. 현장에서 체감하기에 아직까지 교권 보호 5법 개정 사항들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교육 당국의 안일함과 무성의에 있다.
올해 6월 25일 전교조 음성지회는 음성교육지원청과 정책협의회를 했다. 나는 정책협의회 자리에서 교사의 방학 중 일직성 근무를 근절해 달라는 요구를 하며 2023년 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또한, 교사 개인이 아닌 기관 차원에서 민원을 대응하게 하는 등 교권 보호 5법 개정 사항들이 음성 관내에 잘 정착되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 진심을 담아 준비하여 진심을 다해 발언했지만, 음성교육지원청 측의 반응은 무성의했다. 견고한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나는 몹시 무력감을 느꼈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관료주의적 행정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서이초 선생님 순직 1주기를 지내며, ‘오만하고 관료주의적인 행정이 변하지 않는 한 교사들의 고통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슬프고도 무서운 생각을 했다. 나의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비관적인 것이었다고, 현실이 많이 좋아졌다고, 내년쯤 혹은 내후년쯤 고쳐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진심으로.
그림_박현경, 천사 10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홈페이지 ‘보도자료’의 아래 두 글을 참고하였습니다.
1. [기자회견문] 대한민국 교사는 이미 소진(Burnout) 상태_교사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조사
2. [보도자료] 전교조, 교권 보호 대책 실태조사 결과 발표(스승의날 주간 특별기획 설문 – 학교 민원 대응·학생 분리 조치 실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