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절 CIA 요원이었던 주인공. 복잡 미묘한 이중 간첩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정세와 기타 등등의 익숙한 첩보 스릴러 클리셰의 여파로 30년 간 잠적하다가 정체가 노출된다.
제프 브리지스는 70살이 넘은 나이에 머리끄댕이를 부여잡고 뼈와 낭심을 가격하는 물리 액션을 펼친다. 체형이 독특해서 스턴트 대역이 쉽진 않았을 거 같기도 하고. 당황스러울 정도의 맨몸 액션을 선보인다.
달이 가장 밝고 풍성한 한가위를 맞이하여, 그믐을 아끼고 사랑해 주신 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와 따뜻한 마음을 전합니다.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평소 바쁘게 보냈던 일상에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취하시기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한참 애니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라 원작을 찾아봤다. 체인소 맨의 초기작인데 체인소 맨과는 너무 다른 감각이 포착되어 당혹감을 느낄 정도.
감정을 울렁이게 만드는 책이 있고,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오래전 습작 시절에 읽은 작가의 장편에서 느껴졌던 톡톡 튀는 발랄함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작은 것을 다룰지라도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깊은 시선이 있다.
그게 작가의 짬밥인가 보다.
이 소설집에는 일곱 개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밤'이다.
그중 두 편은 동인지와 문예지로 먼저 읽은 구면이어서 반가웠고, 다섯 편은 새로 읽는 단편이어서 반가웠다.
소설집이라는 게 재미있다.
소설집에 실리는 단편은 저마다 작가가 다른 때에 쓴 서로 별 관련 없는 작품인데, 특정 키워드를 매개로 엮이면 마치 완성된 퍼즐 조각처럼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니 말이다.
밤은 고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숨어서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친 노동에서 겨우 벗어나는 짧은 휴식 시간이고(밤의 벤치), 누군가에게는 조금씩 무너지는 가족 관계를 지켜봐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다(그것으로 충분한 밤).
세상 사는 게 가끔 참 더럽고 치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인생 경로를 수정해야 하고(토요일 밤의 로건),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지나가는 사람).
정말 하기 싫어 미치겠는데, 오랜만에 전 남편에게 연락해 위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일도 생긴다(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더럽고 치사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졸음은 찾아오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 않던가.
파도로 뛰어들어 몸을 적시면 옷이 젖어 난감해질지라도 잠시나마 후련함을 느낄 수 있고(다른 미래), 치료를 받고 충분히 쉬며 여러 밤을 견디면 몸과 마음도 나아지듯이(밤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소설집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밝음이 어둠을 밀어내듯이 늘 나쁘기만 한 삶은 없다고.
지난 4일 2024 미디어의 미래 컨퍼런스에 참여했습니다. 제가 첫 번째 발표자였는데 ‘AI 시대, 스토리텔러의 미래’라는 주제로 30분 정도 이야기했습니다. 뒤늦게 당시 기사를 올립니다. ^^
#2024미디어의미래컨퍼런스 #AI시대스토리텔러의미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6/0000125821?sid=105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읽어서 생각과 다른 책을 만나는 것도 재미다. 그래도 가끔은 그 차이가 너무 커서 혼란이 올 때도 있다. 백 퍼센트 자업자득이다만 갑자기 막 상상하게 되는 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참...
제목도 여기저기서 봤고, 번역이 물 건너서도 잘 팔렸다는 정도의 사전지식만 갖고 뒤늦게 읽으며 뒷표지의 고딕소설이라는 문구에 대뜸 누가 시키지도 않는 상상이 머리 속에서 대팽창. '아마 식민지판 장화홍련이 투숙객의 앞에 나타나서, 투숙객이 추리를 하고...(여보게 그럼 고딕 소설이 아니라 추리 소설이라고 표지에 써져 있겠지...) 모스크바의 신사랑 샤이닝이 막 짬뽕이 되고...' 이런 망상하고는 비슷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연결되는 건 장화홍련뿐...
셜리의 등장까지는 호오~ 하면서 보았는데, 설마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분이 인천에 왕림하신다는 대목이 나올 줄 몰랐으니 이름 보는 순간 잠깐 사고 정지. 어쨌든 계속 읽었고, 결말까지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액자소설의 내용도, 내내 주연들이 뿜는 독기가 사랑에 대한 급 깨달음으로 전환되는 결말도. 뭐, 개 같은 뭐라는 목소리가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길 바라는 목소리로 변했다면 좋은 결말이 맞겠지...책을 무작정 집는 이 버릇도 아마 못 고칠 것이고...
그림을 잘 모르는 나는 이중섭 하면 그의 비극적인 삶부터 떠올리게 된다.
여러 명작을 남겼으나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좌절했고, 일본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말년에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무연고자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 화가.
대표작인 '소' 시리즈를 제외하면 이중섭의 다른 작품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다.
이 작품은 바로 이 맹점을 찌른다.
삶이 비극으로 점철된 화가가 과연 여러 명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작가가 이중섭의 생애에서 주목한 부분은 통영에서 보낸 반년이다.
이중섭은 그 짦았던 시절에 <달과 까마귀> <도원> <흰소> <황소> 등 대표작을 그렸고 통영 곳곳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도 여럿 남겼다.
그 시절이 이중섭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평화로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전후 문화예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EBS 드라마 「명동백작」의 무대를 통영으로 옮겨 소설로 읽는 기분을 느꼈다.
통영은 여행은 물론 준면 씨가 드라마 「슈룹」을 촬영 때도 동행해 여러 차례 들른 곳이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더 쉬웠다.
작품 속에서 충렬사, 세병관, 동피랑, 강구항, 해저터널, 욕지도 등 익숙한 공간이 등장할 때마다 나도 50년대 통영의 어딘가를 함께 경험하는 듯했다.
더불어 활판 인쇄물을 닮은 폰트는 마치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실과 허구를 재구성하는 사이에 이중섭이 남긴 여러 작품을 절묘하게 엮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독자는 <달과 까마귀>를 감상하면 전쟁과 분단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되짚게 될 테고, <춤추는 가족>을 감상하면 나체로 춤을 추는 네 가족의 모습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붉히게 될 테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저 그림이구나 하고 넘겼던 이중섭의 작품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그 시절에 붓을 들었던 이중섭의 시간이 눈부시다.
이 작품은 장편소설임과 동시에 이중섭의 그림을 이해하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여기에 유강렬, 유치환, 김춘수 등 통영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당대 예술가들의 모습이 동북 방언과 동남 방언에 실려 생생하게 되살아나 현장감을 더한다.
통영이 '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예술인이 활동하며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작품은 이중섭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부제인 '이중섭의 화양연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시절의 이중섭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작품으로 다뤄지지 않은 이중섭의 마지막을 알고 있으니까.
활짝 핀 벚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곧 진다는 걸 알기 때문 아니던가.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음악을 만들든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자기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는지, 지나갔는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건 아닌지 되짚어보게 될 테니까.
부디 내 화양연화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를 빈다.
같은 소재의 영화는 추천받았다가 아직도 못 봤고, 참으로 늦게 책을 보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하다. 베네데타에 대한 사전 지식이 딱 두어줄 정도라, 여성 동성애에 관한 서론이 길고 당시 수녀원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가 펼쳐지니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수녀가 된 이가, 동성연인을 만들었다가 시대가 시대니만큼 지탄받았나보다'라고 추측을 했는데...뒤로 가면서 진짜 깬다. 사건 전체의 인상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아니, 정확한 진실은 뒤안길이다만 이쪽은 권력을 이용한 장기간 성폭행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질이 더 나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