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과 보름달, 두 개의 달이 떴다. 바로 조영주 작가님이 선물해주신 그믐달 목걸이와 새로 나온 작가님의 소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생일이라고 그믐달 모양 목걸이를 선물해 주셨는데, 그믐달 덕후인 나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이었다. 귀금속이라 덥석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작가님께서 '비싼 거 아니에요'라고 먼저 말씀해 주셔서 더욱 감동. 너무 예뻐서 요즘 매일 하고 다닌다.
작가님의 신작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도 보름달 표지가 너무 예쁘다. 은달이 뜨는 밤에만 열리는 카페라니! 우리 그믐밤 모임이 생각나서 더욱 반가웠다.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농업에서도 이렇게 탄소가 많이 배출되는구나. 그런데 한국 농업이 그토록 부조리하게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에는 한국 농가의 영세성이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엉터리 같은 경매나 부조리한 면세유 지원, 과도한 비닐하우스 생산 방식 같은 것들. 원양어업 부문 연료 소비량 통계 자체를 믿을 수가 없음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탄소 관련 다른 통계들은 믿을 수 있는 걸까 싶어서 허탈해졌다.
박하익 작가는 동화도 참 잘 쓰시는구나. 재미있고 유쾌하고 교훈도 좋다. 그 교훈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이용하는 법에 대한 내용으로 그치지 않는다. 기술에 대한 이야기, 중독에 대한 이야기, 건강한 삶에 대한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뒤늦게 발견하고 너무 웃겨서 올려 봅니다. ^^
남형석 작가님의 에세이 <고작 이 정도의 어른>을 따뜻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남 작가님은 현직 MBC 기자이기도 한데, 알고 보니 저희가 몇 번 만난 적도 있더라고요. 지난해 동작구의 한 작은 서점에서 같이 북토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남형석 작가님은 춘천에 ‘첫 서재’라는 공유서재를 운영하세요. 북토크를 할 때 언제 춘천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올 여름에 다녀왔습니다. 밤늦게까지 음악 듣고 맥주 마시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웃긴 포인트는 이 두 아저씨가 2023년 여름에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이랑 2024년 여름에 만났을 때 입은 옷이 같다는 것. 음... 나 저 티셔츠 좋아하나?
‘첫서재’에서는 간단한 식사와 숙박이 가능합니다. 혼자 서재를 빌려서 책 사이에서 조용하고 그윽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어요.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구석구석 배어 있는 멋진 공간입니다. 나중에 춘천 가시면 한번 들러보세요. 저는 거기 있던 싱잉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집에 와서 하나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최저가로 샀더니 소리가 좀 가볍네요.)
남 작가님, 언제 또 뵈어요!
#남형석 #남형석작가님 #공유서재 #첫서재 #고작이정도의어른 #저는제가뭘입고나가는지모를때가많습니다
바닐라님의 글 덕분에 감사히 보게 된 책이다. 내용 전체가 중요하지만 그림이기 때문에 더 강력하게 와닿는 부분들이 있다. 기후 변화에 관련한 책들은 모두 죄책감을 자극한다만, 이 책은 대기업이나 시스템 문제와 더불어 개인의 생활 태도에 대한 질문도 크게 던지기 때문에 현대적인 생활을 영유하는 죄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당장 며칠 전에 위성으로 본 뉴스에서, 끔찍한 홍수 속 피난 중인 파키스탄 사람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네 잘 사는 나라 사람들 때문에 왜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
책이 나온 지가 십 년인데, 그동안 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책에 나온 질문들은 더 무거워진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책임이 있는 이들의 각오와 수습 능력 둘 다 중요한데 둘 다 깜깜하게 느껴진다. 애초에 절약할 거리가 존재하지 않고 생존 자원부터가 부족한 곳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깐 놈의 절제의 미덕을 익히지 못하다니 그 사람들이 들으면 총이라도 쏘고 싶을 소리다만. 책에서 나온 인터뷰대로 선진국들 내부에서도, 세계적으로도 경제적인 불평등이 같이 해소되어야 하는데 냉난방비 걱정 안 하는 사람들은 아직 지구가 튀겨지는 맛을 못 느끼는 모양이고, 일반 시민은 여기서 어떻게 더 쥐어짜야 하느냐 생각을 안 하는 게 힘드니 정말 자원이 고갈되거나 산소통 없이 호흡할 수 없는 때에나 바뀔 수 있을까...'시민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변화는 성공한 적이 없다'라는 말은, 시민들이 모두가 힘을 합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작가의 말처럼 '질문을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라고 생각해야 할까? 나의 질문과 미미한 행동이 도움이 될까? 답은 없지만 뭘 비틀어 짜서라도 지금보다 노력을 해야겠지...
그리고 까먹을까 봐, 나중에 다시 검색해봐야 할 것 같아 찾은 것들 메모.
- 인터뷰에서 '20~30년 후엔 무조건 1도가 오르고...'라는 언급이 있는데, IPCC 검색하니 지금 이미 1도 넘게 오름.
- '전 세계 인구 3분의 1이 물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 > 현재 물 부족한 이들 세계 인구 55%. 금세기 말 66%까지 올라갈 거라 추정.
- '킬리만자로 만년설 33퍼센트 소실' > 2024년 현재 70퍼센트 소실.
- 당연히 뭔가 터지고 불타는 전장에서 온실가스가 안 나올 리가 없으니까 검색. 강대국들이 정확한 정보 토설을 거부해서 그나마 추정한 게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5퍼센트(저거 두 배는 되면 몰라도 낮을 리는 없을 것이다...)가 군사 행동에서 배출'이고 '우크라이나 전쟁 1년간 발생한 온실가스가 싱가포르·스위스·시리아의 연간 배출량을 합친 것과 맞먹음'이라는데 2년 넘어가고 지금 중동까지 불타고 있으니...
- 2023년 기준 한반도 이산화탄소 농도 역대 최대
- 2023년 전 세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한국 세계 6위(12.9t). 책에 옮긴이 주석으로 달렸던 2010년 11.4톤보다 더 높음. 중국(10.1t)보다 높음.
1.도경수
2.스마트폰과 어떻게 거리두기를 할지
3.눈 상태가 안 좋다. 상처가 많고 건조가 심한데 알러지까지 있다고. 어떻게 눈을 덜 쓰며 생활할 수 있을까요. 흑흑. 사실 이 사태(?)로 인해 생긴 눈 밑 주름이 제일 충격적이다. 영 나아질 것 같지 않다.
4.요즘엔 사랑이 하고 싶다.
🚩12주차 완료
📍 <시와 산책> 낭독회🌟
대본
네, 반갑습니다. 000입니다.
제가 '시와 산책'에서 낭독할 에피소드는 '잘 걷고 잘 넘어져요'입니다.
이 에피소드를 선택한 이유는 1차적으로는 제가 잘 걷고 잘 넘어져서였고요.
다른 이유로는, 제가 낭독을 할 때 자꾸 긴장하고 굳어서, 이 에피소드를 통해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적으로 걷다가 넘어지고 또 걷고, 그러듯이 낭독을 해보려고 선택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의 낭독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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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낭독은 여기까지 입니다.
저의 낭독을 마지막으로 심회1반 '시와 산책' 낭독회가 끝이 나는데요.
늦은 시간까지 함께 해주시며 마음을 보내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행히도 내일이 공휴일인데요. 모쪼록 다들 푹 쉬시며 즐거운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를 읽거나 산책을 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럼 이렇게 저희의 낭독회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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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만큼 끝의 감각도 좋아한다.
끝이 있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억을 미화하며 왜곡한다.
그래서 나는 왜곡이 필요할 때마다 끝내려고 하는 것 같다.
멋대로 상상하면서 흠모하다가 막상 닥치면 알게 되는 지난함에 끙끙대다가
결국 모든 게 싫어질까 봐 얼른 발을 뺀다.
끝은 나를 더 너그럽게 만드는 동기.
그리고 내가 사랑 받는 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나약하고 못난 나를 들키기 전에 자꾸 도망간다.
끝을 선언하고 한 낭독회에서는 예쁜 말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이기에 이렇게 포장될 줄 알고 도망간 거지.
과분하고 부풀린 말들을 받았다.
그걸 노렸기에 좋으면서도 민망했다.
사실은 나약해서 포기한 건데.
이렇게 쓰고 나니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난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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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회가 끝이라고 생각하니까 드디어 소리가 좀 풀리더라.
뚝 뚝 끊기는 것도, 더듬는 것도 덜하고 간만에 신이 나서 낭독을 했다.
방장을 맡아 놓고 중도 하차하는 거라 약간 민망했지만 일단은 후련했다.
낭독 강의는 일단 여기서 멈추고 소곤님과 함께하는 낭독모임을 열심히 계속해야지.
강의 수업은 칭찬 받는 수강생들이 부러워서 더더욱 못했다. 자꾸 이건 내가 더 잘하네, 이건 내가 더 못하네 하면서 아무도 붙이지 않은 경쟁심으로 순위를 매기고 그게 스스로에게 부담이 쌓였다. 나중엔 소리를 더더욱 못 냈다. (낭독 말고 업무전화도 못하겠어서 혼자 열 받았었다. 흑) 내가 잘해! 이 마음이 팍 죽으니 그냥 소리 내기가 싫고 과제도 하기가 싫었다. 유치하고 나약한 마음에 일단은 쉰다. 그래도 낭독을 놓치고 싶진 않은데 앞으로 나는 어떻게 낭독을 이어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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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낭독회 처음부터 소근님이 함께 해주셨다. 시작부터 방에 들어오신 소곤님의 이름을 발견하고 헉! 나 때문에 오신건가? 싶었는데 마지막 순서인 내 차례까지 끝까지 계셔주시고 댓글로 내 이름을 부르며 응원해주셨다. 감사해서 몸둘바를 몰랐다. 크흑. 그나마 내가 평소보단 잘한 낭독이긴 해서 다행이다... 긴 시간 동안 자리를 지켜주신 소곤님께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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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말고도 낭독을 잠시 쉰다는 사람이 많아서 계속 하시는 분들께 미안하다. 아무래도 내가 탈주를 먼저 하면서 영향 받은 사람도 있었겠지.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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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낭독회를 하니 긴장이 되고 좀 떨렸다.
연습할 때 '버스'를 [버스]라고 잘 발음해 놓고 낭독회 때 [뻐스]라고 하고, 다른 부분에도 이상하게 악센트가 들어가거나, 발음이 뭉개지거나, 말이 빨라지는 게 느껴져서 캄다운하느라 혼났다. 낭독회 영상은 이번에는 보려고 했는데 막상 보려니 못하겠다. 배우나 연예인들 도대체 이 수치심을 어떻게 견디고 모니터링을 하는 걸까. 하지만 분명 모니터링을 해야 뭐든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자기 모니터링 없는 강연자의 강연을 들을 땐 티가 났다. 좋은 강연, 좋은 연기, 좋은 노래, 좋은 글, 좋은 낭독... 글도 퇴고를 해야 비로소 좋은 글이 된다. 자기 글을 제대로 바라보며 퇴고 하는 일도 물론 쉽지 않은데 내 영상과 내 목소리를 보는 일이 어휴 진짜 쉽지 않다. 그 전 낭독회 영상도 아직 못 보겠다. 아직 조금만 더 묵혀두고... 조금 더 나랑 멀어지면 그땐 볼 수 있을지. 윽.
어릴 때부터 또래 문화 안에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연예인 이야기였다. "너는 누구 팬이야?"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빠르게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여자아이들의 결속이 힘들었다. 삼삼오오 모여 나누는 이야기의 8할 이상을 차지하는 주제에 쉽사리 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고, 관심이 없... 처음에는 이런 내가 이상한가 싶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관심이 생기려나 싶기도 했다. 심지어 친구들과 대화 코드를 맞추고자 부러 노력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 실패.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연예인에 큰 관심이 없다(이를테면 BTS가 몇 명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전혀 모른다). 그런 내가 이제는 누군가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구나, 라는 걸 잔잔히 느껴가고 있는 중이다. 나란 인간은 영원히 팬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싶다. 보편적인 장르가 달랐을 뿐 내가 좋아하는 책과 작가님들에 대한 팬심은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이라는 걸 차차 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내가 소속되어 있던 독서모임에서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주제로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다. 모임에 참석하고자 일전에 읽었던 작가님의 책들을 제외하고, 그동안 읽지 않았던 책들까지 한 권 한 권 섭렵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의 다채로운 모습과 담고 있는 메시지에, 에세이를 읽을 때는 독서 생태계에 진심인 작가님의 가치관에 푹 빠져들었다. 하지만 논픽션(특히『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취재할 수 있나 싶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아 물론 좋은 의미로). 그렇게 모임을 준비하던 중 우연히 작가님과 함께 하는 비대면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고, 그날이 시작이었다.
"내가 읽은 장강명"이라는 모임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처럼 극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고, 불호에 가까운 사람도 있었다. 인생사 참 재미있는 건 그때 불호를 외쳤던 유일한 사람이 다름 아닌 지금의 내 연인이라는 사실이다(사람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와는 그전부터 오래 알던 사이였는데, 그날의 모임을 계기로 사귀...게 된 건 아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꽤 재미있는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종종 그때 일로 장난을 치곤 한다). 당시 그가 주장했던 논리는 허무맹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타당한 면도 없지 않았기에 이해는 했지만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제는 다 지난 일이지만 말이다. 당시 모임을 주최했던 회원분은 장강명 작가님의 책들 중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모조리 챙겨오셨는데, 큰 가방에 무려 10권이 넘는 책을 바리바리 담아오셨다. '이분이 나보다 더하구나' 싶어 사진도 찍었지만 사진에 담긴 책 외에도 더 많은 책을 집필하셨다는 게 함정이다. 올해도 다른 독서모임에서《표백》을 지정도서로 오프라인 모임이 열렸던 적이 있지만, 그때와 달리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팔은 안으로 굽는 다지만,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들어봐도 그들의 논리는 비판보다 근거 없는 비난에 가까웠다.
그래서 다시 본론(놀랍게도 지금까지는 서론이었다).
지난주에 장강명 작가님의 강연을 다녀왔다. 아차산숲속도서관에서 독서의 달을 기념해서 열린 강연이었는데, "문학 독서와 삶의 답변들"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됐다. "문학 작품을 더 친근하게, 깊이 있게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도 담고 있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북토크, 강연 등이 열릴 때마다 시간이 맞으면 꼭 참석하곤 했는데,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이 주제라는 점이 좋았다. 심지어 아차산숲속도서관은 그전부터 가보려고 찜해둔 여러 도서관 중 한 곳이었다. 고작 사진으로 접한 게 전부였지만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마냥 안온한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주변 경관도 좋다기에 더더욱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지도를 보고 한참을 걸어갔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그 주변만 뱅뱅 돌고 또 돌았다. 사이사이 언덕은 또 어찌나 많던지. 걸어가는 내내 체력 소모(그날 2만 보를 넘게 걸었다)도 체력 소모지만 이러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출발 자체를 워낙 일찍 했던 터라(길치의 준비성이랄까) 한참을 헤맸음에도 강연 시간보다 1시간 정도나 일찍 도착했다. 저 멀리 도서관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의 안도감이란. 덕분에 도서관 근처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가을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선선한 바람, 저 멀리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까지.
도서관에 들어갔더니 강연 시작까지 시간이 꽤 남아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았다. 역시나 맨 앞자리는 조심스러워 그 뒷줄에 앉았지만, 이번 강연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아무도 내 앞에 앉지 않는 바람에 작가님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다. 강연이 시작되기 전, 잠깐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했는데, 1층에는 장애인 화장실만 있었다. 혹시나 싶어 사서님께 여쭤봤더니 2층에 비장애인 화장실이 있다고 하시길래 계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서관 운영시간이 6시까지라 강연하는 곳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 막혀있었다. 할 수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작가님이 2층 대기석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다행히 엘리베이터 쪽을 등지고 계셨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겨우 꾹꾹 누르고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서 혼자 심호흡을 하면서 인사를 드릴까 말까 어찌나 고민을 했던지. 한창 강연을 준비하고 계신데 괜히 방해가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쭈뼛쭈뼛거리다 결국 용기를 냈다.
"작가님"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 하고, 조금 멀찍이 서서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가님을 불렀다. 작가님은 안경을 벗고 계셨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을 고쳐 쓰시고는 뒤돌아 나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받아주셨다. 심지어 나의 짧아진 머리도 알아봐 주셨다. 세상에, 맙소사! 근데 막상 인사를 건네고 나니 다음 말을 이어가야 했는데... 너무 떨려서 그만 횡설수설, 손을 휘휘 저으며, 먼저 내려가 있겠다는 말만 와다다다 내뱉고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열림과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다. 이럴 거면 작가님을 왜 부른 걸까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자리로 향했다. 방금 있었던 일을 자책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 서가에 있는 책들로 시선을 돌렸다. 책을 펼쳐들고 읽으려 했지만 활자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중간중간 작가님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화들짝 놀라곤 했던 건 (안)비밀이다.
1시간 30분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다. 작가님의 강연을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시작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말씀에 번번이 놀라며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은 오랜만이었는데, 역시나 좋았다. 울컥하는 지점이 있어 눈물을 꾹 참기도 했다. 사람들은 타인의 기쁨보다 고통에 더 반응하고, 문학 작품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에 울림이 있었다. 한 편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작품에 대한 분석이 아니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대 또한 감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우리가 몰입해야 하는 구간은 '내가 어디서 고통을 느꼈는가'였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떤 인물의, 어떤 장면에서 고통을 느꼈는지, 왜 그 장면이 고통스러웠는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하는 사람인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었다. 한 편의 문학 작품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 또한 여기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 싶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 '뭐지? 나 방금 왜 울었지?' 혹은 '뭐지? 방금 뭘 읽은 거지?'와 같은 감상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그 작품을 음미하며 곱씹을 수 있지 않을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책을 읽는 것조차 유튜브의 짧은 영상으로 대체하며 맥락만 짚어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속상했는데, 이번 강연을 통해 알았다. 내가 문학을 읽는, 읽어야만 하는 이유.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의 성격, 자라온 환경, 소설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 책을 읽고 느낀 나만의 감상을 공론장에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주장을 갖추는 것. 그게 문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였다. 그 가치는 단순히 짧은 영상으로 줄거리만 파악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고유함이 있다.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는 세상에 널렸고, 조금만 검색하면 책을 읽지 않아도, 그 책에 대한 온갖 정보를 섭렵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여기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독서 생태계를 함께 일궈나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날 나는 작가님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배웠고,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던 단어들을 조금 더 균일하게 나만의 문장으로 끼워 맞출 수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도서관에서 집까지 향하는 길 또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순조롭지 않았다. 왔던 길과 다른 길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산길을 내려갔다가 그 선택을 후회했다. 가는 길에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가로등도 없어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길이 맞긴 한 건지 점점 두려워졌다. 안되겠다 싶어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난데없이 오밤중의 달리기가 시작됐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내려가다 조금씩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큰길이 나왔다. 다행이다 싶어 지도를 열었더니 이제야 조금씩 좌표를 제대로 잡아주기 시작했다. 가려던 역은 아차산역이었는데, 내가 막상 도착한 곳은 광나루역이었다(괜찮아, 익숙해, 이 느낌). 다행히 역에서는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어렵지 않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씻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주말에 연인을 만나 작가님의 강연 이야기를 전했다. 가을, 밤, 책, 문학, 진심, 고통, 삶 등 묵직한 단어들이 오고 갔다. 한때는 작가님의 작품에 '불호'를 외쳤던 연인이지만 이제는 아니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작가님의 가치관을 종종 읊어대던 나에게 물들어가는 것인지 '역시'라는 말로 화답하는 연인의 모습에 같이 웃었다. 가을밤이고 모든 게 완벽했다.
(아 모기만 빼면...)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 시즌 2를 알라딘 투비컨티뉴드에서 연재합니다. 매달 1일, 15일에 글을 올리고, 나중에 모아서 유유히 출판사에서 책을 낼 예정이에요.
1회는 ‘2024년 한국 소설가와 IP 시장’이라는 주제로 써봤습니다. IP 시장 침체, IP 판매에 뛰어든 출판사와 서점, 정산 문제 등에 대해 두서없이 적었네요. ^^
#소설가라는이상한직업
https://tobe.aladin.co.kr/n/257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