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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마흔 살이 넘으면 친구가 감소하는 게 전지구적인 현상이었구나 새삼 확인. 기자 출신의 인싸 저자의 친구 만나기 르포라고 해야하나 암튼 정신한만하다.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건강한 노동 현장을 꿈꿔본다

작년 초『다음 소희』라는 영화를 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한 사람이 거대한 조직의 부속품이 되어가는 부조리한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콜센터로 현장 실습을 나가게 된 여고생 소희는 그곳에서 일하며 사회의 냉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나는 당시에 그 영화를 보며 수치로 평가되는 한 인간의 생과 사에 분노했고, 그저 하나의 사건으로만 치부하며 덮어두기 급급한 사회 이면에 치를 떨어야 했다. 비단 그 영화 속 주인공뿐만 아니라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들, 특히 노동과 관련된 부조리함들은 이루다 말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한 사람의 인생을 수치로 평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콜센터』라는 책을 처음 읽었던 건 30살, 독립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단순히 제목과 목차에 끌려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이 깊어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아나운서, 공무원, 대기업 입사, 음식점 창업 등 각기 다른 목표를 갖고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들이다. 그들이 경험한 콜센터의 모습은 그야말로 시궁창 같았다. "평생 콜센터에서 일해라"라는 말이 욕이 되는 곳.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이토록 지독할 수 있나, 싶은 면면들이 많았다. 온갖 진상들과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감정을 꾹꾹 눌러대는 청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숨이 막혔다. 세상에는 꼬인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싶어 인간혐오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믐의 좋은 점은 (너무나 많지만) 그중 가장 좋았던 건 그 책을 집필하신 작가님과 활자로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것뿐만 아니라 작가님이 이 책을 쓰시면서 경험하셨던 것을 하나하나 세세히 알아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꽤나 생경한 경험이었다. 이번 모임도 그랬다. 김의경 작가님의 작품은『콜센터』뿐만 아니라, 월급사실주의 동인지『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에 수록된 <순간접착제>도 읽었던 터라 더더욱 이번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다.

모임은 29일 동안 진행됐다. 그리고 역시나, 아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작가님은 참, 인간적인 분이셨다.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이어가시며 콜센터에서 근무했을 당시의 상황들을 진솔하게 풀어주셨다. 유독 눈길이 가는 인물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도 담아주셨다. 김혜나 작가님이 모임지기가 되어 질문도 하나씩 올려주셨다. 함께 참여했던 모임분들도 올라오는 질문에 맞춰 각자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풀어주셨다. 이야기 보따리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순간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믐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9월의 마지막 일요일에는 그믐에서 진행했던 모임의 감상을 그대로 이어가고자『콜센터』를 지정도서로 한 오프라인 독서모임도 열어 보았다. 4명이 모일 예정이었지만, 한 명의 갑작스러운 취소로 총 세 명이서 진행됐다. 모임지기는 나였고, 소수라 더 밀도 있는 대화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감에 발제문도 열심히 만들었다. 궁금한 걸 풀다 보니 질문이 17개가 됐다. 이렇게 많이 준비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실은 넘버링을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질문을 준비했을 (지독한) 나란 인간. 일단은 이 정도만(?) 하자는 생각에 발제문을 마무리했다. A4용지 4장을 꽉 채운 분량이었다. 모임 당일, 인원수에 맞춰 깔끔하게 프린트 한 종이를 챙겨 카페에 모였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3시간이 부족했다. 심지어 발제문에 담긴 질문을 다 나누지도 못 했다. 노동현장과 직업, 일(직업과 일은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에 대한 묵직한 말들이 오갔다. 회원분 중 한 분은 실제로 아나운서를 준비했던 경험이 있어『콜센터』에 등장하는 시현의 입장에 많이 공감했다고. 나는 되레 그분의 생생한 경험담 덕분에 시현이라는 캐릭터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다(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시현은 내게 비호감이었다). 그날 모인 우리 세 명은 닉네임으로만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서로의 실명도, 나이도, 사는 곳도, 정확한 직업도 모르는 상태였지만, 그런 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이 책을 읽고 나눈 각자의 삶이었으니. 상대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콜센터』를 읽을 때마다 나의 스물다섯 살이 생각난다. 첫 직장에 입사했던 게 25살, 3월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나는 달라졌을까, 라고 질문한다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삶에서 몇 번의 굵직굵직한 고난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과감하게 경로를 틀었다. 키를 잡은 건 온전히 나여야 했고,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이었다기 보다는 혹독한 근무환경일 때가 많았다. 사방에서 나에게 big엿(표현 왜 이래)을 날리는 기분. 어디 하나 발 딛고 설 수 없을 정도로 낭떠러지에 내몰리는 기분.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파김치가 되어 터덜터덜 퇴근했던 그때 그 시절. 아빠가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찬장에 고이고이 진열해뒀던 비싼 양주를 매일 퇴근하고 한 잔, 두 잔, 그렇게 들이켜댔다. 목이 타들어갈 것 같은 독한 술을 마셔야만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면 다시 기상이었다. 찬장에 전시해둔 귀한(?) 술병의 액체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버젓이 보였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쟤는 저게 얼만지 알고 저렇게 마셔대나'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때는 그 술들이 나에게 하나의 탈출구였다.

비단 콜센터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년들, 아니 하물며 청소년들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힘든 삶을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커녕 수많은 기계, 그 기계의 부속품 중 하나로 취급받는 노동계의 취약점을 우리는 더 많이 고발하고 들춰내야 하지 않을까. 진상 고객이라는 이유로 떠밀리고 떠밀려 가장 약한 누군가가 그들을 상대하고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건 누군가 말려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정량적 지표로 수치화할 것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깊어지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한없이 무력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업들 중에도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불매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 있다. 굳이 이 글에서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는 너무나 몰지각하게 그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반복해서 유사 재해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노동부의 개입은 다소 소극적이다.『다음 소희』에서도 그랬고, 이번에 읽은『콜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읽었던『고통 구경하는 사회』라는 책이 떠오른다. 저자는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며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라고도 말한다.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 살펴보고, 누가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알아내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쳐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게 동료 시민의 역할이라고 말이다. 우리의 시선이 어디에, 얼마나, 어느 정도의 섬세함으로 머물러야 하는지, 어느 방향으로 옮아가야 하는지까지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비록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행동만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콜센터』모임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조금 더 뾰족한 인권 감수성을 품은 채 살아가고 싶다고. 모두가 행복한 일터는 어려울지라도, 모두에게 건강한 일터만큼은 꿈꿀 수 있기를, 몸도 마음도 다 말이다.

아무런
아무런
정진영, 임현석 작가님과 이런 공통점이 있었다니.

<왓 어 원더풀 월드>의 정진영 작가님,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의 임현석 작가님과 만나 이 시대 리얼리즘 문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등을 진지하게 토론했습니다(뻥임). 표정들이 아주 주옥 같습니다. ㅎㅎㅎ

 

저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요, 먼저 기자 출신 소설가들이라는 점, 월급사실주의자라는 점, 그리고 결혼은 했지만 결혼식은 올리지 않은 유부남들이라는 점입니다. 세 남자 다 혼인신고만 했어요. 이거 어디 아침마당 같은 데라도 출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

 

#기자출신소설가 #월급사실주의 #결혼식앤솔로지라도해야하나

 

 


1078. 이 여름에 별을 보다 (츠지무라 미즈키)

이런 포카리스웨트 CF 같은 무공해 청소년 소설이라니. 나는 이런 청소년기가 없었기에 질투가 나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까마득한 옛 일처럼 느껴진다. 진짜 포카리스웨트 CF 같은 장면도 나온다. 일본에서는 자전거에 두 사람이 타면 불법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이 여름에 별을 보다
이 여름에 별을 보다
1077. 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일본서점대상에서 역대 최고 점수를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고, 만화판과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나왔다고. 그런 얘기에 엄청난 기대를 품고 책장을 펼쳤는데, 솔직히 중반까지는 그저 그랬다. 여중생들의 교묘한 따돌림 묘사가 인상적이었다는 정도. 그런데 막판에 반전이 몰아친다. 그 반전이 억지스럽긴 한데, 울림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거울 속 외딴 성
거울 속 외딴 성
...내가 뭘 읽은 거지?

읽기는 읽었는데 당장 누가 물어본다해도 줄거리 설명도 못하겠다. 제목만 보면 인간드라마가 쫙 펼쳐진 뒤에 클라이막스나 마지막에 주인공이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서 "우리는 종이같은 존재들이야..."할 것 같았는데 그런 책 아니었음. 저어언혀.

시작이 진짜 '종이로 만들어진' 여인이 떠나는 장면인데, 이 인물은 수많은 인물들 중 하나일 뿐이며 마지막에 언급되는 다른 사람까지 합쳐야 전체 책에 종이 인간 두 명임. 제목이 왜 복수형인거냐...리타 헤이워드는 거의 무덤에서 뛰쳐나오지 않을까 싶은 취급을 당하고, 아기 노스트라다무스는 소설 중간에 마지막 문장을 스포(...)하질 않나. 그리고 인포그래픽이나 팝업책 말고, 내용 때문에 책에 잘려나간 구멍이 있는 소설책은 인생 처음이다! 검은 칠(이것도 본문에 있다!)도 아니고 이름이 잘려나간 네모칸이라니...그 와중에 작가 본인 캐릭터의 머리 싸매고 싶은 찌질함 무엇인가. 책 뒤에 작가 김연수 씨의 글처럼 좀 고상한 소리 쓰고 싶은데 독자1에게는 매우 무리하다.

- 끝까지 예측불가다 : 어디로 굴러갈지 전혀 모르겠으니 맞는 말인데...특히 꼬마 메르세드의 후반부 행적을 보면 머릿속에 물음표밖에 안 떠오름. 그러나 이건 스릴러물 상투 문구 아니던가...

- 매지컬 리얼리즘 : 동화같은 말투로 지옥같은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종이로 만든 사람 나오고 기계거북이 알 낳는 시점에서 미묘...현실이 그렇다고 안 나오는 건 아닌데...

- 판타지 : 단어 뜻만 보자면 그 분류다만, 반지의 제왕이나 판타지 영어덜트 소설하고 백만년은 거리 있고 모험과 용기 이런 거 없음.

- sf : ...토성도 나오고...'창조주와의 전쟁'이라는 키워드도 나오는데...과학적 고찰이나 상상력 찾으려면 이 책 보면 안 된다.

- 사랑에 관한 소설 : 분명 사랑이 중요한 키워드인데...연인들도 나오고 정사 장면들도 있는데 낭만의 찌꺼기도 못 느끼겠음. 후회나 이별의 찌질함은 꽤 나온다만 그게 메인도 아니고...

- 어른을 위한 동화 : ...이런 건 좀 마음을 따숩게 해주는 장르여야 하지 않는가?

전혀 정리가 안 되는 와중에 중간중간 우와...하는 문장들이 있으니 여러모로 기막힌다. 적절한 표현이 언젠가 생각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골때렸다는 정도로 끝내고 다음 책을 보며 좀 진정해야겠음...

종이로 만든 사람들
종이로 만든 사람들
인생을 예쁘게도 물들여줄 수 있는 한국 술들 이야기

절제의 미덕과 음미할 능력이 있다면 한 잔 술이 다양한 기쁨을 줄 수 있다만, 그렇게 일이 굴러가기 어려운 게 현실 아니던가. 그 와중에 술을 대하는 태도부터 술맛 이야기, 그리고 술과 관련한 추억들까지 곱디 고우니 진짜 놀랄 노자다. 부코스키가 아니라 한 잔 술을 경애하고 감사하는 술잔 든 선녀처럼 사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있는 것이던가?

양조장 소개나 술 맛 소개들이 모두 한 편의 시다. 향 뒤로 피어오르는 미소같은 술을 마시며 은하수가 흐르고, 꽃을 건네는 수줍은 손길이 떠오르는 향기와 빗방울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맛...그냥 들이붓는 사람은 평생 모를 감동이니 글로 보는 것도 운이 좋은 거겠지.

'술과 문학과 친구의 향기로운 사귐이 있으니 인생에 부러울 것이 없다' 내 입에서 나올 일 없어 참으로 부러운 문장이다...(경험 이전에 작문의 수준차이가 있어 이미 무리다만;) 일단 언급된 몇몇 제품들을 선물용으로 재빨리 찜해놓고, 마실 일도 없으며 어차피 후각도 형편없는 나는 마성의 술의 맛을 상상하면서 진짜 오랜만에 교과서 나왔던 시들이나 다시 찾는다.

술 맛 멋
술 맛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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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9일(금) 이번 그믐밤엔 소리산책 떠나요~
[그믐밤] 29. 소리 산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이번에는 극단 피악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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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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