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학사전 유의 책들을 좋아해서 종종 읽는 편이다. 그렇게 사이먼 반즈의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현대지성)를 집어들 때에는 이 책도 역사에 등장한 동물들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 모음집이겠거니 했다. 미국에 정착한 유럽인들이 추수감사절에 칠면조를 먹게 된 사연이라든가, 누에나방과 전근대 비단 산업의 성장 같은 이야기들 말이다.
728쪽짜리 이 두툼한 하드커버 서적은 그런 일화들을 담은 재미있는 읽을거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한데 그 이상의 깊이도 듬뿍 담겨 있었고, 나는 책장을 넘기며 ‘역사에 등장한 동물들’이라는 생각 자체를 반성하게 되었다. 역사를 오직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것으로, 동물들은 거기에 가끔 식재료나 산업의 도구로 등장한다고 여겼던 거다. 큰 착각이었다.
베테랑 저널리스트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가 말하는 ‘세계사’는 인류의 역사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다. 이 세계사에서 동물은 당당한 주역이고, 때로는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지구의 모습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지렁이는 300만 년 전부터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다른 육지 동식물들이 자랄 수 있었다. 책에 따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약 90퍼센트는 지렁이의 도움으로 얻은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해산물과 수경 재배작물 정도다.’
그럼에도 책이 처음부터 끝까지 초점을 맞추는, 목차에 없는 101번째 동물은 역시 인간이다. 갑자기 큰 힘을 얻는 바람에 오만하고 무책임해진 종, 이제는 지렁이 이상으로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종이다. 책에는 인간이 멸종시킨 동물과 인간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빠진 동물들이 숱하게 나온다.
다행히 인간은 지렁이와 달리 자신의 영향력을 자각한다. 마지막 도도새를 죽일 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어떤 동물이 멸종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하지만 도도새와 마찬가지로 모리셔스 고유종인 분홍비둘기는 멸종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분홍비둘기의 서식지를 파괴한 것도, 그들의 멸종을 막은 것도 인간이었다. 기회는 아직 있다.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 균형 잡힌 시선이 신뢰감을 준다.
11월 1일부터 읽기 시작해서『여수의 사랑』을 읽는 데 꼬박 12일이 걸렸다.
평소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하면 속독하는 경우가 많기에 12일이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로 좀 오랜 기간이기는 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곱씹으면서 읽을 수 있었으니.
이런 게 가능했던 이유는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였기 때문이다.
처음 바실리사님이 함께 읽기를 제안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책먹는사라님이 주도적으로 추진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혼자서는 읽으려고 시도조차 안 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읽을 책은 산재해있었고, 한강 작가의 책들은 나중에 읽으리라 생각하고 분명 미룰 심산이 컸으니까 말이다...ㅎㅎㅎ
게다가 오늘 아침엔 온라인 독서 모임을 통해 그동안 읽은 소회들을 풍성하게 나누는 시간을 가져서 더 의미 있었다~♡
이 책에는 <여수의 사랑>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이렇게 총 6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는 책먹는사라님이 공지해 주신 대로 각각의 단편을 이틀에 걸쳐 읽고 다 읽은 후에는 기억에 남는 문장과 소감을 '그믐' 플랫폼에 남기며 소통했다.
온라인 독서 모임을 만들 수 있는 '그믐'에서는 다양한 책 읽기가 진행되고 있다~~📚
첫날 첫 단편 <여수의 사랑>을 읽고 난 반응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어째 한강 작가는 초기작부터가 인물들이 다 평범하지 않네요."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집니다. 노후의 한강 작가의 작품은 어떤 것일지도 궁금합니다."
"읽는 내내 눈물이 나서 몇 번을 멈추다 읽고 의식적으로 딴짓해봅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한 가지 공통된 반응은 한강 작가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유려한 문장에 탄복했다는 것이다.
"한강 작가의 묘사가 너무 멋지죠. 먼 하늘로부터 춤추며 내려와 흐느끼듯 스민다... 어쩜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요?"
"전철 속에 비치는 낯선 얼굴들,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망연히 서 있는 나의 모습... 문장이 저절로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아요."
"저도 첫 문장부터 작가의 표현력에 엄청 놀라면서 읽어요. 초기작부터 어마어마한 작가였다는 생각에 엄청 놀라며 읽고 있어요."
"초반부터 강렬합니다. 쉬이 읽히는 소설과 달리 문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문장 하나하나가 다 주옥같네요."
"비유적 표현들이 어찌나 찰떡같은지 계속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어요."
"진짜 묘사가 기가 막히네요. 마치 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아요. 문장에 홀릭 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자 중에는 평소 소설을 많이 읽은 분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 자기 계발서 같은 책만 읽다가 이런 책을 읽으니 표현력에 놀라고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기억에 남는 문장을 고를 때는 같은 문장을 선택한 것을 보고 웃기도 하였다. 이게 함께 읽기의 묘미인 것 같다^^
"초반에 작가의 표현에 감탄하다가서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스토리도 몰입감 최고. 더 읽고 싶은 마음 애써 누릅니다."- 라이뿌-
라이뿌님 말씀처럼 한강 작가의 소설은 빼어난 표현력이 다가 아니었다. 인물 간에 촘촘히 짜인 서사와 스토리가 책을 읽는 내내 몰입하게 만들었고 매일매일 읽을 분량이 있었음에도 그 분량을 초과해서 읽고 싶게 만들 만큼 흡인력이 있었다.
다 읽고 나서 여섯 개의 단편들은 분명 각각의 다른 이야기인데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같은 인물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서로 닮아있다는데 놀랐다.
"…… 오래 못 있을 것 같아요.
자흔의 마지막 독백을 들으며 나는 어렴풋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젊은 그녀에게서 미래를 지워내버린 것인지, 아무런 희망 없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게 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자흔이 지쳤다는 것, 이십몇 년이 아니라 천 년이나 이천 년쯤 온 세상을 떠돌아다닌 사람처럼외로워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여수의 사랑> 33~34p -
<여수의 사랑>의 자흔과 정선, <어둠의 사육제>의 영진과 인숙 언니, 명환, <야간열차>의 영현과 동걸, <질주>의 인규와 진규, <진달래 능선>의 정환과 황씨, <붉은 닻>의 동식과 동영은 각자의 상황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핍'이 있는 인물들이다.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가족에게 핍박을 받아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인생이 위태위태한 사람들이다.
외상이 컸기 때문일까.
인물들은 한결같이 삶은 살아내고는 있지만 그들의 미래에 희망 따위는 보이진 않는다.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내면 아이는 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사회 속에서 고립하게 만든다.
"나는 그녀로 인해 내가 잃은 것이 돈과 신뢰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삶과 화해하는 법을 잊은 것이었다.
삶이 나에게 등을 돌리자마자 나 역시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잘 벼린 오기 하나만을 단도처럼 가슴에 보듬은 채, 되려 제 칼날에 속살을 베이며 피 흘리며 있었다."
- <어둠의 사육제> 115p -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부모의 도움 없이도 착실하게 일해 4년간 대학 갈 등록금을 알뜰하게 모아온 영진과, 임신한 아내와 곧 태어날 2세를 기다리며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온 평범한 가장 명환은 소설 속 인물 중에 그나마 정신이 온전히 박힌 사람이었다.
적어도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행복을 꿈꾸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인생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피 같은 전세금을 같이 동거하던 인숙 언니가 말도 없이 빼내갔을 때, 교통사고로 임신한 아내를 잃고 자신마저 장애를 갖게 되었을 때, 그들 또한 세상을 향해 환멸과 증오만 남은 사람으로 전락해버렸다.
"마치 누워 있는 동주 오빠 몫까지 살아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술에 취해 돌아오면 동주 오빠 어깨를 붙들고 일어나라고함치곤 하죠, 네 몫까지 살려니 내가 미치겠다……"
- <야간열차>, 173p -
사고로 10년 넘게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동생의 몫까지 살기 위해 일분일초를 맹렬하게 싸워나가고 있는 동걸이와, 입대 전 어머니의 별세로 집에 정착하지 못하고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영현이는 숨 쉴 구멍을 찾고자 언제라도 야간열차에 몸을 실을 생각을 하고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들에게 가서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된다고, 떠나고 싶을 땐 언제든 훌훌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이토록 소설 전반에 '죽음'이라는 먹구름이 끼어있는 건 한강 작가가 일찍이 한강 작가가 일찍이 '죽음'을 직접 목도하고 그것이 내면에 깊이 자리 잡은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인규에게는 꿈과 같이 느껴졌다.
물먹은 솜 같은 다리가 내딛는 보도블록,
칼칼하게 목구멍으로 감기는 밤공기, 이 모든 것들이 어느 하나 인규에게는 살아 있지 않았다. 달리고 싶다,라고 인규는 생각했다. 그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달릴 때뿐이었다." - <질주>, 222p -
지금도 매일 아침 독신자 아파트 뒷산 등산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을, 온몸이 땀에 젖어도 고꾸라져도 질주를 멈추지 않을 인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달리다 보면 그 길은 끝날 거라고, 이 싸늘하고 어두운 길은 반드시 끝날 거라고. 그러니 이제 애써 뛰지 않아도 된다고. 진규를 마음에서 그만 보내주라고.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우리 인생도 어둠이 있으면 밝음이 있는 법이다. 『여수의 사랑』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불행하지만, 어쩌면 이들의 불행은 더 행복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절망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다. 결핍은 채워나가면 된다.
푸른 신호가 켜졌다.
어둠이 무너져 내렸다.
자, 이제 걸음을 한 발 내디뎌 밝은 세상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호손이 싫어서 잠시 망설인다. 1권을 반도 읽기 전에 '이거는 아무리 불쌍한 사연이 있어도 수용불가'라고 생각했는데 뒤로 갈수록 오히려 더해서 혀를 내둘렀던 씁쓸한 기억이 떠오르지만...2편 번역이 나왔다니(맥파이 살인사건 후속작이 아니라 이게 먼저 나왔다는 것이 어지간한 추리소설보다 더 미스터리다...) 분명한 이유는 없으면서 아니볼 수 없다는 마음은 왜 드는 것일까. 아냐, 읽는 데 이유는 필요없어...
호로위츠의 좌충우돌이 딱하고 웃기면서도 역시 호손이 싫다. 시리즈라는 것이, 첫 등장 때 비호감이었던 인물이 점점 다른 면이 나오며 호감도가 올라가는 경우가 있으니 약간 기대를 걸었는데 호감도 더 내려감. 본문에서도 호로위츠가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할테니까요.'라는데, 이 모든 것이 작가가 의도하고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나는 호손이 싫어요! 호손 하나만으로도 질리는데, 그룬쇼가 서점에서 벌인 행각에 또 한 번 머리 띵. 책덕에게는 상상도 하기 싫은 이런 불명예를!
1, 2편 클라이막스마다 호로위츠가 욕보는 걸 보니 이 패턴은 그냥 굳어지겠구나. 괜찮아 매권 머리 깨지고도 안 죽는 본즈도 있는데...어쨌든, 3권 번역도 좋다만 문플라워 머더스 번역이 빨리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손톱이 꺼매지는 것도 모르고 틱, 틱, 틱. 작은 틈을 벌리려고 기를 쓰는 욕망이 느껴져서 ‘박쥐‘를 좋아한다. 적나라한 이미지 때문에 영화 화면은 자주 못 마주보더라도 박쥐 각본은 자주 읽는다. 태주는 정말... 정말 귀한 캐릭터다.
<출판사의 첫 책>을 읽었다. 여러 출판사 담당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서적을 탐독한다. 출판업계의 현실을 알려고. 이 책은 작은 출판사 10곳의 대표들이 어떤 마음으로 출판사를 설립했고, 어떤 책을 만들고 싶어 했는지 자세히 들려준다.
독서 관련 일을 시작한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출판사를 세우는 건가요?'라고 물었다. 특히 남편의 기존 책 계약이 끝나면 내가 직접 출판할 계획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나는 출판 경험이 없다. 나는 그의 책이 최고의 편집자, 최고의 디자이너, 최고의 마케터를 만나길 바란다.
한편 출판사가 부족해서 독서율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내가 하나를 더 늘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미 많은 출판사들이 고군분투하며 좋은 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좋은 책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가 나의 고민이다.
프로선물러 조영주 작가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선물이다.
노마 작가님의 개인전 <달빛 등불 하나>에서 그믐달 그림을 보고 그믐 생각이 나 사셨다고. 그림을 보는 순간, 고요한 밤하늘 아래 홀로 빛나는 달을 바라보는 듯한 평온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신이 나서 스티커는 노트북에 바로 붙이고 작은 액자는 사무실 방에, 큰 액자는 거실에 걸어두었다. 집안 곳곳에 달빛이 스며든 듯하다.
문학동네시인선 018 (241104~241117)
❝ 별점: ★★★★☆
❝ 한줄평: 시인이 자연으로 아름답게 빚어낸 이 빛나는 시집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키워드: 어둠 | 밝기 | 구름 | 별 | 바람 | 책 | 지문 | 생 | 무늬 | 어둠 | 나무 | 모래 | 사막 | 나비 |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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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무해한 복숭아』를 여름에 읽고 정말 정말 좋았어서 시인의 첫 시집도 기대했는데 이 시집은 또 다른 결로 좋아서 정말 정말 좋았어요. 『무해한 복숭아』가 조금은 슬프지만 다정한 마음과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면, 이 시집은 구름, 별, 바람, 사막 등 자연물이 가득해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들을 생각하게 했어요. 천천히 음미하며 읽으니 더 좋았던 시집!
✦ 시인의 두 권의 시집이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두 번째 시집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도 기대되네요. 표지 색도 그렇고, 시 제목과 해설을 보니 봄에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아 봄까지 아껴두려고요! 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겨 행복합니다 💖 [📝 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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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필라멘트 같은 희망으로 아침을 켤 수 있을지 귀 기울여요 고백하자면 세상을 글로 배웠습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 오늘의 밝기는 몇 룩스입니까
/ 「점등(點燈)」 부분 (p.12)
✴︎
어둠일수록 별을 아끼는 이유
다가올 문장들이 기록된 문장들의 주석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해석에의 동경보다 오독을 즐겨 할 것
언제일까 스스로 귀를 자를, 문장의 시간
/ 「차갑게 타오르는」 부분 (p.18)
✴︎
잠이 오지 않았다
두 눈을 꼭 감으면 감을수록
떠도는 별들이
동공의 어두운 웅덩이를 찾아와 유성우(流星雨)로 내렸다
밤새 유성우로 내리는 별들에게 새 이름을 지어주면
차가운 호흡과
별들이 돌아가는 시간이 꼭 알맞았다
/ 「별이름 작명소」 부분 (p.60)
✴︎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할 수 없다
꿈꿔야 할 문장은
잠언이 아닌, 모래바람을 향해 눈뜰 수 있는
한 줄 선언이어야 할 것
사막 쪽으로 비껴 부는 바람
/ 「소금사막에 뜨는 별」 부분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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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1부
✎ 「점등(點燈)」
✎ 「나를 발명해야 할까」
✎ 「바람의 지문」 ⛤
✎ 「구름을 집으로 데리고 가기」
✎ 「차갑게 타오르는」 ⛤
✎ 「누가 나비의 흰 잠을 까만 돌로 눌러놓았을까」
2부
✎ 「벚꽃의 점괘를 받아적다」
✎ 「청진(聽診)의 기억」 ⛤
✎ 「나무의 눈꺼풀」
✎ 「별이름 작명소」 ⛤
3부
✎ 「소금사막에 뜨는 별」 ⛤⛤
✎ 「달로와요」 ⛤
4부
✎ 「살별」 ⛤
✎ 「꽃그늘에 후둑, 빗방울」
✎ 「오래된 근황」
✎ 「꽃씨로 찍는 쉼표」
✎ 「별의 사운드 트랙」 ⛤
✎ 「구름의 프레임」
✎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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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같은 해 영국에서는 국민투표 결과 유럽연합을 탈퇴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는 온건 좌파 정당들이 몰락하고 극우 정당들이 세를 불렸다. 선진국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이 잇따랐다.
경제사학자 애덤 투즈는 이런 현상들의 근본 원인으로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꼽는다.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저작 『붕괴』(아카넷)에서 그는 세계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자세히 분석하는데, 특히 내가 관심을 갖고 읽은 부분은 그 정치적 여파다.
번역본으로 964쪽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이 책에서 미국 정치에 대한 부분만 거칠게 옮겨 본다. 2007년 위기를 맞은 미국 금융당국의 대응은 “월스트리트를 먼저 살리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금융시스템’을 보호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수많은 실업자들을 보호하지는 못했다. 2009년 이후 경제회복의 혜택은 극소수에게만 돌아갔고, 모두가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품게 됐다. 시위대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2016년 미국 대선을 결정한 힘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분노였다.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에 긍정적이라고 대답한 미국 청년층이 크게 늘었다. 민주당 주자로 주목을 받은 버니 샌더스는 월스트리트의 적이라는 점에서는 트럼프와 같았다. 정책 공약이 허황되다는 비판을 받으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렇게 되물었다. “그러면 연준이 미친 듯이 은행에 자금을 퍼주고 미래의 납세자에게 부담을 떠넘긴 것은 정상적인 정책이었나?”
2019년에 발간된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현재 서구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포퓰리즘이라고 분석하면서, 한국은 이 책 후반부에 나오는 정치적 대격변을 겪지 않고 세계 금융위기를 극복한 덕분에 성장과 변화를 이뤘다고 찬사를 보낸다. 립서비스였을까, 아니면 너무 섣부른 진단이었을까. 경제적 불평등이 불러온 좌절과 계급 갈등, 포퓰리즘 득세와 정치의 공백은 고스란히 지금 한국의 모습이지 않은가.
‘장강명의 벽돌책’ 연재 초반에 영국 역사학자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글항아리)를 다루며 고대 로마와 중국의 한나라를 비교 설명하는 대목이 재미있다고 썼다. 오늘 소개하려는 어우양잉즈의 『용과 독수리의 제국』(살림)은 920페이지에 걸쳐 두 제국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더 깊고 자세하게 살피는 책이다. 어우양잉즈는 진시황이 세운 진(秦)나라를 한나라만큼이나 중요하게 보기에 정확히 말하면 비교 대상은 고대 로마와 중국의 진․한 왕조다.
한 범주 안에 있는 두 대상을 세밀히 비교하면서 우리는 그들이 속한 카테고리 자체에 대해서도, 두 대상의 개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도에서 통찰을 얻는다. 먼저 로마와 진․한의 공통점을 읽을 때에는 여기에 거대 제국의 흥망에 대한 일반 법칙이 숨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이웃을 무력으로 정벌하되 그 문화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여야 한다든가, 확장 과정에서는 점령지에 주둔군을 두는 대신 패권을 쥐는 편이 낫다든가, 정치 엘리트 계층을 포섭해야 한다든가, 도로 건설이 중요하다든가.
그런데 이 책에서 진짜 흥미진진한 부분은 로마와 진․한의 차이점들이다. 예를 들어 이런 분석은 어떤가. 고대 중국은 노예가 있는 사회였지만 노예에 기반을 둔 경제는 아니었다. 반면 로마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노예제 사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노예제 사회에서 ‘자유’라는 개념과 자유민의 권리가 더 심도 있게 논의되고 발전한다. 고대 중국에는 자유민과 노예라는 대립항이 없었고, 대신 양민과 천민이라는 개념만 있었다. 이런 차이는 동서양의 문화와 전통적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책 내용만큼이나 저자의 이력도 흥미롭다. 어우양잉즈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교수로 일하다 퇴임한 뒤 역사 연구에 뛰어들었다. 과학자 출신답게 논증이 꼼꼼하며, 중국 역사와 문화에 해박하면서도 ‘중화’를 찬양하거나 거기에 자부심을 드러내는 기색은 전혀 없다. 시종일관 유가와 한나라를 비판하고 법가와 진나라를 높이 평가하는 관점도 눈여겨 볼만 하다.
힐링 독서모임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살짝 다르다. 재미있는 책들 이름이 군데군데 언급되지만, 본문에서 북클럽이 공식적으로 다룬 책이 오만과 편견 한 권 뿐이라...거기다 중간에 실종된 매들린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교차되니, 갑자기 샤이닝 걸즈 생각이 나면서 엄청나게 초조해진다. 아냐, 표지를 봐. 아무리 번역 제목이나 표지가 내용과 다른 책들이 있지만, 그 정도 스릴러면 이 표지일리가. 뒷표지에 적혀 있잖여 치유의 시간들이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막바지에는 설마 얘가 등에 칼 꽂는 거 아닌가 안절부절못하고...요상하게도 csi형 살인이 나오는 소설에는 별 생각이 없으면서, 이런 스케일 작고 평범한 상황에서 질척대는 뭔가가 일어나는 것이 읽기 힘들다. 일단 상상하던 최악의 가정은 안 나와서 그것만으로도 안도의 한숨이 드래곤 브레스처럼 뿜어져 나옴.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나니, 그래, 힐링 이야기인 것도 맞아...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처리하기 좋은 타이밍은 있겠지. 하지만 타이밍이랑 상관없이 어떻게든 마무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도 있고, 사람 나이랑 상관없이 문제는 그냥 매일 생기지 않는가. 그때 나를 격려해주거나 함께 끙끙대며 생각해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용기가 생기고, 좀 다른 방향으로도 머리를 굴려볼 수 있겠지. 나의 노년에도 모나나 도리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만 내가 두 사람깉은 인물이 아니니 그리 되겄냐...
명대사는 아니지만, 아마 몇 년 지나면 절실하게 느껴질 대사를 메모메모.
"내 몸이 움직여야 하는 대로 제대로 움직이는 한 나는 감사하며 살 거야.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은 또 몸 어디가 말썽일까 싶거든."
"그러게. 혈압이나 관절에 문제가 없으면 기억력이 감퇴되어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