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라면, 나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초딩 때 나의 미술시간은 죄다 흑역사였다. 준비물을 안 챙겨와서 2시간 내내 먼 산만 쳐다보다, 결국 과제를 완성하지 못해 징벌성 ‘나머지공부(나머지 그리기?)'를 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수채화, 포스터칼라, 서예, 동판화, 찰흙과 조각칼 등 미술시간에 주어지는 어지간한 과제에는 죄다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달라져야 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첫 번째 미술시간. 각오는 남달랐다. 미리 전달받은 준비물도 잊지 않고 꼼꼼히 챙겨왔다. 스케치북과 4B연필을 책상 위에 꺼내놓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성큼성큼 교실에 들어선 미술 선생님은 예상대로 ‘자기 손 그리기' 소묘 과제를 내주셨다. 손 모양은 자유였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가위, 바위, 보 중 하나를 택하거나 엄지를 세우고 ‘따봉'을 그렸다. ‘저건 너무 무난하잖아. 좀 특별한 포즈 없을까?’
정말 잘해보고 싶었던 나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손 모양을 택했다. 난이도가 높으면서도, 당시 열세 살짜리에게 익숙했던. 세 번째 손가락만 펼치고 나머지 손가락은 모두 오므린, ‘설마 그거' 맞다. 나는 최하점인 D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뺨 안 맞고 넘어간 게 다행이지만, 당시엔 몹시 억울했다. 미술시간 잔혹사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우리 각자의 미술관>은 작품을 마주한 순간의 신체적·정신적 반응이 회화 기법이나 미술사 계보를 이해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특정 그림을 보여주고 무슨 감정을 왜 어떤 이유로 느꼈는지 묻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막막해하는 독자를 고려해 300여 가지의 다양한 감정이 제시된 ‘감정 낱말 목록'도 책에 수록되어 있다. 셋째 손가락을 본 선생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내가 의도한 건 ‘발칙한', ‘흠칫하는', ‘기막힌' 그림이었으나 선생님은 아마 ‘어이없는', ‘괘씸한', ‘모욕적인' 기분을 느끼셨을 것이다. 선생님, 죄송해요.
사모 펀드를 운용하는 김현준의 주식과 관련한 질의 응답 모음집. 인생이든 투자든 자기 철학과 관점을 세팅하고 그것에 대해 반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과 테슬라 주식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올해 3사분기에는 거의 경제투자 관련 책들만 읽고 있는데 해당 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함에 대해 놀라는 소소한 사건이 있었고 이게 트리거가 되어 나도 모르게 아무 책이나 읽게 되는 듯.
몇 가지 용어와 규칙과 법률과 세금이 얽혀있는데 이것의 난이도는 고등학교 정규 교육 과정 수준. 다만 지금 다시 수능을 보라고 하면 귀찮기 마련이 듯 뒤늦게 이걸 공부하는 건 의외로 피곤한 일이기에 생각보다 다수의 사람들이 그냥 살아간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인터넷 최저 가 검색으로 소요되는 시간 비용 대비 이 분야에 대한 상식을 세팅하는 게 더 효율이 높아보이긴 함.
최저가 검색과 경제 상식 사이에 미묘한 선과 허들 같은 게 존재하는데 이건 어쩐지 한자어로 가득 채워진 법률 용어처럼 기득권이 세팅해놓은 진입장벽 같다는 느낌도. 낯선 용어들로 덧씌워진 표피 아래엔 날것의 욕망들이 꿈틀대고 있어서 종종 섬뜩.
1. 부산 기장읍에 위치한 라면 도서관에 다녀왔다.
2. 이곳 씨유 편의점은 같은 건물 3층에 라면 라이브러리를 만들었다.
3. 순한 맛이냐 매운 맛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4. 라이브러리의 위엄
5. 라면과 곁들일 수 있는 토핑까지 완비
6. 고민에 빠진 도서관 여행자 (의상까지 라면과 깔맞춤)
7. 앉을 자리도 넉넉하구요.
8. 잘 정리된 서가, 아니 라면가?
9. 야채 토핑 넣고 백짬뽕 조리 중
10. 멋진 바다와 함께 라면 흡입
#부산여행2탄 #그믐은모든도서관을응원합니다
감사인이 방문해서 회식을 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는 몰라도 감사인과 회사의 견해차이가 오가는데 썩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공식적인 업무 장소는 아니라지만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데 굳이 그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하나 싶은 발언들이 있었다.
속을 터놓고 얘기하는건 확실히 가족, 연인, 친구끼리만 가능한 일이지 업무적인 사이끼리 솔직한 대화를 한다는건 서로 품안의 칼을 꺼내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할란 엘리슨 걸작선 세트 3권 중 3권을 읽고 있다. 현재는 '죽음새'를 읽는 중이다.
야훼와 뱀, 선악과, 아담과 이브의 창세기를 뒤틀어 전개되는 멸망 후 지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거친 생각을 시원하면서도 날이 서있게 풀어내는 그의 중단편집들을 읽다보면 베인 상처의 통증이 떠오른다. 따갑고 아프지만 그렇기에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거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느낌.
1권에서는 '제프티는 다섯살'이 스러져가는 시간과 과거와 추억의 슬픔을, 2권은 '마노를 깎아만든 메피스토'가 인종차별 속에 인간의 선악과 본성을 녹여내 흥미로웠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이미 죽음새가 3권의 가장 흥미로운 그의 작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나의 취향은 방주보다 교수상회이고, 십계는 제목에 표지부터 어느 쪽인지 너무나 명확하나...이상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그냥 본다. 방주보다 임팩트는 좀 약하지만 이번엔 주인공이 방주보다 호감인 편이라 읽으면서 괜히 안심. 책 맨 마지막 대사 한 줄, 그 순간 벼락맞은 느낌에 읽은 만족감도 있고...모 캐릭터여. 니 대단하다 대단해...
시리즈물이 첫 권과 다음 권 설정이 완전 반대라면, 마지막 권은 대체 어떻게 될지...분명 놀라운 반전이 있는 작품이겠지만, 놀라움이 적어도 되니까 교수상회 다음 편이 먼저 나왔으면 좋겠어유.
지난 주 부산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온화한 가을 날씨와 탁 트인 바다도 멋졌지만, 평소 궁금했던 북두칠성 도서관을 가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1.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일곱 개의 별. (그믐달도 넣어주세요 ^^)
2.북두칠성 도서관은 부산역 근처 협성 마리나 G7이라는 주상복합 건물의 1층에 있다. 도착 전까지는 여기가 도서관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수 있다.
3. 페가수스 말 동상이 보이면 맞게 온 것이다.
4. 북두칠성 도서관 입구
5. 잔잔한 음악과 함께 부드럽고 환한 조명이 좋다.
6. 북두칠성에 맞게 7개의 존으로 구성되어 있다.
7. 인테리어 테마로 원과 반원을 많이 활용했다. 딱딱하지 않고 둥글둥글 아늑한 느낌.
8. 얼마 전 끝난 그믐북클럽의 <더 나은 세상> 반갑다.
9. 이번 주말 도서관 나들이 어떠신가요?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왔는데 여전히 해가 떠 있다. 비가 내린다. 우산 밑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걷는다.
아침에 출근할 때만 해도 야근을 하지 않고 칼퇴해서 운동을 1시간 한 뒤 집으로 와서 '쇼리' 독후감을 쓸 준비를 하려고 했다.
회계감사 필드방문 전 날이라 마지막으로 감사전 자료를 말고 검토하다보니 결국 야근을 하게 됐다. 분기 때는 역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쇼리는 아직 어떻게 독후감을 써내려갈지 감이 확실히 잡히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쉬는 중에 또는 잠들기 전에 결말이나 교훈, 주제,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있는 반면 큰 생각없이 쭉쭉 읽을 수 있는 책도 있다. 쇼리는 후자의 경우였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머리와 몸을 심하게 다친 흑인 뱀파이어 소녀가 어느날 산속 동굴에서 기억을 잃은채 깨어난다. 자신의 이름과 정체, 가족과 과거마저 떠올리지 못하는 그녀가 인간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서서히 기억을 되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뱀파이어 하면 떠올리게 되는 공포나 긴장감 대신 인간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설정 덕인지 각자 다른 뱀파이어와 인간 등장인물들이 나옴에도 머릿속에서는 그들을 딱히 구분지어 상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담담함 또한 작가가 의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회식이라 또 운동과 독후감은 글렀으니 목요일에는 꼭 할 것을 다짐해본다.
한국 사회, 특히 그 중에서도 불평등 문제를 설명하는 관념들이 현실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자주 생각했다. 한국의 불평등이 언제, 어떤 이유로 심화됐는지, 저소득층이 누구이며 그들의 빈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탄탄한 근거로 통념과 다른 주장을 펼친다. 기존 관념들이 대정부 투쟁에 유용한 논리 구조를 전략적으로 택했다는 지적에 밑줄 여러 번.
두 메리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로 단단하게 이어진다. 어떤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같은 정신을 지닌 어머니와 딸이 시간을 넘어 손을 잡고 온갖 부조리한 인습과 차별에 맞서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은 두 사람이 껴안고 함께 우는 것 같다. 열정적이고도 섬세한 두 영혼이 분투하다 상처 입는 모습을 저자가 생생하게 그릴 때 독자도 울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