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완독한 책이 120권인데, 그 중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두 권을 아주 자신 있게 꼽을 수 있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열린책들) 1, 2권이다. 지적인 충격도 받았고, 덕분에 세상과 인간을 보는 시각도 조금 바뀌었다.
다소 부담스러운 저작이기는 하다. 1권이 872쪽, 2권이 760쪽이나 된다. 게다가 가슴이 미어지는 일화가 쉬지 않고 이어져, 무척 쉽게 잘 쓴 원고임에도 불구하고 속도가 붙지는 않는다. 종종 눈을 감거나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추고 한숨을 쉬어야 한다. 그런 고통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깊이 파헤친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고 장점이다.
제목대로 부모와 다른 아이들을 다루는 내용이다. 1권에서는 부모와 달리 청각장애, 왜소증, 다운증후군, 자폐증, 조현병을 겪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자식을 키워야 하는 부모들의 삶과 싸움을 보여준다. 2권은 좀 더 나아간다. 어린 천재, 범죄자, 트랜스젠더,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이야기다.
일단 어마어마한 취재에서 나오는 묘사의 생생함과 주장의 설득력이 독자를 압도한다. 저자는 300가구를 인터뷰했고 취재 기록은 4만 쪽이 넘는다고 한다. 자폐인 부모의 절망감이나 조현병 환자 가족의 두려움에 대해 읽을 때는 심장이 죄어드는 기분이 든다. 막연히 힘들겠지, 하고 짐작하는 수준의 짐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는, 뭘 해야 할까.
인간이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 이 책을 통해 ‘수평적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배웠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의 답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유전으로 물려받지는 않고, 오히려 멀리 떨어진 타인과 공유하는 특징들. 청각장애나 작은 키가 어떤 이들의 정체성이 된다면, 그것을 ‘치료’하겠다는 시도는 어떻게 봐야 할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질문들을 담았기에, 앞으로도 몇 번 더 훑어보게 될 것 같다. 이 칼럼 독자들께도 당연히 추천한다. 각 장이 비교적 독립적인 구성이라, 뜻 맞는 지인들과 독서 스터디를 통해 읽어도 괜찮겠다.
사람을 가장 닮은 동물은 뭘까? 침팬지? 보노보? 어쩌면 답은 ‘개미’인지도 모른다. 개체 차원에서는 물론 인간과 유인원이 비슷하다. 그러나 사회 수준에서는 유인원 집단보다는 개미 군집이 훨씬 더 우리의 도시와 흡사하다.
침팬지는 모르는 침팬지와 협력하지 않는다. 그래서 침팬지 집단의 규모는 일정 크기를 넘지 못하며, 그 안에서 ‘익명’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가 하면 펭귄이나 아메리카들소는 거대한 군집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저 모여 있을 뿐이다.
반면 인간과 개미는 잘 모르는 상대와 복잡한 관계를 맺고 협력한다. 사실 인간은 다른 집단의 구성원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개미와도 다르다. 처음에는 분명히 인간 무리도 작은 수렵채집인 집단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크고 정교한 사회를 이루게 됐을까. 어떻게, 그리고, 왜?
열대생물학자 마크 모펫의 740쪽 짜리 책 『인간 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김영사)를 읽다 보면 이처럼 인간의 사회성이 얼마나 기이하고 독특한지 새삼 깨닫는다. ‘어떻게, 그리고, 왜’에 대한 탐구는 겸손처럼 우리가 개인의 미덕으로 여기는 특질이나 평등주의 같은 개념에 대한 색다른 통찰로 이어진다.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통섭의 적절한 사례다.
책은 뒷부분에서 묵직한 숙제를 던진다. 우리를 묶어준다고만 여겼던 인간적 사회성에는 치명적인 취약점이 있다. 깊은 생물학적 본성 때문에, 우리는 사회적 지위를 위해 엄청나게 잔인해질 수 있고, 적을 발명해 인간이 아닌 존재로 기꺼이 깎아내린다. 인간 사회는 반드시 분열된다.
세계화와 파편화가 동시에 진행 중인 이 시대에 더 무겁게 다가오는 화두다. 그렇다면 그런 압력에 맞서 현재의 사회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저자는 ‘순진한 범세계주의는 몽상’이라고 단언한다.
지난해 나온 서적 중에서 가장 표지가 예쁜 책이 아닐까 싶은데, 영어판 원서와는 디자인이 딴판이다. 임솜이 김영사 편집자는 “다양한 생물종의 사회를 다루는 책이라 다채로운 느낌이 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 앙리 루소의 정글 그림이 떠올라 디자이너에게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나라에서 이런 분야를, 재미있는 이야기까지 만들어서 책을 내시는 분이 있다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수녀원 스캔들에선 음울하게 다가오던 중세 수녀원 문화를 이리 유쾌하게 볼 수 있다니. 정보 전달뿐 아니라, 사회적인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지만 "그게 우리가 남은 인생을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는 대사까지 굿. 작가님 사랑해도 될까요.
짜증나는 상속 문제나 부조리한 상황들이 안 나올 수는 없다만, 귀여운 수녀캐릭터들이 웃음으로 승화시켜준다. 패션에 대한 열정, 스툴볼, 당시의 결혼문화, 안 웃을 수가 없는 호박바지 바리에이션(역시 유행이란 건 후대에 이해하기 힘들다...) 등등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 가을에 눈물 또르르 흘리는 독서도 맛이겠다만, 바람 선선할 때 명랑독서는 역시 왔다임. 그나저나 웃는 건 칼로리 소비도 적 을텐데 왜 보고나니 배가 허전한 것일까...
어릴 적 초등학교에서 운동회나 축제 때면 교문 앞에서 불량식품과 병아리와 메추리, 오리새끼들과 강아지, 고양이 등을 파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것이 주는 순간의 기쁨은 그만큼 금방 사라지는 것들이었다.
하루는 병아리를 사서 엄마가 종이 상자를 오리고 문을 뚫고, 신문지를 깔고, 물그릇과 사료그릇도 놓아주었고 나는 병아리들을 돌봤다. 병아리 대여섯 마리는 금방 죽었다. 오직 한 마리만이 닭의 모습을 어렴풋이 갖출 때까지 살아남았다. 병아리들이 죽었을 때 처음으로 울었다. 그때는 나 자신이 왜 우는지 모르면서도 슬픔을 느끼며 울었다.
문방구는 학용품만이 아니라 온갖 뽑기 상품과 싸구려 프라모델과 고무딱지와 캐릭터 카드들을 팔았다. 그곳에는 백화점이나 장난감 전문매장이 주는 커다란 기쁨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들이 있었다. 가루사탕처럼 튀어오르고, 학종이처럼 쉽게 펄럭이는 형형색색의 유혹이었다.
프랜차이즈 제과점들이 유행하기 전에는 자신들의 이름이나 상호를 내걸고 운영하는 빵집들이 꼭 있었고 거기서는 종종 우유 아이스크림이나 팥빙수를 팔았다. 제과점에서 파는 우유 아이스크림은 메론맛, 딸기맛, 바닐라맛, 초콜렛맛 정도밖에 없었음에도 일반 슈퍼에서 파는 하드와는 다른 특별함을 느끼며 먹었다.
그 시절이 기억은 나지만 과연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더 비위생적이었을 수도 있고,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문제들이 문제거리도 아니라는 이유로 수면 아래 잠겨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라는 건 분명 존재했다.
그믐북클럽 23기는 저자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님과 함께 《좋은 불평등》을 읽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불평등에 관한 ‘통념을 전복하는’ 책 《좋은 불평등》의 저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 듣고 또 이야기 하는 즐거운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신청 바랍니다.
■■■■ 그믐북클럽 번개 공지 ■■■■
최병천 작가님과 함께 하는 오프라인 번개를 공지합니다.
일정> 11/13(수) 저녁 7시 30분
장소> 서울 광화문 인근 (5호선 광화문역 10분 거리)
내용>
30분 : 작가 발표
1시간 : 독자 발언 & 질의응답
1시간 : 뒷풀이 (참가 자율. 음료와 먹을 것 각자 준비.음주 가능)
참가비> 무료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에서 정보를 전달하여 주세요. 정확한 장소는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현재의 그믐북클럽 멤버가 아니라도 누구나 신청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독하다고 여길만한 야만과 폭력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 모두를 과연 악인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시대의 흐름과 상관없이 반드시
존재하는 절대불변의 도덕은 존재하는가.
욕망과 윤리 그리고 그것들을 빚어내는
사회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노예제도의 구조화 된 억압과 만연한 폭력과 차별.
특별히 노예를 더 증오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연민하거나 대등한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노예주들과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가는 노예들.
그 모든 것들의 불분명한 회색빛 경계가 이 문장에 담겨있다.
너를 위해서야,
당신은 말했다
(중략)
나를 위해서야,
아주 먼 곳으로 간다
듣기만을 시키는 당신과는
공존할 수 없어요
-
내게 가한 위해를 되돌리는 일은 '회복'보다는 그 일이 있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회귀'에 가까운 일인가 싶다. 시의 제목 Undo가 그런 맘일까?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회장인 하워드 막스의 투자 관련 메모 모음집. 주식을 둘러싼 세계는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인간 본성의 탐욕과 공포의 끝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데이트레이딩을 하던 선배가 3000만원 정도의 손실을 입으면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파오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당시는 그걸 이해를 못했다. 미국 대선 전후로 주가와 시장 금리가 정신 없이 흐르는 이 시점에 최소한의 관점을 갖기 위해서라도 한번쯤은 읽어봄직하다.
그믐의 은혜로 읽게 되었으니 부족한 감상을 쓰기 전 감사부터 해야한다. 그러고보니 모임 참가가 익숙하지 않아 첫 모임 때 읽은 책 글을 경황없어 안 썼는데 이것도 조만간 써야지. 어쨌든 역자께서 그 많은 편지들 중에서 골라주신 내용인만큼 모든 편지가 감정들로 충만하다. 버지니아 울프 전집을 꿰지도 않았고 에세이나 서간은 이게 처음이니 팬들이 보면 '바보야 이거는 빙산의 일각이야!' 소리가 나오겠다만...책에서 접했던...차분하고 우아하고, 뭔가 외로운 것 같은데 그 마음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극한의 관찰로 이어지는...그런 이미지와는 또 다른, 한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친근감 대폭발.
주변의 칭찬에 기뻐하면서도 자기 문장에 대해 고민이 많고, 좋아하는 작가들 이야기도 하는 모습이 읽으면서 흐뭇하다. 특히 취향 확고한 비타가 자기 작품을 좋아해주니 기쁨에 차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편지와, 책 보고 언니가 보낸 놀라움이 가득한 편지에 낚여 예정에 없던 등대로 재독;(안 읽은 저작들도 얼른 봐야허는디 몸이 하나야...아오) 램지 씨 고약한 건 긴 시간 뒤에 봐도 또옥같다만, 그 공들여쓴 저녁식사 장면을 다시 보니 램지부인이 모인 사람 하나하나를 다 신경쓰면서도 의식의 흐름대로 이것저것 생각도 하는 세세한 모습들에 '이것이 펜끝으로 극한까지 살려낸 가족의 모습인가' 생각에 살짝 숨죽인다. 등대로 가는 배 탔을 때 아들내미가 순간 울컥해서 하는 생각도, 옛날에는 '좀 과격하다만 이해는 가...'라는 감상이었는데(...) 이제 보니 아무리 애정이 넘쳐도 버지니아도 사람이니 이런 생각도 했겠지 싶어 안쓰러워진다.
생전 처음 낭독회에 참여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차분한 낭독 들려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꾸벅...책 후반의 에세이에서 울프가 소통과 독서에 관해 열변하던 것이 이런 느낌일까 살짝 피부로 다가와 울컥하니 이 주책맞음 어쩌노. 그새 참지 못하고 버지니아와 비타의 서간집을 집어왔으니 얼른 봐야한다.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 행복한 세상이다.
+ 낭독회에서 어설픈 기억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였으니, 모임 글에 썼어도 반성의 마음을 담아 메모 남깁니다. 4월 로마의 소년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다닌 건 종려주간이라서입니다. palm sunday traditions in italy 검색하시면 많은 사진들 보실 수 있습니다.
제목만 보고 읽다가 뭔가 이상해 뒤늦게 뒷표지 보고 검색하니, 실제하는 서점들 이야기가 아니라 필자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서점을 기사처럼 구현한 책이다. 전업 작가가 아니라 서점 관계자분들의 글인데도 어느 정도까지는 읽는 사람을 홀랑 속여먹을 정도니, 덕력에서 나오는 사랑이 필력의 원동력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페이크 다큐인지도 모르고 빠져있던 나 자신을 민망해하며 다시 페이지를 넘기는데, 꿈의 편집에서부터 입에서 절로 미치겠다 소리 나온다. 편집이 얼마나 힘들면, 베스트셀러 작가를 담당하는 상상을 하시는 게 아니라 이런 상상을...슬픈데 왜 웃기지...죄송합니다...그리고 다시 진중해지다가 오덕열차랑 꿈의 영업에서 또 뿜고 혼자 바쁘다. 그리고 책덕들의 숫자나 구매력을 고려하면 나쁘지도 않게 느껴지는 문학단지에서는, 이게 가상인 걸 알면서도 주인공의 심정이 너무 이해가 간다. 박물관에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유품만 있어도 두근거리는데 이런 식으로 책과 굿즈를 팔아대면 나에겐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니 구매가 실존이다 이러면서 지를 수 밖에 없어...자신만의 이상적인 서점이라는 것이, 이런 모양이었으면 좋겠어~ 가 아니라 주인이 이런 사람이었으면~ 서점을 둘러싼 사회적 배경이나 과학기술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하는 다양한 아이디어로 구상되는 것에 감탄 또 감탄. 읽고 나서 나의 꿈의 서점이란 어떤 모습일까 잠깐 생각해보는데 딱히 모르겠다. 책 팔고 쥐나 벌레 없으면 다 꿈의 서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