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는 욕망에서 온다. 욕망은 그럼 어디서 올까? 타고난 기질이 만들어내는 어린아이의 욕망(*호기심)은 어디서 비롯되는걸까? 아, 그러면 기질은 어떻게 결정 되는지를 봐야하나. 그럼 부모님의 욕망과 기질, 조부모님의, 증조부모님의... (이하 가계도를 올라가며 반복)
성스러움은 곧 권력이라는 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성스러움의 반대 되는 이미지인 추악함에 권력이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둘 모두 욕망이 세워올리 제단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둘은 같은 상(*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해석자의 눈의 기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걸지도 모른다.
대학 강의 때 이런 얘기를 매학기 반복했던 것 같은데, 졸업하고 4년이 지나서 또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이 같인 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 이야기 밖으로 나가려면 뭐가 필요하지?
역사상 가장 잘 팔리는 작가 중 한 명. 너어무 잘 팔려서 자기가 만든 캐릭터가 자기 삶을 휘두르는 지경에 이른 사람. 결국 그를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 그는 누구일까? 이미 책 제목에 답이 다 나와 있으니 이건 재미가 없는 퀴즈다. 그렇다면, 코넌 도일이 창조하고 직접 죽인 캐릭터는 누구일까? 이것 역시 재미가 없는 퀴즈인데, 코넌 도일보다 훨씬 더 유명한 ‘셜록 홈스'가 답이기 때문이다.
<코넌 도일>은 ‘우리 시대 대표 작가 100인이 인생의 거장을 찾아 떠난다'라는 컨셉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중 20번째 책이다. <셰익스피어> 편을 쓴 황광수 작가는 책에 인용된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모두 우리말로 번역했고, <니체> 편을 쓴 이진우 작가는 무려 한국 니체학회 회장이다. 모르긴 몰라도 작가의 덕력이 책을 쓰는 데 핵심 동력이 되는 듯하다.
이다혜 작가의 덕력도 만만찮다. 일단 셜록 홈스 전집을 다양한 버전으로 여러 번 읽었고, 셜록 홈스 같은 명탐정이 되기를 꿈꿨다. 그리고 무려 고등학생 때 무삭제판 홈스 원서를 입수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2018년에 펴낸 책 <아무튼, 스릴러>에서는 ‘셜록 홈스'를 통해 범죄물의 세계에 입문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코넌 도일>을 쓰기 위해 도일이 태어난 스코틀랜드와 홈스가 활약한 런던 일대를 방문했다. 책이 재미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이 시리즈의 특별함은, 작가 한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온 덕력과 필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금정연 작가가 준비중인 <조지 오웰> 편을 기대 중인데, 내가 금정연 작가의 팬이기도 하고 작가가 이 책을 준비하며 SNS에 올린 ‘조지 오웰’ 책 더미를 봤기 때문이다. 덕질은 위대하다.
기계는 인간을 지배하게 될까? 21세기가 아니라면 22세기에라도? 인간은 계속 기계를 다스릴 수 있을까? 레이 커즈와일 같은 미래학자는 인간보다 똑똑한 기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기계와 결합해 ‘포스트휴먼’이 되고, 호모사피엔스를 능가하는 다른 종으로 도약하면 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낙천적인가.
과학기술 잡지 《와이어드》의 초대 편집장이었고, 이제는 ‘과학 사상가’라는 수식어도 어색하지 않은 케빈 켈리는 보다 난감한 전망을 제시한다. 인간과 기계는 결합하기는 결합한다. 개체 수준을 넘어, 거대한 생태계 차원에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태어난 것’과 ‘만들어진 것’은 곧 하나의 복잡적응계로 수렴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세상을 통제할 수 없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야생’이 출현한다.
몇 줄로 거칠게 요약을 해놓으니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통제 불능』(김영사)이 931쪽에 걸쳐 펼치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책이 근거로 제시하는 논리들은 거대하면서 참신한데,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끔 만든다. 그것도 여러 번.
저자가 사용하는 방식은 주로 먼 거리에서 크게 조망하기다. 예를 들어 책은 생태계를 이렇게 규정한다. ‘각각의 종들이 서로 제각기 다른 역할을 시험해보고 새로운 파트너 관계를 모색하는 느슨한 네트워크.’ 그런 시스템에서는 한 사건이 생각지도 못한 지점까지 거의 무한히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우리는 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이제 생명만큼이나 복잡해진 영리한 기계들과 인류는 바로 그런 관계가 될 것이다.
썩 쉽지는 않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어 읽는다면 진화, 생물학, 자아, 섹스, 인류의 역사까지 낯선 언어로 재검토하면서 뜻밖의 통찰들을 무더기로 건질 수 있다. 왜 지구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하는가, 왜 자연을 보호해야 하는가, 그 자체로 살아 있으며 그렇기에 늘 불확실한 네트워크 세상―인간 사회든 경제 시스템이든―에서는 어떤 목표를 지녀야 하는가 같은. 물론 우리 앞에 닥친 미래와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도도는 인간에게 제법 친숙한 새다. 이름이 재미있고, 생김새가 우스꽝스럽고, 사람을 좋아하는 습성에도 호감이 간다. 대중문화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는 도도를 본 적이 없고, 이 글의 독자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남동부 모리셔스에 살던 이 새는 17세기에 멸종했다. 제대로 된 박제도 남아 있지 않다.
데이비드 쾀멘의 『도도의 노래』(김영사)는 도도의 멸종 과정과 원인을 자세히 다루지만, 그 이야기만 하지는 않는다. 다윈과 함께 진화론을 창시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의 행적을 쫓고,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비극적 역사를 서술한다. 화산 폭발로 거의 모든 생물이 죽은 아낙크라카타우 섬을 탐험하고, 카누를 타고 바다를 건너 극락조를 찾아간다.
이렇게만 소개하면 여러 소재를 뒤죽박죽 산만하게 다루는 책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884쪽짜리 논픽션에 나오는 다양한 현장과 인물들, 동식물들, 그리고 과학이론은 생태학의 한 갈래인 ‘섬 생물지리학’으로 초점이 모아지는데, 그 과정이 굉장히 매끄러워서 신기하다는 기분마저 들 정도다. 저자의 문장도 매우 유려하거니와, 메시지를 쌓아올리는 책의 기본 설계 자체가 무척 정교하고 치밀하다.
생물과 지리의 관계에서 섬이라는 장소는 왜 중요할까. 책의 한 문장을 옮긴다. ‘섬은 종들이 멸종해가는 곳이다.’(356쪽) 같은 면적이라도 대륙보다 섬에서 종들은 쉽게 사라진다. 고립된 생태계는 충격에 취약하다. 이런 깨달음은 과연 섬처럼 격리된 작은 자연보호구역이 생물 다양성 보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딱딱하게 가르치려 들지 않는데도 책장을 넘기다 보면 생태계의 복잡성과 섬세함을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 과제의 무게도 새삼 실감하게 된다. 파괴하기는 이토록 쉬운데 제대로 지키기는 어쩌면 그리 어려운가. 그럼에도 저자의 어조는 공격적이거나 절망스럽지 않고, 글은 품위와 유머를 잃지 않는다. 슬프고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지적이고, 모험소설 같은 현장감과 흥분을 전하는 기묘한 매력의 책이다.
회사로 출근할 때 항상 거쳐가는 숲길이 있다.
8차선이 넘는 도로와 복잡한 도심 사이에
울타리와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좁고 긴 숲길이다.
여름에 너무 습하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겨울에 지독히 추울 때만 아니면 대부분의
계절에는 그 길로 항상 회사로 출근한다.
길 양쪽으로 쭉 늘어선 나무들은 감옥 철창 같다.
감옥은 대상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가리기도 하지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기도 한다.
방음벽과 울타리와 마찬가지로,
나무들의 감옥이 모든 도시의 소음과
너저분함을 막고 가려준다.
오늘도 그 길로 걸어가고 있는데
돌연 바람이 선선히 불어 나뭇잎들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호박색 으로 물이 든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사방에서 느린 비가 되어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순간
비현실적인 풍경 같다고 느껴졌다.
오늘도 그 길로 출근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사무실에 들어갔다.
미국은 여전히 꿈의 땅이다. 그 거대한 땅덩어리와 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에서 마련 된 파괴적인 경제력, 혹은 그 막강함으로 이룩한 다양성의 나라라는 정체성이 미국의 아우라를 이룬다. 다만 지금은 미국 가면 부자가 된다는 리치한 아메리칸 드림보단 자유롭게 사랑하고 뽐낼 수 있을거란 베이직-휴먼롸잇-아메리칸 드림이 보다 만연한 듯 하다. 우리가 탐내는 것이 달라졌다.
희소성을 중시하는 야마구치 슈의 지론대로라면, 이 책 제목에서도 ‘뉴타입'의 싹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욕망을 감추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모두가 겸손을 떨다 보니, 반대로 자기 욕망을 당당히 밝히는 태도가 신선하고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욕망'을 주제로 매달 새로운 책을 출간하는 ‘먼슬리에세이'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첫 타자는 ‘물욕(<돈지랄의 기쁨과 슬픔>)’이었고, 뒤이어 나온 이 책의 주제는 ‘출세욕'이다.
글을 쓰고 또 쓰고, 작고 소중한 출판사의 연락을 받아 책을 내고, 기적처럼 칼럼 기고 제안을 받고, 꼬박 1년간 준비한 책이 엎어지고, 편집자와 술을 먹고, 술 먹을 때 한 얘기를 또 글로 쓰고, 이런 과정이 읽기 쉽게 쓰여져 후루룩 금방 읽힌다. 저자의 개그 욕심도 농도와 타이밍이 적절하고. 글을 쓰면서도 ‘계속 쓰는 삶’에 대한 욕망을 애써 외면해온 나로서는 “김애란, 이슬아, 임경선에만 열광하는 독자들”에게 느낀 서운함을 말하는 대목이 특히 반가웠다. 마음 속에서 자연스럽게 고개 드는 감정을 솔직하고 건강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계속 쓰는 삶'의 원천이자 ‘계속 써온 삶'이 키워준 재능이리라.
난 멀지 않은 미래에 그가 ‘팔리는 작가’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다음 두 문장에서 드러나는 자신감. “베스트셀러 저자가 벌어들이는 돈이 부럽기는 하지만 그가 쓴 글이 부럽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도 그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잘 써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팔리는 작가가 되고 싶은 와중에 ‘돈값 하는 작가가 된다는 것'을 고민하는 책임감. 근자감 넘치는 작가는 많이 봤지만, 이렇게 책임감 투철한 작가는 처음이야. 희소성 있네! 역시 뉴타입!
바로 민음사에서 2021년 민음사 북클럽을 위해 만든 특별판 세계문학이다.
얼마 전에 <리어 왕>을 다시 읽다가 이때 함께 출간된 4권의 표지들을 살펴 보았다. 한 권 한 권이 강렬한 색채와 과감한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아트북이다.
민음사 미술부의 유진아 디자이너님의 손길로 책 표지가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색상도 그렇지만 과감하게 책 제목을 생략한 그 센스가 놀랍다. 제목은 없지만 표지에 등장하는 오브제들만으로도 어떤 책인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책 5권을 나란히 놓고 표지를 들여다 보다가 공통점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인물의 옆모습. 모든 표지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이 기하학적인 옆 모습은 혹시 책을 읽는 우리 독자 또는 작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리어왕 #오이디푸스왕 #등대로 #지하로부터의 수기 #밤으로의긴여로
#무엇이무엇일까맞춰보세요 #사람옆얼굴도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