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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희 장편소설 『김 대리가 죽었대』(앤드)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관심이 많고, 동시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웃프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사내 홍보팀의 에이스 '김 대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푸는 동료 직원들의 소동을 그린다.


'김 대리'는 이 작품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김 대리'는 모두의 기억과 소문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보니 정말 존재했던 인물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김 대리'에 의지해 모든 일을 처리해 온 동료 직원들은 그가 사라지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실은 '김 대리'가 사실 나쁜놈이었다며 태세를 전환하는 동료 직원도 속출한다.


이 작품은 소문에 따라 부화뇌동하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세태를 지독하게 풍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만 보고 사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익숙한 거짓에 스스로를 길들여 진실이라고 믿는 척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깊이 생각하며 읽지 않아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코미디보다도 웃기니 말이다. 


김 대리가 죽었대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김 대리가 죽었대 - 제3회 넥서스 경장편 작가상 대상 수상작
이시우 장편소설 『신입사원』(황금가지)

내세울 스펙 하나 없이 알바를 전전하며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는 주인공.

그런 그가 느닷없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업계 최고 대우’를 자랑하는 기업에 지원해 합격한다.

그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3교대로 벽에 붙은 시곗바늘만 바라보는 일뿐인데, 은행에선 지점장이 나와 그를 맞고 남들 연봉보다 많은 월급이 통장에 매달 꽂힌다.

도대체 자신이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일이 문명을 지탱하는 일이란다.

그리고 주인공은 매일 기묘한 꿈을 꾸며 자기 일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회사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란 말인가.


설정과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 외엔 의문이 많은 작품이었다.

읽기에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 역사와 소문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데, 무엇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현대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듯하다가도 느닷없이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겨 당황스럽게 한다.

생략된 내용이 상당히 많다는 인상을 줬다.

많은 떡밥을 풀었는데 수습을 못 한 듯하다.


특히 주인공이 왜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위성을 찾기가 어려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들과 세대를 교체하기 위한 은유인가?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소설 전반을 감싼 특유의 분위기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아쉬웠다.

이 소설을 이해한 독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나는 주인공과 함께 교대로 일하는 노인들을 보며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떠올렸다.

특히 박 노인에게선 같은 성을 가진 그분을.


신입사원
신입사원
강희찬 장편소설 『의리주인』(북레시피)

정조의 최측근이었던 홍국영의 눈으로 당대의 조선을 바라보는 역사소설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었던 정조, 그런 정조의 최측근이었다가 빠르게 몰락한 젊은 권신.

홍국영은 파란만장한 삶 때문에 이미 여러 차례 소설, 영화, 드라마 등으로 다뤄진 캐릭터다.

아예 '홍국영'이란 제목으로 대하드라마가 만들어진 일도 있었고.

이순신이라는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처럼 쓰지 않는 이상, 그런 캐릭터를 다룬 작품으로 주목받기란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조정에 진출한 홍국영이 정조의 왕위 계승을 돕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긴박한 순간을 생생하게 다룬다.

가독성이 훌륭하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당대 동북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할 당위성을 끌어내는 이야기 전개가 설득력이 있다.

서술하기 어려운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는 문장이 돋보인다.

작가의 전공인 국제관계학과 동북아학이 빛을 발하는 지점이다.

아울러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할 수 있고, 부패와 탐욕이 디폴트인 사회상을 그린 문장 위에선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 겹쳐 보인다.

역사소설이지만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다만 <칼의 노래>처럼 이미 잘 알려진 캐릭터의 새로운 면을 훌륭하게 보여준 작품이라고 평가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 작품은 속편을 염두에 든 듯 홍국영이 권력에 가까이 접근하는 과정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멈춘다.

홍국영이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가 몰락하는 과정이 속편에 어떻게 그려지느냐에 따라 이 작품과 함께 평가하는 게 옳을 듯하다.


의리주인
의리주인
장진영 장편소설 『취미는 사생활』(은행나무)

매력적인 캐릭터를 통해 서늘한 시선으로 부동산 문제를 바라보는 블랙코미디...

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부분까지 와서야 이 장편의 장르가 스릴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마무리해야 했을까.


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은 "사기는 걸리면 친 사람 잘못, 안 걸리면 당한 사람 잘못"인데, 다 읽고 나니 내가 당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작가의 전작인 <마음만 먹으면>처럼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고, 차분한 듯하면서도 위태롭다.

취미는 사생활
취미는 사생활
김멜라 장편소설 『없는 층의 하이쎈스』(창비)

단편으로 이효석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굵직한 상을 받은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남산 아래 오래된 상가 건물에 갑자기 함께 살게 된 할머니와 손녀 이야기를 그린다.

할머니의 이름은 '사귀자', 손녀의 이름은 '아세로라'

임성한 작가의 독특한 작명 센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인데, 그 이름처럼 이 작품은 꽤 무거운 주제를 시종일관 무겁지 않게 다룬다.


사귀자는 하숙집을 운영하다 간첩으로 몰렸던 과거를 숨긴 채 조용히 살아가는 노인이고, 아세로라는 햇살을 피해야 하고 가공식품을 먹지 못하는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겉돈다.

둘은 상가 건물 2층의 등기부상 미등록 공간에서 동거하며 서로 츤데레처럼 굴다가도 의지한다.


사귀자의 지난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비극의 교집합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움이 짧아 몇 차례 사기를 당하고, 재개발에 밀려나 머물던 곳에서 쫓겨날 위기에 놓이고, 그저 글씨를 베껴 쓴 것뿐인데 간첩으로 몰린다.

이쯤 되면 차라리 없는 사람처럼 숨어 사는 게 편하다.

세상이 바뀌었더라도 말이다.

작가는 이미 여러 단편에서 보여줬던 발랄한 필치로 민감한 주제를 민감하지 않게 묘사하며 세대를 넘어 두 주인공이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읽기 부담스럽지 않고 유쾌하지만, 김애란 작가처럼 장편보다 단편이 더 좋은 작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내겐 이 작품이 무게감과 유쾌함을 온전히 결합했다고 느끼게 하지 않았다.

이 작품처럼 현대사와 가족 서사를 엮으면서도 무게감과 유쾌함을 동시에 훌륭하게 살린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같은 작품도 있었으니 말이다.

없는 층의 하이쎈스
없는 층의 하이쎈스
한소범 산문집 『청춘유감』(문학동네)

작가는 언론계는 물론 출판계에서 소문난 문학기자였고, 그 소문은 현재진행형이다. 언론사는 보통 중견 기자를 문학 담당 기자로 배치한다. 그만큼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지는 자리에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 기자가 불과 몇 년 만에 업계가 인정하는 훌륭한 문학기자가 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때 김훈 선생님이 머물렀던 자리에서? 보통 사건이 아니다. 


하필 나는 짧았던 문학기자 시절에 작가와 함께 필드에서 뛰었다. 그리고 백전백패였다. 내가 그 시절에 가장 많이 참고한 기사는 작가가 쓴 한국일보 기사였다. 부지런하고, 관심사가 넓었으며, 이슈의 핵심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했고, 무엇보다도 기사를 참 잘 썼다. 이러니 소문이 안 날 수가 있나. 그렇게 작가는 현재 대한민국 출판, 문학 시장에서 가장 사랑받는 기자가 됐다.


작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문학 기자를 꿈꾼 일이 없었다. 소싯적부터 문학에 빠져 소설가를 꿈꿨고, 그 사이에 영화에도 마음을 빼앗겨 버려 한 시절을 불태웠다. 작가는 그저 실패를 거듭하며 이곳저곳을 헤매다 보니 얼떨결에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른바 예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언제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고,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인정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다 보면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자기파괴로 이어지기도 한다. 재능 없는 열정은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실패와 타협하며 플레이어 자리를 욕심내지 않기로 한다. 이 선택이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문학기자로 이어질 줄은 작가도 몰랐다. 지난 실패가 모두 문학기자로 빠르게 성장하는 자양분이 될 줄은 더 몰랐다.


이 산문집을 읽으며 작가가 훌륭한 문학기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았고, 많이 울었고, 많이 넘어져봤다. 글 어디에도 과장이 없고, 일부러 겸손한 척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진솔하고 담담하게 털어놓을 뿐이다. 깨져 봤으니 안다. 자신이 끝까지 걷지 못한 길을 걷는 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응원할 줄 안다. 섬세하고 다정한 응원의 문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대법원이 명예훼손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법리는 전파가능성이다. 판례는 기자 단 한 명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만으로도 전파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 기자는 국가 공인 떠버리다. 그런 떠버리들이 모인 언론계에서 얼마나 소문이 빠르게 돌겠는가. 어느 매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이는 어떤 기자가 취재를 잘하고 좋은 기사를 쓰는지에 관해서도 금방 소문이 난다는 말과 같다. 단지 서로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기자들은 대체로 질투가 많아 칭찬에 인색한 편이거든.


기자나 기자 출신 작가가 쓴 책을 잘 보도하지 않는 문화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산문집, 솔직히 잘 쓴 책 아닌가? 많이들 기사화해 주길 바라는 마음에 먼저 나서서 떠버리 흉내를 내봤다. 읽는 내내 입가에 머무는 잔잔한 미소를 지울 수 없었던 좋은 산문집이었다.


청춘유감 - 울면서 걷기, 넘어지며 자라기
청춘유감 - 울면서 걷기, 넘어지며 자라기
김종연 장편소설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자음과모음)

재난 발생 후 이재민의 일상과 심리를 그린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속에서 발생한 지진은 대한민국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엄청난 규모는 아니다.

아포칼립스 수준으로 모든 국민의 삶을 무너뜨린 재해가 아니어서 오히려 묘사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작품의 제목에서 파악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의 배경은 대형마트다.

정부는 임시로 이재민을 대형마트와 같은 공공시설에 집어넣고 곧 주거 공간을 제공해 주겠다며 달랜다.

재해 때문에 일상을 보내는 공간이 바뀌었어도 사람들은 여전하다.

자연스럽게 파벌이 갈리고, 반목하고, 싸우고.

이런 가운데 느닷없이 화장실에서 낯선 아기가 발견돼 분위기를 반전한다.


재난을 주제로 다룬 장편이지만, 이야기 전개는 의외로 잔잔하다.

우울하지도, 웃기지도 않는다.

그저 일상의 사소한 기쁨에 집중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심리에 집중한다.

내일이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나을 거라는 작은 희망 하나만을 믿는.

"그 삶이 무너진 순간이 아니라 그 삶이 무너진 이후를 살아내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을 잘 요약한다.


동시에 이 작품은 삶은 결코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며, 마음대로 멈출 수도 이어갈 수도 없고, 그저 버텨내는 것일 뿐이라는 걸 냉정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은 가족과 종교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고 뛰쳐나온 인물인데, 오히려 가족과 함께했던 일상보다 마트에서 보내는 낯선 일상에서 더 즐거움을 느낀다.

낯선 곳에서 만난 타인보다 가족이 더 자신을 힘들게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될 정도로.


문장이 내 취향과 거리가 멀어 쉽게 읽히진 않았다.

10분이면 걸어갈 길을 이곳저곳을 복잡하게 거쳐 1시간이나 돌아서 가는 듯한?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시인으로 먼저 데뷔했다.

그래서 쉽게 읽히진 않았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마트에 가면
문미순 장편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

이 작품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간병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고령화 문제는 빈약한 사회 안전망 및 저출산 문제와 맞물려 간병 파산이나 살인과 같은 비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은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중년 여성 '명주'와 뇌졸중을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청년 남성 '준성'의 이야기를 교차해 보여주며 복지의 사각지대를 조명한다.


두 주인공의 삶은 비극의 종합선물세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살던 명주는 어머니가 죽자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참고해 시신을 미라로 만든다. 어머니 앞으로 나오던 연금이 끊기면 자신도 살길이 막막해진다는 이유로. 뉴스로 보도돼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연금부정수급 사례가 오버랩된다.

준성은 아버지를 돌보면서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밤에는 대리운전을 뛴다. 형은 사업을 핑계로 외국으로 떠나 돌봄은 오로지 준성의 몫이다. 아무리 일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데, 벤틀리를 대리운전하다가 거액의 수리비를 물게 될 처지에 놓이고, 아버지도 집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한다. 이때 옆집에 사는 명주가 준성에게 손을 내민다.


둘의 선택은 불법이고 패륜이지만 이를 대놓고 비난하긴 어렵다. 전 직장에서 일하다가 발에 화상을 입은 명주는 사실상 노동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명주는 사회복지망에서 걸려들지 않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나밖에 없는 철없는 딸은 호시탐탐 명주의 주머니를 털을 궁리만 한다. 준성이 물어야 할 수리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인데, 대리운전업체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모든 책임을 준성에게 미룬다. 


이렇게 표현하니 절박하고 잔혹한 이야기일 것 같은데, 막상 소설을 읽으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후반부는 경쾌하기까지 하다. 심각한 주제에 짓눌리지 않는 작가의 내공이 장난이 아니다. 이로써 작가는 간병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개인의 문제로 두어야 하는지 무겁지 않게 화두를 던진다.


장편소설 공모가 화제성을 잃은 지 꽤 됐다.

창비장편소설상은 폐지됐고, 문학동네가 주관하던 여러 장편 문학상이 문학동네소설상 하나로 합쳐진 지 몇 년 됐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도 예전만큼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수림문학상도 마찬가지고.

세계문학상 수상작도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 이후로는 많이 팔린 작품이 없다.

<망원동 브라더스>의 선전은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감투보다는 김호연 작가의 개인기에 더 의존한 면이 크고.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세계문학상 수상작 중 가장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장편 공모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었다.

출판사 투고로 이 장편이 과연 나올 수 있었을까? 

공모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접할 기회도 없었을 테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리커버)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차무진 장편소설 『엄마는 좀비』(생각학교)

작가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좀비물 <인더백>을 손에 땀을 쥐며 읽은 기억이 있어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외면하지 못했다.

<인더백>에서 처절한 부성을 그려낸 작가가 엄마를 좀비로 그린 청소년소설을 썼다니.

<인더백>과 다른 착한 결말일 것임을 예상하면서도, 어떻게 엄마를 그렸을지 궁금해 책을 펼쳤다. 


'중2'만큼이나 무섭다는 '중3'인 주인공은 엄마와 단둘이 산다.

아빠의 불륜 때문에 가족이 해체됐고, 엄마는 아빠의 도움을 완전히 거부한다.

주인공도 가족 해체의 원인이 아빠에게 있음을 잘 알지만. 그 책임을 손쉽게 엄마에게 돌린다.

주인공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 엄마가 어느 날 밤 갑자기 좀비로 변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주인공은 엄마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 과정에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하며 철이 든다.

예상대로 이 작품의 결말은 착했다.

마치 사랑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린 좀비 로맨스 영화 <웜 바디스>처럼.

더 이야기하면 스포일러이니까 생략한다.

<인더백>과 비교해 읽어보면 '갭모에'가 느껴져 슬쩍 웃음이 날 것이다.

엄마는 좀비 - 엄마가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래?
엄마는 좀비 - 엄마가 좀비가 된다면 어떻게 할래?
서윤빈 소설집 『파도가 닿는 미래』(허블)

한국과학문학상은 김초엽, 천선란 등 걸출한 작가를 배출하며 SF를 넘어 기존 문단에서도 주목하는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SF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낯선 시공간 위에 현재가 겹쳤을 때 선명하게 드러나는 대비감 때문이다.

수상자의 첫 단행본을 읽는 일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을 살피는 일임과 동시에 이 사회의 문제점을 다른 필터로 살피는 일이기도 할 테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의 주제는 대부분 불안정한 일자리다.

일러스트레이터가 AI에 밀려 다른 진로를 찾고('페가수스의 차례'), 해녀가 바다 대신 우주에서 숨비소리를 내며('루나'), 자율주행 AI 때문에 보험 업계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는다('마음에 날개 따윈 없어서').

작가는 토크쇼 '아침마당', 가상화폐, 밴드 넬(NELL), 청계천 등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를 적극 끌어와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넓힌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경험은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섬칫하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지 꽤 됐다.

저 멀리 동해안의 물횟집이나 제주도의 해장국집에서도 키오스크가 주문을 받고 로봇이 음식을 테이블로 나르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MZ세대 젊은 작가가 바라보는 미래는 마냥 어둡진 않다.

작가는 결국 사람은 결국 사람을 믿어야 불안정한 세계를 무사히 돌파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막막한 우주에서 자신의 명줄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명줄을 풀고 그 우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루나').

재미있게 읽었다.


P.S. 작가의 말을 읽다가 단편 '유전자 가위 시대의 부모 되기'에 영감을 준 영화가 <삼거리 극장>이라는 언급을 봤다. 준면 씨가 출연한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을 여기서 다시 만나 반가웠다.


파도가 닿는 미래
파도가 닿는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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