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쿤과 오리 가족이 사는 유튜브 채널. 수컷 고양이가 마치 목장견처럼 오리떼를 이끌고 강으로 물놀이 하러 가는 영상부터가 압도적인데 오리부터 닭, 엄마 아빠 고양이, 아기 고양이들 그리고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소(고양이가 무서워함) 각각의 캐릭터성이 너무 명확해서 매영상 하나하나가 드라마로 작동한다.
문학동네에서 언제부터 망가를 출간했었나 싶은데 드디어 만화가 주류 문학계에서 인정받게 된 건가 아니면 출판 업계가 망해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하는 건가 궁금증이 생겼다.
와야마 야마라는 일본의 젊고 재능있고 정교한 만화가의 작품. 무엇보다 그의 젊음이 와우 포인트인데 모르긴 몰라도 20년쯤 후에는 위대한 작가가 되어 있을 듯.
정보라 작가의 투쟁 일기. 고공 농성의 전자파 윙윙 소리의 디테일 같은 데모 현장의 날것의 순간들이 포착되어있다.
자기개발서를 쓴다는 게 의외로 엄청난 일인데 그것은 인생이 해피 에버 애프터로 완결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엔딩을 알 수 없이 계속 살아야 한다는 점에 있다. 인생은 업앤다운이 있고 어떤 업의 시점에 그 성공을 기반으로 책을 저술한다고 해도 다운의 시절이 찾아오기 마련이고 결국 그 저자는 확정적으로 거짓말쟁이나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뭐 이런 삶에 대한 강박이 없는 자라면 하와이 대저택이라는 저자처럼 쉽게 책을 쓸 수도 있을 듯. 밥 플록터와 더 시크릿에 개인사의 일부를 추가하면 중장편 분량의 자기개발서가 나오는데 이것처럼 쉬운 글쓰기가 또 있을까 싶음.
경제사상가들의 삶과 그를 통해 보는 경제사상사. 천재들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그런 건지, 아니면 천재들이라 자존심이 세서 그런 건지, 몇몇 인물들의 연애담이 정말 재미있다. 특히 비어트리스 포터 웨브와 조앤 로빈슨, 이 당당한 두 여성 학자의 삶은 여태까지 영화화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
다른 역사가들이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피렌체의 내부 분열 문제는 대충 쓰거나 무시했다는 비판으로 책을 시작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다급한 구직자가 아니라 냉철한 논평가다. 그가 고국에서 일어난 사건의 원인과 영향을 분석할 때, 행간의 숨은 의미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군주론』보다 덜 기울여도 된다. 인간 마키아벨리도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좋은 책이고, 지금 꼭 알아야할 내용인데 마음이 무겁다. 모르면 책에 나온 말마따나 피라미드서 아예 걷어차이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르는데, 이 부문마저 투표랑 공부 말고는 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가 싶고...거대한 문제인 것도 모자라 기후변화보다 압박 속도가 더 빠른 것 같아서 드러눕고 싶다.
Ai가 매체에 굉장히 많이 다뤄지니 그래도 흐름은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나온 디지털 기기들이나 앱들도 다 따라잡지 못하고 사는데...알파고 이후 당연히 많이 변했겠다고는 생각했지만, 후속작들의 정확한 학습시간과 성적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정체성까지 변화를 주면서 질문자에게 맞춰가는 챗gpt, 이미지와 문자로 생각을 이미 구현하는 기술, 향후 10년 노동자 90퍼센트 해고 예상, ai를 악용하는 정치...
삶은 편리해질테지만, 정말로 '역사상 가장 큰 판도라의 상자'가 다 열렸을 때 무엇이 펼쳐질지, 책에서 던진 화두의 반이라도 인류가 답을 준비하고 그 시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답을 모를 때는 불안보다 희망을 가지는 게 정신 건강에는 좋겠다만...
시를 잘 모르는 사람의 입까지 벌어지게 하는 시를 쓴다는 건 도대체 무슨 재능일까.
힙합에 전혀 감흥을 못 느꼈던 내가 이센스의 첫 정규앨범 [The Anecdote]를 듣고 뻑갔던 것처럼, 서정주의 시집은 읽을 때마다 이런 게 '악마의 재능'이구나 싶다.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견우의 노래)
이, 우물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다수굿이 젖어 있는 붉고 흰 목화꽃은,/누님/누님이 피우셨지요?(목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푸르른 날)
뭐라 하느냐/너무 앞에서/아- 미치게/짙푸른 하늘.(소곡)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위협에 관해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적잖이 놀라곤 한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겪을 일도 없는 위협인데, 한국의 치안이 타국보다 훌륭하다는 통계만 보고 무시하기에는 사례가 구체적이고 들으면 빡친다.
남자라면 시비 걸리는 상황이 올 때 맞다이까자는 마인드로 달려드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긴 쉽지 않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완력이 센 남자라면.
기자 시절에 경제, 산업, 노동 분야를 취재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직간접적으로 자영업자의 현실에 관해 많이 주워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자영업자 상당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개업한다.
인생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아무리 달려도 평생 비포장도로만 뛰는 사람도 있고, 죽어라 달렸는데 그 끝이 낭떠러지인 사람도 있다.
일자리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의 공단은 인력난으로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그 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이 많지 않고, 제대로 경력을 쌓을 수 없다는 거다.
그런 일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은 무책임하다.
그 돈을 받으면 살아는 진다.
그런데 여가 활동, 연애, 자기 계발 등 많은 걸 포기해야 살아진다.
더럽고 치사해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다수의 손님은 평범한데,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 소수의 진상이 문제다.
자영업자는 돈을 지불하면 내가 왕이라는 마인드를 탑재한 진상을 절대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진상은 대체로 집요하다.
만약 철저한 준비 없이 자영업에 뛰어든 여성이 진상 손님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읽으면 된다.
처절한 환장의 콜라보다.
읽는 내내 밤고구마 몇 개를 연속으로 물 없이 삼키는 기분이 들 것이다.
작가는 조금 희망적인 톤으로 소설을 마무리하는데, 그 마무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작가의 말을 보니 원래 결말은 꿈도 희망도 없었나 보다.
편집 과정에서 바뀐 모양이다.
작가가 처음에 쓴 대로 마무리를 지었으면 더 일관성 있는 아포칼립스 같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을 꽤 충격적으로 읽었다.
수록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에 홀려 다른 세계를 엿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테드 창이 덜 하드하게 따뜻한 SF를 쓰면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신비롭다' 혹은 '환상적이다'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단편들이었다.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필력은 한국 작가 중에선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집을 사다 놓은 지 꽤 오래됐는데, 소설집과 장편소설 작업을 하느라 뒤늦게 펼쳤다.
내 방을 오갈 때마다 이상하게 자주 눈에 띄어 밀린 숙제를 하듯 읽었다.
시공간과 생의 한계를 초월해 펼쳐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칼로 무를 베듯 구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역설한다.
어떤 선택으로 어떤 관계를 맺었든 그게 바로 지금 우리라면서.
그런 점에서 이 소설집은 '우주적'이다.
경험한 만큼 밖에 쓰지 못하는 나로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서 비롯되는 건지 경이로웠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좋았다.
전작보다 더 SF스러웠는데, 다섯 단편이 미묘하게 연결된 느낌을 줘서 마치 연작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정규앨범을 들을 때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차례대로 들어야 맛이 나듯이, 이 소설집 또한 수록 작품을 순서대로 읽어야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