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집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직장인들의 회사 이야기, 찜질방에서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며느리 뒷담화, 지하철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시시콜콜한 통화소리…. 우리가 일상에서 우연히 듣는 이야기는 특별한 내용도 아닌데 귀를 세우게 한다.
이 소설집은 그런 이야기를 닮았다. 작가는 우리가 일상에서 외면해 온 진실을 끄집어내 흔한 이야기를 흔치 않게 들려주는 데 탁월하다. 그 이야기에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불편해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기 말을 하느라 바쁘다. 표제작 ‘말 좀 끊지 말아줄래?’에 등장하는 장례식장 풍경은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상대가 고인과 어떤 사이인지도 모른 채 위로를 건네는 건 예사다.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떠들다가 냉장고에 보관된 술을 빼돌려 사업을 벌이겠다고 진지하게 의논하는 인물들의 모습에 실소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끄럽고 어지러운 말들이 어느 순간 묘하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동시에 불편한 감정의 근원이 드러난다. 싫어도 아닌 척, 몰라도 아는 척….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진짜 모습이다.
작가는 수많은 말을 통해 우리가 가장 친밀하다고 여기는 가족, 친구의 관계가 실은 허상이 아닌가 묻는다. ‘전에도 봐놓고 그래’에선 시아버지 생일에 모인 가족들이 섞이지 않는 불편한 대화를 이어가며 긴장감을 조성한다. ‘사적 하루’ 속 인물은 희소병에 걸린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온천을 찾지만, 친구의 행복한 모습을 질투한다. ‘한밤의 손님들’의 주인공은 ‘엄마는 늘 꽥꽥대고, 동생은 늘 꿀꿀댄다’며 둘을 ‘오리’와 ‘돼지’라고 부른다. 소설 속엔 온통 염치없고 무례한 사람들뿐이라 불편한데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한 거대 기업이 파산한 지방자치단체를 인수해 만든 도시국가 ‘타운’과 그 내부에 자리 잡은 낡은 거주지 ‘사하맨션’이다. ‘타운’은 자본·기술·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국민으로 받아들이며, 그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L2’라고 불리며 2년 기한으로 체류 자격을 인정받아 노동력을 착취당할 뿐이다.
‘타운’의 국민이나 ‘L2’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난 이들은 ‘사하’로 불리며 ‘사하맨션’으로 숨어든다. 부유하지만 자유와 언로를 철저하게 통제하는 ‘타운’과 달리, ‘사하맨션’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비교되는 두 공간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치다.
소설의 등장 인물은 어머니의 추락사를 자살로 위장한 사장을 죽인 도경과 그 누나 진경,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눈이 없이 태어난 사라, ‘타운’에서 의료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우미 등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이다. 총 12장으로 구성된 소설엔 장마다 다른 주인공이 등장해 개별적인 이야기를 이끌며 이들이 ‘사하맨션’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설명한다. ‘타운’이 끌어안길 거부한 ‘사하’의 모습은 취업절벽에 매달린 청년, 실패한 영세 자영업자 등 우리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린 ‘경제 난민’의 모습과 겹친다.
“우리는 누굴까. 본국 사람도 아니고 타운 사람도 아닌 우리는 누굴까.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뭐가 달라지지? 누가 알지? 누가, 나를, 용서해 주지?”(51페이지)
각 장 위로 최근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여러 사건이 포개져 강력한 기시감을 형성한다. 30년 전 ‘사하맨션’으로 흘러들어온 아이 ‘만’의 이야기를 다룬 장에 등장하는 사라진 배는 ‘세월호 사건’, ‘타운’의 무력 진압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연상케 한다. 또한 30년 전 ‘사하맨션’에서 살다가 ‘타운’에서 신종 호흡기 전염병으로 사망한 보육원 직원 ‘은진’을 다룬 장에선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떠오른다. 소설은 변화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패배의식이 내면화돼 미래로 나아가야 할 동력을 잃는 다고 경고한다.
소설 마지막 장에서 진경은 주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타운’의 총리관으로 침입하지만, 그곳에서 마주친 진실은 허상이었다. ‘타운’을 다스리는 총리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총리실 총비서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만 존재할 뿐이다. 총리실 총비서는 진경에게 주변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사하맨션’으로 돌아가라고 협박한다. 과거 총리관을 침입했던 이들의 선택도 같았다면서. 진경의 선택은 투쟁을 통한 연대의 복원이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은 진경의 선택으로 마침내 하나로 모인다.
“당신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368페이지)
‘사하맨션’은 ‘82년생 김지영’만큼이나 주제의식이 큰 부피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읽는 재미보다 주제의식이 앞선다는 인상이 짙은데, 주제의식의 선명도는 ‘82년생 김지영’보다 옅은 편이다. ‘82년생 김지영’의 그림자를 벗어나면서도 그 영향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절충적인 선택이 아닐까.
우리는 늘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가능한 한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고 편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을 찾는다. 이 같은 선택을 우리는 합리적 선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선택은 대개 합리적 선택과 거리가 멀다. 장애 때문에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는 부부, 매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익명으로 거금을 투척하는 독지가, 어린이 백혈병 환자를 위해 기꺼이 골수를 기증하는 간호사 등의 사례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런 비합리적 선택에 ‘인간답다’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인간답다’는 그런 선택을 결정하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에 주목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탐색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어떻게 죽음의 두려움을 삶의 희망으로 치환하는지를 따뜻하면서도 섬세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이야기를 이끄는 두 가지 축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유인원의 한 종류인 보노보의 몸속으로 영혼이 빨려 들어간 유인원 사육사 ‘진이’와 취업에 실패한 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민주’의 선택이다. 진이는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흘 동안 보노보 ‘지니’의 감정과 기억을 공유하며 과거 자신의 선택이 지니의 평화로운 삶을 빼앗았음을 알게 된다.
진이는 지니의 삶을 되찾아 줄 선택의 갈림길에 서지만, 치러야 할 대가는 자신의 생명이다. 민주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던 10년 전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노인을 외면했다가 죽음에 이르게 한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다. 민주는 절박한 상황에 빠진 진이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지만, 자칫 경찰로부터 쓸데없는 의심을 받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작가는 둘의 선택 과정을 좇으며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 죽음이란 절박한 상황 앞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웅변한다.
보노보 지니는 삶과 죽음의 의미를 넘어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매개다. 지니가 느끼는 희로애락은 인간의 감정보다 직설적이고 순수하다. 지니가 이제 막 태어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며 느꼈던 사랑과 기쁨, 쇼를 위해 춤추기를 강요당하며 느끼는 고통과 슬픔 등은 여과 없이 진이에게 전달돼 가슴을 아리게 한다. 진이는 지니를 통해 모든 생명에 저마다의 삶이 존재하고, 그 삶 또한 인간의 삶만큼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 후반에 진이가 지니를 가리키는 주어가 ‘나’로 전환하는 순간은 이 같은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같은 전환은 진이가 지니의 모습으로 연장하는 삶은 자신의 모습으로 맞이하는 죽음보다 무의미하다는 깨달음과 지니를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이야기를 절정으로 이끈다.
투명성은 정치나 경제 영역을 포함한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강조되고 있다. 사람들은 투명함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로 이끌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재독 사회학자 한병철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는 긍정적인 가치로 여겨져온 투명성 개념에 의문을 제시한다. 그는 이 책을 투명사회를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새로운 통제사회라는 전복적인 해석을 내놓는다.
저자는 전작 ‘피로사회’를 통해 자유가 오히려 자기 착취를 낳고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현대인의 모순을 파헤쳐 독일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현대인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자발적으로 전시해 스스로 디지털 통제사회를 완성해나간다는 내용을 담은 ‘투명사회’는 지난 2012년 독일에서 출간 당시 ‘피로사회’ 이상의 충격을 안겼다.
당시 독일에선 크리스티안 볼프 대통령이 부정 의혹에 휘말려 사임하게 된 상황이어서 정치ㆍ경제 권력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뢰 위에 세워진 사회에서는 투명성에 대한 집요한 요구가 생겨나지 않는다.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 취약해졌다는 것, 진실성이나 정직성과 같은 도덕적 가치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믿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투명성에 대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자발적 노예가 넘쳐나는 통제사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투명성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끊임없이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저자의 태도는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을 무조건적으로 배우려는 태도에 제동을 걸고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보게 만든다.
저자는 “투명성을 요구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은 획일화된다”며 “모든 것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즉각 공개하게 되면 사유의 공간이 없어지고, 정치는 호흡이 짧아져 길게 내다보고 계획을 할 수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북유럽의 복지 모델을 배우자는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높은 조세로 실현하는 북유럽의 복지 모델은 사실상 한국의 현실에선 이상에 가깝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북유럽 배우기 열풍은 다소 수그러들었다. 저자의 남다른 인식은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일종의 경고처럼 들린다.
눈치도 일머리도 없는 중년 남자, 초등학생 시절에 그림으로 받은 상이 자랑의 전부인 화가, 평생 제대로 가족을 돌보지 않은 떠돌이, 사업이 망해 도망치듯 도시를 떠나온 남자, 절에 버려져 자라는 아이들, 일자리를 잃고 고시원에서 포커로 소일하는 시간 강사, 원정 성매매를 하다가 코로나 때문에 밥벌이가 막힌 여자...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 같이 어디에도 쉽게 발을 붙이지 못하는 낙오자다.
이들이 겪어 온 세상은 차갑고 가차 없다.
이들에게선 오랫동안 찌든 패배의 냄새가 난다.
하지만 딱히 선량하다는 인상을 주지도 않는다.
오늘 당장 사라져도 아쉬워할 사람 하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사라지길 바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쓸데없이 밥이나 축낸다는 이유로.
이 소설집의 가장 큰 특징은 뚜렷한 지역성이다.
이들을 품어주는 공간은 남도다.
남도는 낯선 이들를 은근슬쩍 받아들이고 가진 것을 츤데레처럼 슬그머니 내준다.
작가는 걸쭉한 지역 방언과 음식 등을 곁들여 남도를 생동하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잉여인간' 취급받으며 주변으로 밀려났던 이들은 남도의 품 안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찾거나 적어도 위안을 얻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물론 소설에서조차 지역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은 유니크하다.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가리켜 "다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가 정확히 찍힌 주민등록증 하나씩 지갑 안에 넣고 우리 주위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나는 이 소설집을 읽고 조 전 편집장의 평가를 떠올렸다.
이 소설집에 담긴 단편을 아무 작품이나 영화로 만들면 이창동 감독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내가 올해 취업에 실패하면 꼭 아일랜드로 뜨겠다!'는 다짐이 3월 초부터 생겼다. 그래서 가끔 너무 힘들 때면 키위 앱으로 최저가 더블린행 비행기 표를 찾아보곤 한다 ;( 난 영국 북쪽의 칙칙한 날씨와 그 속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이 책을 읽곤 그 성긴 여행계획에 스코틀랜드 아일레이 섬을 추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일랜드에선 아이리쉬펍에 출석체크하듯 가야지, 거기서 흑맥주와 싱글몰트에 취한 채로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날의 초상'을 '완독'해야지. 등등 제법 구체적으로 여행을 그려봤다. 난 이 여행이 실현되길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다 하하!
작가의 소설에 으레 등장하는 술이 보이지 않아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술 대신 고단한 일상을 견디며 흘린 땀과 눈물이 그 자리에 고여 있다. 맛깔나는 술자리 묘사가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소주의 비릿한 단내만큼이나 체취가 어린 짠내도 매력적이니 말이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모르는 영역’은 아내를 잃은 중년 남성과 딸의 서먹한 관계를 통해 섞이지 못한 채 부유하는 인간관계의 단면을 포착한다. 권 작가는 살갑진 않아도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부녀의 모습을 그리며 한 걸음 더 관계를 발전시키는 길은 솔직함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빚에 허덕이면서 모아야 할 돈을 백 원 단위까지 계산할 수밖에 없는 ‘손톱’의 주인공인 스물한 살 여성에게 할머니는 그저 조심하라고 말할 뿐이다. 일하다가 사고로 오른손 엄지손톱이 절반 가까이 날아가 통증을 느끼면서도 일을 해야 하고, 500원 더 비싸다는 이유로 매운 짬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아울러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조금 낯선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 문제의식을 넓히고 다채로운 서사를 선보인다. ‘희박한 마음’의 주인공인 레즈비언 할머니는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 늘어난 요즘에도 낯선 인물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래전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 함께 담배를 피우던 연인이 남학생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끊임없이 복기하며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너머’는 투병 중인 어머니를 둔 기간제 교사가 쪼개기 계약과 계약 연장 등 차별과 배제에 노출되는 모습을 통해 삶이 어디까지 슬퍼질 수 있는지 파고든다. ‘재’의 주인공은 심각한 질환으로 수술을 앞둔 상황에서도 식당 주인에게 담배를 얻어 피우려고 한다. 애잔하고도 안쓰러운 풍경들이다.
작가는 종종 집요해 보일 만큼 현실을 그대로 묘사해 보여주는데, 이런 태도가 역설적으로 따뜻한 위로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소설집에 추천사를 보탠 김애란 작가는 “비정해서 공정한 눈이란 이런 걸까”라고 물으며 “소설이 주는 위로란 따뜻함이 아니라 정확함에서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소설집을 덮은 뒤 읽으면 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추천사다.
소설집 제목은 ‘손톱’의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나왔다. 권 작가는 소설집 끝에 실은 ‘작가의 말’에 “모르겠다”고 고백한다. 소설집 제목과 ‘작가의 말’ 사이의 행간은 세상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은 세상을 모르겠다고 인정하는 일이 아니냐는 의미로 읽힌다.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가부장이었던 아버지가 이혼 후 가정을 떠난 지 수십 년 만에 딸에게 이메일로 연락해 근황을 알렸다. 자신이 성전환 수술을 받고 이름도 바꿨다고. 빨간 스커트를 걸치고 하이힐을 신은 노부인으로 변한 자신의 사진과 함께.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실제로 겪은 일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 움직임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예리하게 분석한 저서 ‘백래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에게 반감을 품고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글을 쓰며 살아온 저자가 여성으로 변한 아버지를 보고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거짓말 같은 현실과 마주한 저자의 선택은 저널리스트답게 아버지를 이해해보기 위한 심층취재였다.
저자는 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10년에 걸쳐 아버지의 삶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역사와 개인사의 격랑 속에 늘 자신을 가장해야 했던 아버지의 여러 이름과 정체성 등을 만난다. 여러 면에 걸쳐 경계인으로 산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며 저자는 가장 내밀한 삶이 어떻게 보편적인 역사와 연결되는지를 짚는다.
저자의 아버지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다뉴브강 건너 고지대인 부다 지역에서 나라 없는 민족 유대인으로 태어났다. 그는 태생부터 경계인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처음에 ‘이슈트반 프리드먼’이란 이름을 가졌던 그는 헝가리의 민족 동화 정책에 푹 빠져 18세 무렵에 자신의 성을 헝가리 민족의 색채를 강하게 띠는 ‘팔루디’로 바꿨다. 민족 동화를 부르짖던 헝가리는 유럽 내 어느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홀로코스트(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에 가담했다. 그는 생존하기 위해 나치 완장을 차며 유대인이 아니라고 연기했다.
그런데도 탄압을 피하지 못한 그는 결국 미국으로 도망쳐 삶을 이어갔다. 미국에서 사진가 ‘스티븐’으로 살던 그는 ‘정상 가족’의 가장이 되기를 원했지만 이혼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생의 마지막 시절에 성전환 수술을 한 뒤 모국 헝가리로 돌아가 노부인 ‘스테파니’로 살던 중 세상을 떠난다. 한 사람의 삶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럽고 모순으로 가득 찬 삶이다.
저자는 평생 경계인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자신이 선택한 정체성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는지 파고든다. 방법은 자기만의 암실 속에 갇혀 있던 아버지라는 문을 끈질기게 두드리는 일이었다. 오직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추적한 결과물은 그저 한 사람의 서사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젠더 정체성이란 창을 경유해 인종·민족·국가·종교 등 보다 넓은 영역으로 탐구의 폭과 범위를 확장해 나간 끝에 우리에게 필요한 이분법은 단 한 가지, ‘삶과 죽음’이라는 결론을 끌어낸다. 여성성이든 남성성이든, 어떤 종교·정치·국가적 정체성이든 자기 정체성의 독재자가 되지 않는 한,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담아 설명할 수 있는 완벽한 범주란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써내려간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보편과는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그 이야기가 보편적으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귀를 닫는 사람들이 세상에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서문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가 결국은 정치적인 이야기”라며 “우리의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사이에 경계란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채롭고 서로 모순되는 삶의 단계와 양상을 부정하는 완벽한 범주라는 개념은 결국 허상이며, 이를 고집하는 태도는 전체주의적인 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여행은 자신뿐만 아니라 동행하는 가족·연인·친구를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다. 여행 중 돌발하는 변수에 대응할 때 서로의 몰랐던 모습이 드러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권지예 작가는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통해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데 탁월한 소설가다. 이 소설집은 이국에 놓인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내세워 가까운 관계일수록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허상이 아닌지 묻는다.
소설집에 실린 여섯 작품 중 다섯 작품의 배경이 이국이다. 각 작품 속에서 이국의 공간은 현재 자신과 주변을 재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표제작인 중편 ‘베로니카의 눈물’은 마치 여행기를 보는 듯 생생한 쿠바의 풍경 묘사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작품이다. 새 작품을 쓰기 위해 쿠바로 온 주인공은 ‘카사’(쿠바의 민박집)를 관리하는 70대 노인 ‘베로니카’가 선을 넘으며 베푸는 호의를 믿다가도 의심하기를 반복한다.
이해와 오해 사이를 줄타기하며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서술과 마지막 반전이 인상적이다.
여행은 작품 곳곳에서 관계를 성찰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부부 사이인데도 알 수 없었던 진실이 어떻게 관계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지 그려낸다. ‘카이로스의 머리카락’에는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며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던 부부가 등장해 여행을 통해 어쩔 수 없이 붙어 다니면서 묵은 감정과 기억을 소환한다.
‘파라다이스 빔을 만나는 시간’은 세상을 떠난 남편의 숨겨진 이야기를 뒤늦게 알게 된 아내가 여행을 통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결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권 작가는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허약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 질문한다.
아울러 작가는 개인의 삶을 세대 및 사회적 이슈와 연결해 들여다보려 시도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친구 부부 대신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대리 참석한 엄마와 딸이 등장한다. 엄마는 여행 내내 예민한 태도를 보이는 딸이 성폭행을 당했으며 ‘미투’ 고백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자신의 과거를 소환한다. 엄마가 딸과 자신의 과거를 응원하겠다는 다짐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개인의 삶이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주며 관계를 인식하는 지평을 확장한다.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익숙한 장음계에서 3번째 음인 ‘미’와 7번째 음인 ‘시’의 반음을 내려보자. 그 순간 멜로디에서 무언가 끈적한 질감이 느껴지며 설명하기 어려운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재즈와 블루스에서 쓰이는 이 독특한 음계를 ‘블루노트’라고 부르는데, 재즈 마니아라면 ‘블루노트’란 말을 듣고 푸른색 타원을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블루노트 레코드(이하 블루노트) 레이블을 상징하는 푸른색 타원은 재즈 마니아에게 신뢰의 상징이다. 1939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블루노트는 독일의 ECM 레코드와 더불어 재즈의 역사를 이끌어온 명가다.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 아트 블레이키 등 블루노트를 거친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은 레이블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블루노트가 설립 8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첫 공식 도서인 ‘블루노트 : 타협하지 않는 음악’(태림스코어)은 연대기 순으로 레이블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는다. 이 책은 서두에 블루노트의 공동 설립자인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가 나치 독일의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란 사실을 언급한다. ‘자유의 음악’이란 별명을 가진 재즈와 블루노트의 만남은 운명이었던 셈이다. 이어 이 책은 1930년대 부기우기 및 스윙에서 시작해 비밥, 펑크, 퓨전 등으로 이어지는 재즈의 진화를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앨범 75개에 관한 리뷰도 곁들여져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단지 레이블의 화려한 역사와 영광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좋은 앨범이 끊임없이 나오는 데도 나아지지 않는 레이블의 재정 상태, 라이온의 사임과 울프의 사망에 따른 레이블의 침체, 이후 새롭게 레이블을 이끈 브루스 룬드발에 의한 재도약 등 레이블이 겪은 격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이 책에 기록돼 있다.
이 책은 이른바 ‘벽돌책’으로 상당한 가격을 자랑한다. 선뜻 손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페이지를 펼치는 순간 생각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다채로운 사진 자료로 독자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음악만큼이나 블루노트에 명성을 가져다준 요소는 앨범 디자인이다. 블루노트는 타이포그래피와 포토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조합한 앨범 디자인으로 재즈계를 넘어 디자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다른 곳에서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앨범 관련 오리지널 사진 자료 약 600컷을 담고 있다. 심지어 가격도 원서(아마존 기준 약 50달러)보다 저렴하다. 책꽂이에 꽂아두기에 이보다 모양새가 나는 책도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