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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소설집 『숨』(엘리)

다시 읽는데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재미도 재미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SF다.

작가는 새로운 기술이 변화시킨 세상과 그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변화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소설마다 다채로운 설정과 전개로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데 그 상상력이 대단하다.


책의 문을 여는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부터 비범하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 신비롭고 이국적인 배경에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더하다니.

과거로 돌아가도 미래를 바꾸지 못하며, 그저 과거를 더 잘 알게 될 뿐이란 설정 또한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아 신선하다.


표제작 ‘숨’은 ‘엔트로피’ 개념에 착안해 무분별한 에너지를 사용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유대 관계를 심도 있게 다루며 피할 수 없는 기술의 발전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은 우리가 완전무결하고 정확한 기억을 가지는 게 옳은지 질문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고찰하며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묻는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창작 노트에는 작품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이 짧고 명료하게 정리돼 있어 이해를 보탠다.

이렇게 친절하기까지 하다니.


그런데.

작가 이름을 보면 자꾸 영화 <극한직업>에 출연한 배우 오정세가 떠올라서 피식하게 된다.

나만 그런가?

젠장.

숨
숨
장은진 장편소설 『날씨와 사랑』(문학동네)

재개발로 철거를 앞둔 오래된 장갑 공장, 그곳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낸 여자, 오래전에 가출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소싯적에 온갖 사고를 치며 다니다가 이제는 장송곡 같은 노래나 만드는 인디 뮤지션이 된 동생...


배경과 등장인물의 삶은 하나 같이 어둡고 팍팍하지만, 작품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따뜻해 마치 동화 한 편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작품에서 나오는 온기는 퉁명스럽게 굴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챙기는 등장인물 사이의 정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 작품이 동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니며 공장 앞 광장을 배회하는 이름 모를 남자 때문일 테고.

띠지에 '감성 연애소설'이라는 표현이 보이는데, 연애소설보다는 가족소설이나 성장소설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한 단어로 이 작품을 요약하면 '쉼표'다.


그런데 몇몇 표현이 눈에 거슬렸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 거슬리지도 않았을 표현이다.

하지만 이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몇 마디를 보탠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대단히 무능력해 늘 두 딸의 구박을 받는다.

두 딸의 구박이 어떤 맥락에서 이뤄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다.

이 지적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을 남성 작가가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면, 여성 독자가 과연 맥락에 맞는 표현이라고 너그럽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아마 독자에게 닿기 전에 편집 과정에서 바로 걸러지지 않았을까.


"아버지 얼굴은 아버지의 좆처럼 풀죽어 있었다."

"나는 이제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아버지 좆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력도 경제력도 없는데 거기다 좆까지 무력해서 엄마가 떠났다. 이것저것 아무리 비교해봐도 가장 무능한 건 그러니까, 아버지의 좆인 것이다."

"아버지는 암컷도 차지 못하는 좆 작은 수사자잖아."

날씨와 사랑
날씨와 사랑
백가흠 소설집 『같았다』(문학동네)

도둑으로 전업한 대학 강사(훔쳐드립니다), 살인을 저지른 승려(타클라마칸), 다른 남자와 함께 남편을 죽이는 아내(같았다), 소설을 쓰지 않는 소설가(그는 쓰다)...

이 소설집의 등장인물은 모두 난감한 처지에 놓여있고, 동시에 선악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없다.

피해자로 보이는 인물에게는 영악함이 있어 마냥 동정하기가 어렵고, 가해자로 보이는 인물에게는 유약함이 엿보여 대놓고 미워하기가 어렵다.

작가는 인간의 욕망을 다양하게 변주해 드러내 보이는 한편,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윤리적인 생각과 행동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반복해 묻는다.


불편하지만 읽는 내내 끌렸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활자로 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뭐 하나 즐겁게 끝나지 않는데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졌다.

책을 덮을 때쯤에는 불편함이 극에 달해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마도 이 소설집을 읽는 일이 내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테다.

같았다
같았다
이장욱 장편소설 『캐럴』(문학과지성사)

2019년에 사는 잘 나가는 40대 성공한 사업가, 1999년에 사는 20대 복학생.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사는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매개로 기묘한 만남을 가지는데, 그 여자는 40대 컨설턴트의 아내이자 20대 복학생의 전 여친이다.

어떻게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사는 두 남자가 같은 여자와 연결돼 있는지 논리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여자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이니까.

그냥 작품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는 게 편하다.


작품 속에선 두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가 반복해 교차한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셋을 포함한 몇몇 등장인물의 동선이 서로 이어지거나 어긋나면서 과거와 미래가 조금씩 포개진다.

이 과정에서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였던 두 남자의 삶이 연결돼 있음이 드러나고, 심지어 두 남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더 이상 언급하는 건 스포일러여서 생략한다.


읽는 내내 현실과 환상 사이의 그 어딘가에서 한참 동안 헤매는 기분을 느꼈다.

뚜렷한 서사를 선호하는 내게 이 작품은 미로 같았다.

그것도 꽤 복잡한 미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글쎄...

거기까지 동의하지는 않는다.

캐럴
캐럴
손홍규 장편소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문학사상)

목차부터 의미심장하다.

1895년 4월 24일. 1956년 7월 19일. 2009년 5월 23일. 2014년 4월 16일.

작품을 읽다 보면 첫 번째 날짜는 전봉준의 처형일자, 두 번째 날짜는 박헌영의 처형일자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세 번째 날짜와 네 번째 날짜는 굳이 작품을 읽지 않아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날임을 짐작할 수 있을 테다.


이 작품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을 소설적 상상력으로 엮어냈다

작가는 방대하고도 치밀한 자료 조사 위에 자신만의 통찰을 더해 사건 속 죽음의 의미를 살핀다.

이 작품에서 네 죽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패'다

전봉준은 동학농민운동에 실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박헌영은 북한에서 사회주의혁명에 실패해 숙청됐다.

노무현은 자신이 꿈꾼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실패한 뒤 죽음을 맞았으며, 세월호 참사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결과였다.


오늘날 우리가 죽은 이들이 꿈꿨던 세상보다 후퇴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2021년 대한민국 사회는 신분제 봉건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으며, 사상의 자유를 대놓고 억압하지도 않고,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으며, 국민을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내몰지도 않으니 말이다.

죽은 이들의 꿈이 오늘날에 불완전하나마 실현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예언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말'을 통해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 게 역사라면 우리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를 기억하는 건 소설"이라고 말한다.

예언은 결국 삶을 이해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의미일 테다.


작가가 작품 속 인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이 작품에는 역사에 이른 과거와 아직 이르지 않은 과거가 뒤섞여 있고, 작가가 작품 속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온정적이다.

박헌영은 독립운동가이면서 동시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전범으로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는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훌륭한 정치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이 작품이 의미 있는 이유는, 최근 한국소설에서 찾기 드문 무거운 주제 의식과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서 한 번 한국소설 신간 매대를 살펴보라.

다양성 면에서 과연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게중심을 잡아줄 만한 작품이 오랜만에 등장한 것 같아 반갑다.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 강렬했지만 스러진 존재의 희미하지만 영원한 온기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 - 강렬했지만 스러진 존재의 희미하지만 영원한 온기
윤고은 장편소설 『도서관 런웨이』(현대문학)

제목만 보면 SNS 셀럽이나 모델을 다룬 이야기인가 싶다.

처음 부분은 그렇게 오해할 만하다.

그런데 페이지를 더 넘기면 갑작스러운 실종 사건에 보험 이야기가 뒤섞인 제목과 영 딴판인 블랙코미디가 펼쳐진다.

여기서 끝이냐? 마지막에는 로맨스다.

그것도 가슴 아픈 로맨스.


윤고은 작가하면 떠오르는 건 역시 재기발랄한 상상력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다루는 작가의 상상력은 종종 예언이 되기도 했다.

재난 지역 여행상품을 다룬 작품 <밤의 여행자들>이 대표적이다.

다크 투어리즘을 한발 앞서 다뤘던 이 작품은 올해 영국 추리작가협회가 주관하는 대거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도서관 런웨이>에서 작가는 결혼 제도를 보험 상품에 포함하는 상상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안심결혼보험'은 결혼 준비 비용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외도 등 결혼 생활의 안정에 필요한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보장한다.

게다가 건강한 사람만 가입할 수 있으니, 보험에 가입했다는 사실은 곧 결혼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는 보증이 된다.

보험은 미혼인 사람에게도 이득이다.

만기까지 미혼으로 남으면 원금의 130%를 환급해주니까.

이게 과연 불가능한 상상일까?

지금도 결혼 전에 상대방의 학력이나 재력, 건강 상태를 서류로 확인하는 사례가 많은데?

작품을 읽고 머지않은 미래에 정말로 결혼보험이 등장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작가가 여기서 이야기를 끝냈다면, 세태를 풍자하는 그저 그런 블랙코미디로 끝났을 테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사랑할 대상이 사라져 버린 후에도 사랑을 이어가려는 강한 의지를 다지는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랑에는 정답이 없고 불확실성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고.

사랑을 지키는 힘은 그 불확실성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용기에서 나오지 보험과 같은 제도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런웨이에선 눈치 보지 말고 자기만의 걸음을 걸어가야 한다고.

좋은 소설이었다.

도서관 런웨이
도서관 런웨이
장류진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

거두절미하고 경쾌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 벌어졌던 가상화폐 광풍이 이 작품의 배경이고, 평범한 미혼 여성 직장인 셋의 투자기가 주된 서사의 줄기다.

게다가 장류진 작가는 직장인의 애환을 무겁지 않게 풀어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데뷔와 동시에 문단에서 스타로 떠오른 작가다.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는데, 가상화폐 광풍이 불 적에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몇백만 원을 날린 경험이 있어서 의도적으로 몇 달간 이 작품을 외면해왔다.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읽는 동안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왔다.

덕분에 작품에 빨리, 그리고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시세가 매초 급변하는데 거래는 24시간 멈추지 않고 이뤄진다.

잠들기 전에 끝을 모르고 오르던 시세가 잠에서 깨어나니 곤두박질치기 일쑤다.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가상화폐로 벼락부자가 됐다는 사례가 여기저기서 들리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수시로 호가창을 들여다보며 일희일비하다 보니 본업은 엉망이 된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부자가 될 기회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다.


작가는 평범한 청년이 왜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드는지 그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침실이 따로 있는 집에 살고 싶은 마음, 남들처럼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 욕실의 물이 방으로 넘치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곰팡이가 피지 않는 집에서 살고 싶은 마음, 유통기한이 임박한 우유 대신 유기농 목장 우유를 먹고 싶은 마음이 뭐 그리 대단한 욕심이라는 말인가.

하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을 모아봤자 물가와 부동산 시세 인상을 따라갈 수 없으니 일하면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게 많은 청년의 현실 아닌가.

욕심이라고 말하기에도 서글프다.


소설의 결말은 이런 서사와 어울리지 않게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가상화폐 투자가 주인공의 인생을 바꿔놓거나 직장을 그만둬도 될 만큼 큰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았다.

적당히 현실감이 있는 해피엔딩이다.


혹자는 가상화폐 광풍이 대한민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작가가 지나치게 가볍게 짚은 것 아니냐고 지적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선 가상화폐로 돈을 번 사람보다 잃은 사람이 더 많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꼭 작가가 짚을 필요가 있을까?

모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다는 걸 냉정하게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상화폐 투자의 명암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싶은데 말이다.

딱 이 정도의 무게감이 좋다.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강화길 장편소설 『대불호텔의 유령』(문학동네)

용두사미.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떠오른 단어다.

1부와 2부가 마치 <삼거리 극장>처럼 잘 만든 컬트 무비(이 책의 홍보 문구에서 보이는 호러의 느낌은 별로 없다)의 분위기를 풍겨서 마지막을 기대했는데 아쉬웠다.

마지막 부분인 3부의 내용(그리고 이 작품의 주제로 보이는)은 책 뒤표지에 실린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원한을 이겨내는 사랑의 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대물림된 깊은 원한의 감정과 불신, 차별과 혐오를 '사랑의 힘'으로 이겨낸다는 결론은 조금 안이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추천한 작품이 대체로 쎄한 편인데 역시.

1부와 2부로 촘촘하게 쌓은 이야기의 힘이 마지막에 맥 없이 풀렸다면 지나치게 박한 평가인가.

조금 더 밀어붙였다면 좋았을 텐데.

대불호텔의 유령
대불호텔의 유령
정한아 소설집 『술과 바닐라』(문학동네)

요즘은 과거보다 못하지만, 초기에 대산대학문학상의 위세는 대단했다.

1회 당선자가 김애란 작가, 2회 당선자가 윤고은 작가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당선과 동시에 등단을 인정받고, 당선작은 계간 창작과비평 지면에 실리니 어지간한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 당선보다 권위 있고 실속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난다 긴다 하는 대학생 문사가 모두 공모를 노렸다.

내가 처음 응모했던 2005년 4회 공모의 소설 부문 당선자가 정한아 작가였다.

그런 인연(?) 때문에 나는 작가의 작품을 등단작부터 대부분을 따라 읽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나이가 들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소설을 읽는 일은 값싸게 간접적으로 다른 인생을 경험해보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따라 읽는 과정은 작가의 변화한 삶과 내 또래 여성의 내밀한 고민을 엿보는 일이기도 했다.

작가는 작품 속 다채로운 여성의 삶을 통해 '슈퍼맘'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모성애와 한 인간으로서의 욕망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성의 모습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준다.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고뇌, 엄마인 나와 한 인간으로서의 나 사이의 충돌, 모성과 죄의식 사이에서 느끼는 혼란, 막연한 불안감이 작품 곳곳에서 섬세하게 드러난다.

소설과 작가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 소설집은 지금까지 읽은 일하는 여성의 현실을 다룬 작품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은 작품이었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자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인 <달의 바다>와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를 읽으며 느꼈던 발랄함이 그립지만, 앞으로 작가가 나이를 먹으며 소설에 자신의 삶을 어떻게 녹일지도 기대가 된다.

독자로서 작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건 꽤 괜찮은 일이다.

술과 바닐라
술과 바닐라
하라다 히카 소설 『낮술』(문학동네)

제목답게 주인공이 술을 마시는 시간은 낮인데, 그 이유는 주인공의 직업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른 나이에 갑작스러운 임신으로 확신이 없는 남자와 얼떨결에 결혼했다가 짧게 살고 이혼한 여자다.

경제력 부족으로 딸을 전남편에게 맡긴 주인공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호구지책으로 '지킴이'라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야간에 고객에게서 의뢰받은 일을 하는데, 일의 종류는 말동무가 돼주는 일부터 청소까지 다양하다.

퇴근 시간이 낮이다 보니,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귀가 전에 반주를 마시는 일이다.


책은 짧은 에피소드 16개로 구성돼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술과 안주가 등장해 입맛을 돋운다.

주인공은 처음에 자괴감과 슬픔을 달래기 위한 목적으로 낮술을 마셨지만, 다양한 고객과 만나며 현실에 지지 않을 용기를 얻는다.

작가는 변화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술과 안주를 녹인다.

한 끼를 맛있게 먹기 위한 주인공의 집착이 꽤 귀엽게 느껴진다.


이 소설 내용을 그대로 20~30분 분량의 심야 드라마 16편으로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드라마 작가 출신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어쩐지 영상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오르더라.

술이 당긴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내용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따뜻한 작품이었다.

"결국 주문해버렸어. 기세 좋게 말이지"와 같은 일본 드라마 특유의 오글거리는 문장만 무시한다면 치유물로 훌륭한 소설이다.

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낮술 1 - 시원한 한 잔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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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필사 좋아하세요?문학편식쟁이의 수학공부! 50일 수학(상) 함께 풀어요.스몰 색채 워크샵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코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그믐 라이브 채팅 : 5월 16일 목요일 저녁 7시, 편지가게 글월 사장님과 함께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 봄, 시집 한 권 🌿🌷
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11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9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8여드레 동안 시집 한 권 읽기 6
자신있게 선정한 책들만 권합니다.
[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그믐북클럽Xsam] 16. <여섯 번째 대멸종> 읽고 답해요[그믐북클럽Xsam] 17. 카프카 사후 100주년, 카프카의 소설 읽고 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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