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과학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의 증거기반정책에 대한 철학적 분석.
그의 다른 책과 비교하면 말랑한 편이다. 철학이 현실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오늘날의 (과학)철학의 작업이 어떤 것인지 엿볼 수 있다. 무작위 통제 시험(Random Control Trial)은 황금률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특정 맥락에서 획득한 결과를 다른 맥락에서 적용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해 다룬다.
'64' 를 읽고 작가에 반해서 집어들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인물이나 분위기가 64와 닮았다. 가정에 실패한 중년 남성이 어떤 사건(작다고 하면 작은)을 추적하며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이야기. 마찬가지로 성장소설의 면모가 있다.
전성기를 지난 건축가의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이야기지만, 추리소설의 외피를 잘 두르고 있어 지루하지 않다. 건축과 관련된 여러 직업인들의 삶을 엿보는 것도 묘미다. 직업인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작가의 큰 장기다.
저자는 인터넷과 온라인게임, 사이버 음란물 의존증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한 정신과 의사로, 독일 미디어의존전문가협회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고. 한국 사례가 자주 나온다. SNS에 대한 비판도 눈여겨 볼 만.
성서와 성서 해석의 역사를 다룬다.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성서를 맹목적으로, 일방적으로 받들지 않았으며, 최근의 근본주의 가 오히려 더 ‘세속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미쿡 빨간물의 좌장 에릭올린 라이트의 리얼 유토피아까지 세 권을 나란히 놨어야 했구나!^^*
어려워 보이던 그 책, 항상 궁금했던 그 책,
평론가의 길잡이로 3월도 함께해요.
지난 평론가의 인생책 1에 이어 나머지 세 분의 평론가님들을 모시고, 그들의 인생책 함께 읽기 그 두 번째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이번에 함께해 주실 분들은 임정균, 전기화, 한영인 문학평론가입니다. 읽고 나누는 일에 진심인 이 세 분들의 인생책은 어떤 책인지 함께 읽고 밀도 높은 대화에 참여해 보세요.
신청 기간: 02/22~03/03 (아래 인생책 함께 읽기 링크 클릭하셔서 ‘참여 신청’을 하세요.)
모임 기간: 03/04~04/01 (모임은 29일간 열립니다. 참여 신청을 하시면 그믐의 알림과 개인 이메일로 모임 진행 상황을 안내해 드립니다.)
임정균 평론가
인생책을 찾으려고 책장을 살펴보다가 알았습니다. 인생책을 꼽기란 쉽지 않다는 걸요. 다만 한번 읽고 난 뒤에 곧장 처음부터 다시 읽게 되는 책들이 있습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도 그런 책 중 하나입니다.
전기화 평론가
함께 읽는다는 것은 혼자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라고 묻는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리베카 솔닛의 책 <멀고도 가까운> 함께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한영인 평론가
문학평론가. 시인 장정일과 『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 (안온북스, 2022)를 함께 썼습니다.
평론가와 ‘함께 읽기’ 란!
-책은 각자 준비합니다.
-모임지기인 평론가가 이끄는 방식에 따라 29일 동안 책을 함께 읽습니다.
-평론가가 던지는 책에 관한 질문에 답해봅니다.
-그날 읽은 분량에 대한 소감을 남기거나, 다른 참여자들의 단상을 읽고 내 생각을 보탭니다.
-책 한 권을 완독하는 동시에 책에 관해 깊고, 맥락 있는 대화를 서로 나눕니다.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그믐의 홍보활동을 위한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참여 관련 궁금한 사항은 gmeum@gmeum.com으로 문의 주세요.
*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2월호 ‘현경이랑 소설 읽기’ 꼭지에 게재된 글입니다.
제목: 시간이 가르쳐 줄 거야 / 글쓴이: 박현경(화가)
‘못하겠구나. 더는 정말 못하겠구나.’
엉엉 울며 깨달았다. 몸으로 느껴지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교장의 전횡(專橫)에 맞서는 과정에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도진 나는 그렇게 1년 2개월 정도 학교를 쉬게 됐다. 2022년 3월 중순의 일이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학교에 관련된 소식을 듣거나 생각하기만 해도 며칠간 증상이 악화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당장 퇴직을 하는 건 섣부른 결정일 수 있으니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복직할 것인가, 퇴직할 것인가?’란 질문을 머릿속 한켠에 구겨 담은 채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러다 누군가 그 문제를 물으면 대답했다.
“시간이 가르쳐 주겠죠.”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23년 2월 10일. 파리 체류 31일차 아침. 벨빌(Belleville)의 에어비앤비 아파트에서 잠을 깬 나는 아직 잠이 들어 있는 남편 곁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일기장과 스케치북을 챙겨 주방 식탁에 앉았다. 창밖 하늘은 흐린 편이었고 비둘기 떼가 이리저리 날았다. 유리창 너머 내려다 본 길목에는 출근하느라 바삐 걷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보였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일 년 전부터 계획해 준비한, 파리에서의 두 개의 개인전 중 두 번째 전시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이곳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 그리고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의 기분 좋은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었고, 가슴이 시리고 아프고 떨리는 불안 증상은 남아 있지만 스스로가 전반적으로 호전됐다고 느꼈다. 남편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늘 나를 지지해 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여기서 이대로 평생 살아도 좋겠다 싶었다.
뜨거운 차를 홀짝이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일기에 적고 어제 지출한 내역을 일기장 뒤쪽에 기록했다. 그런 다음에는 오렌지 주스를 유리잔에 따라 놓고 스케치북을 폈다. 크레용을 집어 어제 그리던 왼손 그림을 이어서 그렸다. 중간중간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씩 마셔 가면서.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내 의도대로 세련되게 그어지지 않는 서투르면서도 자연스러운 선들을 찾아 살리기 위해서였다. 또한 내 의도대로 매끈하게 채색되지 않고 들쑥날쑥 채색된 거칠고 제멋대로인 질감을 내기 위해서였다. 왼손으로 그림 한 점을 완성하려면 오른손으로 할 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내 의도대로 기민히 움직여 주지 않는 왼손에 일을 맡기다 보면 느껴지는 어떤 편안함이 있었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도 되고, 세련되지 않아도 되고, 매끈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시간이 오래 걸려도, 서툴러도, 거칠어도 좋구나. 그걸 지켜보며 느껴지는 어떤 자유로움이 있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일어나 차를 마시고 오렌지 주스를 마셨고, 평소처럼 일기를 쓰고 가계부를 적고 그림을 그렸다. 평소처럼 사람들은 개똥을 피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고 있었고 평소처럼 비둘기 떼는 하늘을 장악하고 거침없이 날았다. 평소처럼 내 왼손은 비뚤비뚤한 선을 그어 댔고 나는 그 선들이 그대로 다 괜찮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다 마셔 갈 때쯤 무언가 내 머릿속에 분명해지는 것이 있었다. 논리적 추론을 통해 도달했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껴지는 명쾌함이었다. 마침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러 주방에 온 남편에게 나는 말했다.
“복직할래요. 이제 복직해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몹시 부당한 일들을 마주했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저항했던 것이다. 그러다 입은 상처가 깊어 지쳤고 시간이 흘러 이제 다시 힘이 난 것이다. 하루하루 아쉽지 않을 만큼 마음껏 그림을 그렸고 먼 땅 파리에 와서 아쉽지 않을 만큼 마음껏 날갯짓하고 소통을 했다. 이런 순간들이 없었다면 나는 다시 힘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하루하루 아쉽지 않을 만큼 그림을 그릴 것이고 머나먼 땅까지 마음껏 날아가 전시를 할 것이다. 부당한 일을 마주하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저항할 것이고 그렇게 서투르지만 자유롭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나아갈 길이 막막할 때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간이 가르쳐 줄 거야.”
그림_박현경, 「숲 3」
우리 모두 태어난 이상 풍파를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풍파.
말 그대로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다 그렇다. 불행 앞에서, 인생 앞에서 공평하다.
44% (ebook)
빌린 책× 산 책× 만화책;)
슬램덩크는 넘나 소중해서 여적지 포장도 못 뜯음
Bgm 싸구려 ☕️
한때 수녀이기도 했던 세계적인 종교학자의 지적인 저작. 무신론자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초월적 실재는 이해가 아니라 체험의 대상이며, 종교의 핵심은 그걸 위한 수련인데 근대에 들어와 변질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