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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것들 - 회복과 충전, 다시 잘 살고 싶을 때 읽는 김창옥의 제안서
제주에는 담이 많습니다. 바람이 자주 부니 담을 쌓아 거센 바 닷바람을 막는 것이지요. 그런데 제주에서 세우는 담은 특별한 점 이 있습니다. 시멘트로 벽을 발라 완벽하게 바람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흔하게 널려 있는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대강 얼기설기 담을 쌓습니다. 그래서 제주 돌담에는 바람의 길이 있습니다. 돌 자체에 있는 구 멍과 돌 사이사이의 틈이 바람에게 길을 내어줍니다. 제주는 태풍 이 엄청 세게 불어서 제아무리 튼튼한 담이라고 해도 쓰러질 수밖 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얼기설기한 돌담은 역설적으로 완벽하 지 않아서 강한 바람을 견뎌냅니다. 바람의 길을 따라 강한 힘이 분산되고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냅니다.
제주에
제주에
888. 회색의 피터팬 (이시다 이라)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6권이자 한국에 번역된 책으로는 마지막 권이다. 일본에서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고 외전까지 나온 시리즈라 딱히 뭔가 마무리되는 느낌은 없다. 배용준과 한류가 인기를 끌 무렵이었는지, 욘사마와 한국 드라마가 언급된다.

회색의 피터팬
회색의 피터팬
887. 자살 반대 클럽 (이시다 이라)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5권. 일본에서는 그렇게 성공한 이 시리즈가 한국에서는 별 인기가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약간 떨떠름한 기분이 된다. 특정 시기의 일본 사회 분위기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내용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자연히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같은 명제도 의심하게 된다.

자살 반대 클럽
자살 반대 클럽
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20여년을 에디터로 성장한 저자의 편집론. 직업이라는 게 누군가의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업을 정의내리기가 모호할 때가 많다.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 위한 저자의 흔적이 담겨있음.

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에디토리얼 씽킹 - 모든 것이 다 있는 시대의 창조적 사고법
24-016 | 유희경, 이다음 봄에 우리는

아침달 시집 22 (240122~240125)


❝ 별점: ★★★★★

❝ 한줄평: 아름답고도 슬픈 겨울을 지나

❝ 키워드: 빛 | 사랑 | 겨울 | 슬픔 | 깜깜 | 밤 | 잠 | 꿈 | 감각 | 생각 | 감정 | 저녁 | 눈 | 그림자 | 사건 | 이야기

❝ 추천: 겨울과 봄 사이를 거닐고 싶은 사람


❝ 이다음 봄에 우리는 어느 무덤에서 울어야 할까요 ❞

/ 「이다음 봄에 우리는— 고백6」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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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희경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이다음 봄에 우리는』의 제목에는 봄이 들어가는데 표지엔 눈송이가 그려져 있다. 이유가 궁금했는데 읽다 보니 겨울 분위기가 스며 있는 시집이었다. 하지만 겨울의 슬픔과 쓸쓸함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이다음 봄의 우리’를 기대하게 하는 시집이었다.


✦ 『겨울밤 토끼 걱정』 낭독회에 갔었을 때 시를 낭독하시는 목소리가 참 좋았었는데,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시를 읽으니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 층의 감각」이라는 시는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시집이 가득하고, 고요해서 어쩐지 소곤소곤 말해야 할 것 같은 곳. 조만간 다시 가고 싶다.


✦ ‘목도리를 꺼내는 것을 깜빡하고, 스웨터에는 오래된 얼룩들’이 남아 있는데, 그렇게 겨울‘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겨울‘은’ 산다(「그런 잠시 슬픔」, p.18-19)는 말이나, ‘생각의 숨내를 맡은 것도 같아서 조그맣게 아름다워 참 슬프다 따위의 불면을 더듬거려보는’(「한밤의 기분」, p.47) 일, ‘예쁜 것을 본 적이 없는 삭이 자꾸 시간을 물어보고 남은 시간이 없었을때 괜찮다고 말하는’(「삭削」, p.82) 것. 슬프고도 아름다운, 아름답고도 슬픈 구절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이제 겨울이 돌아오면 유희경 시인의 시집도 떠오를 것 같다.


✦ 『겨울밤 토끼 걱정』에 실린 겨울 느낌이 담긴 시들이 좋았기 때문에 제목에 계절이 들어간 이 시집을 골랐는데, 좋았던시 목록을 정리하면서 아이패드로 필사를 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 다른 시집도 한 권씩 차근차근 읽어야겠다. [📝 2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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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그림자가 말했다.

천천히 들려줘요.


이제 나는 준비가 되었다.


2021년 가을

유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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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잠은 오지 않고 불면 그것은 감정이야 맞아 중얼거리며 끌어안듯 왼쪽으로 돌아눕는 것이다 이제 자자 잘 자 아쉬워하면서 이건 참 어쩔 수 없네 생각의 숨내를 맡은 것도 같아서 한 번 더, 이제 자자 잘 자, 하고 조그맣게 아름다워 참 슬프다 따위의 불면을 더듬거려보는 것이다

/ 「한밤의 기분」 (p.47)


❝ 

  빼내려고 애를 쓸수록 깊어지는 것이 있다 그날 밤 

  나는 사랑의 한끝을 붙들고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 잊어, 말해주는 사랑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디 좋은 것만 있겠어, 나는 대꾸를 해주었을 것이다

  사랑의 딱딱한 한끝을 놓아주고서 팔짱을 끼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지 몰라 딱딱한 몸을 가진 

  사랑은 묻어두고서 이제는 후회하고 있다

/ 「연작戀作」 (p.119-120)


  이제 문을 닫으려고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도 잊을 겁니다.

  문이 닫히고 나면

  남은 일은 문을 열고 나서는 것. 그러니,

 

  천천히 들려줘요. 내게.

  이다음 봄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 부록 | 그림자의 말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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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던 시


Ⅰ. 그 겨울은 누구의 장례였나

✎ 「겨울 정오 무렵」 ⛤

✎ 「선한 사람 당신」 ⛤

✎ 「빈 코트」

✎ 「그런 잠시 슬픔」 ⛤

✎ 「지독한 현상」

✎ 「밤은 잠들지 못하고」

✎ 「보이지 않는 꿈」

✎ 「돌아오는 길」

✎ 「이 층의 감각」 ⛤

✎ 「보이지 않는 소리」

✎ 「한밤의 기분」 ⛤


Ⅱ. 고백은 필요 없는 것

✎ 「아직은」 ⛤

✎ 「어머니의 검진 결과를 기다리던 병원 로비에서」

✎ 「오송」

✎ 「겨울, 2007」 ⛤

✎ 「오래된 기억」

✎ 「이다음 봄에 우리는」

✎ 「녹은 눈을 쓸어내기」

✎ 「봄에 가엾게도」

✎ 「잃어버린 사월과 잊어가는 단 하나의 이야기」

✎ 「추모의 방식」


Ⅲ. 이야기의 테이블

✎ 「니트」

✎ 「그치지 않는다」 ⛤

✎ 「삭」 ⛤

✎ 「아름다운 개 파블로프」 ⛤

✎ 「마른 물」

✎ 「의자들 있는 오후」

✎ 「가변시력」

✎ 「빈 테이블 서사」 ⛤

✎ 「기린 인형」

✎ 「세계에 대해, 조금 더 적은 측면으로」

✎ 「연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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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음 봄에 우리는
이다음 봄에 우리는
24-015 | 김병운, 위수정, 이주혜, 소설 보다 : 봄(2022)

문학과지성사 (240106~240124)


❝ 별점: ★★★★☆

❝ 한줄평: 양가감정이 담긴 세 편의 이야기

❝ 키워드: 양가감정 | 용기, 정체성 | 사랑, 욕망 | 무게, 기다림

❝ 추천: 사람의 마음과 양가감정이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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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부터 문학과지성사의 이 계절의 소설 ‘소설 보다’ 시리즈를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출간된 책들도 한 권씩 모으고 있다. 이 책은 김병운, 이주혜 작가님의 글이 실려 있어 구매했는데 세 편 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았다. 


✦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이주혜 작가님의 단편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2023년 가을 편의 「이소 중입니다」를 읽고 『누의 자리』를 찾아 읽었을 때 참 좋았어서 이 단편도 궁금했는데 ‘쓸모’와 ‘무게’, ‘오해’와 ‘이해’,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단어들을 엮어 내려간 이야기가 조금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웠다. 


✦ 김병운 작가님과 이주혜 작가님은 여기 실린 단편들이 수록된 소설집을 내신 걸 알고 있어서 그 소설집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어봤는데 소설 보다 시리즈는 ‘이 계절의 소설 선정의 말’과 인터뷰를 함께 볼 수 있어 작품과 작가를 더 깊이 알게 해 줘서 참 좋다. 올해도 이 시리즈는 쭉 구매해서 읽어야지. [📝24/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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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윤광호」

: 용기의 문제가 아닌 시간의 문제라는 말


| 이제 와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쪽으로 걸어가는, 그래서 자꾸만 나의 위치와 한계를 자각하게 만드는 광호 씨의 용기를 경계하면서도 선망했던 게 아닐까 싶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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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정, 「아무도」

: 사랑해서 원하는 것과 원해서 사랑하는 것의 차이는


| 어떤 마음은 없는 듯, 죽이고 사는 게 어른인 거지. 그렇지?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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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혜,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

: 이해와 오해, 그 사이의 엄청난 무게


| 나는 그런 내 몸을 구해줄 생각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것들의 무게가 궁금했다. 사토 상 미소의 무게. 그 사람 기다림의 무게. 사장이 나를 선택했을 때 내게 부려놓은 소문의 무게. 아버지가 돌리던 자전거 바큇살 사이의 무게. 우리 구은정 양, 다리 벌렸니? 소희 언니가 별안간 터뜨린 눈물의 무게. 내 안에 새로 생긴 빈자리의 무게. 그 없어짐의 무게.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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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저는 이 소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까스로 인정한 사람이 결국 긍정하는 데는 실패한 이야기라고 봤고, 구애에 대한 거절을 존재에 대한 거부로 인식하게 되는 이런 상황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윤광호에게도 익숙할 거라고 상상했어요. 활동가이기 이전에 게이 남성으로서 윤광호에게도 수많은 거절과 좌절로 점철된 사랑의 역사가 있을 테니까요. (김병운 × 선우은실, p.50)


| 모두 ‘참는’ 어른들 사이에 희진만이 따로 떨어져 있다가 결국에는 ‘아무도’에 심지어 희진 자신조차 포함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때에 느끼는 그 쓸쓸함은 너무 깊어요. 단지 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소설’만이 그 ‘아무도’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닐까요. 뜨거웠던 희진의 감정을 소설은 영원히 담아둘 수 있을 테니까요. 말씀하신 안도라는 감정은 깊은 고독 안에서만 가능한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더 슬퍼지지만. (위수정 × 이소, p.101)


| 사장이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은정은 감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어쩌면 이고 진 게 너무 많은 은정에게 사랑은 더할 엄두가 나지 않는 가장 무거운 짐이 아니었을까요? (이주혜 × 이희우,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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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봄 2022
소설 보다 : 봄 2022
냉면 좋아하십니까?

저는 냉면을 참 좋아해요.

함흥식 냉면도 좋아하고.

평양식 냉면도 좋아합니다.

전라식의 예쁜 고명이 올라간 냉면도 좋아해요.


진정한 냉면 러버는 물냉을 먹어야 한다고 친구가 간혹 물냉 부심을 부리지만,

돼지갈비에 싸 먹는 매콤한 함흥 냉면이 얼마나 맛있다구요.


21년 3월 안전가옥에서 냉면을 주제로 한, 총 다섯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엔솔로지가 나왔습니다.


일반문학이였지만 말랑한 이야기가 좋았던 김유리 작가님의 [A,B,C,A,A,A]


다 읽고 나니 중화냉면이 먹고 싶어지게 된 범유진 작가님의 [혼종의 중화냉면]


그런 걸로 만든 육수라니 너무 무섭습니다만, 뭐로 만든건지 모르고 한 번쯤은?

먹어봐도? 싶었던 dcdc 작가님의 [남극낭만담]


읽는 내내 아 설마?싶었고 오싹했던 전건우 작가님의 [목련면옥]


아무리 내가 하와이안 피자를 좋아해도 냉면은 좀;;; 했던 곽재식 작가님의

[하와이안 파인애플 냉면은 이렇게 우리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야기 하나 하나가 냉면 러버에게는 즐거웠던 책이였습니다.


한겨울, 소면 한 웅큼 삶아 찬물에 착착 헹궈내고 채반에 탁탁 털어 물기를 빼어

그릇에 담은 뒤 살얼음 동동 얼은 뽀얀 동치미 국물 세 국자 아니 네 국자.

동치미 무우도 건져 종종 썰어 올려 먹던 한겨울의 그리운 맛.


동미치 물국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또 이거대로 冷麵


냉면
냉면
The Pursuit of Power:Europe1815~1914

이 책의 原題(원제)는 The Pursuit of Power; Europe1815~1914이다.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유럽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 리차드 에반스는 아주 저명한 독일사 연구자이며 1947년생으로 지금까지 18권의 책을 쓰고 역사연구에 대한 공로로 영국에서 기사 작위를 받았다고 한다.


거의 천 페이지에 육박하는 내용이지만 워낙 다양한 주제와 사건을 언급하고 있어 때로 일정 부분은 너무 성글게 묘사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이 시기 100년은 유럽의 ‘근대’라는 개념에 정확하게 딱 들어 맞는 역사적 시간이 분명하고 그 만큼 이 시기를 압축적으로 개관하기에는 대단히 좋은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사회의 21세기 현재 시점은 조선시대가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에 맞닿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단절적 시공간과 기묘하게 접착되어 있다는 느낌은 ‘그래도 다행이야’라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나폴레옹 몰락부터 세계1차 대전까지의 시기는 유럽에서 대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시기로 평가한다. 나폴레옹을 패배시킨 이후 유럽 諸國(제국)은 프랑스 혁명과 같은 사회적 변동을 막고 국제적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의 수상 메테르니히를 중심으로 ‘비엔나 회의Viena Congress’를 갖는다. 이 비엔나 회의는 유럽 諸國(제국) 지배계급들의 일종의 반동적 연대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48년 혁명’을 계기로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1789년 혁명’과 달리 확실히 프랑스 국경을 넘어 전유럽으로 확산이 된다. 이때 메테르니히도 영국으로 망명 하게 된다. 이것을 지나치게 단순화 시켜 ‘민주화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된다면 급진적 변화 대신 점진적 민주화가 전개되는 역사적 과정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썼기 때문인지 특히 7장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사를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했다. 여성의 참정권이 유럽에서 일반화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사건이다. 여성의 참정권은 이 점진적 변화의 대표적 예인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 혁명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계급적 각성만큼이나 민족주의적 각성도 촉발시키는 사건이었다. 전유럽이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에 낭만적 혁명적 에너지를 분출시키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민족주의가 유럽의 평화를 깨고 세계 전쟁으로 확산되는 인화성 강한 매우 폭발적인 연료였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뽕’이라고도 표현되는 과도한 민족주의의 ‘전형’은 이 시기에 연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이 시기에 유럽에서 산업 혁명이라고 하는 또 다른 맥락의 대사건이 일어난다. 18세기 증기기관과 같은 기계적 측면에서의 혁신을 1차 산업 혁명이라 한다면 19세기 후반의 과학을 기반으로 한 산업혁명을 2차 산업혁명이라고 규정한다. 또,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허버트 스펜서 같은 이에 의해서 사회진화론으로 외연이 확장되고 이 시기 중산층을 비롯 서유럽의 백인들은 인종적 우월감에 도취 되어 그 자만이 하늘을 찌르게 된다.


산업혁명과 민족주의는 일종의 시너지를 가지면서 제국주의 식민지 확보 경쟁에 나서게 된다. ‘제국주의imperialism’이라는 단어는 1870년대에 처음 등장하게 되는데 식민지 경쟁에 참여하는 유럽 국가들의 인민은 이 ‘제국주의’라는 표현으로부터 차오르는 국뽕에 모두가 탐닉하고 있었다. 이 시기 서유럽 백인 국가들은 세계사(다른 말로 세계 지배)의 정점에 서게 된다.  


한편, 대서양 양안에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이것은 다시 아프리카 내륙이라는 음지로 숨어들며 연명하게 된다. 산업혁명을 통해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된 서유럽 국가들은 더욱 거침없이 아시아, 아프리카에 대한 식민지 경쟁을 가속화시키며 아프리카의 플랜테이션 농업에 노예노동을 통해 자본주의적 이윤을 극대화 시킨다.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 사회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 21세기에도 단절되기 힘든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 보면 미국 흑인들의 운명이 가장 은혜로운 실존조건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은 독일 통일로 인해서 ‘독일’이라는 신흥 강국의 출현이라는 한 요소와 오스트리아, 오스만 투르크와 같은 구제국의 몰락으로 인한 지정학적 힘의 공백이라는 또 다른 요소 때문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의 약화로 발칸반도가 무주공산이 되면서 비엔나 체제 이래의 현상 유지status quo 국제질서가 깨지게 되는 것이다.


1895년 청일 전쟁은 유럽 열강들에게 ‘드디어’, ‘마침내’ “중국”이라는 만찬을 해치울 시기가 무르 익었음을 나타내는 시그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의화단의 난(1905)’은 중국을 삼키고 소화시킬 수 없는 먹잇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결정적 사건이 된다. 이 시기는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문명의 주변부 국가가 중심국가로 떠오르는 역사적 변곡점이기도 했다.(에도막부가 도쿄에 열리는 시기는 이미 생산력에서 한반도를 크게 앞서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통해 유럽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재화시키고 그것이 사회발전의 동력을 더욱 가속화시킨 것이 제국주의 전쟁으로서의 1차 세계대전이라는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등치시킬 수 있는 개념이라고 확증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현재, 중국의 굴기는 19세기 독일통일에 비견할 수 있는 것처럼 국제질서의 현상 변경의 진원지처럼 비춰진다. 그래서, 이것이 역사적 데자뷰가 아닌지 모두 경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국가 자본주의가 독일의 국가자본주의와 너무나 그 성격이 유사해 보이기 때문이다.


24-014 | 목정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아침달 (240113~240123)


❝ 별점: ★★★★★

❝ 한줄평: ‘슬픔을 아는 아름다움’에 관해 말하는 책

❝ 키워드: 공연예술 | 시간 | 소멸 | 기억 | 공허 | 슬픔 | 아름다움 | 사랑 | 고유함 | 사라짐 | 흔적 | 사람

❝ 추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이 아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 우리는 실체가 있는 것만을 사랑할까. 혹여 본 적 없는 얼굴을 더욱 사랑할 수도 있는 걸까. ❞

/ 「봄의 제전」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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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흥미롭고 공연예술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서 예전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던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에세이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었다. 


✦ 문학을 공부하며 희곡 수업은 거의 다 들었고 연극들을 많이 보러 다녔다. 무대 상연을 전제로 하므로 희곡 자체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완성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연극을 보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텍스트를 읽을 때 상상만 하던 것들이 무대에서 구현되는 것은 마법 같았다. 상연되는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져 버리는 마법. 그때 본 연극들의 감상을 제대로 기록해 두지 않은 것이 아쉽다. 순간일지라도 기록해 두었다면 조금은 잡아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 작가도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에 발생과 동시에 소멸하며 남는 것은 기억뿐인데 그마저도 금세 바스라진다’(「뒤늦게 쓰인 비평」, p.5-6)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라지기에 실체가 없는 것’을 사랑할 수 있으므로, 사라지는 것들에서 슬픔보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작가가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도 참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솔렌과 장 끌로드 아저씨와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솔렌」, p.40)이어서 그 일을 좋아한다는 솔렌과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에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공연 티켓을 건네주는 것으로 작가에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선물’한(「장 끌로드 아저씨」, p.150) 장 끌로드 아저씨. 이들이 사라지는 것들의 슬픔보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 기대한 것보다 더 슬프고 아름다운 글들이어서 참 좋았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김동현 선생님께」, p.67)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을 것 같다. [📝 2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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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집을 영원히 돌려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저를 깊이 위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일, 낯선 서울의 겨울을 산책하는 동안에도 아마 그것을 끝내 다행이라 생각할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덕분에 저는 아득한 희망을 안고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 「김동현 선생님께」 (p.67)


| 돈 지오반니가 내게 외치고 간 말은 분명 삶을 끝까지 노래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명령을 계속 울라는 말로 치환할수 있다면. 그제서야 나는 그 무거운 지속을 짊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꽁띠뉴에. 나는 사라지지만 당신들은 울음을 계속우세요. 나와 당신들이 외면하지 않은 세계의 아픔에 대해.

/ 「꽁띠뉴에」 (p.88)


| 아저씨가 내게 한없이 권한 먼 아름다움. 그것이 단순한 선의 이상의 것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차가운 새벽이나 뜨거운 한낮, 나를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준 사람. 그는 내게 아프지 않은 세계를 주었다. 고통을 다루더라도 화해가 이루어지는세계. 때로 비참한 결말일지라도 죽음 직전엔 반드시 고결한 노래가 흐르는 세계. 연극에서와 달리 오필리어가 물에 빠지는 장면이 직접 다뤄지는. 우리가 몰랐던 말, 현실에 없었던 말, 영영 못 들을 말이 전해지는 세계. 나는 떠나지만 당신을 영원히 사랑했을 것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 나는 장 끌로드 아저씨에게 오페라를 빚졌다.

/ 「장 끌로드 아저씨」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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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886. 전자의 별 (이시다 이라)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시리즈 4권. 이 시리즈 처음 읽을 때만 해도 싸움 잘 하고 영리한 백수 청년의 유쾌한 뒷골목 모험담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던 나이였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러기 어렵다. 작가가 이 시리즈를 30대 후반부터 썼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전자의 별
전자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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