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비의 상승과 환율로 인해 출장비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과연 이런 공허한 책에 25,000원의 가격을 책정한다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인가?
장강명의 '나무가 됩시다'는 서울리뷰오브북스(1호)에 실린 단편이다.
별다른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장강명이란 이름은 서점 매대에서 본 기억이 있으나 그뿐이었다. 공상과학이라는 장르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금새 몰입해서 읽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운이 남았다.
달리기와 요가를 소재로 하는 에세이를 애써 찾아 읽는다. 내가 몸으로 느꼈던 불편함과 통증을 다른 이의 언어로 표현되는 것이 늘 궁금하다.
잡지사에서 야근과 과로와 번아웃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졌던 저자는 가로수길의 요가원에서 수행하고 발리와 태국의 요가원에서 또 수행하다가 같이 갔던 동료와 결혼하고 잠시 비건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돼지고기는 구워먹고 퇴사하고 요가 지도자 코스를 시작한다.
생애의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요가 수행으로 극복하는데 그 트라우마의 본질을 거슬러올라가다보면 잡지사 시절의 관행적인 과로 그리고 어린 시절 사립 학교 시절 교사였던 아버지가 주말 근무하고 퇴근해 낮잠 잔 아들에게 잠자는 건 죽어있는 거와 같으니까 늘 깨어있으라는 일침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크리티컬한 트라우마가 ‘과로’였다니! 대체 과로라는 개념이 한 인간의 인생에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문장도 난해한데, 읽는 이가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 느낄 수밖에 없는 혐오감에 주인공의 자기혐오가 겹쳐 책장 넘기기 힘들었다. 작가가 지적장애가 있는 장남을 낳은 다음해 발표한 작품이라 그냥 픽션으로 읽게 되지 않는다.
헨리 제임스의 초기 대표작. 순진하고 맹한 젊은 여인이 남자들과 어울리기 좋아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비난을 받고, 다소 뜬금없는 결말을 맞는다. 작가가 그런 시대를 고발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존 ‘둘러보기’ 메뉴 이름이 ‘홈’으로 바뀌었습니다.
로그인한 후 홈에 들어가면 회원님이 참여 중인 모임을
최대 5개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최상단에 배치해 두었어요.
이 외 프로필 관리를 비롯해 내 모임, 내 블로그, 찜 목록 등
내가 즐겨 찾는 것들을 한 곳에서 쉽게 이용하실 수 있도록 모아 두었습니다.
더욱 편리하고 깔끔해진 공간에서 책에 관해 즐 거운 대화 나누어요.
변경된 사이트에 궁금한 사항이나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1:1 문의를 통해 연락해주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그믐은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국천문학회, 영국지리학회, 영국행성학회 회원인 저자의 과학 에세이. 주로 천문학에 대한 내용이고, 가끔 외계인 관련 음모론들을 신랄하지만 가볍게 조롱한다.
저자가 ‘무역이 아니라 노동 차익거래’라고 비난하는 그 경제행위가 지구적 관점에선 부의 재분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테러방지법 등 논점이 빗나가는 대목도 많다.
서학 서언
페이지 5
모든 일에는 행간이 있다. 행간을 뺀 정보는 죽은 정보다. 행간이 정보에 그림자를 드리워야 그 정보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이 책은1770년대 중반 이후 조선 천주교회 태동기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 길지 않은 시기를 다룬다. 조선을 관통한 서학이 일으킨 소용돌이와 그 와중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서 살폈다.
서학의 수용과 배척이 노론 벽파와의 정쟁에서 오랫동안 열세에 몰렸던 남인 내부의 전쟁으로 확산된 것은 큰 비극이었다.
체제공을 정점에 둔 남인이 신서파와 공서파로 갈려 싸웠다. 그들 스스로 가난한 두 과부의 싸움이라고 비유했을 만큼 얻은 것 없이 서로에게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서학과의 접촉과 접속은 내부의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이 되지 못하고 위정척사의 명분 아래 세도정치에 날개만 달아주었다. 그 결과 수많은 서학죄인의 순교의 피가 강물과 산하를 붉게 적셨다.
시복시성을 위한 신앙 행위의 증거 자료?
다산은 자신의 모든 글에서 천주교에 관한 한 철저하게 자기 검열을 가했고, 진실을 숨겼다... ... 다산이 숨긴 진실은 행간에 가려져 있다. 복잡한 퍼즐을 다 맞춰야 그림자가 드러난다.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만 해도 그렇다. 관변기록이나 척사파의 글속에서 그는 한결같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야비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로 묘사되었다.
성교요지는 최근 개신교 쪽 연구자들에 의해 1863년 윌리엄 마틴 목사가 선교사에 대한 한자 교육 목적에서 한문으로 짓고 영문으로 번역까지 한 상자쌍천을 한글자도 바꾸지 않고 주석까지 그대로 베낀 것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 전한 것을 마틴이 그대로 베낀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까지 나왔다 이벽을 위하려다 이벽을 욕보이고, 김대건 신부를 무함하고, 아무 잘못 없는 마틴 목사를 도둑으로 몰기까지 하는 파렴치한 논리이다.
지석사발에 적힌 글씨가 한눈에 다산의 글씨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 이 과정에서 윤지헌과 새로 만나 예정에 없던 글 몇 꼭지를 더 쓰게 되었다.
다산이 가성직제도 아래 10인의 신부 중 한사람이었다거나 ... ...
심문장에서 정약망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다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우리 집안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약망'은 다산의 세례명인 '요한'이었으니, 정약망을 모른다 함은 자기 부정의 극치였다.
이 책은 통사가 아니어서 전체 글이 하나의 줄거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편마다 쟁점을 두어 논점을 검토해가는 방식으로 집필했다.
중간자적 시각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만 안 보이던 지점이나 보지 않았으려 외면했던 사각지대들이 명징하게 드러나 실상에 다가설 수 있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는 해석을 통해서만 생기를 얻는다. 해설을 해석으로 착각하면 학문은 없다. 자료에서 의미를 끌어내는 것은 질문과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일부 비판과 비난을 분간하지 못하는 편협한 태도는 곤란하다.
사람은 가고 흐릿한 기록만 남았다. 그렇다고 그 긴박했던 절체절명의 시간이 순금으로 빛난던 헌신이 낡아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한번씩 그들의 시간 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울컥하곤 했다. 전 생애를 걸고 신앙의 길 위에 섰던 순백한 그들의 결심 앞에서, 결단 없이 우물쭈물 머뭇거리는 나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