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와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싶다. 외부의 시선과 상관없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언제 가치 있는 투쟁이 되고, 어떤 때 우스꽝스러운 정신승리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타인의 인정이 중요한 요소일까? 아니면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걸까?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인정하기만 하면 우스꽝스러운 정신승리도 가치 있는 투쟁이 되는 것일까?
심오하다기보다는 예쁜 책이라고 느꼈는데,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흰 눈으로 봤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중 영화나 베스트셀러 도서에서 혼돈과 질서, 의미를 향한 추구 같은 주제를 다룰 때 이제 실존 위기가 (적어도 선진국에서) 모든 사람의 문제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신의 빈 자리를 감흥이 대신할 수 있을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비극을 즐길 수 있을까?
일요일에는 HJ가 또 노트북을 켜고 일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아침에 그녀에게 나가서 브런치를 먹고 오자고 꾀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그날 또 일에 매달리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었기에, 내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오전 10시경이었는데 처음 찾아간 팬케이크 가게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밖에서 입장을 기다리는 팀이 11팀이나 있었다. 엄청나게 인기가 많은 곳이구나, 감탄하며 다른 블록으로 갔다. 그런데 두 번째로 찾아간 브런치 카페에도 자리가 없었고 밖에서 대기 중인 사람이 여섯 팀이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주말에 브런치 먹기를 좋아하나? 우리가 게으른 건가? 그냥 요즘 우리는 뭘 시도해도 잘 안 풀리는 불운의 시기에 접어든 건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른 블록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세 번째로 찾아간 베이커리 겸 브런치 카페에는 빈 테이블이 있었다. 게다가 분위기도, 맛도 훌륭했다.
나는 오믈렛을, HJ는 루꼴라 샌드위치를 먹고 각자 가져 온 책을 읽었다. HJ는 요조의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읽었는데 많이 위로가 된다고 했다. 그 책에는 내 이야기가 두 페이지 정도 언급되기도 해서 HJ가 그 부분을 내게 보여주었다.
브런치 카페에 두 시간가량 앉아 있다가 공원을 거쳐 집에 돌아왔다. 길섶에는 선명한 파란색 꽃잎을 지닌 작은 풀꽃들이 피었고 벌들이 거기서 꿀을 따고 있었다. 민들레도 조금 피었고, 개나리와 벚나무에는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집에 돌아와 벌들이 좋아하던 꽃 이름을 찾아보니 큰개불알풀의 꽃이라고 했다. 이름이 민망해서 ‘봄까지꽃’으로 바꿔 부르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봄이 올 때까지 피는 꽃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이걸 사람들이 오해해 ‘봄까치꽃’이라고 잘못 쓴다고 한다.
오후에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와서 다시 HJ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힘들었을 때에는 HJ가 꼭 그렇게 나를 돌봐줬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역할이 바뀌었다. 부부란 이런 건가. 남들은 우리 부부 보면서 부러울 것 없는 처지라고 여길 텐데, 10년 전, 아니 5년 전과 비교해 봐도 우리가 분명 형편이 나아졌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복국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HJ의 말을 듣고 동네 복국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문이 닫혀 있어서 그 옆의 미역국 전문점에 들어갔다. 아무 기대 없이 가자미미역국과 멍게비빔밥을 먹었는데 둘 다 너무 맛있었다. 가자미, 미역국, 멍게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구나. 그래, 아까 브런치 카페도 그렇고 지금 미역국도 그렇고, 인생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실망할 것 없어! 그런 얘기를 나눴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우리가 종종 찾아가는 동네 LP 바에 갔다.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아서 HJ는 오렌지 주스를, 나는 메뉴판의 논알코올 음료 카테고리에 있는 망고 비어를 주문했다. 이름에 ‘비어’가 들어가니까 여기에도 써본다.
대만의 망고맥주는 아니고, 인터넷을 뒤져도 그 이름으로는 어느 호프 프랜차이즈만 나온다. 그 LP 바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칵테일인 것 같다. 주황색 탄산음료 위에 생크림을 올린 칵테일인데, 생김새는 루트비어 플로트와 비슷하다. 그런데 루트비어가 아니라 진저비어로 만들고 설탕을 엄청 넣은 것 같다.
1990년 이후로는 신곡이 나오지 않았다는 태도로 늘 영미 올드팝만 틀던 바였기 때문에 스피커에서 K-팝이 나왔을 때 좀 놀랐다. 사장이 출근을 안 하고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던 직원이 바를 맡고 있어서 그런가? K-팝이 두서도 없이 연달아 흘러 나왔다. 알고 보니 우리 뒤 테이블의 한 중국인 청년이 계속해서 리퀘스트를 신청하고 있었다. 대단한 K-팝 애호가였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뭐라 불만을 드러낼 상황이 아니었다. 중국인 청년과 그의 한국인 동행인 젊은 여성 한 사람이 우리 부부보다 가게 매상을 스무 배쯤 더 올려주고 있었다. 중국인 청년은 위스키를 한 병 다 비우더니 보드카 한 병을 새로 주문했다. 엄청난 주량이었다.
그런데도 청년은 얼굴이 조금 풀린 것 외에는 별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고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노래를 신청할 때에는 매우 정중하고 살짝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있어서 귀여웠다. 무엇보다 그가 K-팝을 들으며 너무 행복해 하고 감격스러운 표정이어서 나중에는 옆에 있던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리버풀에서 비틀즈 음악을 듣는 심정이었나 보다.
고맙습니다
행복을 퍼뜨리는 능력
슈퍼 히어로
중국인 청년 일행도, 우리도, 오후 10시까지 있다가 바가 문을 닫을 때 나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수도권의 다중이용시설들은 아직도 오후 10시까지만 영업을 할 수 있었다. 나가기 전에 스피커에서 앤 마리의 〈2002〉가 흘러 나왔다. 나는 스매싱 펌킨스의 〈1979〉를 떠올렸고 그 사이에 20여 년이 흘렀다는 데 새삼 놀랐다.
〈2002〉에는 ‘우리가 사랑에 빠졌던 날’이라는 후렴구가 있다. HJ와 나는 그보다도 더 일찍 사랑에 빠졌다. 집에 천천히 걸어왔다. 나는 반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별로 춥지는 않았다.
『공중그네』 2탄. 같은 주인공에, 같은 포맷, 비슷한 내용이다. 여전히 즐겁다. 천진난만, 순진무구가 과연 현대의 해독제일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난 그늘 있는 인간이 좋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런 인간이 되었고.
재미있고 못된 장난을 같이 치는 기분. 소설로 읽으니까 안전하고 유쾌하지, 실제로 이런 의사 만나면 환장할 테지. 마지막 단편 주인공이 소설가인데 읽으며 뜨끔했다.
어느새 그믐이 다되어가네요. 함께한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생각하며 읽었네요.
마지막까지 읽으면서 어른이라는 것이 권위적인 것도 부담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자신으로부터 숨지 않는 것, 죽음에 다다를 때까지 성장한다는 것이 어른이라는 말. 마음에 새기고 싶네요.
자신으로부터 숨지 않는다는 것, 정말이지 바로 이거다.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야말로 성장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이고, 내가 지금껏 10만 단어를 동원해 말하려고 애써온 것이다. 430쪽
자기 자신으로부터 숨지 않는다는 것은 계속되는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이며,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 방식에, 나 역시 여전히 알아내려 애쓰고 있는 그런 방식에 자기 자산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431쪽.
결국 또 내가 만들었네;
나의 세번째 책 📚
예전에 쓴 글들이라 ebook으로만.
우선 ㅎㅎ
독자를 배신하는 이야기 진행과 살짝살짝 드러나는 그로테스크함이 좋다. 전작 『지우전』의 토속 분위기나 호방한 맛은 없지만, 더 예쁘고 깔끔한 느낌. 두 이야기 모두 친근하게 시작해서 엉뚱하게 튀었다가 ‘돌아온다’. 웹진 《거울》을 창간하고, 꾸준히 열심히 쓰는 작가를 멀리서 응원한다.
이 책이 나온지 14년이 됐구나. 발간 당시에는 소장 학자들로 불렸을 국내 과학철학자, 미학자, 기계비평가들이 함께 썼다. 어렵지 않고 정말 좋은 교양서라 두 번 정독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몇 번 추천했다. 기술에는 어떤 힘이 있는가? 그 힘은 인간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 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묻고 성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