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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촌탕반@용산역

다들 그렇듯 나 역시 역사내에 있는 식당들에는 기대감이 없는 편이다.

기차역, 버스 터미널에 있는 식당들은 단골장사가 중요한 동네 식당과 달리 맛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과 달리 제법 괜찮은 식당들도 만나곤 한다.


춘천에서 돌아오는 길, 용산역에 도착해 한촌탕반이라는 설렁탕집에 가서 불고기비빔밥, 떡만두국을 시켰다. 둘 다 간이 세지 않고 속이 편안했다.

위치는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23길 55 용산역. 동관 4층

436. 아이도루 (윌리엄 깁슨)

 요즘 누가 버추얼 아이돌과 결혼을 선언한다고 눈길이나 모을까? 그 버추얼 아이돌 기획사의 법무팀은 “또” 하고 한숨을 쉬며 대응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는 『뉴로맨서』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예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멋진 신세계』나 『1984』와 달리 수명이 다한 작품이라 느껴지는 건, 애초에 속알맹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지.

아이도루
아이도루
435. 뉴로맨서 (윌리엄 깁슨)

 1980년대에 PC 잡지를 통해 이 소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번역본을 처음 읽은 것은 1995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이후 원서로 정독했고, 새 번역본이 나왔을 때에도 꼼꼼히 다시 읽었다. 읽을 때마다 감흥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영화 《매트릭스》 1편이 나왔을 무렵에는, 아, 《매트릭스》보다 『뉴로맨서』가 훨씬 나은데, 하고 투덜거릴 정도의 애정은 있었다. 사이버펑크라는 단어와 분위기는 그때가 끝물이었던 것 같다. 안철수 씨가 첫 출마선언문을 발표했을 때는 ‘생뚱맞게 웬 윌리엄 깁슨?’ 하고 고개를 갸웃할 지경이었다.

뉴로맨서
뉴로맨서
장강명 작가에 대해서 쓰게 된 계기

이런 말을 하는게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장강명 작가를 정말 좋아한다. 작가 분이 쓴 르포, 논픽션, 에세이를 굉장히 좋아한다. 소설도 훌륭하지만 장강명이라는 한 개인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르포나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생각을 전개하는 방식과 문체 관점의 신선함을 좋아한다.


언젠가 한번은 장강명 작가와 작품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남겨보고 싶었는데 블로그 등을 하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쓸지 고민했었는데 마침 이런 독서 소모임 같은 공간이 생겨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처음 접한 작가의 책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책이었다. 아마 당시의 헬조선 트렌드에 맞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터라 접하게 되었는데 괜찮은 책이구나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구나 정도만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내가 보다 주목하게 된 것은 '댓글부대'와 '5년만의 신혼여행'이란 책이었다. 특히 두번째 책은 그 때까지 읽은 에세이 중 가장 충격적이고 재밌었던 책이다. 아마 그 이후에 나온 작가의 르포나 에세이에 의해서 기록이 깨지긴 하지만 여전히 그의 저작 중 수위권에 드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도발적이고 솔직한 생각을 가감없이 전개해나가는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고, 이런 것까지 글로 쓰도 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댓글부대는 정치적으로 인터넷 댓글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인터넷 상에서 어떻게 여론이 형성되고 조작되는지가 극단적인 리얼리티와 작가의 상상력이 어울러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가급적 전작을 다 읽으려 하는 편이지만 대부분 그렇지는 못하다. 장강명 작가도 그렇다. 그의 초기 작들은 손이 잘 가지 않았고 SF 적인 경향을 가진 작품도 잘 읽지 못하였다. 하지만 좋아하는 작품들은 거듭 꼼꼼히 읽었고 신작뿐만 아니라 칼럼 같은 글들도 새로 나온 글들을 체크해서 읽는다. 본가가 부산이라 부산에 책이 있는데도 지금 읽고 싶어서 책을 사기도 하고 전자책을 좋아해서 전자책으로 나온 작품은 전자책으로도 사서 틈틈이 읽는다. 장강명 작가의 책이 평균적으로 이만권 정도 팔린다고 하는데 나는 보통 종이책으로도 사보고 전자책으로도 사 보고 작가가 출간한 책의 60 ~70% 정도 되는 책은 가지고 있으니 상위 10% 안에 드는 애독자는 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몇몇 포기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꼼꼼히 읽고 좋은 내용들은 와이프한테도 자주 이야기 한다. 와이프가 장강명 작가 관련 행사 있으면 찾아서 가보라고 할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그래도 장강명 작가의 팬 중에서도 손 꼽히는 덕후가 아닐까 하여 자기 소개에 적었다.


스스로도 가끔 나는 왜 이 작가를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 생각한다. 오히려 장강명 작가가 문장력이라는 관점에서는 황석영, 김훈 작가처럼 미문을 자랑하는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소설의 예술적 완성도와 예술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순수문학이라고 하기에는 시사성이 강하거나 오히려 대중 소설에 가깝지 않은가 라는 생각마저 든다.(장강명 작가의 오늘 한국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면하고 거기에 대해서 탐구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지만 이런 것은 오히려 저널리스트적인 관점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한다.) 외람되지만 작가가 인터뷰에서 지금 쓰고 있는 소설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과 같은 대작을 쓰기 위한 준비 운동이라고 했을 때 조금 과한 욕심이 아닌가 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소원은 전쟁, 최근작 재수사를 읽다보면 작가의 말이 허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재수사를 읽으면서 적어도 장강명 작가가 현재 한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무엇보다 그의 비문학 작품들(칼럼, 에세이)는 나에게 명쾌함과 신선함이라는 쾌감을 주어 그의 글들을 좋아한다.


독서라는 나의 취미 분야에 있어서 만큼은 장강명 작가가 나의 가장 큰 화두인 셈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의 작품 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작가의 작품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읽으면서 작품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고 싶다.

주인장 소개

1. 중고등학교 때 문학을 좋아했다. 교과서에 나오는 토막글로 소개되는 소설들을 찾아 읽었고 이문열의 작품을 좋아해서 초기작들에 많이 심취했던 것 같다. 작가의 만연체와 미문을 좋아했었는데 대학교 때는 주로 황석영 작가와 김훈 작가의 작품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2. 많은 문제가 있는 상인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이상문학상 수상집도 꾸준히 찾아 읽었다. 상대적으로 세계 고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게 컴플렉스이다. 국내 근대 문학의 주요 작품들은 상당히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지만 역시나 박경리 작가의 작품이나 주요 작가들의 작품 중 손을 대지 못한 것이 많다. 이렇게 적고 보니 되다 만 문학 지망생 같다.


3. 대학에서는 사회과학을 전공하면서 문학을 많이 안 읽었다. 이 와중에도 일본 소설이나, 황석영 작가의 작품은 꾸준히 읽었다.


4. 현재는 장강명 작가를 오늘날 주요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 중 가장 좋아한다. 원래도 한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작품부터 에세이, 각종 인터뷰 등을 다 챙겨보는 덕후 기질이 있는데 최근 몇년 간은 장강명 작가가 그 대상이다. 심시할 때마다 포털에 이름을 검색해서 신작이 나왔는지 새로운 칼럼이 나왔는지를 체크한다. 소설도 좋아하지만 그의 에세이, 칼럼을 더 좋아하고 꼼꼼히 읽는다.

434. 카운트 제로 (윌리엄 깁슨)

『뉴로맨서』 쓰다가 남은 재료를 모아서 만든 섞어찌개 같은 느낌. 장식 다 떼고 보면 서사는 퍽 빈약하다. 그 장식 때문에 깁슨을 읽는 것이겠지만.

카운트 제로(환상문학전집 32)
카운트 제로(환상문학전집 32)
433. 인스타 브레인 (안데르스 한센)

정말로 스마트폰과 SNS가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일으키는 걸까? 아니면 신기술에 대해 늘 나오던 근거 없는 공포의 새 버전일까. 관련 서적을 쭉 찾아 읽는 중이다.

인스타 브레인
인스타 브레인
431, 432. 모던 타임스 1, 2 (폴 존슨)

보수주의 역사가가 쓴 1920~1990년대. 나더러 부제를 붙이라면 ‘사회공학의 비극’이라고 하겠다. 독재자들의 초상을 탁월하게 그려내며, 간디나 네루 같은 인물에 대한 평가도 신랄하다. 특히 2권 전반부는 정말 재미있다.

모던 타임스 세트 - 전2권
모던 타임스 세트 - 전2권
42. 제주 백록담 에일과 이중섭 거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오전 10시에서 11시쯤 나가서 커피를 사 마시고, 돌아와서 숙소에서 쉬다가 점심을 먹고, 또 돌아와서 숙소에서 쉬고, 오후에 주변 산책을 나가고, 다시 숙소에서 쉬고, 또 나가서 저녁을 먹는다. 그렇게 한 숙소에서 3일이나 4일 가량 머물다가 자동차로 10분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다른 숙소로 옮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 제주에서 일정은 거의 매일 이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자동차가 없고 의욕과 정력은 부족하고 대신 시간이 넉넉한 우리에게 적합한 여행 방식인 것 같다. 그렇게 서귀포에서 시작해 반시계방향으로 돌고 있으며, 4월 중순에 제주시 부근에 이르게 될 듯하다.

이걸 한 달 여행이라고 불러야 할지 한 달 살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과 생활의 중간인데, 바쁘지도 지루하지도 않아 좋다. 하루걸러 하루씩 오전에 근력 운동을 하고 있고, 그렇게 운동을 한 날 저녁에 맥주를 마신다. 총 비용은 500만 원 정도 들 것 같다. 이런 호사를 누려보려고 여태껏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주 여행 4일차에는 하늘이 맑았다. 오전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러자 바다 반대 방향으로 한라산이 제대로 보였고, 산의 거대한 규모를 그때서야 제대로 알게 된 나와 HJ는 크게 감탄하고 이제 남쪽이 아니라 북쪽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날과 그 다음날에는 뜻대로 안 되는 일이 많았지만 이미 마음이 너그러워져 있어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허세 부리는 가게처럼 보여 HJ가 탐탁지 않게 여긴 숙소 근처 브런치 카페에 들어갔는데 내부 구조도 재미있었고 한라산 전망도 끝내줬다. 낮에는 택시를 불러 차로 5, 6분 거리인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 갔다. 1960년대에 설립된 재래시장이다.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며 이곳에서만 판다는 꽁치김밥, 우도 땅콩만두, 흑돼지 꼬치구이, 오메기떡을 사 먹었는데 오메기떡을 제외하고는 다 조잡한 맛이었다. 신기하니까 딱 한번, 이라는 기분. 서울이고 지방이고 유명하다는 전통시장에 찾아가서 젊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특이한 먹거리를 맛보고 나서 흡족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 남쪽으로 이중섭로를 따라 1분 정도 걸으면 이중섭 거리가 나온다. 그 거리에는 이중섭 미술관,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 공원,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가 있다. 이중섭로는 볕이 잘 드는, 소박하게 아름다운 언덕길이었는데 신카이 마코토나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속 일본 소도시 배경을 연상케 했다. 금방이라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나갈 것 같았다.

서귀포매일올레시장에서부터 천장에 이중섭의 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중섭로에는 각각 ‘중섭이네’와 ‘중섭23’이라는 이름의 식당이 있고, 이중섭의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작품 활동을 한다는 ‘중섭공방’도 있다. 심지어 소고기구이 식당 앞에도 이중섭의 그림을 본 딴 소 조형물이 있었다. 이중섭이 지금의 이중섭로 풍경을 본다면 흐뭇해할지 “살아 있을 때 좀 잘해주지 그랬냐” 하면서 허탈해 할지 모르겠다.

정작 이중섭은 제주 출신이 아니고, 제주에 머문 기간도 1년이 채 안 된다. 6․25 전쟁 때 서귀포로 피난 와서 11개월 간 머물다 부산으로 올라갔다. 그 11개월 동안 작품 활동을 열심히 했다지만……. ‘서귀포에 그렇게 다른 인물이 없나’ 싶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느 예술가를 기리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못 감동적이기도 했다. 한국에 이런 공간이 또 있던가?

이중섭 거주지는 방 세 칸짜리 초가집에 있었다. 관람객은 가장 오른쪽, 부엌 안쪽에 있는 협소한 방만 볼 수 있었기에 거기가 작업실이었나 보다 했다. 아무런 가구가 없는 1.4평짜리 공간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안내문을 읽어 보니 그 방에서 이중섭과 이중섭의 아내, 그리고 두 아들까지 네 식구가 살았다는 것이다!

그조차 세를 얻은 게 아니라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집 주인이 그냥 내준 것이었다. 화가는 그 정도로 가난했다. 거기서 반찬도 없이 배급 쌀과 고구마로 연명하며 배가 고파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담뱃갑 은박지 등에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예술은 뭐고 인생은 또 뭔가 싶었다.

이중섭 미술관은 정기 휴관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정방동주민센터에서 대로로 내려가는 인적 없는 계단 옆에 화가의 작품 수십 점이 작게나마 그려져 있어 그걸 천천히 감상하며 내려왔다. 길 떠나는 가족이나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저렸다.

이중섭 창작 스튜디오에서는 어느 현대서예 화가의 전시전을 무료로 볼 수 있었다. 입구에서 우리에게 열정적으로 작품을 소개한 중년 여성이 화가의 아내이고, 안에서 다른 관람객과 대화 중이던 훤칠한 신사가 화가 본인이지 않나 싶었다.

가볍게 둘러보고 나와 그 옆 서귀포관광극장에 갔다. 1999년에 문을 닫은 옛 극장인데 지붕은 사라져 하늘이 보이고, 담쟁이 넝쿨이 벽 안쪽을 타고 올라왔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장소를 허물지 않고 조금 단장해 다시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 서운해서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갔다. 소암기념관도 정기 휴관일이라 패스. 서복전시관은 입장료가 500원밖에 안 된다니 한번 구경해 보자고 결정. 그런데 서복이 누구더라? 어디서 들은 이름인데. 설마 진시황 불로초 설화의 그 서복? 장용민의 『불로의 인형』에 나오는 그 서복?

그 서복이 맞았고, 기실 서귀포(西歸浦)라는 이름 자체가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변변한 유물도 없는, 출발지도 최종 도착지도 한국이 아니었던 외국 인물이다. 전시관을 짓고 공원까지 조성해 이곳에서 그토록 거창하게 기념할 일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중국인 관광객을 노린 시설인 듯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이제, 전시관 관람객이라고는 우리뿐이었다. 나는 서복이 진시황을 등친 사기꾼이라고 생각했는데 HJ는 그의 고생과 외로움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전시관은 시진핑이 저장성 당서기 시절 그곳을 다녀갔다는 점을 내내 강조하고 있어서 조금 코믹했다. 그냥 시진핑도 아니고 ‘시진핑 님’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복전시관과 함께 조성된 서복공원은 절경이었고 입장료 500원 덕분에 다른 관광객도 없었다. 절벽 아래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택시를 불러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숙소 근처 게스트하우스 겸 치킨 카페라는 곳에 갔다. 꼬마전구로 옥상을 장식했는데 거기서 맥주를 마시면 근사할 것 같아서였다. 들어가 보니 과자나 음료수가 있는 잡화점이기도 했고 독립출판물과 그림, 엽서도 팔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진과 기념품이 곳곳에 걸려 있거나 놓여 있었다.

공기가 차가워 옥상에 앉을 수는 없었고 그냥 실내에서 순살 마늘치킨을 주문해 먹었다. 제주도의 전통 발효 음료인 쉰다리도 함께 주문했다. 남은 밥을 모아 뒀다가 거기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드는 음료라고 한다. 쉰다리도 주인 부부가 직접 만드는 것 같았다. 전망은 즐기지 못했지만 치킨은 맛있었다.

다음날 오전에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서쪽으로 6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바닷가 펜션으로 방을 옮겼다. 호텔 맞은편 도로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다 펜션으로 가려 했으나 카페 문이 닫혀 있었다. 택시를 불러 펜션으로 갔는데, 체크인은 오후 3시부터임에도 불구하고 펜션 주인아주머니가 그냥 방을 내주었다. 거기까지는 운이 좋았다.

계속해서 돈가스니 치킨이니 하는 음식들을 먹다 보니 속이 거북했기에, 읍내에 들어가 현지인들이 다니는 식당에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서귀포 시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읍내 거리를 몇 분 걸으니 쉬 피곤해졌다. 또 괜찮아 보이는 식당들은 모두 정기 휴일이거나 식사 준비 시간이었다. 우리는 신선식품을 사려고 마트에도 찾아갔는데, 규모는 작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갖춰 놓은 물품은 별로 없는 곳이어서 조금 어리둥절해져서 나왔다.

해안가 식당이나 카페도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우리가 머물게 된 펜션의 전망이 그보다 더 나은 것 같았기 때문에. 우리는 2층 방을 잡았는데, 잘 가꾼 마당과 그 너머로 탁 트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근사한 테라스가 있었고, 거기에 앉아 있는 게 어지간한 주변 카페에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결국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펜션으로 가져와서 먹었다. 캔 맥주를 몇 캔 샀고, 그 중 제주 백록담 에일을 마셨다. 제주맥주에서 만든 화이트 에일로, 제주도 물을 사용하고 한라봉을 첨가해 오렌지 향을 냈다고 한다. 상큼하니 좋았다. 편의점에서 날달걀과 바나나도 사 와서, 펜션에 있는 조리기구로 계란을 삶아 먹었다.

이날은 낮 내내 전자도서관이 켜지지 않아서 지우고 다시 설치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 알고 보니 구글에서 업데이트한 안드로이드 시스템 앱이 기존에 설치된 앱들과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주요 앱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전국 이용자들이 골탕을 먹었다고 한다. HJ는 이날 종이책을 읽었고, 나는 전자도서관 외에 다른 앱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그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서울에서 벗어나 제주까지 왔는데 멀리 미국에 있는 개발자들의 행동에 이렇게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 사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어지간해서는 도시의 복잡한 사정에서 내가 벗어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구글은 사과는 커녕 제대로 된 대응 조치조차 하지 않았고, 한국 이용자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국내 기업을 대할 때와는 온도 차이가 컸다. 거대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기도 했다.

저녁에도 어슬렁어슬렁 바닷가 산책로를 걸으며 술을 마실 만한 곳을 찾았으나 마땅치 않았다. 결국 들어간 곳은 어느 프랜차이즈 맥줏집이었다. 테라스 전망이 좋았으나 추워서 밖에 앉을 수는 없었다. 가게 안에는 신장개업을 축하하는 화환과 화분이 빼곡히 놓여 있었는데 코로나 탓인지 우리 외에는 손님이 없었다.

이 프랜차이즈는 ‘요리 전문 맥줏집’을 표방하고 있었는데 실제 모토는 ‘뭐든지 판다’인 듯했다. 메뉴 책자가 16쪽이나 됐다. 주류 사정도 비슷했다. 수입 맥주, 크림 생맥주, 국산 맥주, 수제맥주라고 주장하는 자체 브랜드 맥주, 칵테일, 칵테일 소주까지 다 마실 수 있었고, 그런 다양성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사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엠버 라거인 자체 브랜드 맥주의 맛도 좋았고, 안주도 만족스러웠다. 콘셉트가 문제였다.

아마도 원래 그 자리에서 오래 술집을 운영하던 사장님이 하던 장사를 접고 프랜차이즈에 가입한 게 아닌가 싶었다. 술을 마시고 있으려니 20대 취향의 가게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중년 남녀가 들어와서 직원에게 “마시던 거 주라”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은 키핑해 놓은 양주를 내왔고 손님들은 맥주를 함께 주문해 양주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중년의 여성 사장님이 잠시 그 옆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이고, 또 어쩐지 쓸쓸해 보이기도 했다.

 

제주도 물에 한라봉 향

맛보다는 콘셉트려니 짐작합니다

내 인생 콘셉트는 뭘까

 

그다방@춘천MBC

춘천을 좋아한다. 십년 전쯤엔가 남편의 친구가 춘천에 살았다. 꼭 한 번 놀러오라는 말에 별 생각 없이 방문한 도시. 친구 부부는 구봉산 전망대를 소개시켜 주었고 밤에는 춘천MBC 근처 KT&G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옆의 '댄싱 카페인'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남편의 친구는 더 이상 춘천에 살지 않은지 오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이후로 춘천을 자주 방문한다. 서울에서 ITX 청춘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기차여행 분위기를 내다 보면 어느새 춘천역에 도착이다. 소양강 댐 부근은 춘천역에서 약간 거리가 있어서 우리는 주로 춘천 MBC 부근에 거점을 잡는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그냥 적당히 걷기도 한다. 닭갈비를 먹는 때도 있고 그냥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오늘은 '댄싱 카페인'이 공사가 한참이라 그 옆에 '그다방'이라는 카페 (이 곳도 종종 방문하는 곳)에 왔다. 언제 와도 고요한 의암호, 머리 위론 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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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책 증정] <고전 스캔들> 읽고 나누는 Beyond Bookclub 5기 [책 증정] [박소해의 장르살롱] 14. 차무진의 네 가지 얼굴 [책증정] 페미니즘의 창시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자 《메리와 메리》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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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립도서관] 2024년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주세요. (~5/12)
<장르살롱>이 시즌2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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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05. <나쁜 교육>[그믐북클럽Xsam] 15. <바른 마음> 읽고 답해요
이 계절 그리고 지난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 with 6인의 평론가들
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네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1다음 세대에도 읽힐 작품을 찾는 [이 계절의 소설] 세 번째 계절 #2
직장인이세요? 길 잃은 직장인을 위한 책들 여기 있어요.
[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직장인토크] 완생 향해 가는 직장인분들 우리 미생 얘기해요! | 우수참여자 미생 대본집🎈[생각의힘] 어렵지 않아요! 마케터와 함께 읽기 《커리어 그리고 가정》
어서 오세요. 연극 보고 이야기하는 모임은 처음이시죠?
[그믐연뮤클럽의 서막 & 도박사 번외편]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반과 스메르자꼬프"[그믐밤] 10. 도박사 3탄,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수북강녕
💌 여러분의 마지막 편지는 언제인가요?
[책 증정] 텍스티와 함께 『편지 가게 글월』 함께 읽어요![그믐밤] 6. 편지 읽고, 편지 쓰는 밤 @무슨서점[이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못가는군요](안온북스, 2022) 읽기 모임
🍵 따스한 녹차처럼 깊이 있는 독후감
종의 기원(동서문화사)브로카의 뇌도킨스, 내 인생의 책들코스믹 컨넥션
딱 하루, 24시간만 열리는 모임
[온라인 번개] ‘책의 날’이 4월 23일인 이유! 이 사람들 이야기해 봐요![온라인 번개] 2회 도서관의 날 기념 도서관 수다
🌸 봄에 어울리는 화사한 표지의 책 3
[책증정/굿즈] 소설 《화석을 사냥하는 여자들》을 마케터와 함께 읽어요![책 증정] 블라섬 셰어하우스 같이 읽어 주세요최하나 작가와 <반짝반짝 샛별야학>을 함께 읽어요.
<이 별이 마음에 들어>김하율 작가가 신작으로 돌아왔어요.
[책증정 ]『어쩌다 노산』 그믐 북클럽(w/ 마케터)[그믐북클럽] 11.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읽고 상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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