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사, 그중에서도 정치 사상사에 흥미가 있어 여러 책을 읽기 전 입문서로 택했다. 간략히 정리한 분량에 비해 시대상과, 중요한 용어 설명까지 놓치지 않는 알찬 책이다.
책 내용 간단히 요약 정리해 본다.
메타데이터 : 콘텐츠를 구성하는 객관적 데이터. 예를 들자면, 한국 영화, 송강호 주연, 2시간 10분 상영 시간 등
사용자 기반 협업 필터링 : 비슷한 사용자가 좋아한 제품을 추천
아이템 기반 협업 필터링 : 좋아한 아이템과 비슷한 아이템을 추천
필터버블 (매일 똑같은 것만 추천)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가끔 이질적인 것도 섞어놓는다. (보통은 베스트셀러)
알고리즘 계산은 행렬로 이루어지며 이 때 유용한 것이 GPU
추천에서는 시간도 주요 고려 요소.
과연 10년 동안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을까?
최근 데이터는 언제나 가중치가 높다.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관점으로 보는 인간, 기계, 과학과, 그들이 어떻게 복잡하게 얽히는지에 대한 이야기.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과학도 인문학도 흔히 놓친다고 지적한다.
장쾌하고 낙관적이고 너무 낙관적이어서 도리어 심란하다. 읽다 보면 ‘특이점 논의’에 저절로 참여하게 된다. 저자는 ‘비판에 대 한 반론’이라는 장까지 내놓는다. 그 반론이 기술지상주의의 한계에 갇혀 있기에 책장을 덮은 뒤에도 비판적 독서는 이어진다.
저자 모터사이클에 올라 칸트를 비웃고 인도철학에 작별을 고하고 노자를 재해석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무너뜨리는 800쪽의 여정을 마치고 난 사람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의 폭은 매우 좁다. 동의든 거부든, 응답은 격렬하리라. 출간 40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 인터넷에서는 재야 철학자들이 사이트를 만들어 이 책을 토론 중이다.
간혹 이 책을 ‘인간의 행동은 유전과 환경 양쪽으로부터 모두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본다. 그보다는 ‘유전이 진짜 중요하다니까! 제발 아닌 척 하지 말자!’가 더 제대로 된 요약이다. 몇몇 대목에서는 거의 울분에 찬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핑커의 비판 대상에는 엘리트 예술이나 포스트모더니즘도 있다.
최근 GPT 이슈를 타고 기획 출간된 여러 책들 가운데 사람이 쓴 분량이 비교적 많은 편에 속한다. 문과 출신 저자의 기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주의.
막걸리 전문점이라 그런지 내가 오랜만에 막걸리를 마셔서 그런 건지 맛있었다.
막걸리 무한리필이 한 사람에 1만2천원이니까 많이 안 마셔도 그냥 무한리필을 고르는 것이 좋겠다. 우린 모르고 그냥 단지로 마셨다. 한 단지는 약 1만원 정도인데 크기는 그냥 작은 주전자다.
안주도 맛있고 가게도 깔끔했지만 아주 간만에 불친절한 직원을 만나 일견 신선함마저 느껴졌다. 요즘도 이런 직원이 있다니... 아마 이 곳은 배상면주가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여울 작가님은 코로나 첫 해 가을 북토크에서 처음 뵈었다. 마스크를 쓰고 사인만 받은 것이므로 나만 간직하는 것이지만^^ 이후로 월간정여울 심야라방이라던가 줌을 통한 강좌들, 한겨레에서 하던 하루 인텐시브 글쓰기 강좌에 참여했었다. 나보고 욕심이 많다고 하시기도 ㅎㅎ
그러던 중 작가님 책 중 한 권은, 마침 언니와 작가님이 동갑이시기도 하고~ 언니에게 전에 동갑이라며 선물로 주기도 했었는데 이 책은 참여했던 줌강의 선물의 일환으로 받았던 책인듯. 몇 년은 묵히다 이제 읽는다. 펼치니 딱 지금 보고픈 이유가 있네! 지금에야 들어오는 말들이다. 헤세의 책들을 소개한 이 책에서 수만번 언급하셨던^^ 데미안 외에도 황야의 이리를 접할 수 있었는데, 이 책은 마침 한 사년 전에 오프라인 글쓰기 수업을 들은 적 있던 김탁환 작가님께서 틈틈이 추천하셨던 책이었다. 이런 책이었구나~ 그러나 너는 뭐, 헤세의 책은 무려 데미안도 안 읽었고;; 수레바퀴 아래서는 청소년 기 읽다 말았었고 ㅠ 그나마 지와 사랑 정도만 다 보았다니ㆍㆍ 반성할지어다!
그런 날이 있다. 몇 번을 묶어도 자꾸만 풀리는 운동화 끈,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엉키는 머리카락, 잔뜩 심혈을 기울인 정리가 무색하게 금새 헝클어진 가방 속, 눈물이 흐를 만큼 눈부신 햇살 같은 그런 날.
자주 찾던 까페, 늘 우리가 앉던 자리. 오늘도 어김없이 그 자리에 앉아 어딘가 통화를 하고 있는 너를 보며, 까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따뜻한 까페 안 온기보다 짙고 무거운 커피향이 더 성급하게 마중 나온다. 커다란 유리로 만들어진 까페 문이 무척 무겁다. 힘겹게 온 몸을 기대며 안으로 한 발 더 발걸음을 들였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무게의 문일 터인데, 오늘 내가 밀어내는 것은 이 문 만은 아닌 듯 하다. 어느새 내 몸을 한 바퀴 돌아 나온 커피향이 이미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바람결에 가볍게 흩어졌다.
너는 고개를 들어 나를 확인하고는 통화 중인 핸드폰을 살짝 흔들어 보인다. 괜찮다는 내 입 모양에 다시 테이블 위 수첩으로 급히 너의 고개가 돌아간다. 스치듯 건네는 짧은 눈 인사. 다정한 듯 다정하지 않은 너. 내가, 사랑하는 너.
긴 시간을 함께였다. 시작을 찾지 못할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늘 내 곁에 있던 너였다. 더없이 달콤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따뜻함과 다정함을 끌어모아 생명체를 만든다면, 그건 바로 너 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다. 분명 그랬다.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언제 어느 때나, 그 어떤 테이블에서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던 우리 둘은 없다. 통화를 끝낸 네가 작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휘저었다. 눈치없이 예쁘게 그려진 하트 모양의 라떼아트가 일그러진다. 커피를 한 모금, 천천히 삼킨 너의 눈동자가 스르르 바깥을 향한다. 너의 까만 눈동자에 가득 담겨 찰랑거리던 나는, 이제 없다. 익숙한 정적이 흐른다.
"우리, 헤어지자."
숨을 내뱉듯 터져나온 익숙한 음성에 입을 다물었다. 어, 내가 한 말이라고, 지금, 이거?
너의 눈이 천천히 나를 향한다. 전혀 놀란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평범한 인삿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태연하고 담담한 그 표정에 바짝 약이 오른다. 헤어지자, 내가, 이별을 고했다. 곪아버린 상처를 터뜨리는 일이었다. 우리 둘 다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상처. 그럼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지도, 그렇다고 덮어놓고 무시하지도 않은 채 그저 공기 중에 꺼내어 내버려둔 상처. 곪을 만큼 곪아서 이제 작은 바람이 스치기만 해도 터져 흘러내릴 것만 같은 그런 상처.
언제 어느 때 만날 지, 어디를 갈 지, 무엇을 할 지, 무엇을 먹을 지, 심지어는 만남을 지속할지 말 지까지도. 그 모든 일을 결정하는 사람은 언제나 내가 아니라 너일 것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우리 사이에 있었으므로. 적어도 그 암묵적 룰을 깬 나의 이별 선언에 놀라는 척이라도, 내가 먼저 쏘아올린 이 불덩이를 어찌 받아내야 할 지 몰라 곤란한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 아니구나. 암묵적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나의 이별 선언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결국 최종 결정 권한은 이미 너에게 넘어가 있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아무래도 웃음보다 눈물샘이 먼저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니까 기다린 것 같잖아, 꼭. 참을성 없고 미숙하고 서투른 쪽은 또 내가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이 마지막 순간마저도 너는 다 계획한 사람 같다.
너는, 끝까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식어버린 커피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더 시리고 차갑다.
그런 날이 있다. 몇 번을 묶어도 자꾸만 풀리는 운동화 끈,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엉키는 머리카락, 잔뜩 심혈을 기울인 정리가 무색하게 금새 헝클어진 가방 속, 눈물이 흐를 만큼 눈부신 햇살 같은 그런 날.
내가 네게 먼저 이별을 꺼내는 날, 너와 내가 영영 헤어지는 그런 날. 내 생에 전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날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