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듣는 시간
새벽독서와 늦은밤독서를 왔다갔다한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 가기로 했다.
울산 책빵자크르의 추천으로 구입한
“타인을 듣는 시간”을 읽는 중이다.
EBS 다큐멘터리 PD로 활동한 김현우 저자의 독서에세이.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최근의 내생활을 되돌아본다. 내 실수다. 신중하지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은 끊지 말고 끝까지 집중해서 들어야 했는데, 고개만 끄덕일 것을 ,날선 말을 덧붙이지말것을.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신중해야한다.
각자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의 다름을 인정해야하는 조건이 있다.
두 세계의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제국의 언어와 식민지의 언어
가진자의 언어와 빈자의 언어
부모의 언어와 자식의 언어
나의 언어와 타인의 언어
어느 쪽이 옳은지 의문을 갖고 바라보는 자세가 글쓰기의 출발점이라는 저자의 말을 참고한다.
나의 역사를 오늘도 만들고 글로 남기려 할때 스스로 진솔한 경험자의 이야기로 보여줘야 한다.
p. 25
“믿었다가 더 이상 안 믿게 되는 것”
”한때 몸 담았다가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장 잘 할수 있는 이야기를 해낸다.”
나를 들여다본다.
타인의 입장에서 되돌아본다.
나는 타인을 만나고나서 성장했는가?
타인은 나를 만나고나서 성장했는가?
험난하고 날카로운 세상을 향해
나는 어떤 자세로 다가가고 있는가.
저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마음을 기록한 <떠나보내는 길위에서>라는 책을 소개하며 위로도 전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의 마음 앞에서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을 하면 안되는지 배울수 있다고 했다.
어느덧 나를 잃고 살아가는 순간을 맞이한
지금,
나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본다.
13편의 논픽션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나는 타인의 마음을 잘 읽기 위한 자세를
갖췄는가!
지금껏 그들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는지 반성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을 키우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나의 길은 어떻게 이어져야 할까.
앞만 보며 성장하기위해 달려왔던 길에서
차분히 제자리에 멈춰 주위를 둘러보는 길을 거쳐 내 손을 내주고 함께 발맞춰 걷는 길로 향해야겠다
소개한 13권의 책을 찾아 읽어봐야 겠다.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앤드루 솔로몬 <부모와 다른 아이들>
이시무레 미치코 <신들의 마을>
헨미 요 <먹는 인간>
노다 마사아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 그라운드>
모이세스 코프먼•텍토닉 <래러미 프로젝트>
제임스 엘로이 <내 어둠의 근원>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W.G.제발트 <이민자들>
엠마뉘엘 카레르 <적>
최현숙 <할매의 탄생>
작가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집들에 대해 쓴 이 유려한 에세이를, 나는 궁핍에 맞서 품위를 지키려는 이야기로 읽었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인데, 일단 품위 자체가 저렴하지 않은 재화다. 그리고 궁핍한 상태에서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같은 위치에서 품위를 중시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보다 불리한 처지에 놓인다. 때로 조롱거리나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의 공간과 서사, 품위를 고민해본다.
번식장, 보호소, 개농장, 도살장 등 ‘한국의 개 산업’ 현장을 구석구석 찾은 르포. 우린 아직 개들을 사랑할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신파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톤이 차분해서 다행이었다. 특히 영화 같은 도입부는 압도적. 뒤표지에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는데, 나치 독일 같은 반례도 있다.
배경 스토리가 넷플릭스에 있는 Stowaway와 동일한 설정인데 Stowaway가 우주선 배경의 산소 부족을 활용했다면 이건 잠수정 내부의 산소 부족을 다루고 있다. 충분히 표절 이슈가 될만한 부분인데 영화가 총체적으로 엉망이라 아무도 관심을 안 갖게 된 듯. 사실 나도 이런 영화가 개봉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CG를 생각하면 제작비도 제법 많을 듯 싶은데 검색해보니 128억원. 손익 분기점을 못 넘겼다.
모호하게 샛길로 빠져버리기 쉬운 챗GPT 책 가운데 예제 프롬프트 등 비교적 실질적.
그 유명한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이야기. 인간은 참 이상한 동물이다. 픽션을 던져주면 너무나도 성실하게 거기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한다. 흥미진진하고 매우 불편하다.
촘스키가 ‘온갖 문제 전문가’로 나서 발언한 강연 원고와 인터뷰, 에세이 모음집. 베트남전에서부터 문법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 중의 한 사람답게 원래는 배달 치킨을 즐겨 먹었다. 특히 금요일 저녁이 되면 왠지 뭐라도 시켜야 될 것 같고 괜히 술 한 잔 마셔야 될 것 같은 들뜸이 항상 있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마냥 아주 오랜 시간 학습된 패턴이다.
그러던 내가 배달 치킨을 점차 시키지 않게 된 계기가 있으니 바로 '에어 프라이어'의 구입이다. 주방가전계에 돌풍을 불러 온 이 제품을 한동안 여러가지로 외면하고 있다가 몇 년 전에 구입했는데 정말 신세계다. (여러가지 이유라고 썼지만 여러가지 아니고 한 가지 이유인데, 음식을 먹을 때 굳이 너무 맛있게 먹으려고 노력하지 말자!는 나름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냥도 맛있는 게 많은 세상인데 에어 프라이어까지 동원해서 그렇게 매일매일 맛있는 걸 먹어야 될까? 하지만 이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먹을 거 앞에 무심해지자고 매번 다짐하지만 나도 모르게 최선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찾으며 음식과 궁합이 맞는 소스와 반찬 등을 준비하고 따뜻하게 데워먹는 등 온갖 노력이 저절로 기울여지고 있다.)
아무튼 에어프라이어 구입 후 냉동 치킨들을 여기에 조리해 먹으니 시중 치킨점을 능가하진 못해도 그 나름의 별미 역할은 한다. 그래서 한동안 치킨 배달을 안 시키고 있다가 그제는 오랜만에 주문을 해보았다. 오븐마루 현미베이크 치킨(순살)인데 겉에 현미후레이크(?)를 뿌려 바삭바삭하게 씹는 맛이 있어 약간 과자 먹는 것 같기도 하다. 맛은 괜찮지만 양이 좀 부족.
칼을 쓰는 것과 총기를 쓰는 건
다른 영역의 재능인데
사용하는 근육과 신경부터가 다르다.
길복순 여사는 총기가 금지된
동아시아 지역에 특화된 킬러로 칼을 쓴다.
AI로 대체되기 힘든 직업에 종사.
“문학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그냥 솔직히 말한다. “잘 모르겠습니다.” 삶이 뭔지 모르면서 살고, 문학이 뭔지 모르면서 쓴다.
어렴풋이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건 언어로 하는 일이다. 사람을 사로잡고 뒤흔든다. 하지만 그 힘이 꼭 구원, 진리, 아름다움, 사회비판, 공감, 위로를 향하거나 거기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기엔 예외가 너무 많다. 걸작들의 공통점은 오히려 ‘역겹고 소름끼치는 인물이나 장면이 반드시 있다’는 것 아닌가.
이문열 소설 『시인』에 젊은 김삿갓이 금강산에서 늙은 시인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시는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라는 노인의 말에 지친 김삿갓이 “그럼 시는 도(道)냐”고 따진다. 노인은 자신이 ‘덜된 중놈이나 엉터리 도사’가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시가 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캐롤 스클레니카가 쓴 집요하고 고통스러운 평전 『레이먼드 카버』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고민하다 서설이 길었다. 카버가 누군가. ‘내가 바로 문학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사내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십대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나이 오십에 죽을 때까지 글쓰기에 매달렸다. 알코올중독을 심하게 겪고 두 번 파산하는 동안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쓰고, 마침내 술을 끊고, 주옥같은 작품을 더 쓰고, 명성을 얻고,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전설이 되었다.
깜깜한 밤, 가로등이 없는 길을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본다고 상상해보자. 길은 자동차 불빛의 궤적을 통해서만 제 모습을 잠시 드러낸다. 내게는 『레이먼드 카버』가 그런 자동차처럼 여겨진다.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추구했던 어떤 길, 그를 놔주지 않았던 ‘무언가’를 언뜻언뜻 보여주는 평전이다.
대작가가 아닌 우리는 그 힘의 형태를 이렇게 간접적으로만 볼 수 있는 것 같다. 카버 본인은 자기 공책에 이렇게 썼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걸 지금 원한다.’ 다른 공책에는 이렇게도 적었다.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헛된 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면 그는 그 ‘무언가’를 어느 정도 이루고, 그것이 무엇인지 거의 깨닫는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괴로운 책이다. 960쪽에 이르는 분량이 아니라 우상의 추락에 관한 얘기다. 카버는 그냥 술꾼이 아니었다. 그는 한동안 상습 가정폭력범이었고, 책에 묘사되는 폭력의 수위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나는 423쪽에서 한동안 책 읽기를 멈췄다. 516쪽에 나오는 일화는 웬만한 공포영화 뺨친다. 읽으려는 분들은 꽤 각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