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6
강물 가까이로 다가가 보자. 시간의 강물 가까이로 접근하면 출렁이는 물결 소리도 들을 수 있다. 거센 바람이 불면 강물은 몸을 한껏 뒤척이며 하얀 거품을 만든다. 하얗게 반짝이는 수백만 개의 거품이 물결과 함께 일어났다 스러지는 모습을 보라. 물결은 균일한 리듬으로 일어났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한 순간 솟았던 물결이 다음 순간에는 흔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우리 역시 그처럼 덧없는 무엇, 아주 작은 거품이나 물방울은 아닐까 생각해보라. 작은 물방울을 품에 안은 깊고 거대한 강물은 안개처럼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흘러만 간다. 우리는 떠올 라 주변을 돌아보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 지나면 다시금 사라져버린다. 유유히 흐르는 거대한 시간의 강물에서 우리는 눈에 띄지 않는 존재이다. 늘 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우리의 운명이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속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벌이는 다툼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짧은 이 순간을 잘 이용하고자 한다. 그럴 만한 가치는 있기 때문이다.
(P435)
2022.4.5
이 책은 너무 두꺼워 감히 읽을 엄두를 못내지만 책장에 당당히 서있는 모습만 봐도 흐믓한 책들중 하나이다. 그런데 '다시 그림이다' 책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할아버지가 잼있게 읽었다 하여 나도 모르게 홀린듯 읽기 시작하였다.
읽기 시작하니 점점 빠져들어 이 두꺼운 책을 놓을수가 없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흘러가고 곰브리치 교수님이 나에게 친절히 얘기를 해주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시로 보여주는 예술품의 컬러도판이 413개나 있어 흥미진진했다.
책이 무거워 손목이 욱신거리지만 다 읽고 나니 성취감은 최고다!!
2024.4.24
어제 도서관에서 '그림의 방'이라는 강연이 있었다. 강연 중에 이 책이 언급되었는데 이 책 초판에는 여성예술가가 0명이었다고 한다. 한참이 지나 개정판에 여성 예술가 몇 명을 추가하였다고 한다.
난 읽으면서 이런 사실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좋은 책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의문을 품을 생각조차 없었던 것 같다....
2022.4.3
'쥐'를 읽고 난 후 한달이 되었지만 책 속 이미지들의 잔상이 아직 머리속에 남아있다. 가끔 뭉크의 '절규'그림과 중첩이 되기도 한다. 글로만 되어 있는 책을 읽고 난 후와는 다른 경험이다. 그래서 그림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그림이다'는 '쥐'를 구매할 때 같이 산 책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회에서 본 벽을 가득 채운 선명한 색감의 나무들이 너무 좋아서 이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었고, 그림의 힘에 대해 정의해 줄 것 같았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설명서이기 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에 대한 철학서에 더 가까웠다. 또한 과거 명화들의 탁월한 분석으로 인해 서양미술사 입문서의 느낌도 든다.
화가의 남다른 감각으로 그림이 탄생했을거라 생각했는데 수십년간의 독서, 사색, 연구, 새로운 시도, 과학기술과의 융합 등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더 좋았던건 열정적으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백발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37년생이지만 아이패드와 카메라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 할아버지 화가가 나의 롤모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그림은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 나간 결과물이며, 이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주의를 집중하게 하여 보지 않았을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글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2022.1.5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고, 두 번 읽고, 이해하며 읽고, 오독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한다"
2023.1.26
2022년 1월의 난 직장인의 삶에서 벗어나 프리랜서의 삶을 살고 싶은 강한 소망에 이끌려 모든 환경을 바꾸었다. 나의 내적 구조 변경의 첫 시도였던 것이다.
2023년 1월의 난 또 다른 나를 찾아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다시 직장인이 될까라는 과거의 관성에 버티고도 있다.
2023년 2월을 앞두고 읽은 ‘자기 결정’을 통해 페터 비에리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하였다.
첫번째는 스스로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나를 조종하는 느낌들과 욕구들을 감지하여 내적강박과 자기기만을 해결하고 정신적 정체성을 형성해야 한다.
두번째는 나를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정확한 말을 찾아내면 혼란스러운 느낌들은 감정적 확신으로 변화될 수 있다.
세번째는 독서를 통해 나의 언어를 풍부하고 독립적이고 차별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를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며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주기도 한다. 문화적 정체성으로 인해 내 자신은 항상 새롭게 화두가 되며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이다. 자아상의 서술은 자신의 명확한 정체성을 추구하고 삶을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책을 완독하니 망망대해에서 등대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2.12.27
12월에는 새해를 준비할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었기에 ‘불안과 고통에 대처하는 철학의 지혜가 담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 이라는 책을 선택했다.
그러고보니 마치 12월을 위해 아껴둔 책인 듯한 느낌도 든다.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행복한 삶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마음속에 항상 품고 있는 질문들이다. 그러다 알게된 단순한 삶, 소박한 삶, 미니멀 라이프는 나를 시골생활로 이끌었는데…그럼에도 불쑥불쑥 도시생활의 화려함이 떠오른다.
나보다 더 놀기 좋아하는 남편은 아직 소박한 삶이 싫다며 늘 도시를 그리워하더니..이번 연말은 잠실에 있는 슈퍼플렉스에서 아바타2를 보고 오자며 1박 2일의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맞춘 1박2일의 여행이라 나도 들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신나게 돌아다니고 신나게 먹었다.
결국 난 장염에 걸리고 말았다…..이런 나에게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한다.
“중요한 것은 먹는 즐거움이 아니라 배가 고프지 않다는 만족감이다. 정적인 쾌락은 증가할 수 없다. 오히려 계속 먹다가 소화불량을 일으켜 쾌락이 아닌 고통에 다다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을 먼저 읽고 놀았어야 했는데….책을 들고만 다님;;;;)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 쾌락을 구분하지 못했던 난 ‘그리 많은 것 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만족스러운 상태를 목표로 하는 소박한 생활’에 대한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에피크로스의 네가지 처방은 다음과 같다.
1.신을 두려워 마라.
2.죽음을 염려하지 마라.
3.좋은 것은 구하기 어렵지 않으며,
4.끔찍한 일은 견디기 어렵지 않다.
2022.11.30
살면서 기억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다.
기억을 위한 도구들(다이어리, 핸드폰, 컴퓨터)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한다고 크게 불편한 적은 없다.
대신 망각의 달인인 남편과 살면서 망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과거를 망각하는 능력을 지닌 남편은 과거의 불행에 휘둘려 살지 않는 방법을 나에게 몸소 보여준다. (부부싸움은 자고 일어나면 기억에서 벌써 지워짐)
또한 과거를 망각한 뇌의 빈자리를 현재와 미래로 가득 채우는 법도 보여준다.
(대화의 주제는 늘 이번 주말은 뭐할까? 내년엔 어떻게 살까? 10년 후엔 어떻게 살까?)
과거를 망각하는게 스스로 조절이 될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남편을 따라하다 보니 이제는 나도 잘 된다.
과거의 불행이 떠오르면 생 각을 안한다. 얼른 다른데로 뇌의 관심을 돌린다. (자거나 영화를 보거나 밖으로 놀러간다.) 그러다 보면 잊힌다.
그래서 이번 ‘기억의 뇌과학’ 책에서는 ‘망각의 예술’이라는 단어가 너무 좋았다.
또한 ‘기억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들의 총합’ 이라는 정의는 기억과 망각에 대한 개념을 새로운 의미기억으로 변환시켜 주었다.
2022.10.20
책제목만으로도 벌써 나의 기억 속 할머니와의 따뜻한 추억들이 소환되는 마법을 경험한다.
20대에 6.25전쟁을 겪으시며 할아버지를 잃으시고, 곧이어 첫째딸도 잃으시고, 남은 둘째아들을 홀로 키우신 굳건한 나의 친할머니.
정년퇴직 후에는 절살림을 도맡아하시며 관세음보살같이 언제나 인자한 웃음을 지어주셨는데..유독 기억나는 건 연애에 엄한 부모님 몰래 남자친구(지금의 남편)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잘생겼다며 좋아해주신 할머니 덕분에 눈물 날 정도로 기뻐했었던 20대 초반의 어린 내 모습이다.
다혈질인 외할아버지와 똑같이 다혈질인 아들 넷, 딸 하나를 키우시며 폭풍같은 나날들을 보내셨기 때문인지 눈물이 많으셨던 나의 외할머니.
외갓댁이 바닷가 근처라 어렸을적에는 여름방학 때마다 놀러가곤 했는데 헤어질 때는 언제 또 보냐고 우시곤 했다. 그럼 어린 나도 눈물이 나곤 했었다. 특히 나를 다섯살때 잠시 맡아서 봐준 적이 있었는데 하루동안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고 만날 때마다 그 얘기를 하시며 우셨다. 무섭고 무뚝뚝하게 느껴졌었던 엄마와는 대조적인 여린 외할머니에게 어린 나는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책 속에 있는 따뜻한 언어들이 가슴 속으로 퐁당퐁당 들어오는 마법도 경험한다.
'오후의 노란 햇빛에 떠도는 먼지'(p56)
'노르스름한 햇볕이 비쳐드는 콩댐장판'(p74)
'예쁜 사람'(p77)
'그려, 안 뒤야, 뒤얐어, 몰러, 워쩌'(p101)
'저런' (p125)
'장혀'(p157)
'무심'(p189)
"근데! 거 뭐 될 필요는 없다"(p199)
'만남의 색채는 언제나 봄 햇살 같은 노란빛'(p211)
갑자기 추워진 요즘, 내 마음의 따뜻한 난로가 되어준 책이다.
2022.8.12
책 앞 표지에는 큼지막한 '자유'라는 글씨가 호수를 가로질러 숲으로 향하고 있다. 아니면 숲에서 나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열심히 '자유'를 찾아 해맸지만 '사랑 '만 발견했다. 이상하다. 다시 뒤적거렸지만 '자유'의 의미는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자유'를 깨닫지 못한 답답함에 한숨을 쉬며 책을 덮으니 '당신이 원하는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보인다.
자유에도 종류가 있었나...찾아보니 영국의 철학자 이사야 벌린의 에세이인 '자유의 두 개념(two concepts of liberty)'에서 자유를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로 나누었다고 한다. (소극적 자유는 개인이 타인의 간섭 없이 자신의 의도나 행동을 자신의 마음대로 혹은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고, 적극적 자유는 국가 운영에 참여하거나 국가에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할 수 있 는 자유를 말한다.-나무위키)
자유를 쪼개서 어느 한 자유만 실현되면 자유롭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자유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바람에 그나마 내가 알고 있던 '자유'의 개념이 불안정해졌다.
2022.7.22
우울이 습관이 되버렸던 나는 웃는걸 좋아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난 후부터 거의 울지 않는다. 대신 우울의 잔상으로 인해 슬픔에 쉽게 전이되기에 슬픈 영화, 책, 음악은 멀리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제목만 봐도 벌써 슬프다...무슨일이 있었기에 마트에서 울어야 했을까...겁이 난다..읽고 나서 우울의 늪에 빠질까봐..그래서 마음에 방패막을 두르고 읽었다.
슬픔을 멀리하고 읽으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섬세하면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저자에 감탄했다. 그리고 부러웠다.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헤매고 있으며..그래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여전히 어리둥절한 내가 보인다.
그러는 사이 책에 펼쳐진 미셸 자우너의 삶은 나의 마음의 방패막을 가뿐히 침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