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 교회때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네로 이사오다니!
6개의 단편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장류진 작가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라서 약간 불편하지만 그 이유를 잘 몰랐던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매일 마주치는 작은 돌부리가 약간은 거슬리지만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었는데, 장류진 작가는 특유의 세심한 관찰력으로 그 돌부리를 낱낱히 파해쳐서 땅에 파묻혔던 뿌리까지 드러내려 한다. 내게도 익숙한 일상 속 돌부리라며 편하게 읽었다가, 챕터를 마칠 땐 '이게 뭐지' 싶어서 머리가 띵해졌다. 뭔가 시사점이 있을텐데, 그게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메시지일텐데 싶어서 챕터마다 고민했다.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서 노트에 적어봤다.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인지 혹은 내 안의 자아가 책을 읽고 토해낸 메시지인지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일과 육아를 벗어난 생각을 해볼 수 있어서 보람있고 좋았다.
1. 연수: 30대 중후반이 생각하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 = 결혼, 출산'을 벗어났다는 우려가 운전 미숙으로 반영된건 아닐까? (혹시 작가가 아직 흔들리는 비혼주의인걸까?)
2. 펀펀 페스티벌: 우리 나라는 유독 외향적인 성격을 좋아한다. 외향인은 사회적으로 소통을 잘하는 좋은 성격인 반면 내향인은 뭔가 소극적이고 답답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나도 내성적인 성격인데, 사람들 앞에 잘 나서는 외향인을 부러워하면서도, '왜 저래? 난 절대 못해'라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찬휘를 바라보는 지원이의 이중적인 마음도 나와 같은 건 아닐까?
3. 공모: 성공한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현실에 꾸역꾸역 맞춰가며 버텼던 현부장. 그런 자신이 안쓰러웠나보다. 현부장이 천사장을 싫어했던 이유는, 천사장의 삶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
4. 라이딩 크루: 어떻게 여자 작가가, 젊은 수컷들의 치기와 허세를 이렇게 잘 뽑아낼 수 있지??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2020년 10월 우연히 췌장암을 조기에 진단받았습니다. 조기 진단이 어려운 췌장암을 1기에 진단받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건 큰 행운이었지만, 수술이후 합병증으로 3개월 넘게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몇 번이나 죽을고비를 넘기셨고 1년동안은 불편하게 장루도 달고 지내셨습니다. 장루 복원술을 한 뒤에는 통증으로 고생하셨지만 올 봄에는 통증도 나아지고 기력도 회복해서 포도밭에서 일도 하실 수 있었습니다. 포도밭일을 하고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췌장암이 재발한걸 알게 되었고, 결국 7월 23일에 집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수술 후 중환자실에 계시는 내내 저는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것인가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아툴 가완디가 아버지를 암으로 보내드렸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쓰게 된 책입니다. 원제는 Being mortal 입니다. 직역하면 '죽는다는 것'정도 되려나요?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어차피 질 수 밖에 없는 죽음과의 싸움을 너무 오래 끌다보면 정작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삶을 정리하는 데는 시간을 못 쏟게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임종을 맞지 못하게 되실까봐 너무 두려웠습니다.
3월에 암이 재발했을때는 항암치료도 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저를 설득한 담당의사는 생명을 늘리기 위한 항암치료가 아닌 췌장암이 담도를 막거나 십이지장을 막아서 고생스럽게 돌아가시지 않게 하기위한 항암치료라고 설명했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일전까지 조금이나마 식사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본인이 나고 자란 동네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하고싶은 얘기도 하고, 오랫동안 못 봤던 지인들도 만나보고 가족들이 함께 있는 동안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췌장암은 1기에 진단받아서 수술을 해도 5년을 넘겨서 사는 사람이 5명중 1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는 당연히 아버지가 그 1명일줄 알았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하고 합병증으로 고생하시게 되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의사인 아들 때문에 VIP 증후군으로 잘 못된게 아닌가 생각을 너무 많이 했지만 아버지를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드린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픕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죽는 기술(아르스 모르엔디, ars moriendi)'에 대해 알게 되셨으면 합니다. 질 수밖에 업는 죽음과의 싸움에서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후퇴해서 잠깐이나마 평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