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의 또다른 전공이 미술사학임은 몰랐다. 솔직히 예술 쪽은 논문쓰듯 정색하는 전공자보다, 살짝 다리를 걸치거나 관심 많은 비전공자, 특히 문학가가 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처럼 문외한에게는 특히. 작가가 갤러리, 미술관 등에서 교양강의한 것을 묶어서인지, 역시 편하게 읽히고 심지어 10여점 꼭 찾아가서 보고 싶은 그림도 생겼다.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 <티티우스> 미켈란젤로, 1533, 윈저 왕실도서관
- <나의 책> 폰토르모, 1554~1556, 피렌체 국립도서관
- <뒤돌아보는 미인> 히시카와 모로노부, 17세기, 도쿄 국립박물관
- <오달리스크> 들라크루아, 1845~1850, 케임브리지 피츠윌리엄 미술관
- <세탁부> 도미에, 1860~1861, 뉴욕주 버펄로 올브라이트녹스 미술관
- <9월 5일의 구름> 컨스터블, 1822,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미술관
- <흰 구름, 파란 하늘> 부댕, 1859, 옹플뢰르 부댕미술관
- <레이디 릴리트> 로제티, 1867,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 <목이 긴 병> 에밀 갈레, 1898, 일본 요시미즈츠네오 컬렉션
- <입맞춤> 브랑쿠시, 1909, 파리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 <빛의 제국> 마그리트, 1954, 브뤼셀 벨기에 왕립회화관
- <햇빛 속의 여인> 호퍼, 1961, 뉴욕 휘트니 미술관
- <가을의 호랑이들> 피슬, 1980, ???
최은영 작가로는 두번째 읽는 책. 역시 소설집. 책 끝 강지희 평론가의 해설 제목 <끝내 울음을 참는 자의 윤리>처럼, 입술을 꽉 깨물며 굳어 있는 사람을 쳐다보는 느낌이다. 감정의 속도 차, 좀 더 솔직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게 당황스럽다. 기질과 기호의 차이일수도, 세대나 성별의 문제일수도. 여튼.
예전에 어느 작가의 말이 ‘글이 착하다’고 했던 기억이 있는데 대략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책은 짧은 소설집. 짧게는 단행본 대여섯 페이지 짜리도 있다. 당연히 대단한 서사나 기승전결 같은 것보다, 어느 인상적인 삶의 한 장면, 이해하지도 받지도 못한 기억 한 조각 같은 이야기다. 에세이 느낌이 강하면서도, 아슴아슴 잡힐 듯 말 듯한 감정들이 이어진다. 앞표지 날개에 프린트된 작가 사진 만큼이나 선한 이야기들이고, 삽화와 잘 어올리는 무던한 이야기다. 이 작가를 알겠다고 하기엔 부족하고, 느낌만은 알 것 같달까.
줌파 라히리는 내게 *영어/이태리어 작가 *노벨상 단골 후보 정도로 기억된다. 앞서 만난 몇 권의 책이 인상적이지 못했던 탓이다. 이 책 역시 어떤 대단한 인상보다는, 이런 식의 단상이 모여 에세이가 아닌 소설이 된다는 낯설음 때문이다. 확실히 호기심이 생겼다. 더 읽어 보려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