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레이로 몸속의 이물을 깨닫고,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자책하다, 생존배낭을 지고 거리로 나가 광화문네거리 앞에서 통곡하고, 달력에 몇 자 적은 뒤, 말하는 개와 함께 그걸 불태운다.
“잘못된 선택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말에 질색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뒤의 사람이 앞의 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 남보다 공기가 더 필요해서.
아홉 권에 걸친 대체역사를 적절하게 마친다. 시작도 용과 나폴레 옹, 끝도 용과 나폴레옹. 줄거리뿐 아니라 캐릭터나 세계관에도 딱 맞는 마무리라고 본다.
이번에는 일본과 러시아다. 시리즈 첫 몇 권보다는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수준을 어느 선 이상으로 유지하고 설정 꼬이지 않는 게 대단하다.
출판사 책소개에 따르면 출간 당시 ‘지금까지 나온 테메레르 시리즈 중 가장 흥미롭다’는 찬사를 받았다는데, 나에게는 정반대. 그래도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1편을 쓸 때 여기까지 구상한 건 아닐 텐데, 세계관 확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이제 거대 괴수의 새로운 전략적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 정말 대단하다. 5권 째인데도 긴장감이나 밀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작가의 시선은 더 예리해지는 것 같고. 고지식한 로렌스마저 끝내 좋아졌다.
하이틴 모험소설 풍이었던 전작들과 달리 노예무역, 인종 간 섬멸전, 민간인 학살, 생물학무기,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를 작정하고 다룬다. 멋진 선택과 결말.
전편보다 더 재미있었다. 리엔 짱. 나폴레옹 짱. 슬슬 작가의 테크닉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캐릭터도 절대 이야기 위에 두지 않고, 이야기도 때로는 과감히 건너뛴다.
여전히 재미는 있지만 중국에 대한 묘사는 꽤 아쉽다. 수수께끼와 음모가 둘 다 너 무 쉽게 해결돼 허탈. 결말에 꽤나 묵직한 화두를 던지는데 어떻게 이어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