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일은 금요일이었다. 그래서 HJ를 포함한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1월 3일까지 사흘 연휴를 즐겼다.
흠, ‘즐겼다’고 표현해도 될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5인 이상 사적 모임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었고, 해외여행은커녕 혼자 카페에 앉아 차를 한 잔 마시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나조차 답답하고 무료한데, 다른 사람들은 이 기간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홈 트레이닝을 많이 한대. 넷플릭스도 많이 보고 인테리어 시장도 커졌나 봐.” HJ가 설명한다.
“이 참에 책 좀 읽지.” 내가 푸념한다.
“그러게. 사람들 책은 참 안 읽어.” HJ가 말한다.
나는 1월 1일에 외출할 일정이 있었다. 방송국에 가서 신년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더빙하고 왔다. 더빙을 그렇게 방영 전날 하는 건지 몰랐다. 우리 프로그램이 뭘 잘못한 게 아니고, 원래 그런다고 했다. 영상을 편집하고 거기에 맞춰 최종 대본을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기 때문인 듯했다.
“방영 전날 자기가 갑자기 감기가 걸리거나 목이 잠기면 어떻게 되는 거야? 방송국 입장에서는 참 도박 같은 일 아니야?”
HJ가 합당하게 지적했다. 나도 궁금했다.
방송국에서는 녹음실로 가기 전에 편집실에서 한번 대본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연습을 했다. 그걸 ‘예독’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읊어야 할 문장들을 시작하는 시점이 초 단위로 계산이 되어 있었다. 편집 감독이 ‘큐’라고 말하면 한 줄을 읽고, 편집 감독이 ‘포즈’라고 말하면 기다리고, 감독이 다시 ‘큐’라고 말하면 그 다음 줄을 읽는다.
방송 발음에 대해서도 배웠다. 소유격을 만드는 조사 ‘―의’는 그냥 ‘에’에 가깝게 발음한다든가, ‘―입니다’는 ‘―ㅂ니다’로 줄여서 말한다든가. 목소리 톤을 높여 달라는 요청도 꾸준히 받았다. 낮고 조용한 내 원래 목소리가 나는 더 좋은데.
녹음 때에는 나와 함께 일한 기자들의 상사인 팀장과 부장도 왔다. 나는 녹음 부스에서 혼자 대본을 읽고,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내가 제대로 읽는지,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타이밍을 놓치지는 않는지 주시했다. 방송 프로그램 참 정성들여 만드는구나, 새삼 놀랐다.
예독을 할 때는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 녹음할 때는 내가 느리게 읽은 것인지 멘트가 미묘하게 장면과 안 맞아 떨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러자 작은 소동이 일었다. 그냥 내가 좀 더 빠르게 다시 읽으면 해결될 일이었는데, 제작진은 한 문장을 삭제하고 다른 문구들을 고쳤다.
녹음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두어 시간 만에 마치고 집에 돌아와 떡국을 끓여 먹었다. 근력 운동을 하고 앨릭스 코브의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었다. 신경생물학의 관점에서 우울증을 살핀 책이다. 실제로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조언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실천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1월 2일에는 HJ도 나도 온종일 집에 있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연어회로 HJ가 김초밥을 만들어주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HJ의 김초밥에는 아보카도를, 내 김초밥에는 오이를 넣었다. 오후에는 머리를 염색했다. 그리고 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신년 인사를 보내온 지인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1월 3일에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 우리 아파트 뒤에는 매우 볼품없는 동산이 하나 있다. 집에서 창문으로 보기엔 소박하게 아름다운데 막상 가보면 별 경치가 없는 그런 산이다. 처음에 이 집에 이사 왔을 때에는 뒷산을 보며 반가워하고 자주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번 올라 본 뒤에 마음이 바뀌었다.
그래도 그냥 신년이니까, 하는 마음으로 찾았다. 우리 부부의 조촐한 신년 시무식이랄까. 작년에도 1월 초에 그렇게 올랐다. 1년에 한두 번 오르면 충분한 산이다. HJ나 나나 산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하늘은 흐렸고 상당히 추웠다. 눈은 쌓이지 않았고, 나무들은 가지가 앙상했다. 산길을 걸어도 자연 속에 있다는 기분은 거의 들지 않았다.
산 중턱에는 토끼 사육장이 있다. 몇몇 주민들이 멋대로 지은 무허가 시설이어서 지저분하다고 구청에 철거해 달라는 민원도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배춧잎이나 당근을 들고 가서 토끼들에게 먹이는 동네 사람들도 있다. 토끼들은 사육장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데, 사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토끼들은 몸을 잔뜩 움츠려 돌멩이처럼 가만히 길가에 앉아 있었다. 귀를 등에 찰싹 붙이고 있었다. 그래도 추위로 고통스러워하거나 얼어 죽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산에서 내려와서는 근처에 있는 무한리필 소고기집에 갔다. 가끔 그렇게 배가 터지도록 고기를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일요일이고 점심때였는데도 제법 규모가 있는 가게에 우리를 제외하고는 딱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그나마도 그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선 뒤에는 우리만 남았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식당은 난방을 하지 않았고, 우리는 덜덜 떨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입에서는 김이 나왔고, 발이 얼면서 점점 감각이 사라져갔다. 1인당 1만9800원짜리 기본 메뉴를 주문하고, 추가 음료나 음식은 시키지 않았다.
종업원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에서 조용히 밥을 차려 먹었다. 음악도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식사 중에 이야기를 하니 종업원이 와서 “말씀을 하실 때에는 마스크를 쓰고 해 달라”고 주의를 주고 갔다.
가게 바깥이 실내보다 더 따뜻한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 가서 화장실에 들르고, 좀 더 걸을지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HJ가 코인노래방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 중지 중이냐고 물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가까운 코인노래방이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걸로 나왔다.
가서 문이 닫혀 있으면 그냥 돌아오기로 하고 코인노래방을 찾아갔다.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노래방에는 정문에 집합금지명령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우리는 별로 낙담하지도 않고 발걸음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에 들렀는데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북적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다들 집에 있기 괴로웠나 보다. 공원에서 오리가 붕어를 사냥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오리는 TV나 신문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펄떡펄떡 움직이는 붕어를 한 입에 꿀떡 삼키지 않았다. 죽은 게 분명한 물고기를 무슨 이유에서인지 입으로 물었다 놓길 반복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할인 판매를 한다고 해서 편의점에서 사 왔다. 점심을 배불리 먹었으므로 저녁은 걸렀다. 대신 맥주는 마셨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 중 설 콜드 IPA 캔을 골랐다. 눈 덮인 산 위로 눈이 오는 풍경이 캔에 그려져 있다. 보기만 해도 춥다.
설 콜드 IPA는 속초에 양조장이 있는 한국 수제맥주 회사 크래프트루트의 제품이다. 캔에 그려진 산은 설악산이라고 한다. 맥주 이름의 ‘설’도 1월 1일이 아니라 눈(雪)을 의미한다. 이 회사의 맥주는 속초 지명이나 사투리, 혹은 속초의 명물에서 이름을 따 왔다. 속초 IPA, 동명항 페일 에일, 대포항 스타우트, 아바이 바이젠, 갯배 필스너….
맥주를 마시며 HJ와 여행, 혹은 다른 도시에서 한 달이나 그 이상 살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처럼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그런 주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되다니. HJ나 나나 지쳐 있었다. 그 원인이 우리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가 한계에 온 것인지, 이 나이 때쯤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인지, 인터넷과 사회 변화 때문인지.
HJ는 요즘 이직을 준비하며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다. 최종 면접까지는 통과했고, 연봉 협상 중이다. 새로 옮긴 회사가 괜찮은 곳일지 아닌지는 가서 일해 봐야 안다. 영 아닌 곳으로 판명 나면 미련 없이 사표를 내고 둘이 같이 서울을 떠나 당분간 쉬기로 했다. 치앙마이 같은 곳으로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언감생심이고…. HJ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몇 달간 살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속초도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올 겨울 참 길다
설산 감상은 그림으로 할게요
발이 꽁꽁 얼었거든요
12월 31일에는 마감에 시달렸다. 신문 두 곳에 원고를 보냈는데 각각 ‘새해 추천하는 책’과 ‘새해 도전하려는 책’이 주제였다. 둘 다 여러 필자에게 짧은 글을 함께 청탁해 지면을 채우는 기획이다.
이런 기사들을 보내면 항상 기자들이 나중에 난감해 하면서 분량을 줄여도 되느냐고 되물어온다. 요청을 받은 필자들이 대부분 요청 받은 것보다 더 길게 써서 글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200자나 400자처럼 짧은 분량으로 청탁을 하면 늘 벌어지는 일이다.
나는 비교적 분량을 엄수하는 편인데 그런 상황에서 내 원고가 제일 먼저, 또 많이 줄어드는 것 같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같은 기자 출신이니까 고충을 알고, 손대도 뭐라고 안 할 것 같다’고 문화부 기자들이 부담을 덜 느끼는 것 아닌지?
두 신문 외에도 구독자에게 에세이를 메일로 보내는 서비스에 원고를 보내야 했다. 사흘째 마감을 어긴 상태였는데, 정말 글이 더럽게 안 써졌다. 별로 할 얘기가 없어서였다. 아무래도 이 서비스 제작진이 정한 콘셉트와 내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었으나 결국 마감하지 못했다.
낮에는 재택근무 중인 HJ와 밖으로 나가 근처 빵집에서 조각 케이크를 사 왔다. 가게에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닌데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섰다. 우리 앞에 선 할머니는 빵을 사고 값을 치르는데 5분 가까이 걸렸다.
속으로 할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우리 차례가 되어보니 문제는 할머니가 아니라 직원이었다. 일처리가 서툴고 느렸다. 채용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인 듯했다. 자기도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어쩔 줄 몰라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또 직원에게 미안해졌지만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잠자코 계산을 하고 나왔다. 그런 미안한 감정이 집에 올 때까지 가슴에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나 할 걸 그랬다. 연말에 새 일자리를 얻은 직원의 사연이 궁금했다. 하루짜리 단기 아르바이트였을까.
HJ는 집에서 오후 6시까지 일했다. 오후 6시부터 우리의 연말 의식인 과메기 파티를 준비했다. 과메기라는 요리를 내가 HJ에게 소개해줬고, 그 뒤로 겨울마다 둘이서 과메기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집에서 먹는다. 2016년부터는 매년 12월 31일에 저녁에 과메기를 먹으며 한 해를 정리한다. 그때 유서도 써서 함께 낭독하고 녹음한다.
올해도 며칠 전에 과메기를 주문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맥주도 사 놓았다. 청어보다 꽁치로 만든 과메기가 우리 부부 입맛에 더 잘 맞는다.
인터넷에 ‘과메기에 어울리는 맥주’를 검색하니 어느 맥주 칼럼니스트의 글이 나왔다. 세종과 복이 과메기와 궁합이 좋다고 나와 있었다. 세종은 비린 맛을 상쇄해주며, 복은 맥주의 비스킷 풍미가 과메기의 고소함과 어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과메기는 의외로 레드 와인과 조합이 좋다. 풍미 강한 음식과 술이 서로 단단하게 붙잡고 또 받쳐주는 느낌이다. 정작 생선과 어울린다는 화이트 와인은 과메기를 당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가벼운 느낌의 세종에 대해서도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어쨌든 대표적인 세종 맥주인 세종 듀퐁을 준비하긴 했다.
케이크에 초를 꽂고 불을 켠 뒤 부부가 함께 입김을 불어서 끄며 소원을 빌었다. 우리 계속 건강하게 해주세요, 하고. 그리고 HJ부터 유서를 낭독했다. 내 스마트폰으로 녹음했다. 2020년 HJ의 유서에는 과거와 달리 유머가 간간이 섞여 있었다. HJ는 올해 겪은 중요한 일 중 하나로 부동산 가격이 올라 스트레스를 받은 점을 적었다. 그건 유머가 아니었다.
HJ와 나의 유서는 형식이 같은데, 처음 유서를 쓸 때 내가 HJ의 것을 베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는 매년 그 전해에 쓴 문서를 참고해서 조금씩 업데이트 하고 있다.
유서에서 우리는 한 해에 있었던 일들, 느꼈던 일들을 먼저 간단히 정리하고, 그 다음에 유산 정리 방법을 길게 말한다. 뒷부분에서 장례 방식을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을 불러 식을 올리거나 빈소를 차리지 말고 화장한 뒤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다. HJ도 나도 그렇게 유골 뿌린 뒤 가족끼리 시원한 바람 맞고 뜨끈하게 식사 한번 하면 충분하다, 고 쓴다. 마지막은 서로에게 남기는 말이다.
“그 이후는 그 어떤 추모도 하지 마세요. 원래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와서 이것저것 재미있게 해보다 가니 여한이 없고 행복합니다. 내 남편 장강명은 나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꼭 본인이 원하는 명작을 최대한 많이 써서 남기기 바랍니다. 킵 캄 앤드 캐리 온 라이팅. 사랑합니다.”
“저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습니다. 서류에 작성한 상황이 발생하면 의향서에 제가 쓴 대로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 ○○○은 나의 죽음으로 좌절하지 말고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자기야, 나중에 좋은 곳에서 꼭 다시 만나자. 내 평생에 당신을 만난 게 제일 큰 행운이었어.”
그렇게 유서를 낭독하고 나면 HJ나 나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좀 쑥스럽지만 적당히 숙연하고 마음이 정화된 듯한 기분도 든다. 무척 값지고 좋은 시간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유서를 쓰고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낭독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유서 녹음을 마친 뒤 드디어 과메기를 먹기 시작했다. 올해의 과메기는 예년보다 딱딱하고 살도 부족해서 다소 아쉬웠다. 그러나 세종 듀퐁은 무척 맛있었고, 깜짝 놀랄 정도로 과메기와 잘 어울렸다.
세밑에는 유서를 씁니다
밤이 되면 꽃향기 나는 술도 마실 거예요
모두 고맙습니다
낮에 몇몇 지인에게 메일로 송년 인사를 보냈는데 그 중 어떤 이는 그 사이에 벌써 답장을 길게 보내왔다. 그 답장 내용을 HJ와 보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지인이 떠올라 그에게도 짧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지만 여태까지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나는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HJ는 그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는데 내가 들려주니 무척 놀라워했다. 세상 잘 모르겠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세종 듀퐁을 다 마신 뒤에는 호가든, 산미구엘 페일 필젠, 에델바이스를 마셨다.
피트니스클럽에 다니면서 생활의 리듬을 되찾고 체중도 감량했다. 12월 초에는 63킬로그램 남짓이 되었다. 1킬로그램만 더 빼면 우울증에 걸리기 전으로 회복하는 건데, 그 마지막 1킬로그램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피트니스클럽이 운영을 축소하다가 마침내 문을 닫았다.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아무래도 피트니스클럽을 다닐 때보다는 게을러졌다. 운동량도 줄었다.
아침에도 6시 반에 못 일어나고 늦잠을 자는 때가 생겼다. 안 좋은 생각들, 기억들이 머리에 떠올라 한참 사라지지 않았다. 분노에 차서 벽을 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혼자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렇게 우울증이 오는 거구나.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는 것, 내가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 사랑과 닮았다. 참으로 운명 같구나.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 침대에 기어 들어가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귀찮고 매사에 의욕이 안 난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단편집이 가장 좋았고, 가벼워 보이는 소설일수록 환영이었다.
하루는 가와사키 소시의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을, 다음날에는 모리 아키마로의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를 읽었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는 수사에 관심 없는 젊은 경찰서장과 그런 서장을 오해하는 열혈 경찰관들이 벌이는 추리극인데 만화책처럼 유쾌하다. 『검정고양이…』는 ‘인문학 미스터리’를 표방하는데 라이트노벨 같은 서술과 거창한 소재의 결합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로맨스도 있다.
셋째 날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세 권을 하루에 읽었다. 장편소설인 『하쿠바산장 살인사건』과 『11문자 살인사건』, 그리고 연작 단편집인 『살인 현장은 구름 위』. 모두 작가가 1980년대에 쓴 초기작들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대부분 2010년대에 나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공허한 십자가』, 『매스커레이드 호텔』….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에는 밀실 살인,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 암호 풀이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숨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재미있으므로 넘어간다. 『11문자 살인사건』은 그보다는 조금 더 톤이 무겁다. 『살인 현장은…』에서는 승무원 콤비가 비행기나 항공사와 관련된 수수께끼들을 해결하는데 작가도 진지한 마음으로 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많이 쓸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비꼬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두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실하게 쓰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그 두 일본 작가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히가시노의 책을 세 권 읽은 날에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청소하고 근력 운동을 했다.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집 근처 사무용 건물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 구내식당은 점심에는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하지만 저녁식사 메뉴는 한 종류라서 뭘 먹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체로 저녁 메뉴가 점심보다 부실하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페트병에 든 마튼즈 바이젠을 두 병 사 왔다. 마튼즈는 1758년에 술장사를 시작한 유서 깊은 맥주 가문이고 생산량도 벨기에 2위라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가격 대비 성능비로 인식되는 브랜드다. 이날 내가 모처럼 이 맥주에 손을 뻗은 데에도 하루 종일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한 몫 했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와서 뚜껑을 따고는 크게 실망했다. 오래된 제품이었는지 탄산이 다 날아가 밍밍했고, 맛도 살짝 변한 것 같았다. HJ는 마실 만하다고 했지만 나는 한 잔을 겨우 비웠다. 다시는 페트병 맥주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위스키, 보드카, 소주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맥주에는 있다. 알코올 함량이 낮고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수가 특이하게 높거나 람빅 스타일이 아닌 한 병맥주와 캔맥주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1년, 페트병 맥주는 6개월이다.
홉은 단백질 성분이라서 직사광선을 받으면 맛이 변질된다. 맛의 측면에서는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더 안전한 선택이다. 특히 페트병은 유리병과 달리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뚜껑을 따기 전에도 바깥의 산소가 안으로 들어가고, 안의 탄산가스도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온다. 맥주 페트병은 일반 페트병과 달리 다중막 구조로 만들거나 차폐 성분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지만(그래서 재활용도 어렵다).
김빠진 맥주
가성비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요
인생 짧아요
우울증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면 좋을 텐데. 6개월만, 1년만 버텨내면 끝난다는 보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김빠진 맥주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강 나선의 입구에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이 우울감에는 예전에 느끼곤 했던 감미로움 따위는 없다.
오늘은 미야지마 겐야의 『고마워, 우울증』을 펼쳤다. 저자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데 본인 스스로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전공을 정신과로 택했다. 환자들에게 항우울증 약을 권하지 않는 의사라고 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전에 이 책을 읽은 게 2016년으로 나온다. 그때는 우울증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왜 읽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책 제목과 ‘우울증은 삶을 바꿀 기회’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아 다시 집어 들게 됐다.
현대의학에서 우울증을 바라보는 방식을 비판하는 앞부분이 위로가 됐다.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검사 없이 오직 환자 말에만 의존해 우울증 진단을 내리며, 재발 환자에게 약을 계속 권하도록 교육받지만 그런다고 우울증이 치료되는 건 아니라고. ‘많은 정신과 의사의 치료는 약을 처방하는 것뿐’이라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썩 믿기지는 않는다. 뒷부분에 적힌 우울증을 극복하는 실천 방법들은 그냥 눈으로만 읽었다.
우울증이 삶을 바꿀 기회라면, 우울증을 기회로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희망적인 생각도 한다. 이 병을 완전히 극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보다 현명하고 의연한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음영이 있는 인간이 될 것이다. 이미 얼마간은 그렇게 됐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전보다 미소를 더 자주 짓는 사람이 되어가고도 있다. ‘난 참 운이 좋다,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여러 번 의식적으로 미소를 짓는다. 혼자 박수를 치며 이상한 춤도 춘다. 50대, 60대에 늘 미소를 짓는 얼굴이면 좋겠다. 진심으로 “고마워,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동지가 가까워오니 우울증의 기운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역시 우울증은 일조량과 상관이 있는 거야. 거의 다 극복했다고 여기던 터라 당황스럽고 또 두렵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올해 3월이었다. 3주가량 그 증상이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무슨 동면하는 동물처럼 엄청나게 잤다. 삶에서 도피하고 싶었고, 방법이 술 아니면 잠이었다. 졸리기도 많이 졸렸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잠을 일부러 청하기도 했다.
4월에 ‘이래선 안 되겠다’ 마음먹고 동네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정신과에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라는 이야기를 그날 듣고 멋쩍게 웃었다.
약의 효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하다. 다른 정신과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만한 경험도 없다. 자살 충동이 누그러들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다행이라고 여겼더랬다. 워낙 기대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다른 소설가의 우울증 경험을 뒤늦게 전해 들었는데, 그이는 항우울제를 먹고서는 너무 행복해져서 오히려 이래서는 글을 못 쓰겠는데,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얘기를 들려준 작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부작용은 약하게 겪었다. 입 안이 뻑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침이 말랐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신체에서 분비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안과에 가서 소독제와 일회용 눈물을 한아름 처방 받았는데, 안구건조증으로 안과에 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약국에서 젊은 약사가 우울증 약을 건네며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하고 위로했다. 그래, 맛난 거 먹는 게 행복이지. 그래서 그 뒤로 한동안 다이어트 걱정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사이에 7킬로그램이 쪘다. 5월 중순만 해도 몸무게가 62킬로그램 남짓이었는데, 9월 중순에는 70킬로그램을 돌파했다. 체중이 70킬로그램을 넘은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올해는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
얼굴도 몸도 동글동글해졌다. 66, 67킬로그램일 때 절식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나 원래 굶는 거 잘하는데…. 의사에게도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처방 받은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의 부작용 중 하나가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거라고 했다.
정작 병세는 어느 단계에서 더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7월에 한 번, 9월에 또 한 번, 만사 귀찮아져서 1, 2주씩 침대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의사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지만, 그 이가 아니라 현대정신의학에 대해 품고 있던 높은 기대가 꺾였다. ‘못 믿겠다’는 아니고, ‘아, 기껏 이거였어?’ 정도.
증세가 나쁘다고 하면 복용량을 늘려주고, 그래도 차도가 없다고 하면 약을 바꾸는 식으로, 땜질 처방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요행히 나에게 딱 맞는 약과 투여량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치료가 나의 자가 진단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셈인데, 그 자기 파악에 내가 자신이 없었다. 나 상태가 좋아졌나? 나빠졌나? 잘 모르겠는데.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월 중순에 항우울제 복용을 내 멋대로 중단했다. 이 경험을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백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절박한 마음과 환자 특유의 오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운이 좋았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서서히 복용량을 줄여야지, 단번에 끊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얼마 뒤 심각한 공황 발작을 두 번 겪었다.
약을 찬장 안으로 치운 다음날부터 피트니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무조건 6시 반에 일어나 HJ가 출근할 때 나도 피트니스클럽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하루에 30분씩 달리고, 이틀에 하루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기로. 다른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지키자고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그렇게 억지로 몸을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부터 분명하게 차도가 있었다. 그래도 병원에 다니는 걸 멈추지는 않았는데, 운동의 효과 역시 얼마 못가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병원에 의지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동네 병원은 예약을 한번만 지키지 않아도 환자를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석 달 동안 병원에 가서는 약 잘 먹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는 가지 않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약 구매 기록을 의사가 검색할 수 있지 않나 우려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같으니 약은 그만 먹어도 될 거 같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며 계속 처방전을 써주었다. 약의 용량은 줄었다.
9월 말에 하루, 10월에 또 하루 공황 발작이 왔다. 갑자기 얼굴 앞에 투명한 벽이 생기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한밤에 집밖으로 나가 근처 개천 다리 위에 한참 서 있다가 돌아왔다. 10월에는 하룻밤에 두 번이나 그랬다.
의사도, 약사도 술을 삼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신 무알코올 맥주를 많이 마셨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이트제로를 박스째로 주문해서 쌓아놓고 마셨다.
무알코올 맥주는 만드는 방법이 세 가지다. 아예 효모를 발효하지 않는 것, 발효를 한 다음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 발효를 하긴 하되 억제해서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 아래인 낮은 도수의 맥주를 만드는 것. 마지막 방법이 무알코올 맥주 중에는 제일 맛이 좋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보다 낮으면 무알코올 맥주라고 팔아도 된다.
하이트제로는 비발효 공법 맥주다. 나무위키에는 하이트제로에 대해 ‘맥주고 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탄산음료로서도 부적격’ 같은 악평이 적혀 있다. 나는 이게 어디냐, 하고 감사히 먹었다. 진짜 맥주만큼 좋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나는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기질이 다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알코올 맥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탄산수 같은 걸로 대신했으려나?
고마운 친구여
지옥 가는 길을 막아줬다오
심심하긴 해요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주 원인은 아니겠지만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는 요인 중에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는 점도 있다. 30년 가까이 써왔던 일기를 재작년 말부터 쓰지 않고 있다. 타인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니 쓸모가 없다고 여겼고(나조차 다시 읽지 않았다), 바쁘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15개월 뒤에 우울증에 걸렸다.
일상을 혼자 글자로 적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왔는데, 그걸 더 하지 못하게 되어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맥주를 소재로 일상 에세이를 쓰는 것은 글쓰기에 있는 치유의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2022년 4월 27일 그믐의 김혜정 대표는 제주문학관을 방문하여 제주도민들과 독서모임이 가진 힘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지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좋아하고, 이 작가의 독서 칼럼을 좋아한다. 내가 은근히 로맨틱한 남자여서 사랑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매우 취향에 맞는 책이었다. 서태지와 신해철의 음악이나 노랫말이 아닌 사랑 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고개 끄덕이며 감탄.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버둥거리게 된다’는 표지 문구도 좋다.
《제인 에어》를 보고 사흘 뒤에 영화 《킹 리어》를 봤다. 그 사이에 HJ는 처가에 가서 하루 묵고 왔고, 나는 집을 청소했다. 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HJ는 또 친정에서 반찬들을 잔뜩 가져 왔다. HJ는 “엄마가 나한테 반찬 주는 걸 좋아해, 그게 엄마의 기쁨이야”라며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장모님에게 매번 너무 미안하다.
새해부터 신문 한 곳에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칼럼을 싣는 일간지가 두 곳이 됐다. 책 칼럼까지 포함하면 세 곳. 신문사에서는 대표 칼럼의 필진이 되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하고 에세이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담당 부장은 대표 필진이 되는 게 부담스러우냐고 물었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찾아보니 대표 칼럼은 주로 시사 문제를 다루던데,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의성이 높은 글들은 나중에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에는 낡은 느낌이 들기 일쑤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이 싫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인 정치적 사안에 대해 누가 옳다 그르다며 판관 역할을 할 마음도 없었다(그러고 보면 내가 신문에 쓰는 칼럼의 상당수가 ‘모르겠다’ 혹은 ‘두렵다’로 끝난다).
신문사에서 연재 코너의 제목을 정해 달라고 해서 ‘장강명의 군중 속에서’ 어떻겠느냐고 답을 보냈다. 담당 부장은 너무 낡은 느낌이라며, ‘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를 대안으로 내놨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나, 하고 약간 발끈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목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고, ‘사는 게 뭐길래’도 들을수록 괜찮게 들렸다.
《킹 리어》를 보는 날 낮에는 방송국에서 신년기획 다큐멘터리의 이음새 부분과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둘 다 야외 촬영이었는데 이번에는 날도 그리 춥지 않았고 시간도 덜 걸렸다.
선배 기자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사양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 왔다. 빵 종류를 묻는 종업원의 질문에 허둥지둥 대다 흰색 기본 밀빵을 골랐는데, 다른 곡물 빵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돌아오는 길 내내 후회되었다. 내 얘기를 들은 HJ는 “그게 사람들이 서브웨이에서 아주 흔하게 하는 실수지”라고 촌평했다.
영화를 보려는데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의 연결이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그래픽카드 드라이버를 다시 받는다, 윈도를 업데이트한다 어쩐다 하면서 한참 부산을 떨었다.
왜 지난번에는 멀쩡히 작동됐는데 이번에는 안 되는가? 왜 이 노트북에서는 잘 돌아가는데 다른 노트북에서는 안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고 깊은 좌절감만 든다. 전문가들은 원리를 알까? 애당초 원리가 있기는 한가? 컴퓨터 운영체제라는 것도 날씨나 주식시장처럼 복잡계 물리학의 영역 아닐까.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친 덕에 HJ나 나나 약간 기분이 꼬인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애당초 『리어 왕』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도 아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 가장 가학적이고 인간혐오적인 작품 아닌가 싶다. 햄릿이나 오셀로나 맥베스는 리어만큼 추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기분이 꼬인 상태에서 감상하기에 오히려 적절한 작품인가? 나보다 더 불행한 인간을 보면서 카타르시스와 연민을 느끼는 데 비극의 유용함이 있다고 하니. 그리고 『리어 왕』도 중간에 꽤나 부조리극 같은 대목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기분을 조금 전에 살짝 느꼈잖아?
《킹 리어》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는 그대로 살리되 무대와 소품은 21세기로 바꾼 작품이다. 그래도 스마트폰 같은 물건은 안 나오고, 인물들은 종이로 된 편지를 주고받는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줄리엣》 같은 영화가 있으니 참신한 기획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덕분에 얄팍한 재미가 생기기는 한다. 현대 군인 복장을 한 젊은 남자들을 기사라고 부르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말처럼 취급하고, 결투는 이종격투기로 한다. 그런 충돌과 부조화는 일단 눈길을 끌고, 어떤 장면은 우습게, 어떤 장면은 제대로 고증했을 때보다 더 날카롭고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군복 차림의 젊은 사내들이 현대식 건물 거실에 가득 들어와 있는 장면을 보면 절로 위협감이 들고, 리어의 첫째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기분이 꼬인 상태였기에, HJ는 앤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리어 왕이 뭐라고 대사를 읊을 때마다 “저 할아버지 왜 저래?” 하며 툴툴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앞부분을 보면서 리어의 ‘못된’ 딸들에게 꽤 감정이 이입되었다. 위에서 말한 연출 때문이기도 했고, 거너릴 역을 맡은 엠마 톰슨의 기품 덕분인 것 같기도 했다.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화는 뒤로 갈수록 화면 채도가 낮아져 마지막에는 거의 흑백영화처럼 보였다. 그때쯤 풀러스 런던 포터를 마셨는데, 맥주의 짙은 암갈색과 다크초콜릿 풍미, 적당한 묵직함이 영화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리어 왕』은 주제가 뭐야?”
영화를 다 본 뒤 HJ가 물었다.
“글쎄, 나이가 들어도 경제권은 절대 놓으면 안 된다는 거? 그리고 부동산은 함부로 증여하지 말자?”
내가 대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며칠 뒤 방송작가와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할 때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써야 하는 방송작가는 내 말에 웃기는 했으나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경쟁을 붙이는 리어의 허영심과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 세상, 지혜로워질수록 더 고통 받는 아이러니 등등에 대해서도 조금 떠들었다.
허영에 빠지지 않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를 찾지 않게
어둠의 무게를 즐길 수 있게
모임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습니다.
바로 바로 ‘초대’ 기능이에요.
나의 카카오톡 친구들을 모임에 초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우리가 개발자분들에게 카카오톡 초대 기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초대 메뉴를 찾는 방법은요,
모임 들어가서 상단 메뉴를 보시면 모임지기의 말/모임 정보/모임 소재/참여 인원/공유가 차례대로 나올 텐데요, 제일 마지막에 초대가 있어요.
스마트폰을 이용하실 때는 화면 오른쪽 상단의 점점점을 누르시면 모임 메뉴가 나올 텐데 제일 마지막에서 초대 기능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초대 아이콘을 누르시면 카카오톡 공유하기와 같은 화면이 나올 거예요. 이때 내가 초대하고 싶은 친구와 지인들을 선택한 뒤 제일 아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면, 해당 모임에 초대한다는 메시지를 초대장처럼 보낼 수 있어요.
이제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마시고 친구와 지인들을 불러 책 이야기 함께 하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 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저는 또 새로운 기능을 들고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감상평 :
요즘 시대에 '가성비' 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종교, 가성비에 관한 5편의 소설들이 모였다.
단편이 두 세 편 정도 더 들어갔다면 좋았을 걸 싶기도 하고, '가성비'로 묶이기엔 좀 안 어울리는데 싶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들었을 때 혹하는 테마임은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