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연명 치료와 안락사에 모두 반대한다. 읽다 보면 이 문제가 윤리적으로 정말 모호한 영역에 있음을 알게 된다. 중간의 신앙 간증도 영 생뚱맞지는 않았다.
복잡계와 위상수학을 살짝 소개해 준다. “학교에 다니는 건 빳빳한 현찰을 많이 챙기기 위해서다, 덤으로 교양 부스러기도 건지고” 같은 명문도 나온다.
19세기 빈에서 상류층으로 태어나 2차 대전 중 눈을 감은 반듯한 평화주의자. 주변 세상은 점점 미쳐가기만 했다. 그럼에도 이 회고록을 읽다 보면 그가 누린 호사에 대한 부러움이 앞선다.
초인플레이션을 겪을 때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의 참된 가치를 더 알게 되는 듯 보였다는 묘사가 기묘하면서 설득력 있다. 대중의 흥분에 휩쓸려 함께 전쟁 선동에 나섰던 지식인들의 행태는 그저 익숙할 따름.
“‘덕’은 오리고 ‘구스’는 거위잖아. 그러면 이건 오리야, 거위야?”
덕덕구스 세션 IPA 캔에 그려진 새 그림을 보며 HJ가 물었다. 편의점에서 4캔에 1만 원 행사로 산 캔 맥주였다. 맛있었다. 상큼한 과일 향이 나는 부드러운 느낌의 인디아 페일에일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둘 다 ‘덕, 덕, 구스’가 수건돌리기를 뜻하는 영어 표현임을 몰랐다.
나는 캔에 그려진 그림이 오리일까 거위일까 한참 고민했다. 한심한 고민이었다. 그 그림은 미국 시카고에 양조장이 있는 맥주회사 구스아일랜드의 로고였다. 그러니 따져볼 것도 없이 거위다.
(사실 살아 있는 오리나 거위를 한 마리 데리고 와서 맞춰보라고 해도 모른다. 양쪽을 한 마리씩 데리고 와서 나란히 놓고 보여주면 겨우 맞출 수 있을 거다. 거위가 좀 더 큰 거 맞지?)
HJ에게 답을 하는 대신에 나는 엉터리 하이쿠를 지었다.
오리냐 거위냐
천 잔의 술을 마시고 나면
알아볼 수 있을까
정통 하이쿠는 각 행이 5, 7, 5음이어야 하고,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인 기고(季語)도 들어가야 한다지만, 내가 지은 것은 엉터리 하이쿠. 세 줄이고, 중간 행이 다른 행보다 더 길기만 하면 된다. 운율이니 키레지(切れ字: 구를 끊기 위해 넣는 글자)니 하는 것도 나는 모른다. 주제의식 같은 것도 몰라요, 몰라.
그래도 생애 첫 엉터리 하이쿠를 짓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은 했다. 죽기 전에 1000 종류의 맥주를 마실 수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그리고 그 맥주들 하나하나에 모두 엉터리 하이쿠를 한 수씩 지으면 좋겠다고.
재미있는 게 없다고 느낄 때였다. 중년 위기라는 말을 진지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일에서는 슬럼프였고, 인생 전망에 대해서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다닌 지 반년이 넘어간 상태였다. 운동을 하면서 적당히 극복했다고 믿고는 처방전만 받고 약은 먹지 않았지만.
1000 종류의 맥주를 마시고 인증하는 것, 그리고 맥주를 마실 때마다 하이쿠를 짓는 것은 해 볼만 한 목표처럼 보였다. 일단 아주 쉽지도 않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도 않아서, 시간과 공을 들이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하는 과정이 즐거울 것 같았다. 매번 마실 맥주를 고를 때 새로운 기준이 생기기도 할 것이고(안 먹어본 맥주가 뭐지?), 지독히 맛없는 맥주를 마시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보람은 있을 터였다(새로운 종류의 맥주를 마셨다는).
내가 원래 뭔가 모으고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간 되도록 미니멀하게 살려는 마음가짐 때문에 수집에 취미를 붙이지 않았더랬다. 하지만 맥주 사진과 엉터리 하이쿠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무엇보다 무익하면서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고, 나름 운치 있는 일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풍류의 핵심이 그거 아닐까. 인간에게는 자신이 아마추어인 예술 분야에서 효율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일상의 긴장을 푸는 동시에 몰입하는 경험이 필요한 것 같다.
이걸 동아시아에서 천 년 이상 이어져 온 문인들의 전통 유희를 계승하는 일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신라 귀족도, 조선 선비도 술자리에서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놀았다. 한중일 세 나라에 모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읊는 유상곡수(流觴曲水) 풍속이 있었다.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미 몇몇 맥주는 내게 각별한 사연으로 다가온다. 버드와이저는 내게 20대 말과 30대 초반에 밤에 집에서 혼자 깨어 있던 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산 미그 라이트를 보면 HJ와 갔던 보라카이 여행이 생각나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에세이를 썼기 때문이다. 그 책을 쓰지 않았더라면 산미구엘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졌으리라.
글을 쓰면 사물세계와 정신세계 사이에 질긴 끈이 생긴다. 그런 끈이 많은 사람은 보다 풍요롭게 세상을 살게 되지 않을까? 보다 흐뭇하고 따뜻한 심상으로 자기 주변을 꾸밀 수도 있지 않을까?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진열대의 맥주를 보면서 가격만 비교하기보다 20대를 추억하고 보라카이를 떠올리는 쪽이 훨씬 낫지 않을까.
앞으로 맥주를 한 종류 마실 때마다 사진을 찍고 엉터리 하이쿠를 지어야지. 그런 엉뚱하고 개인적인 취미를 하나쯤 가지고 싶어졌다. 그에 대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꽤 즐거워졌다. 취기도 한 몫 했겠지만.
모든 맥주에 각각 사연을 부여할 수도 있을까? 그러면 어떤 맥주를 볼 때마다 특별한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될까? ‘네가 나를 길들이면 나는 밀을 보며 네 금빛 머리카락 색을 생각할 거고,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어린 왕자에게 했던 여우의 말처럼….
Y-레이로 몸속의 이물을 깨닫고, 내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을 자책하다, 생존배낭을 지고 거리로 나가 광화문네거리 앞에서 통곡하고, 달력에 몇 자 적은 뒤, 말하는 개와 함께 그걸 불태운다.
“잘못된 선택이라도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는 말에 질색한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을 좋아한다. 뒤의 사람이 앞의 말을 할 수도 있겠구나. 남보다 공기가 더 필요해서.
아홉 권에 걸친 대체역사를 적절하게 마친다. 시작도 용과 나폴레옹, 끝도 용과 나폴레옹. 줄거리뿐 아니라 캐릭터나 세계관에도 딱 맞는 마무리라고 본다.
이번에는 일본과 러시아다. 시리즈 첫 몇 권보다는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수준을 어느 선 이상으로 유지하고 설정 꼬이지 않는 게 대단하다.
출판사 책소개에 따르면 출간 당시 ‘지금까지 나온 테메레르 시리즈 중 가장 흥미롭다’는 찬사를 받았다는데, 나에게는 정반대. 그래도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1편을 쓸 때 여기까지 구상한 건 아닐 텐데, 세계관 확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사람들이 이제 거대 괴수의 새로운 전략적 가능성을 탐색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