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쿠라 일기전
“그런 걸 조사해서 어따 쓰시게?”
하고 옆에 있는 후지에게 툭 내뱉듯이 말할 뿐이었다.
그런 걸 조사해서 어따 쓰시게? 그가 툭 내뱉은 이 말이 고사쿠의 마음 깊은 곳에 가시처럼 박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작업에 의미가 있을까? 괜한 일에 나 혼자 오기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문득 자기 노력이 전혀 쓸데없이 보이고 갑자기 떠밀려 난 기분이 들었다. K의 편지마저 겉치레 인사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희망은 갑자기 사라지고 새카만 절망이 엄습해 왔다. 이런 절망감은 이후에도 종종 불 쑥불쑥 일어나 그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마쓰모토 세이초, 「어느 고쿠라 일기전」중에서
앞서 썼듯이,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는 버드와이저를 많이 마셨다. 그때 마실 수 있는 맥주 종류가 얼마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서른 살이던 2005년에 하이트맥주 한 회사의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이 58퍼센트였다. 하이트, OB, 카스, 이렇게 세 국산 대기업 브랜드가 한국 맥주 시장을 사실상 점령한 상태였다.
수입 맥주 점유율은 다 합해서 4.2퍼센트였는데, 그것도 무서운 성장세라고들 했다. 주로 맥주 바에서 팔리는 형태였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수입맥주는 해외 체류 경험이 있거나 해외상품에 관심이 많은 전문직 종사자를 비롯해 젊은 직장인이 즐겨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문구들이 눈길을 끈다.
그나마도 수입 맥주의 빅3는 밀러, 하이네켄, 코로나였다. 미국식 부가물 라거가 아닌 맥주를 마시는 한국인은 참으로 드물었다.
2005년 즈음에 세계주류전문점까지 가지 않고 마트나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술 중에 입맛에 가장 맞았던 맥주가 버드와이저였다. 6병 들이로 사 와서 잔에 따르지 않고 병째로 마시곤 했다. 불을 끄고, 안주 없이, TV나 노트북 화면이나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창 밖 풍경을 바라보거나 아니면 껌껌한 거실 어둠 속에서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게 마시는 동안 몸도 마음도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십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자유가 없었고 감정은 혼란스러웠다. 20대 후반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러면 조금 고민해볼지도 모르겠다. 기자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품었고, 소설가라는 진지한 꿈도 있었다. 양쪽 모두에 내가 재능이 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지만.
연인도 있었다. 연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었다. 카카오톡 메신저나 페이스타임이 나오기 전이어서, 국제전화카드를 사서 주말에 그걸로 통화했다. 나의 일, 꿈, 사랑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들을 향한 나의 마음은 진실했지만 전망이 불투명했다. 대개 불안했지만, 그 속에 설렘도 조금 있었다.
스물아홉의 밤
꿈이 손에 닿지 않았던 때
감미로운 거품
2007년 즈음부터 대형마트에서 수입 맥주를 팔기 시작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홈플러스가 그해 10월에 수입 맥주를 25종류가량 들여왔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다음해부터 집 앞에 있는 롯데마트에서 L맥주를 사마시면서 밀맥주에 맛을 들였다. 다음은 인디아 페일 에일이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다양한 맥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4년에 주세법이 바뀌면서 작은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도 외부로 유통할 수 있게 됐다. 이후 5년 간 한국의 수제맥주 양조장이 배 이상 늘어났다. 2015년 즈음부터 편의점에서 4캔에 1만 원씩 수입 맥주들을 팔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 국산 대기업 맥주를 마실 일이 거의 없어졌다. 버드와이저도 한동안 거의 마시지 않았다. 흔한 술이니까, 많이 마셨으니까, 하면서.
그러다 요즘 다시 이 맥주를 찾게 됐다. 그리고 새삼 이 맥주가 참 맛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풍미는 구수하고 쏘는 맛도 좋아한다. 거품도 딱 적당하다. 나한테는 ‘맥주의 왕’(버드와이저의 홍보 문구)보다는 ‘맥주의 교과서’나 ‘맥주의 기본’ 같다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노동 계급의 맥주 브랜드라는 느낌이라 식자층은 기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더 친근감을 품고 있다.
29살의 장강명이 45세의 장강명을 본다면 펄쩍 뛰며 기뻐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흡족해 하리라 생각한다. 저널리스트로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올리고 적당한 때 그만뒀다. 소설가로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 원거리 연애를 하던 애인과는 결혼해서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그래서 더 행복한가? 글쎄,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답 같고, 15년 전보다 ‘더’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다. 행복은 설렘과 뗄 수 없고, 설렘은 불안의 다른 얼굴이다. 그렇다면 불안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2013년 기준으로 주거 및 근무지역 1제곱킬로미터 안에 영업 중인 치킨집이 평균 13곳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 이후 창업한 점포 중 3년 내 문을 닫은 곳이 49.2%라고. 이쯤이면 현대판 화전 아닌가.
강력한 설정과 캐릭터의 힘. 현대 십대 소녀들이 하고 싶어 할 일들을 모두 담은 소설. 갑갑한 일상에서의 탈출, 육체적인 모험, 또래 경쟁자 살해, 스타 연예인 되기, 모든 걸 바치겠다는 두 남자 사이에서 썸 타기, 어머니보다 우월한 존재 되기.
수학과 물리학, 생물학, 과학사를 전공한 전방위 지식인의 설명은…… 어려웠다. 과학을 한다는 게 뭔지 읽기 전보다 더 모르겠다. 그게 바로 현대과학이라는 건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에 연재한 글을 모은 여행 산문집. 처음 들어보는 나라와 도시 이름들이 나온다. 읽다 보면 쓸쓸한 기분이 드는데 그게 좋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우아하게 쓸쓸해지기가 참 어렵다 싶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경찰 성폭력에 대한 부분을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 살인범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의외로 높아서 20퍼센트를 웃돈다고 한다. 또 전체 살인 피해자의 절반은 남자라고 한다.
‘그저 모호하기 때문에 심오하게 들리는 명제’를 〈심오롭다〉는 신조어로 놀릴 때, 또 자아에 대해 ‘정신의 무게중심’이라는 개념을 제안할 때 무릎을 쳤다.
황우석 이야기가 꽤 나온다. 성형수술과 정체성의 문제를 연결지은 대목이나, 우리 몸이 모두 여성화하고 있다는 주장이 흥미롭다.
반세기 전 강원도 산골의 먹을거리와 사람들 이야기. 전나무물 할아버지, 수리취떡 할아버지처럼 착하게 살고 싶어진다. 잣을 돌려달라고 몰려든 청설모 떼들은 우습기도, 무섭기도. 작가의 말이 무척 감동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