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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트라사운드와 최면에 약한 나

매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를 보러 가는 친구가 있다. 올 해는 그 친구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영화제 상영작을 보게 되었다. 최면을 소재로 한 영화. 울트라사운드. 나쁘지 않았다. 중간중간 약간 갸우뚱하는 포인트가 있었지만 그래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는 영화였다.


여러가지 설정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사람마다 최면에 대한 감수성이 다르고, 최면에 특히 약한 사람을 고르는 장면이었다.


나는 최면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다. 어찌 아냐고 물으신다면, 물론 걸려보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때 담임 김소주선생(가명)은 학생들을 데리고 최면 연습을 했다. 어디서 배워왔는지는 모르지만 수업시간에도 하고 방과 후 ‘산수’경시대회 준비반을 지도할 때도 최면을 걸었다. 몇 번 교실에서 최면을 당했지만 ‘팔이 무겁다. 나도 모르게 떨어진다’ 등등 시시한 느낌만 있었다.


산수경시대회 당일 김소주선생 인솔하에 나를 포함한 학년대표 세명은 군청소재지에 있는 국민학교엘 갔다. 고사장에 들어가기 전 스탠드에 앉아서 김소주선생은 우리들에게 최면을 걸었다. 최면이라고 해 봐야 교실에서 하던 것 처럼 본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쉽다. 정말 쉽다’ 이런걸 몇 번 얘기해 주었던 것 같다.


문제가 정말 쉬웠다. 경시대회 문제가 이렇게 쉬워도 되는가 싶을 정도로 쉬웠다. 스무문제 중 열아홉문제는 너무 쉬워서 후딱 풀었고, 한 문제만 약간 어려운 듯 해서 고민해서 풀었다. 그 한문제가 아쉬워서 선생님께 물어보려고 수험표에 문제를 적어 나왔다.


결과는 30점. 같이갔던 친구녀석이 35점, 또 다른 친구만 45점으로 우수상을 탔다. 우수상을 탄 친구에게 물어보니 문제가 정말 어려웠다고 했다. 확실히 여자가 철이 빨리 드는 것인지, 우수상을 탄 친구는 김소주선생이 최면을 걸 때 ‘뭐하는 짓이야… 유치하게…’ 라는 생각을 했고 문제가 하나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최면에 잘 걸리는 나… 를 다시 생각하게 한 영화. 울트라사운드.


권유지수: 별 세개(다섯개 만점)

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어딘가의 블로그에서 누가 언급한 것을 보고 인터넷서점에서 바로 주문해서 읽은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예고편 같은 느낌.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다듬고, 추가해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좋았다. 늙어가는 육체를 달래가며 운동하는 느낌이 잘 전달되었다.


실제 그리스에서 마라톤까지 달린 에피소드와 100km 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을 한 직후의 기록이 가장 재미있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끊은 지 1년여가 지났고 처음으로 인터넷에 쓰는 글이 책에 관한 것이라서 그뭄이라는 플랫폼이 있음에 감사한다.


권유지수: 별 셋 (다섯 개 만점)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돼지

나도 너희들처럼 돼지 새끼를 대놓고 미워할 수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어… 내가 그 애 엄마니까

돼지(양장본 HardCover)
돼지(양장본 HardCover)
10. 호가든과 기타 레슨

 『우울할 땐 뇌과학』도 조언하는 내용은 다른 책들과 같았다. 그러나 신경생리학적인 근거를 붙여 놓으니 더 믿음이 갔다.

  몇 번이고 강조하는 것은 운동이었다. 다음은 춤이었고,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일도 추천했다. 자주 웃는 것, 박수를 치는 것, “나는 행복하다”고 혼잣말하기, 감사한 마음 갖기도 권장사항이었다.

  운동은 꾸준히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고, 자주 미소를 짓고 “나는 행복하다, 운이 좋다!”며 손뼉도 치기로 했다. 틈틈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도 가사가 쉬우면서도 심오한 곡으로 한 곡 외웠다. 그런데 춤추는 것만큼은 하겠다고 쉽게 결심할 수 없었다. 워낙 몸치라서.

  그래서 대신 악기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가까이 연습은 하지 않고 곁에 두기만 했던 색소폰 말고, 막연히 동경하기만 했던 기타를 배워볼까? 기타 학원이 근처에 있나? 기타 레슨비는 얼마나 할까?

  찾아보니 집 근처에 걸어서 갈 만한 음악 학원이 세 곳 있었다. 기타 레슨비를 검색해보니 견적을 내준다는 사이트가 나왔다. 악보를 읽을 줄 아느냐, 레슨은 집에서 받고 싶으냐 강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받을 수 있느냐 같은 질문이 나왔다. 내 연령대와 희망하는 강사의 성별을 묻는 질문도 있었다.

  질문들에 다 답하고 나자 갑자기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기타 강사들의 연락이었다. 나는 기타를 배울지 말지 아직 결심을 내리지 않은 상태였고 그냥 단순히 강습비가 궁금했던 건데, 내가 정보들을 입력한 사이트는 실제로 강사와 학생을 연결해주는 곳이었다. 어쩐지 처음에 이메일 주소 같은 걸 묻더라니.

  메시지에 답하는 동안 ‘이렇게 된 김에 정말 기타를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초에 걸맞은 결심이기도 하고 말이다. 집에 통기타가 한 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HJ가 치던 물건이다. 미처 몰랐는데, 우리 집에는 일렉트릭 기타도 한 대 있었다. 내가 기타를 배워보겠다고 말하니 HJ가 집에 기타가 두 대 있다고, 한 대는 통기타이고 또 한 대는 일렉이라고 말해주었다.

  집 근처 강사를 연결해주는 사이트에서는 기타 연주자 6명을 소개 받았다. 모두 자기 스튜디오에서 악기를 가르친다고 했는데, 걸어서 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연휴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학원에도 문의를 해보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 학원 영업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집 근처 기타 학원 중 가장 가까운 곳은 무한리필 소고기 식당 근처에 있다고 인터넷 지도에 나왔다. 가깝기도 하고, 기타 전문에 규모도 가장 커 보여서 제일 마음이 갔다. 다른 학원 두 곳은 웹사이트나 블로그도 없었고, 지도에 나온 사진만 보면 다 꾀죄죄한 낡은 건물에 작고 볼품없는 간판이 걸려 있는 게 다였다.

  그러나 가장 번듯해보였던 무한리필 소고기 식당 근처 학원은 식당에 가는 길에 확인해 보니 이미 문을 닫고 간판도 내린 상태였다. 다음날인 4일 오전에 전화도 걸어 봤지만 받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한 것이었다.

  꾀죄죄한 두 학원은 전화를 받았다. 응대하는 목소리에서 간절함이 느껴져서 가슴이 아플 정도였다. 두 곳 중 집에 더 가까운 곳이 레슨비도 더 쌌다. 강습비와 연회비를 따로 말하는 꼼수를 부리기는 했지만. 그곳에 다니기로 했다.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단됐던 학원 영업도 1월 4일부터 소규모 강습에 한해 허용됐다고 했다.

  강사가 학원에 오는 날이 목요일 저녁과 토요일 오후라고 했는데, 나는 1월 첫 목요일과 토요일 그 시각에는 모두 일정이 있었다. 그래서 둘째 주부터 하겠다고 얘기했더니 학원에서는 다급하게 다른 요일도 괜찮다며, 내가 편한 시간에 맞춰 강사를 올 수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한시라도 빨리 학생을 붙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통화를 몇 통 더 하다가 일단 첫 수업은 바로 다음날인 화요일 저녁에 하고, 그 다음 수업일은 강사와 내가 만나서 정하기로 했다. 전화영어도 신청했다. 오후에 한강진역에 있는 서점에서 동영상 촬영이 있어서 전화영어 수업도 다음날부터 하기로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 시간대에 기타 연습을 하거나 영어 공부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서점 동영상 촬영은 독자와의 만남 대신 하는 신간 홍보 행사였다. 한강진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한 시간, 촬영에 한 시간, 돌아오는데 한 시간이 걸렸다. 텅 빈 서점에 MD와 촬영 담당자 두 사람, 출판사 마케터 한 사람, 그리고 나, 그렇게 다섯 사람이 있었다. 출판사에서 준비해 온 질문 10개에 내가 답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 답들을 궁리하는데 오전을 거의 다 썼다.

  촬영을 마치고 서점에서 나오는데 출판사 마케터가 근처에 핫한 수제 도넛 가게가 있다며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케터 본인이 그 도넛 가게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도넛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카페인이 필요해서 그녀를 따라갔다.

  과연 서점 바로 아래 골목에 있는 가게였는데, 지나가다 궁금해서 찾아 들어갈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간판도 작았다. 철저히 인터넷 입소문에 의지하는 곳이었다. 인테리어가 ‘우리는 힙스터 전용 가게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큰 창문, 높은 천장, 꾸밈없는 흰 벽, 고풍스러워 보이는 목재 진열대, 포장에 활용한 민화 이미지. 전반적으로 손님들에게 무심하고 시크한 분위기였다.

  저녁에 HJ와 함께 가게에서 사 온 도넛을 먹었다. 토핑이 풍성하고 도넛 안에 잼이나 크림이 들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는데, 내 입맛에 썩 맞지는 않았다. HJ와 기타에 대해 이야기했다. HJ는 기타를 띄엄띄엄이기는 했어도 10년 가까이 배웠고, 한때 기타 동호회에도 열심히 나갔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완전히 그만뒀다.

  “악기와 운동은 참 달라. 내가 매일 2, 3시간씩 수영이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한다면 몇 년 안 되어서 몸짱이 될 거야. 노력한 만큼 고스란히 내게 효용이 돌아오지. 그런데 기타는 몇 년을 그렇게 연습해도 나 혼자 즐겁지 어디 내보일 수준은 못 돼. 이름 없는 밴드의 세컨드 기타 수준이나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의욕이 사라지더라. 자기는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배우겠다는 거니 상관없겠지만.”

  HJ가 말했다. 내가 기타 동호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HJ는 조금 놀랐다.

  “거기엔 뭐 하러?”

  “내가 사람들을 너무 안 만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우울할 땐 뇌과학』에 보니까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어울릴 사람이 없으면 그냥 사람이 많은 광장 같은 데라도 나가 있으라고 하더라고. 그런데 문학이나 글쓰기처럼 내 본업이랑 관련이 있는 모임에 나가면 은근히 대우에 신경 쓰게 되고 다른 사람이랑 평판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게 싫어. 기타나 맥주 모임 같은 데 가면 나는 아무 실력도 없으니까 남이 나를 어떻게 대접하든 상관없을 것 같아.”

  “기타 모임도 가보면 사람들끼리 은근히 신경전 벌여. 나이 갖고 그러더라고.”

 전날도 적지 않게 술을 마셨기 때문에 참으려 했지만 밤이 되니까 무척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결국 냉장고에서 호가든을 한 캔, 버드와이저를 한 캔 꺼내서 마셨다. 정말 맛있었다. 나는 늘 냉장고에 호가든을 한두 캔은 준비해 두려 한다.

  누가 인생 맥주를 묻는다면 호가든 아니면 버드와이저라고 답할 것 같다. 언제 만나도 기분 좋고 지루하지 않다. 언제나 믿을 수 있다. 평생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외에 다른 맥주는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괴롭겠지만 말이다. 인생 맥주는 아마 그런 뜻으로 묻는 질문이 아닐 터다. 가장 친한 친구를 묻는 질문 같은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호가든과 버드와이저는 둘 다 OB맥주가 국내 생산을 하는구나. 맛있는 맥주니까 많이 팔리고 OEM 생산도 하게 된 거겠지. 기타도 내게 인생 친구가 되어주면 좋겠다. 나는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인간이라 그런 사물 친구들이 필요하다. 내 쪽에서 들여야 할 정성은 충분히 들일 생각이다.

  다용도실에서 기타를 꺼내왔는데, 기타 케이스를 들어 올리려고 하자마자 손잡이가 찢어져 떨어져 나갔다. 나일론 천이 바짝 마른 낙엽처럼 부스러졌다. HJ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새 기타 가방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부드럽고 향긋하죠

  언제나 믿을 수 있다, 그걸로 좋아요

  순위 따윈 매기지 말아요


  다음날 저녁에 첫 기타 레슨 수업을 받았다. 손잡이가 찢어진 기타 가방을 안고 학원까지 걸어갔다. 주로 동네 어린이를 대상으로 피아노를 가르치는 곳이었다. 난방을 전혀 하지 않아 발이 시렸다. 이날 학원에 있는 사람은 원장 선생님과 젊은 기타리스트, 그리고 나 셋뿐이었다. 원장과 강사에게 내 이름은 ‘장맥주’라고 알렸다.

  기타 강사는 20대로 보이는 얌전한 청년이었다. 아무 거나 물어보라기에 혹시 학생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대답했다. 내 질문에 기분이 상했던 것일까? 젊은이들은 마흔이 넘은 사람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워하지만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강사는 수업 시간을 내가 편한 요일에 맞추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요일 저녁으로 정했는데, 학원 원장이 나중에 목요일 저녁으로 바꿔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강사가 목요일에 다른 레슨 일정이 있으니, 한 번 와서 두 사람을 가르치고 가는 게 그에게 편하지 않겠느냐고. 물론 그러겠다고 했다. 강사의 집이 학원에서 왕복 세 시간쯤 걸리는 거리였다.



[오늘산책] 위로-데이비드 화이트

가톨릭 출판사 부천 성모병원점 인스타 계정에서 소개해주는 걸 보고 주문해서 받았다.

요며칠 허준이 수학자의 필즈상 수상으로 뉴스였는데, 그분이 인터뷰에서 강력추천해준 책이라고 한다.

저자 데이비드 화이트는 시인이라는데, 시집들도 번역된 것이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


택배를 뜯으며 들춰보았는데, 이 책 심상치 않다.

52개의 단어에 저자의 묵상을 덧붙인 형태인데, 단어를 정의한 문장이 너무 좋다.


예를 들면,

분노 ; 진정한 분노의 중심에는 온전히 여기에서, 온전히 살아가려는 삶의 불꽃이 타오른다.

기억 ; 기억은 단순히 지금으로 불러낸 그때가 아니다. 과거는 그냥 과거일 수가 없다.

위안 ; 실망이 환영받고 다시 자리 잡게끔 해주는 상상속의 넒은 집이 위안이다.


천천히 읽으며 생각하고, 나의 묵상과 성찰을 덧붙여 가며


위로(양장본 HardCover)
위로(양장본 HardCover)
루비의 소원

소피 블랙올의 <시큰둥이 고양이>가 좋아

다른 책도 찾아보다 알게 된 책.

빨간 표지 속 문틈으로 빼꼼 내다보는 소녀.

온통 행운의 빨간 기운을 간절하고 요긴하게 끌어다 쓰는 귀엽고 현명한 루비.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가 떠올랐다.





🔖S.Y.브리지스 (글) S.블랙올 (그림)


루비는 행운의 빨간 봉투를 열 때 온 가족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여러분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알겠어요? 그건 돈이 아니었어요. 돈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었지요.


그것은 대학에서 온 편지였어요. 루비가 그 대학 최초의 여학생이 된다면 자랑스러울 거라는 내용이었지요.


이렇게 해서 루비는 소원을 이루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는 정말 있었던 일이랍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고 있냐고요? 왜냐하면요, 루비는 바로 우리 할머니거든요. 할머니는 아직도 매일 빨간 장신구를 다신답니다.

루비의 소원(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루비의 소원(비룡소의 그림동화 116)
신 없는 세계에서 목적 찾기 - 랠프 루이스

카뮈에 따르면, 우리는 거짓 희망을 품지 않은 채 부조리 감각을 받아들여야 하고, 더 나아가 껴안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체념하면서 부조리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결코 부조리를 전부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부조리는 부단한 대결, 저항, 교전을 요구한다...... 카뮈는 시시포스가 그 노동에서, 그 임무에 숙달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신의 운명이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신들과 죽음에 끝없이 반항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고 심지어 행복까지 찾는 모습을 상상했다. "정상을 향해 가는 투쟁 자체가 충분히 사람의 가슴을 벅차게 해 준다. 시시포스가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141 페이지



우주에 대한 가장 끔찍한 사실은 우주가 적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관심함을 수긍하여 죽음의 한계 안에서 삶의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종으로서 우리의 존재는 순수한 의미와 성취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둠이 아무리 아득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빛을 마련해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감독

378 페이지


세속적 휴머니스트가 되자 는 작가님의 주장이 담긴 책이다.

우주는 무관심하다. 그렇다고 내가 무관심한 인간이 될 필요는 없다.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장례식장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된다!

 

서울의 밤을 환상처럼 꿈처럼 떠도는 청춘들

삶과 죽음을 껴안는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

 



2022년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고요한 작가의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20대 남녀를 주인공으로 청춘의 방황과 성장, 죽음의 의미를 깊고도 무겁지 않게 그린 작품이다. 일곱 명의 심사위원단(최원식, 은희경, 권지예, 정홍수, 하성란, 강영숙, 박혜진)은 “죽음의 이미지가 압도하는 장례식장을 배경으로, 서울 밤의 시내를 풍경으로 세계를 스케치하는 이 소설은 청춘의 막막함과 외로움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하는 가운데 여백의 미를 보여 준다.”고 평했다. 권지예 소설가는 “죽음이 이토록 깊고 푸른 밤의 여행 같다면, 우리는 삶을 얼마든지 설레며 견딜 수 있다.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가 청춘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위안을 선물하리라 생각된다.”는 추천의 말을 보탰다.

‘나(재호)’와 ‘마리’는 자정이 넘어 장례식장 일이 끝나면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는 도보로, 그다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밤새 불을 밝힌 맥도날드를 찾아 광화문 일대를 떠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데, 소설은 삶과 죽음의 시간을 껴안고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가슴 시린 초상에 이른다.”(문학평론가 정홍수)

고요한 작가는 2016년 『문학사상』과 『작가세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한 권씩 낸 기성 작가로, 단편소설 「종이비행기」가 세계적인 문학저널 『애심토트(Asymptote)』에 소개되어 화제가 된 바 있다.

 

걷고 달리며 생의 무게를 뛰어넘는 싱그럽고 아릿한 청춘의 밤

 

취업을 못 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던 재호는 그 아르바이트마저 잃고 장례식장 빈소에서 도우미를 한다. 그는 자정이 넘어 장례식장 일이 끝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다. 어릴 적 목조르기 게임을 하다가 자신이 누나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그는 하얀 뱀의 환상을 보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누나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과 알바 인생의 고달픔을 잊기 위해 그는 밤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린다.

어느 날 새벽 재호는 같은 장례식장에서 일하는 마리가 맥도날드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대학 졸업 후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마리 역시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쳐 이곳까지 왔다. 그녀는 집이 동인천이어서 장례식장 알바가 끝나면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맥도날드에서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며 밤을 보냈다. 재호는 새벽 첫 차가 다닐 때까지 마리와 함께 밤을 보내기로 한다.

밤거리로 나선 두 사람은 장례식장이 있는 서대문에서 광화문과 종로 일대를 걷는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밤은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다. 천국상조라는 글씨가 크게 쓰인 검은 조끼를 입은 재호와 길에서 주운 하얀 면사포를 쓴 마리, 그 모습을 보고 흠칫 놀라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덕수궁 앞에서 ‘이리 오너라’를 외치고, 교보문고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염상섭의 동상을 끌어안고,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전차에 슬쩍 들어가 손을 흔들기도 한다. 어느 날부터 둘은 오토바이를 타고 밤에도 불을 밝힌 맥도날드를 찾아 시내 곳곳을 돌아다닌다. 라이딩은 광화문에서 종로로, 동대문을 거쳐 대학로로, 다시 서대문으로 돌아와 남산까지 이어진다.

소설이 스케치하는 서울의 밤 풍경은 우리가 알던 서울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때로는 스쳐 지나가며 때로는 멈춰 속을 들여다보며 골목과 거리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자는 서울 도심의 구체적인 지명과 건물 이름을 따라가며 재호와 마리가 달리는 모습을 영상을 보듯 떠올리게 된다. “서울의 밤이 환상처럼 꿈처럼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한 편의 영상 이미지가 윤슬처럼 빛나는 소설”이라는 권지예 소설가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우리도 언젠가 저 물고기처럼 훨훨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

 

순진무구한 이들의 밤 산책은 경쾌하고 싱그럽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아릿한 감정을 자아낸다. 취업난과 불안한 미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 가족과의 문제 등 쉽게 풀기 어려운 삶의 무게가 그들의 어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처럼 불 켜진 맥도날드에서 밤을 보내는 재호와 마리 역시 어둡고 적막한 현실에서 위로를 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역사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설치미술 해머링 맨 앞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는 알바 인생의 고충과 취업에 대한 갈망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해머링 맨은 죽지도 않고 이 자리에서 백 년 천 년 망치질을 하겠지.”

“기계의 숙명이겠지. 하지만 해머링 맨은 우리보다 나아. 적어도 해머링 맨은 정규직이니까.”

 

재호와 마리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청계천에서 튀어 오른 물고기를 쫓는 장면은 밤의 라이딩을 환상적으로 보여주는데, 여기서도 둘은 정규직 일자리에 대해 생각한다. 두 사람은 청계천에 조성되어 있는 수십 마리의 물고기 등을 보고 그중 한 마리의 줄을 끊어 날아오르게 한다. 물고기는 청계천을 날아올라 광화문을 지나 인왕산으로 간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인왕스카이웨이에 오른다. 속도를 높여 따라가지만 물고기를 놓치자 하늘을 헤엄쳐 날아가는 물고기를 보면서 말한다.

 

“우리도 언젠가 저 물고기처럼 훨훨 날아가는 날이 오겠지.”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을 거야.”

 

삶 속에 스민 죽음을 수용하는 아름다운 애도와 성장의 서사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은 장례식장이라는 배경과 가족의 죽음이라는 상처를 통해 삶 속에 스며 있는 죽음을 생각하게 만든다. 재호가 누나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재호의 부모 역시 그로 인해 삶이 바뀌었다. 두 사람은 누나의 죽음 이후 이혼했다. 아버지는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아죽사) 모임을 운영한다. 죽음에 대한 토론을 하고 책을 읽으며 새 회원이 들어오면 임종체험 센터에 간다. 그곳에서 영정 사진을 찍고 수의를 입고 관 앞에서 유서를 쓴 다음 관 속에 들어가 눕는 입관 체험을 한다. 일본 여행 가이드인 엄마는 이혼 후 다른 남자와 살면서도 아버지 집에 자주 오고 아버지와 일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재호는 두 사람이 누나 때문에 서로를 놓지 못하고 삶의 한쪽을 서로에게 기대 사는 거라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슬픔을 떨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는 것처럼 엄마 역시 슬픔을 잊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고 생각한다.

고베 지진으로 가족을 잃고 20년 넘게 재호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일본인 히로시 역시 가족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그는 죽음과 친숙해지고 덜 슬프기를 바라는 마음에 빨간색 양복을 입고 조문을 가고, 아죽사 멤버들에게도 빨간 양복을 선물한다. 그는 모임을 통해 천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고요한 작가는 수상 후 인터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좀 더 가볍게 접근하고 싶어서 20대의 감정을 끌어”왔으며, 취업난을 겪는 청년들이 장례식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죽음을 접하는 형식을 취했다고 설명한다. 죽음이라는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애도하고 배웅하는 일을 하면서 재호는 스스로 위로를 얻고 자신의 트라우마와도 마주 볼 기회를 얻는다.


우리의 밤은 죽은 자들이 있는 장례식장에서 시작되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창밖 풍경. 상주들의 울음소리와 시끄럽게 떠들며 술을 마시던 조문객들. 그 사이로 피어오르던 육개장 냄새와 국화 냄새와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타오르던 향 냄새. 그런 냄새 속에 우리의 밤이 있었다. 그리고 일이 끝나 장례식장을 나서면 진짜 우리의 밤이 시작되었다. (217쪽)

 

장례식장을 둘러싼 하얀 벚꽃, 달빛을 받으며 날아오르는 오토바이, 우물 같은 달 속으로 들어가는 하얀 뱀, 물살에 흔들리는 운하 속 벚꽃과 꽃잎을 낚아채 달아나는 물고기 떼 등 선명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장면들도 삶 속의 죽음과 죽음 속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쓰이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침묵과 여백의 공간을 서사화하는 능력”(정홍수)이야말로 이 소설의 빛나는 부분이다. 또 하나 돋보이는 작품의 미덕은 인물들이 가족이나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흔히 보이는 전형성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개성적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유연한 사고와 적정한 거리 감각, 다름에 대한 존중이 오렌지처럼 상큼하고 매력적이다. 

1.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책을 읽다 찔끔찔끔이 아니라 정말 펑펑 운적이 몇 번 있는데 그 중 한 권. 살다보면 인생이 동화같지 않아서인지 동화책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때마다 한번씩 꺼내보는 책이다.


백만 번이나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하던 고양이.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던 그 고양이가 처음으로 먼저 함께 하고 싶은 하얀 고양이를 만나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은 이야기는 가슴속에 내내 남아있다. 한동안 이 동화만으로도 충분했었다.


사노 요코는 이 동화를 남편의 죽음 이후에 썼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는 고양이의 얘기와 겉으로 보이기엔 상반되는 뜻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사가 겹친다. <나의 아저씨>에서 사는 게 너무 힘들고 지겨워 그만 태어나고 싶다던 지안이 공중전화에서 아저씨에게 했던 마지막 대사. "다시 태어나도 괜찮아요"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도 울었다. 누가 봤다면 사연있을 정도로 펑펑.


22.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24.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할 정도였습니다.


28.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서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30.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100만 번 산 고양이
100만 번 산 고양이
나의 젤리클 캣들에게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아 바스라질 것 같이 여렸던 내 생애 첫 고양이 짱짱이와 너무 무지해서 보냈던 짱짱이 형제 찡찡이(를 오빠랑 밤새돌며 산동네 어느 빌라에 묻으며 펑펑 울었던 그 겨울과 한 달간의 칩거) 그리고 너희들과 보낸 작업실에서의 사계절


불쌍한 닝겐을 위해 작업실 앞에 쥐를 사냥해 툭- 던져두(면 깜짝 놀라 꺄악 지른 소리를 환호성으로 알고 더 갖다두)던 얼룩이


뮤지컬 캣츠에 밤업소를 관리하는 부자 고양이 버스토퍼 존스 같았던 까망이와 가게 주방에서 너의 첫 목욕이 불러온 아수라파티ㅋㅋ


(바닥난 탕을 거의 새것으로 만들어주시는 마법 같은) 서비스를 잘 주시던 단골집 사장님이 전세 놓는 종이를 붙이자마자 술김에 뜯고 들어가 저희가 들어가겠습니다 했던 2층집과 새벽마다 반찬과 장바구니를 걸어주던 정많은 민주언니. 그곳에서 오빠가 시작한 골프. 연습하러 간 골프장에서 당시 유행하던 게임 애니팡과 비슷한 효과음으로 오빠를 홀려 간택한 (다른 형제들은 무지개를 건넜다는 소식을 전해들어 내가 잘 키울수 있을까 더 조마조마했던) 애니와 잘못된 훈육을 따라하다 터진 코피로 또 펑펑 울었던 그 날 밤


집안의 반대로 시작한 동거를 접고 결혼 후 첫 집에서 맞이한 새벽이. 어둠을 밝히라고 성빈이가 지어준 그 예쁜 이름으로 치킨 가게에 쥐 쫓으러 데려갈거란 말에 절대 안된다고 지켜낸 아이. 2년 중 반년은 심장병으로 아팠지만 늘 애교 부리며 내내 맑고 예뻤던 아이 (쥐를 봤으면 쥐보다 더 빨리 도망갔을지도ㅎㅎ). 그러다 내 기도처럼 2살 생일을 넘기고 내 품에서 무지개 다리로 보낸 아이.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내가 쏟아부은 병원비, 새벽이가 쓰고 간 병원비, 아이들의 검사비와 사료&간식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다 말하며 열심히 벌어다주는 오빠와 나의 젤리클 캣들에게 내가 쓰진 못해도 내 맘 같은 이야기들로 채워진 책들.





* 뮤지컬 캣츠 - T. S. 엘리엇의 연작시인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를 대본으로 한 뮤지컬


* 젤리클 캣 - 뮤지컬 속 고양이들이 계속 노래하는 선택받은 고양이 '젤리클 캣'은 'Dear-Little Cat' 발음에서 파생된 재치있는 단어

캣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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