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빈곤층의 목소리를 듣고 옮겼다. ‘왜’에 대해 다소 피상적으로 접근한 꼭지도 있지만 분명 의미 있는 기획이고 노작이다. 비정규직 체육 코치와 빈곤 청소년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이 찾아가 기록하고 체험한 우리 사회의 빈곤 현장들. 일, 집, 아이, 병, 빚의 5개 영역으로 구분했다. 읽다 힘들어서 중간에 쉬었다. 무섭고 감사하다.
도 스토옙스키의 키릴로프에는 설복되었으나 톨스토이의 레빈에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작품 제목이 ‘콘스탄틴 레빈’이었다면 안나를 어떤 비중으로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
기획자인 마이클 셰이본의 후기를 읽다 웃음. 미국에서도 ‘요즘 단편소설은 왜 줄거리가 없어?’라는 불만이 많구나. 댄 숀의 「벌」이 정말 섬뜩했다. 엘모어 레너드의 단편도 좋다.
자유의지가 환상임을 암시하는 신경과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거의 논파. 우리가 서로 다른 여러 속성을 자유의지라는 한 이름으로 묶어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로봇에 애착심을 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로웠다. 로봇개의 장례식을 치르거나, ‘생명의 은인’인 지뢰제거 로봇을 꼭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킬러 로봇보다 연애 로봇의 등장이 더 두렵다.
살림지식총서 51권. 깔끔하고 좋은 해설서이고, 이 책 자체로 짜임새 있게, 읽는 맛 나게 잘 쓴 에세이이기도. 카뮈의 여성 편력이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프랑스 문단에서 따돌림 당한 이야기 등도 재미있다.
번역 제목의 문법 오류가 아쉽긴 하지만, 젊은 작가와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추천. 미국 작가들의 처지도 한국과 별 다를 바 없구나 하는 위안도 들고, 용기도 좀 생긴다.
한 시대와 두 청춘을 2, 3 미터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쫓아 몇 년 어치를 찍은 뒤에, 그 영상을 감각적으로 편집하고 밤에 소리 없이 재생하면 꼭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성(性)에 대한 이야기일까? 다른 인간을 이해한다는 일에 대한 이야기일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야기일까? 작가는 주인공들을 가련하게 여기는 걸까, 놀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