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4일(음력 8월 29일) 19시 29분에 부산 온천천의 스테레오북스에서 1시간 29분 동안 호밀밭 장현정 대표님, 인디페이퍼 최종인 대표님을 초대해 <나의 지역 출판 분투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믐밤 2회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지난 주말 꽃당 x 꽃멍 식물 마켓에서 구입한 책이다. 글로스터라는 분이 여성분일거라 생각했는데 유튜브를 보니 푸근한 남자분이었다. 역시 편견은 버려야한다. 요즘 희귀식물들을 키우는 식집사가 많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서인가 식물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특별한 무늬를 가진 변종은 더 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원산지가 열대 밀림이다보니 햋볕이 적은 실내에서도 잘 자라고 미적으로 만족감을 주는 식물들이 많다. 이번에 내가 구입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아이들은 앙증맞은 ' 제주애기모람', 무늬가 이쁜 '스킨답서스 픽투스', 하트모양이 사랑스러운 '실바티쿰 파이퍼', 은근히 고급스러운 '알로카시아 웬티'이다. 개성있는 이파리들에 분무를 해주고 분갈이도 정성껏 했다. 잘 자라도록 신경써줘야겠다. 식물을 잘 키우려면 우선은 관찰력이 좋아야하고 부지런하게 살펴야한다. 목이 마른지 너무 과습한건 아닌지 햋볕은 충분한지 과하지 않은지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주고 있는지 말이다. 이러한 조건들을 늘 살피며 키우다 보면 어느새 반짝이는 새순을 내밀고
이쁜 꽃도 피운다. 생명이 있는 것이 주는 기쁨을 매일 느끼고 싶다면 식물과 동물을 길러보기를 바란다. 나 자신이 쑥쑥 커가는 기분도 들고 하루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찰 테니까.
등단 작가 출신이라는 작가의 정체성을 어떻게든 딜리트해보려는 혼신의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오래 묵은 얼룩처럼 안 지워짐.
CJ ENM이 관여하고 있는데 영상화를 고려하고 있는 거 같기도. 하지만 레이어를 활용한 다중 우주에 관한 설정 등 어디까지나 텍스트적인 상상력. 이들을 다른 매체로 전이해서 비주얼라이징한다고 했을 때 바로 한계를 드러낸다.
전국 시대, 오다 노부나가에 모반을 일으킨 무장 무라시게는 성에서 농성을 벌이며 계절을 보내는 동안 성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농성 중인 성’이라는 시공간의 제약 요소는 밀실 트릭에 관한 사건들을 발생시키는데, 사실 트릭 자체는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 아이디어 자체가 매력적이라 소소한 결핍들은 가볍게 무마된다.
안녕하세요, 07년도 여름에 졸업한 수학자 허준이입니다.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 일을 사는 셈인데, 우리 직관이 다루기엔 제법 큰 수 입니다. 저는 대략 그 절반을 지나 보냈고, 여러분 대부분은 약 삼분의 일을 지나 보냈습니다. 혹시 그 중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 본 적 있으신가요? 쉼 없이 들이시고 내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잡고 있을 날들은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 여기의 나와, 먼 훗날의 나라는 세명의 완벽히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도 있습니다. 마무리 짓고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졸업식이 그런 날 중 하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하루를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서 무척 기쁩니다.
학위 수여식에 참석할 때 감수해야 할 위험 중 하나가 졸업 축사가 아닌가 합니다. 우연과 의지와 기질이 기막히게 정렬돼서 크게 성공한 사람의 교묘한 자기 자랑을 듣고 말 확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겁이 나서, 아니면 충실하게 지내지 못한 대학생활이 부끄러워 십오 년 전 이 자리에 오지 못 했습니다만, 여러분은 축하받을만한 일을 축하받기 위해 이를 무릅쓰고 이곳에 왔습니다.
졸업식 축사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십몇년 후의 내가 되어 자신에게 해줄 축사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도, 그 사람에게 듣고 싶은 축사를 지금 떠올려 보는 것도 가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연하게 떠오르는 말은 없습니다.
지난 몇천 일, 혹은 다가올 몇천 일간의 온갖 기대와 실망, 친절과 부조리, 행운과 불행, 그새 무섭도록 반복적인 일상의 세부 사항은 말하기에도, 듣기에도 힘들거니와 격려와 축하라는 본래의 목적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화한 마음은 부적절하거나 초라합니다.
제 대학생활은 잘 포장해서 이야기해도 길 잃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똑똑하면서 건강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주위 수많은 친구를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은 뭘 하며 살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잘 쉬고 돌아오라던 어느 은사님의 말씀이, 듬성듬성해진 성적표 위에서 아직도 저를 쳐다보고 있는 듯 합니다.
지금 듣고 계신 분들도 정도의 차이와 방향의 다름이 있을지언정 지난 몇 년간 본질적으로 비슷한 과정을 거쳤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더 큰 도전, 불확실하고, 불투명하고, 끝은 있지만 잘 보이진 않는 매일의 반복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 수도, 생각만큼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른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여러 변덕스러운 우연이, 지쳐버린 타인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자신에게 모질게 굴 수 있으니 마음 단단히 먹기 바랍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오래된 질문을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줍니다.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오래전의 제가 졸업식에 왔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고민했습니다만 생각을 매듭짓지 못했습니다. 그가 경험하게 될 날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가슴 먹먹하게 부럽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선물할 어떤 축사를 떠올리셨을지 궁금합니다.
수학은 무모순이 용납하는 어떤 정의도 허락합니다. 수학자들 주요 업무가 그중 무엇을 쓸지 선택하는 것인데, 언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한 여러가지 약속 중 무엇이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끌어내는지가 그 가치의 잣대가 됩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사람들과 함께하니 들뜬 마음에 모든 시도가 소중해 보입니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 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졸업생 여러분, 오래 준비한 완성을 축하하고, 오늘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합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독서후담>은 포스텍 재학생 12인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재학생 12인이 그믐에서 29일간 공동 독서 토론을 갖는 프로그램입니다.
무척 좋았다. 어색하지도, 억지스럽지도 않았다. 재미있었고, 읽으며 여러 번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는 갱생에 대해 한참 생각했고, 나도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들었다.
유화(油畵)의 시각 언어와 오늘날 광고 언어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 벌거벗음(nakedness)과 누드의 차이에 대한 부분도 고개 끄덕이며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