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자가 본 인생의 의미. 신도 영혼도 없고, 철학은 말장난이며, 삶의 의미는 사랑-일-놀이라고 결론내린다. 행복이 삶의 의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의미 없지만 행복한 삶과 불행하지만 의미 있는 삶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의미에 따라오는 부산물에 불과하다.
서구 철학사의 한 흐름이었던 비관주의와 염세론을 훑으며 진보, 휴머니즘, 자아실현, 세계에 대한 이해 같은 개념의 허구성을 공격한다. 행복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을 거부하는 태도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급진적 좌파들은 우리 시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매체 오락물(media cabare)의 일부이다. 정치적으로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하필 이 책을 10.29. 참사 며칠 뒤에 읽었다. 뉴스로만 접했음에도 도무지 믿겨지지않는 일이 또 일어났음에, 그 참혹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날 그 현장에서 고군분투했을 경찰관들, 구조대원들이 또 얼마나 속으로 힘들어하고 있을까를 조금이나마 헤아리게 했다.
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 할때 그 시스템을 떠받치는 개인들은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다친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읽는 내내 그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 해서 읽기엔 좀 괴롭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영화와 TV 드라마 대본, 어린이 책을 쓴 저자가 글쓰기 팁을 섹스에 빗대 소개한다. 체위 바꿔보라, 전희 공들여라, 하는 식. 그러고 보니 글쓰기와 섹스가 비슷한 구석이 꽤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어떤 부분은 좀 억지스럽다.
뉴욕, 런던, 홍콩 같은 ‘슈퍼스타 도시’들이 등장해 고부가가치 산업과 정상급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으며, 이들과 다른 도시들 간의 경제적 격차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서울도 슈퍼스타 도시 중 하나로 분류한다. 슈퍼스타 도시의 어떤 구역은 슈퍼 부자들이 거주하는 게 아니라 돈을 묻어두는 ‘조용한 승자 구역’으로 바뀐다. 그러 면서 중산층 구역이 사라진다.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도시화는 역설적이며 모순적이다. 오늘날의 도시 위기를 이해하려면 도시 비관론자의 관점과 도시 낙관론자의 관점을 진지하게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님 댁에서 맥주를 마시고 며칠 뒤,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부모님이 개를 키우기로 하셨다며, 마포에 있는 반려동물 입양기관에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음? 갑자기 왜?
동생의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부모님이 나 때문에 개를 키우겠다고 결심했나 하는 것이었다.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부모님께 개를 키우라고, 그러면 댁에 자주 찾아뵙겠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면 부모님은 “우리는 생각 없다, 키우고 싶으면 네가 직접 키워라”며 코웃음을 쳤다.
나는 왜 개를 키우지 않는가?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떠나보내는 게 상상만 해도 힘들어서다. 개의 수명이 사람보다 길었다면 주저하지 않고 들였을 거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 키우는 개라면 이별하는 게 좀 쉬울 것 같다. 부모님도 두 분이서 살면서 적적한 시간이 많으실 텐데 개를 키우면 건강에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이런 생각은 비겁한 걸까? 나다운 태도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에게도 개에게도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좀처럼 제 마음을 열지 않는.
부모님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을까? 설마 내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말했기 때문에? 기네스 드래프트를 마신 그날도 내가 부모님께 개를 키우라고 권했던가? 그런 기억은 없는데.
동생이 입양센터에 가자고 한 주말에는 내가 써야 할 원고가 많았다. 일정을 미루는 사이 동생은 반려견 입양에 대해 더 조사했다. 경험 없는 사람이 유기견을 데려와 훈련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동생의 회사 동료가 아는 동물병원 원장이 건강과 사회화 정도를 확인해서 적당한 유기견을 골라주기로 했다. 유기견과 파양견, 가족 잃은 개들을 구조하는 활동을 벌이는 분이라고 했다. 입양 시기는 설 이후로 정했다.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나보다 어린 조카들이 더 흥분했다. 동생 가족은 부모님 댁 근처에 산다. 두 조카는 자기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개를 키우겠다고 밝힌 날부터 훈련일지를 작성했다. 개 이름도 임시로 지었는데 ‘새롱이’였다. 그런데 개 얼굴을 보게 되면 다시 이름을 지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개를 좋아하는데 왜 직접 키우지 않니? 물어봤더니 동생은 이미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어서 여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조카들이 부러웠다. 그 아이들은 헤어진다는 게 뭔지도 모르겠지.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개도 만나겠지.
“드디어 자기도 마음껏 껴안을 수 있는 개가 생기는구나. 자기 맨날 공원에서 개가 자기한테 달려들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잖아. 주인한테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비굴하게 굽신거리면서.”
HJ가 말했다. 나와 달리 그녀는 개를 여러 마리 키워 본 경험이 있다.
동생의 연락을 받은 다음날 낮에는 배달 삼겹살을 주문해서 HJ와 함께 먹었다. 삼겹살까지 전화 한 통으로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데 대해 HJ와 나는 매번 감탄한다. 싸고 맛있고 간편하다.
삼겹살을 먹으면서는 파이어스톤 워커의 유니언 잭을 마셨다. 진하고 향긋한 인디아 페일에일이다. 맥주 어워드에서 상도 많이 탔다고 한다. 파이어스톤 워커의 공동 설립자인 데이비드 워커의 조상이 영국계여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데, 정작 맥주는 영국식이 아닌 미국식, 그 중에서도 서부 해안 스타일 IPA다.
삼겹살에 맥주
그 맥주는 영국 국기가 그려진 미국 맥주
안 어울릴 듯 어울립니다
HJ가 경력 입사하려고 지원서를 낸 회사에서는 최종 면접까지 통과했는데도 소식이 오지 않았다. 연봉 협상 중에 상대 회사가 갑자기 연락을 끊었다.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얘기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쪽에서 제시한 연봉을 거절하고 협상을 결렬한다 해도 그런 사실을 밝혀주는 게 비즈니스 매너일 텐데 참 경우가 없다.
정작 HJ는 그런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분위기였다. HJ는 그보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궁금하다고 했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나, 하고 그녀가 중얼거렸다.
“나는 꿈이 뭘까?” HJ가 물었다.
“요즘 시대에 꿈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난 잘 모르겠어. 하도 뭐든지 빨리 변하는 시대라. 초등학생들 희망사항 중에 유튜버가 상위권에 있다던데, 그 아이들이 컸을 때 유튜브라는 플랫폼이 남아 있을지조차 자신을 못하겠거든.” 내가 말했다.
“웹툰 작가가 꿈인 아이들이 많은데, 정작 지금 활동하는 웹툰 작가들이 어렸을 때는 웹툰이라는 게 없었지. 어떤 직업을 갖겠다고 구체적으로 정하면 안 되고, 무슨 일을 하고 싶다는 정도로 막연히 그려야 하는 걸까?” HJ가 말했다.
개인에게 꿈을 가져라, 미래를 계획하라는 요구하는 것 자체가 근대의 발상일 게다. 폭력적인 구석도 있고, 21세기에는 점점 더 실천하기 어려워지는. 자아실현이라는 개념도 비슷한 때 생겨났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한 단어다. 자아가 실현해야 하는 대상이라면, 그게 지금 우리 몸 안에 없다는 말인가? 다들 가짜 자아로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 이야기들을 오후에 했다. 배달 삼겹살의 양이 많아서 3분의 1쯤 남겼지만 저녁에 먹지는 않았다. 밤에 안주 없이 그냥 맥주만 몇 캔 더 마셨다.
부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기자가 부산의 이야기를 펴내는 출판사에서 낸 책. 부산의 미(美)를 민중미, 실질미, 저항미, 개방미로 정리한다. 문학,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무용 등 각 부문 부산 예술인들의 대담이 생생하고 흥미롭다.
특히 ‘늙는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해 냉정하게 기록한 부분이 좋았다. 심각한 건망증과 수시로 찾아오는 졸음 같은 것들. 노화와 죽음은 노인들에게도 낯선 경험이라는 말이 인상 깊다.
‘쇠약한 몸은 그들로부터 욕망의 고통을 제거해준다. 세상은 그를 잊게 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노인 자신도 세상을 잊고 살 수 있게 된다.’
전세계인의 모든 시청 각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실시간 세계사 프로젝트’라는 중심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멋지다. 스토리텔링은 간혹 덜컹거릴 때가 있다. 반전도 다소 잦고 과한 것 아닌가 하는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