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24일(음력 9월 29일) 19시 29분에 구름산책에서 1시간 29분 동안 김지혜 작가님을 초대해 <책들의 부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믐밤 3회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빠르게 읽었는데 책장을 덮을 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 이상한 기분. 정말 한 인생을 살고 난 듯했다. 허삼관네 가족을 만나면 같이 밥을 먹으며 시끌벅적하게 어울리고 싶은데, 푸구이 노인을 만나면 옆에 나란히 앉아 말없이 논밭을 내려다 볼 것 같다.
웃고 울며 읽었다. 어느 누가 허삼관네 가족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두고두고 다시 읽고픈 명장면도 많다. 소설이 현대사의 비극들에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 놀라기도 했다.
부산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일하는 민속학자가 쓴 부산 이야기. 부산을 끊임없이 외부 문화가 들어와 서로 섞이는 ‘문화 용광로’라고 규정한다. 책을 읽다 문득 깡깡이 아지매들, 마도로스, 박을룡 경찰관 같은 이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분명 어떤 가치는 다른 가치와 충돌하고, 악행의 명분이 되고, 그걸 입에 올리는 사람들 중 제대로 실천하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그게 가치의 무가치함을 의미할까.
비 오는 목요일이었다. 오후 2시께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쉬지 않고 비가 왔다. 조금 늦게 일어났고, 그 때문에 오전에는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집 근처 분식집에 가서 들깨수제비를 먹었다. 고농도 탄수화물 덩어리를 흡입했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았고 반대로 죄책감만 들었다.
대체 무엇에 대한 죄책감이란 말인가. 내 몸이 뚱뚱해진다고 누구에게 피해를 준단 말인가. 왜 이렇게 습관적으로 죄책감을 느낄까. 나는 궁금해 한다. 이 감정에 중독된 사람 같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톨릭 신자로 자랐기 때문일까?
낮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후에도 역시 빈둥거리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우산을 쓰고 헬스장에 갔다. 달리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영어 수업을 받았다. 내가 밖에 있고 비가 내리고 있다고 하니 필리핀 영어 강사는 조금 놀랐다. 서울에서는 겨울에 비가 오지 않고 눈만 내리는 줄 알았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기타를 챙겨 다시 집을 나섰다. 기타 케이스를 메고 우산을 쓰기 어렵다. 지난 수업 시간에 겨우 C코드와 G코드를 배웠는데 이번 수업 시간 한 시간 동안 A 마이너, E 마이너, F, D 마이너 7까지 네 코드를 배웠다. 물론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선생님이 바로 곡을 주면서 연습하게 시키는 스타일이었다. 그 첫 번째 곡이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이어서 기분이 좀 묘했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이 곡이 제법 비중 있게 두 대목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F 코드는 너무 어려워서, 과연 내가 이걸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지경이었다. 알토 색소폰을 배울 때도 이랬던가? 기타는 초보자가 배우기 쉬운 악기 아니었나? 내 손가락과 손톱 모양이 문제인 걸까?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법 긴 터널이 하나 있다. 보행로와 차도 사이에 유리벽이 세워져 있다. 폐소공포증이 있거나 강도를 두려워하는 행인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인지,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스피커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
하늘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잠시지만 시간 감각도 사라지게 되고, 거기에 지하 감옥에 있는 듯한 삭막한 터널 분위기와 음악의 부조화가 겹쳐 이곳을 지날 때면 늘 이상한 기분이 든다. 프랑스 예술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또 그런 무드에 빠져 기타 케이스를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앞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여인이 어쩐지 낯익어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마스크를 쓴 채 시치미를 뚝 떼고 걸어오는 HJ였다. 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인 것 같아 퇴근길에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터널로 들어왔다고 했다. 둘이서 나란히 우산을 쓰고 귀가했다.
HJ는 내게 그날 학원에서 배운 내용을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기타가 원래 이렇게 어려운 악기냐고, 주변에 잘 치는 사람이 많아서 배우기 쉬운 악기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기타 어려워. 난 자기가 이번 기회에 교훈을 얻으면 좋겠어. 자기는 남들이 하는 걸 다 우습게보잖아.”
HJ가 말했다. 그리고 그래도 기타가 첼로나 바이올린보다는 쉬운 악기라고 덧붙였다. 그녀는 어릴 때 첼로를 배운 적이 있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색소폰의 진입 장벽이 기타보다 낮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HJ의 지적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었다.
목요일이니까, 하면서 냉장고에서 써스데이 맥주 캔을 꺼냈다. 남은 닭똥집튀김과 핫도그 하나를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했다. 겨자 소스를 뿌려 먹으니 닭똥집튀김이 지난번과 완전히 다른 맛이 났다.
써스데이는 2007년 설립돼 이런저런 혁신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독일의 맥주 회사 앤드유니온이 만든 다크 라거다. 효모를 걸러내지 않았고 저온 살균도 하지 않았다는데, 그 때문인지 아주 맛있다. 전에는 노이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는데 회사가 상품명을 바꿨다.
이제 앤드유니온의 회사의 맥주는 전부 요일 이름이다. 프라이데이 맥주는 인디아 페일 에일이고, 새러데이는 라거, 선데이는 페일 에일이라는 식이다. 써스데이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 어두컴컴한 날이니까 다크 라거인 걸까? 아직 개발 중인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을 쓰는 현재 월요일 맥주는 없다. 튜즈데이는 무알콜 맥주다.
남들이 하는 일을
우습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목요일의 교훈
‘피눈물’이라는 제목처럼 주인공 가족의 인생이 참 기구하기는 하지만 끝에는 모두 잘 풀린다. 워싱턴에 가보지 않고 주인공 부부의 워싱턴 유학 생활을 패기 있게 적었다. 이인직이 친일파여서 일본에 노골적으로 우호적인 서술이 많지만, 일본인 양모가 점차 주인공을 구박하게 되는 등 아주 단순하지만은 않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이 발랄하고 도입부도 그러하지만, 중반 이후로는 상당히 어둡고 무거워진다. 멋진 페미니즘 소설이기도 하고, 인종차별과 도시 외곽 빈곤지역 문제를 진지하게 말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저자의 유머 감각이 뛰어나서 몇 번 크게 웃기도 했다.
이 소설은 1980년대에 한국에 몇 번 출간되었는데, ‘죄수와 여재벌’이나 ‘야망의 여재벌’ 같은 괴이한 제목을 달고 나왔다. 뭐, ‘죄수와 여재벌’은 내용을 잘 요약한 문구이긴 하다. 나는 1990년대에 웅진출판에서 낸 버전으로 읽었다. 산상수훈에 대해 처음 깊이 생각하게 만든 책. 보니것의 다른 글은 꾸준히 번역되는데, 이 작품이 절판 상태인 게 좀 아쉽다.
공룡이 아니라 매머드를 복원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 원제도 ‘How to Clone a Mammoth: The Science of De-Extinction’이다. 미라에서 DNA를 추출하는 기술에서부터 멸종된 동물을 되살릴 때 맞닥뜨리게 되는 생태학적, 윤리적 고민거리까지 다룬다.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이 멸종시킨 동물을 인간이 되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그리 당연하게 여겨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