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인가 그믐 플랫폼에서 위화 작가의 <원청> 가제본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을 신청했다. 집으로 가제본 책을 받았지만, 얼마 안 되어 멕시코로 여행을 오게 되어 책을 다 못 읽었고 참여도 못 했다. (책을 가져왔다면 좋았겠지만 무게 때문에 포기)
아쉬운 마음에 멕시코 여행 중에 알라딘 전자 도서관에서 위화 작가의 다른 책 <형제> 1권과 2권을 빌려 읽었다. 이광두와 송강, 한 형제를 중심으로 중국 문화혁명기의 참담함과 이후에 이어지는 개혁개방 시기의 모습을 해학스럽게 그려낸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장면들 앞에서 과연 선악을 구분한다는 게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중국 문화혁명기 자아비판의 실상과 개혁개방 시대에 합류하지 못한 개인의 말로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권함.
평소에 뭘 사는 걸 거의 안 하는 사람으로서 제목이 재밌어서 읽어봤다. 스타벅스를 충전해서 이용한다는 것도 신기한데, 매달 충전액이 30만원이 넘었다는 저자의 고백도 놀랍다. 리볼빙, 생활비 대출, 마이너스 통장 등 생소한 용어들의 나열. 재테크와 경제에 심각하게 무지한 자신을 발견했다. 제9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라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은 모양이다.
HJ는 연봉 협상 중에 연락이 끊겼던 회사에 마침내 먼저 문의를 했는데, 그네들은 자신이 다른 후보자와 계약을 했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회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이 채용한 신입 팀장이 일주일 만에 개인 사정으로 그만뒀다며 HJ더러 이제라도 출근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HJ가 제시한 연봉에서는 200만 원을 깎았다.
여러 가지 수상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연락을 해오는 방식만 봐도 깔끔하거나 프로페셔널해보이지 않았고, 신입 팀장이 일주일 만에 그만둔 이유도 궁금했다. 그 전임자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도망치듯 나간 것 같았다. 잡플래닛의 평점도 매우 안 좋았다(HJ는 이유를 확인하려고 잡플래닛에 유료 회원으로 가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HJ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치를 떨고 있었으므로 크게 망설이지 않고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는 지금 다니는 회사의 전무에게 먼저 구두로 퇴사하겠다고 알리고, 다음날 사직서를 썼다. 그 이틀 동안 그녀는 신이 나서 저녁마다 자신이 얼마나 기분이 가벼워졌는지, 원래 얼마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는지 재잘거렸다. 내가 문학상을 처음 받았을 때도 그보다 더 기뻐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HJ의 지금 회사는 좀 이상한 곳이다. 내가 비록 한 사람으로부터만 이야기를 듣기는 하지만 HJ도 15년 넘게 여러 기업을 경험한 데다, 평소 시각도 꽤 공정하고 객관적인 편이다. 내가 옆에서 목격한 그 회사에 관한 몇 가지 팩트와 근무 양태도 참으로 이상하다. 이미 그만둔 전 상사와 스트레스로 사표를 냈다가 계속 다니고 있는 HJ의 친한 후배 얘기를 전해들은 바로도 확실히 그러하다.
외국계 기업 특유의 고인 물 문제, 대기업의 관료주의, 요령 없이 근면하고 이기적인 부서장이 합심해서 조금이라도 똑똑하고 의욕이 있는 직원들이 직장을 증오하도록 만드는 곳이랄까. 그런 조직에 어떤 책임감도 비전도 없이 철저히 수동적인 자세로 적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울면서 회사를 다녔다.
그런 상태가 갈수록 심해졌고, 옆에서 보기에는 거의 한계에 이른 듯했다. 나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얼마 전부터 그냥 HJ에게 무조건 퇴사하라고 권하고 있었고, HJ는 그런 권유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렸다. 직장을 다니는 상태에서 이직하지 않고 쉬다가 재취업하게 되면 몸값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굴복한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그 회사는 이미 인생의 적이 되어버렸다.
HJ는 새 회사에 다음 달부터 출근하게 된다. 새 회사는 안양에 있어서, 가는데 버스를 타고 1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출퇴근에 써야 한다. 그나마 교통편을 갈아타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녀는 괜찮다고 하고, 내가 오히려 더 걱정이 많다.
나는 그녀가 새 회사에 석 달 정도 다녀보고 계속 일할 만 하다 싶으면 안양으로 이사 가자고 주장한다. 그녀는 회사가 괜찮더라도 전세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살겠다고 한다. 나보다 그녀가 더 이 동네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녀는 이 동네에 있는 다른 외국계 회사에도 입사지원서를 냈다.
HJ가 사직서를 내고 나서 첫 토요일 저녁에 ‘무케의 순한 IPA’와 다른 맥주들을 마셨다. 충북 증평과 중국에 양조장이 있는 한국 수제맥주 회사인 플래티넘크래프트맥주의 제품이다. 편의점업계 최초로 나온 ‘웹툰 콜라보 맥주’란다. 맥주 캔에 아기 호랑이가 그려져 있고, 그 캐릭터 이름이 무케다.
네이버웹툰 《호랑이형님》의 등장인물, 아니 등장 호랑이인데, 나는 그런 작품이 있다는 것만 안다. 업계 최초 웹툰 맥주의 라벨을 장식할 정도면 굉장히 인기가 많은 캐릭터인가 보지? 정작 맥주 맛은 밍밍해서 다시 마실 것 같지는 않았다.
HJ가 추천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같이 보자고 해서 맥주를 홀짝이며 빔 프로젝터를 설치했다.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이었는데, 초반에는 영상이 아름답고 바다 속 풍경이 신기해서 그런대로 재미있게 보았으나 점점 지루해져서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내가 문어나 호랑이보다 훨씬 더 좋아하는 동물, 공룡이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고 HJ에게 《쥬라기 공원》 1편을 함께 볼 생각 없느냐고 물었다. HJ는 그 영화를 여태껏 보지 않았다. 그녀는 내 제안을 가볍게 묵살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삐친 상태에서 혼자 《쥬라기 공원》 1편을 보려 했다. 그런데 그 영화는 넷플릭스에 없었다. 뭐여.
아기 호랑이가 웃네
귀엽고 재밌어야 팔린다고요
나는 어쩌나
초반에는 살짝 템포가 느리고 배경 설명이 많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40%쯤 되는 지점에서 확 불이 붙었다. 옛 소련은 정말 이랬을까. 하도 암담해서 버겁기까지 했다.
20여년 만에 새 번역으로 다시 읽는데, ‘이게 이렇게 잘 쓴 작품이었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낡은 느낌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놀람. 함께 실린 사강의 에세이도 무척 좋았다.
이해하기 쉬웠고, 정곡을 찌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이라면 다들 ‘이물질’에 대한 사회의 압력을 느끼며 살지 않을까. 글의 분량도 말하려는 바에 맞았다고 본다.
중세의 성(聖)과 속(俗)은 달뜬 활기 속에 섞여 있었다. 중세인들은 자주 울었고, 쉽게 감동받았고, 잔인했고, 무절제했다. 미성숙한 틴에이저 문화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요즘 사회 분위기도 비슷한가?
전반적으로는 로 보칼립스와 로보토피아 중 로보토피아에 좀 더 손을 들어준다. 손으로 직접 빨래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보편적 기본소득에 상당히 부정적이며 한 챕터를 할애해 비판하는데 어떤 주장이 옳은지 아직 잘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 이야기도 조금 있지만 주로 프랑스, 영국, 독일의 살롱과 커피하우스 문화를 소개한다. 17세기에 주로 문예를 말하던 살롱들이 18세기 들어서는 정치적인 색깔을 띠게 됐다고. 문예를 오래 말하다 보면 자연히 현실의 부조리를 논하게 되는 것 아닐까? 살롱에는 이중성과 우아함에 대한 집착, 젠체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고, 그런 위선과 피상성, 허세를 역겨워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문화 모임이라는 게 비슷한 모양이다.
앤솔로지에 실을 단편소설 원고의 저자 교정을 마쳤다. 편집자나 나나 크게 손 본 구석은 없었다. 다시 훑어보니 당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재미있었다. 교정은 하루 만에 마쳤고, 다음날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우체국에 들러 교정지를 출판사로 보냈다. 이날 낮에는 저녁에는 메일링 서비스를 위한 에세이도 썼다.
그날부터 서평 잡지에 실을 단편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이미 구상은 대강 해놨던 터라 쓰는 데에는 만 사흘이 걸렸다. 원래 청탁 받은 분량이 200자 원고지 40~50매였고, 그에 맞춰 간단한 아이디어로 구성한 소품이었다. 다 쓰고 보니 45매가 조금 넘었다.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유사한 작품을 쓰면 안 된다고 느꼈다. 딱 한 번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몇 군데에서 강연 요청과 책 추천사 요청을 받았고, 한 곳 빼고는 다 거절했다. 강연 수입이 아쉽기는 했다. 강연들을 할 시간에 글을 써야 한다는 게 HJ와 나의 결론이었는데, 과연 내가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어차피 우울증 치료하려면 많이 나다니라는데, 외출하는 셈 치고 지방 강연을 다녀오면 좋지 않을까?
추천사 요청도 비슷하다. 어차피 잡식성 활자중독자인데, 책도 읽고 용돈도 벌면 좋잖아. 뭐 하러 그 시간을 아끼려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끝이 안 난다. 뭔가 이 시대 한국 전업 작가의 수입에는 부조리한 데가 있다. 글쓰기 수입과 글쓰기가 아닌 활동에서 오는 수입 사이에 불균형이 너무 크다. 이러다 궁해지면 강연도 추천사도 열심히 다니고 쓰겠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어느 정치인 선거캠프로부터도 연락을 받았다. 유튜브로 대담을 하자는 요청이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과거에도 정치권에서 비슷한 요청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작가로서 성공할수록 이런 연락들도 더 많이 받게 되려나. TV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의 MC 제안도 거절. 참 도도하구나. 내 주제에 이래도 되나.
오디오북 정산이 늦은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 따졌다. 이 출판사는 계약금도 몇 달 동안 입금 안 하다가 내가 따지니 그때 입금했고, 인세도 두 번 그런 적이 있다. 이 오디오북도 내 동의 없이 무단 발행한 것인데 나중에 항의하니 그때서야 사과를 했다. 인세 보고도 지난해까지 제때 한 적이 없다. 이걸 인터넷에 고발해서 업계에 경종을 울려볼까 고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그래야 하나? 그러면 이 회사 망할 것 같은데.
기타 학원과 전화영어 사이트로부터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2021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났음을 깨달았다. 다행히 기타를 배우고 전화영어 수업을 받기로 한 결심은 작심삼일로 끝나지는 않았다.
기타는 참 잘 시작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연습을 하다 보면 다른 잡념은 잊고 몰입하게 되는데, 요즘 내게는 무척 드물고 귀한 순간들이다. 그리고 색소폰과 달리, 내가 이 악기를 사랑하게 되리라는 확신이 든다. 전화영어 수업은 무던하게 잘 듣고 있다. 이번에 6개월분 수강료를 한꺼번에 내고 조금 할인을 받았다.
올해 결심 중 하나는 인터넷 접속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건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2월부터 이 결심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 하나를 보탰는데, 오전 8시부터 낮 12시, 그리고 오후 10시부터 잠들 때까지는 PC의 인터넷 연결을 아예 끊어버리자는 것이다. 어제부터 실천하고 있다.
(이는 내가 올해 벌이는 실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미디어비평과 인터넷 고발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하나의 주제로 엮어 책을 쓸 것이다. 이게 HJ에게 이야기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단편소설을 쓴 날 저녁에는 운동을 하고 돌아와서 기네스 오리지널과 다른 맥주들을 마셨다. 첫 잔은 조금 씁쓸하게, 컴컴하게 시작하고 싶은 날이었다. 안주로는 치킨 텐더와 아구포를 먹었다.
사는 게 곡예라고 느낄 때
어른의 삶은 어쩔 수 없지 생각할 때
검고 쌉싸름한 거품의 위로
김정성의 『부동산 인플레이션, 일자리 디플레이션』을 읽었다. 목차에서 ‘주택은 고평가되었는가: 이론 영역’, ‘주택은 고평가되었는가: 경험 영역’ 같은 문구를 보고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나온 지 1년이 안 된 신간이고, 한국은행을 다니며 국회 담당 업무를 했다는 저자의 이력에도 신뢰가 갔다. 좋은 책이었다. 그러나 지금 서울 아파트 값에 거품이 낀 건지 아닌지 명확한 결론은 없었다.
뒷산에서 까마귀들이 운다. 까마귀 중에 겨울 철새도 있다는 걸 이 집에 이사 와서 겨울을 두 번 보내며 겨우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