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현직 사서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했다. 사기업에서도 일을 해본 적 있지만 마치 당연한 결말처럼 도서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동료 사서들에게 쓴 소리가 될만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하지만 이 사람, 도서관을 정말로 사랑하고 사서라는 직업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참 많구나 라는 게 진심으로 다가온다.
바코디언은 작가가 만든 말인가본데 사서를 얕잡아 부를 때 쓰는 말로 사서가 하는 일은 대출반납 때 바코드만 찍는 게 전부라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미래 사회에서 사서는 단연코 바코디언,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실제적인 방향과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1인 1메뉴라는 말은 요식업장에서 자주 듣긴 하는데 이게 가게 이름이라니 처음엔 좀 이상했다. 1인1상. 서울 은평구 연서로 534 4층/5층
건물의 모든 층에서 아마 음료를 팔 텐데 내 기준 4층이 제일 좋은 것 같다. 파스타가 2만 5천원이라 조금 비싸게 느껴졌지만 모든 음료 가격이 1만 3천 원 정도이므로 식사 뒤 원하는 음료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파스타 세트를 먹는 편이 따져 보면 더 낫지 않은가 한다.
전망 값이겠지만 나름 파스타 맛도 좋고 커피도 괜찮았다. 외국인 친구를 데려오면 아주 좋아할 곳.
설 연휴 셋째 날에 동생 차를 타고 의정부에 가서 새롱이를 받아왔다. 동생은 강아지 가정 분양을 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새롱이 소식을 듣고 신청했다고 한다. 그 카페는 분양업자를 막기 위해 회원들이 딱 한번만 새끼 강아지를 분양할 수 있게 허락한다고 한다.
동생이 운전하는 차는 처음 타봤다. 그렇게 강아지 입양을 도와주고 데려다주기까지 하는 것이 무척 고마웠지만 남매답게 차 안에서 별 얘기는 안 했다. 게다가 나는 차에 올라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금방 잠에 빠져버렸다. 깨어났더니 목적지인 의정부시 주택가였다. 동생이 준비한 동물 운반용 케이지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개를 분양해주려는 집은 빌라의 1층이었다. 친절하고 인상 좋은 젊은 여성이 대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집에 들어가자 안에 있던 개들이 펄쩍펄쩍 뛰며 좋아서 난리가 났다. 현관과 마루 사이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개를 세 마리 두고 있었는데 어미 개는 흰색, 두 어린 남매 강아지는 검은색이었다. 모두 토이 푸들이었다.
두 마리 강아지는 생각보다 컸다. 어미 크기의 3분의 2 정도는 됐다. 속털이 쥐색이었는데 자라면서 그렇게 색이 변할 거라고 했다. 장남인 새롱이는 인형처럼 귀여웠다. 눈이 까맣고 초롱초롱했고 약간 불쌍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런 인상과 달리 격하게 날뛰면서 어미와 싸웠다. 분양인은 “얘가 엄마를 자꾸 이겨먹으려고 해요”라고 설명했다. 어미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한 마리는 이미 전날인지 며칠 전인지에 입양을 보냈다고 했다.
사교성 좋은 동생이 분양인과 대화하고 새롱이와 인사하는 동안 나는 한 걸음 뒤에서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태어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새끼 개를 어미로부터 떼어내 낯선 사람이 있는 낯선 장소로 데려가는 것이 정말 잔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내가 하려는 일이었다.
어린 강아지한테 이 상황을 뭐라고, 어떻게 납득시켜야 할까? 사람이 하는 말로 사람 아기한테 하듯이 천천히 말해봤자 알아듣지 못할 테지 않은가. 가족과 헤어지는 법을 가르쳐주는 훈련 같은 건 없나? 개가 막연하게라도 입양 가족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할 의식 같은 건?
우리는 그냥 그 집에서 분양인과 10분 정도 담소를 나누고(그나마 나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롱이를 운반장에 넣어 나왔다. 친절한 분양인은 새롱이와 어미에게 먹이던 사료와 간식을 비닐봉투에 담아 주었다. 우리에게 선물로 케이크까지 주었다.
강아지가 든 운반용 케이지를 가슴에 안고 조수석에 올랐다. 강아지도 나도 긴장하고 겁을 잔뜩 먹었다. 개가 겁에 질리고 흥분해서 울부짖거나 토하거나 기절하거나 똥오줌을 지리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가는 길에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는 않을까?
몇십 분 전까지 활달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새롱이는 애처롭게 낑낑댔다. 케이지 입구를 열고 안에 손을 넣어 강아지를 쓰다듬어주었다. 강아지는 머리를 입구 밖으로 내밀고 그 불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겁을 먹고 불안해하는 것은 틀림없었지만 짖지는 않았다. 몇 번인가 가슴까지 몸을 우리 밖으로 내밀기도 했지만 내가 다시 집어넣었다.
사람 아기에게 하듯이 개에게 계속 말을 걸라고 동생에 조언했다. 그러나 나는 쑥스러워서 그러지 못했다. 조카와 매제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강아지 잘 데리고 오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차창 밖으로 도봉산을 바라보다 강아지를 바라보다 했다. 새롱이는 마침내 잠이 들었다.
“눈을 뜨고 자네.” 내가 말했다.
“눈이 커서 눈꺼풀이 안구를 다 덮지 못하는 거야.” 동생이 설명했다.
동생은 나를 부모님 댁 앞에 내려주고 집으로 갔다. 부모님 댁 마루에 운반장을 놓고 문을 열었지만 겁을 먹은 강아지는 한참 동안 그 안에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5분 정도 기다리다가 내가 케이지를 분해해서 강아지를 꺼냈다. 새롱이는 아직 주변 환경이 어색한 듯했고, 마룻바닥을 걷다가 종종 미끄러졌다.
부모님이 강아지를 너무 좋아하셔서 퍽 놀랐다. 나 때문에 억지로 키우는 건 아닌 게 확실했다. 특히 무뚝뚝한 아버지가 개를 보며 연신 웃으시는 모습이 뜻밖이었다. 사실 두 분 모두 나보다 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조카들과 함께 있을 때면 부모님은 나에게는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데, 새롱이와 있을 때도 그랬다.
개가 바닥에 똥을 싸자 내가 얼른 휴지를 들고 와서 치웠다. 오줌도 닦았다. 개똥이 예상보다 단단해서 별로 더럽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기꺼이, 자연스럽게 개똥을 집어 들고 바닥을 닦게 될 줄 나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나이 든 개를 사랑할 수도 있고 개가 죽어가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을지 모른다.
저녁으로 떡국과 갈비찜을 먹고 부모님 댁에서 잤다. 밥을 먹으며 나는 7, 8월에는 내가 서울을 떠나 원주에 있게 될 거라고 (그러니 그 기간에는 부모님이 새롱이를 돌봐줘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어지간하면 7월 1일에 원주로 떠나 8월 31일까지 기간을 꽉 채워 머물면서 그 사이에 되도록 서울에 오지 않을 마음이었다.
냉장고에는 칼스버그 대니쉬 필스너 한 캔과 테라가 여러 캔 있었다. 칼스버그 대니쉬 필스너는 전에는 그냥 칼스버그라는 이름으로 팔렸는데 재작년에 로고와 포장, 이름을 바꿨다. 내게는 여태껏 깔끔하다는 인상 정도가 전부인 맥주였는데, 앞으로는 다르게 기억되겠구나 생각했다.
밤에 나는 손님방 침대에 누웠고, 새롱이가 깔고 잘 방석은 침대에서 좀 떨어진 자리에 뒀다. 개는 무서웠는지 낑낑대며 잠을 들지 못했고 나는 몇 번 침대에서 내려와 녀석을 안아주며 달랬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롱이가 제 방석에서 나와서 침대 옆, 내 머리맡 아래에서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만난 지 하루도 안 된 사이인데, 내가 그렇게 믿을 만 해? 푹신한 방석 위에서 자는 것보다 딱딱한 방바닥이라도 내 옆에서 엎드려 자는 게 더 좋아? 나는 개 방석을 침대 옆으로 가져왔고 새롱이를 거기 눕혔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까지 어린 개와 나란히 누워 푹 잤다.
강아지를 데리고 온 날
덴마크 왕실 공식 맥주를 마시고
행복한 기분으로 잤습니다
대학 두 곳에서 강의할 때 첫 수업 숙제로 부모님이나 친구를 인터뷰해오는 과제를 내줬다. 살면서 가장 무서웠던 일, 혹은 가장 슬픈 일에 대해 육하원칙에 맞게 자세히 들어오라고. 학생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무척 놀란 것 같았다. 인터뷰는 깊은 대화이고, 깊은 대화는 그 자체로 힘이 있어서, 제대로 하고 나면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정화되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런 활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오프라인 모임에 대해 이것저것 상상해본다.
대학 시절, 교양영어 수업 시간에 충격적으로 읽었던 「제비뽑기」와 다른 단편들. 「제비뽑기」는 분명 걸작인데 나머지 글들 중에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불길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의도한 작품들이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하나?
「제비뽑기」가 뉴요커 지에 처음 실렸을 때 독자들의 항의가 바로 이 작품 속에서 돌을 던지는 마을사람들의 모습과 겹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비뽑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고, 각색하기 편한 내용이어서 단편 영화, TV와 라디오 단막극,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용감하게 쓰자. 마릴린 맨슨의 〈Man that you fear〉 뮤직비디오도 「제비뽑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냥 보면 알 수 있는데 맨슨이 인터뷰에서까지 밝혔다.
호불호가 엄청나게 갈릴 책. 나로 말하자면 매우 재미있었고 한 대목 한 대목이 다 통렬했다. 그리고 사림과 586의 공통점이 단순한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공통의 지리적 요소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외부와의 경계가 확정적으로 보이면 사람들은 내부 권력 투쟁에 몰두하게 되는 걸까? 그런 때 실력을 쌓는 일보다 패거리에 소속되고, 도덕과 명분을 앞세우는 것이 비용효과적인 전략인 걸까? 인구 밀도가 높고 구성원의 교육 수준도 전반적으로 양호하다는 점이 그런 전략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걸까?
제목이 멋있고, 부제인 ‘디지털 거대 기업에 맞서 인간적 삶을 지키는 법’에도 관심이 많아서 읽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효능감을 품을 수 있을까? 기본소득은 수령자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들에서 소외되는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선거로 정치인들을 뽑지만 그들에게 아무런 권력이 없으며, 겉으로만 그렇게 민주주의처럼 보이는 제도를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부르는데 그럴싸하다. 금융거래세 아이디어가 무척 솔깃하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는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마르틴 부버의 말에 밑줄.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질문 중 가장 심오하고 중요하다. 각자가 어느 사회에 살고 있든, 답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관계없이 중요한 것은 가장 나은 답을 아는 것이다.
37쪽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라는 의문에서 빅 히스토리를 찾아가는 길이 시작되었을 것같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가장 나은 답을 알아가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전통적 기원이야기와 현대의 기원 이야기가 차이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가 가장 큰 것이라 봐요. "현대의 기원 이야기는 고정되거나 절대적이지 않으며, 완벽하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과학의 발전이나 사고의 넓어짐으로 변화된 것 같아요.
고정되지 않고 절대적이지 않고 완벽하다고 주장하지 않는 빅 히스토리를 알아가면서 보다 과학적이면서도 겸손한 모습이 과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인것 같네요.
별은 가까운 주위에 엄청난 에너지 흐름뿐 아니라 새로운 물질인 화학원소도 만든다. 화학원소는 복잡성의 다음 수준으로 나아가는 열쇠다.
63쪽
1장을 읽으면서 우주 생성에 대한 설명이 복잡하고 어려웠어요. 과학적 상식의 부족으로 아무리 읽어도 이해 못 하고 복잡하게만 여겨집니다.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이 복잡성이 다음 수준으로 나아가는 열쇠가 된다 하니 앞으로 더 복잡해져야 생명탄생이 이루어지겠죠. 어렵운 이 '복잡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마워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 책도 나온 지 15년이 넘었으니 이제 거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당시 독자 서평을 찾아보니 ‘강남아파트 투자가 아직 늦지 않았다고 봅니다’ 같은 구절이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단지별로 자세히 분석이 되어 있고 단점도 나와 있어서 의외로 읽는 재미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비롯해 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이 25억 명 가량 있다고 한다. 선진국 국민들은 잘 체감하지 못하지만 현재 금융거래의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내연기관의 작동 원리를 잘 알지 못하면서 자동차를 잘만 타고 다닌다. 비트코인을 추상적인 구조라고 하지만 돈 그 자체도 그렇다. 37코인스와 이송이 창업자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