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은 고평가되었는가: 이론 영역’, ‘주택은 고평가되었는가: 경험 영역’ 같은 문구를 목차에서 보고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을 다니며 국회 담당 업무를 했다는 저자의 이력에도 신뢰가 갔다. 차분하고 균형 잡힌 책이라고 느꼈는데, 그래서인지 지금 서울 아파트 값에 거품이 낀 건지 아닌지 명확한 결론은 없었다.
드디어 13장. 길것만 같던 그믐 29일이 끝나가고, 마지막 13장을 읽게되었네요.
'미래에 어떻게 역사가 있단 말인가'란 질문처럼 역사에 미래를 언급하는게 어불성설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이 장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어요. 우리가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는 기나긴 역사를 알아보는이유가 미래를 생각해 보자는 의미라는 것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어요. <빅 히스토리>를 기본 틀로 삼아 미래를 생각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고요.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방법은 먼저 기존 추세에서 시작하여 그 추세를 미래에 투영하는 것이 타당한지 알아보는 것이라고 하네요. 마지막에 예측해보는 미래가 장미빛일지, 암울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양쪽으로 생각해보면서 가까운 미래의 우리 손주 세대, 수백 년 후의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생각해보게 하네요.
인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을 후손들의 자산, 즉 후손들에게 돌아가야 할 생태계의 자산을 훔쳐 자신에게 보상한다. 568쪽
앞으로의 100년에 대비하기 위해 전 세계 사람들이 긍정적 추세를 장려하고 가장 유망한 활동들을 중심으로 삶을 설계하거나 재설계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녀를 적게 낳고, 자전거 이용을 늘리고, 텃밭을 가꾸는 것 등이다. ...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빠르게 변하는 세계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면 명료함, 창의성, 연민, 용기를 간직해야 한다. 빅 히스토리 관점은 그 문제들을 명확히 파악하기 무척 좋은 방법이다. 577쪽
어제 실은 그동안 계속 온라인으로만 설교를 듣던 목사님의 개척교회 예배에 다녀왔는데, 가는 길에 어떤 처자를 보았다. 한 겨울에 맨발에 컨버스, 수면바지 같은 옷을 입고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하고 코밑은 콧물이 눌어붙은 자국이 남아 있던 성인 여자였다. 여자는 지하철 내 앞자리 정도에 앉았는데 손에 카드 💳 를 쥐고 꼭 누가 채가면 어떤 방법도 없어보이는 눈망울로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옆자리 남자는 피할 수도 없고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듯 했다. 마스크도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쯤되면 꼭 해주는 건 없으면서 마구 이리저리 싫은 소릴 해가며 간섭하는 꼰대들이 등장해야 마땅한데, 그냥 말을 해서 들을 것 같지 않다는 견적?이 나와서인지 그녀는 그렇게 '간섭받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마침 여분의 마스크가 있던 아줌마 1인, 그녀에게 주려고 시도했으나;; 뭐래~ 하면서 옆 칸으로 이동하는 그녀를 보았다. 👀 그래~ 나는 최소한 주려고 시도했어. 받지 않은 건 제할탓이지. 어쨌든 새해라고 좋은 일하려고 하기는 했다고 여기며 도착해서는 목청이 터져라 찬양하고 끝나고는 설날을 잘 시작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목사님 설교에 은혜 많이 받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얌전히 줄서서 인사드리고 알고보니 애들간식이었던 칸쵸를 챙겨 다시 머나먼 길>> 집으로 돌아왔다는 간편한 설날☆
신경질적이지만 그만큼 유려한 위악. 유려해지기 위해 위악을 불러들였다거나, 이 유려함이 예민한 신경에 샴쌍생아처럼 붙어 있을 가능성도 의심한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의 착란은 대개 매혹적이지 않나?’(15쪽)
피식피식 낄낄 즐겁고 빠르게 읽었다. 꼭 2차창작물의 형태로 써야 했나 조금 의아하긴 한데, 원작 게임을 몰라 할 말이 없다. 마지막 사도는 켈베로스였고, 겐도는 개장수, 모든 건 제레의 계획대로… 상냥해.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내가 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계약금을 지급하지 않고, 왜 안 주느냐고 따질 때까지 인세도 지급하지 않은 출판사가 있다. 인세 보고도 지금껏 제때 한 적이 한 번뿐이다. 그것도 내가 한바탕 거세게 항의한 뒤였다.
역시 전에도 썼지만, 이 출판사는 오디오북도 무단 발행했다. 어느 날 온라인서점 사이트에서 오디오북이 판매되는 걸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나는 그 출판사가 내 동의 없이 멋대로 오디오북을 만들고 자기네 마음대로 요율을 정해 플랫폼 두 곳에 공급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계약서에는 2차 저작물을 만들 때에는 저자와 협의해야 한다고 되어 있고 녹음도 2차 저작물이라고 나와 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도의적으로도 납득이 안 간다.
이걸 공론화할까 고민도 했는데 그러면 회사가 망할 것 같아서 편집장의 사과를 받는 선에서 넘어갔다. 내 경험을 널리 알려 출판계에 경종을 울리고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런데 편집장이 메일로 보낸 사과가 성의 없어 보였고, 내용도 ‘우리가 나이브했네요’ 하는 수준이어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실제로 문구가 그랬다. 이게 내 우울증 에피소드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약 1년 전 일이다.
그 뒤 2차 저작권을 내가 관리하는 내용으로 출간계약서를 새로 만들고, 이 회사에서 추가로 만들겠다는 오디오북 계약서도 정식으로 체결하자고 요구했다. 그 일은 그 즈음 계약을 맺은 판권 매니지먼트 회사에 맡겼다. 매니지먼트 회사에 사건의 자세한 배경까지 알리지는 않았다.
판권 매니지먼트 회사는 점잖게 협상을 한 모양이었다. 오디오북 선인세로 100만 원을 요구했는데 출판사가 줄 수 없다고 해서 교착 상태에 있다고 몇 달 전에 보고받았다. 출간계약서 개정도 잘 진행되지 않았다. 참고로 선인세는 오디오북을 만들겠다는 다른 출판사에도 똑같이 요구한 사항이었고, 이 문제의 회사를 제외한 다른 출판사에서는 모두 거기에 응했다.
그동안 이 건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 망할 출판사에서 오디오북 인세 보고가 또 늦었다. 플랫폼 업체의 정산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그러면 보고가 늦는다고 내게 알렸어야 할 사안이었다. 내가 더 화가 난 것은 출판사 측의 제안이었다. (자신들이 무단 발행한) 오디오북 인세가 받아보니 생각보다 너무 적어 ‘인세대로만 정산하기는 송구한 것 같으니’ 선인세조로 100만 원을 주려고 하는데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무슨 일을 이렇게 주먹구구로 해? 이 오디오북 인세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선인세는 근거가 뭔데? 화가 나서 오디오북 계약서부터 제대로 만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 오디오북 무단 발행, 계약금 체불, 인세 체불, 인세 보고 불성실에 대해 편집장이 아닌 회사 대표의 직접 사과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공개 사과나 자필 사과를 할 필요는 없지만 사과문은 대표로부터 서면으로 직접 받고 싶다고, 기한을 정하지는 않겠지만 무한정 기다리지도 않겠다고.
몇 년 전부터 시원하게 풀리는 일이 없다는 기분이 든다. 다들 이렇게 답답하게 살고 있나? 출판계의 이런저런 자칭 기획자들과 손잡고 시도했던 일도 대부분 성과가 별로였다.
그렇게 함께 일한 사람들 중에는 형편없는 얼치기들도 여럿이었다. 말만 번드르르한 인간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내 안목과 욕심을 탓하고 제대로 항의하지도 않았다. 원래 남한테 싫은 소리 잘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이번이 이례적인 경우였다. 어처구니없는 계약 위반이 거듭되는 걸 도저히 봐 넘길 수가 없어서.
출판사에 그런 메일을 보내고 난 다음날에는 모처럼 아침을 먹었다. 부모님 댁에서 밥과 반찬으로 식사를 며칠 했더니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자극적인 음식이 당겨서,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김밥을 사 와서 먹었다. 대신 점심을 걸렀다.
부모님 댁에 운동화와 세면도구를 실수로 두고 왔다는 핑계로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닥은 청소했다. 기타 레슨도 받았고 전화영어 수업도 들었다. 이제 그 어렵다는 F 코드와 B 마이너 코드도 그럭저럭 소리를 잘 낸다. 그러나 코드 변환은 영 매끄럽지 못하다.
저녁에는 맥주를 마셨다. 안주로는 장모님이 주신 가래떡과 내가 부모님 댁에서 가져 온 깐새우장을 먹었다. 동생이 설 선물로 받았다는 깐새우장을 동생 부부와 부모님은 제각각인 이유로 싫어했다. 동생은 새우 알레르기가 있고, 매제는 속이 안 좋다고 하고, 아버지는 젓갈류를 드시지 않고, 어머니는 물컹한 식감이 싫단다. HJ와 나는 깐새우장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게 웬 횡재냐 하며 집으로 통째 가져왔다.
맥주는 인디카 IPA와 수퍼 스윙 라거를 마셨다. 인디카 IPA는 알코올 함량이 6.5퍼센트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산뜻하고 밸런스가 일품인, 맛있는 미국 서부 맥주다. 값이 좀 쌌으면 자주 마셨을 텐데. 병 라벨에는 힌두교 신인 가네샤처럼 생긴 코끼리 머리 인간이 팝아트 스타일로 그려져 있다. 실제로도 가네샤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이었는데, 인도인들의 항의를 받고 가네샤처럼 원래 4개이던 팔을 2개로 줄였다고 한다.
인생 원래 이런 거죠?
지혜와 행운의 코끼리 신이여
대답 안 해줄 거예요?
맥주를 마시다가 HJ가 추천한 유튜브 영상을 1시간 남짓 보았다.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는 동영상이었지만 빔 프로젝터로 보았다. 방송사의 개그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공연도 못하게 된 개그맨들이 만든 콘텐츠라고 했다. 신인들은 아니었지만 TV에서 인기를 모으던 이들도 아니었다.
내용은 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남성 노인들을 풍자하는 시리즈물이었는데 HJ는 보면서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출연자들이 대상 인물의 특징을 너무나 잘 포착하고 빼어나게 묘사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정말 노인들인가 싶었을 정도였다. 나이 든 남자가 아니라 젊은 여성을 같은 수준으로 캐리커처로 만들었다면 분명히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으리라.
영상도 재미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폭소를 터뜨리는 HJ의 모습이 더 좋았다. 영상을 다 보고 나서 HJ와 나는 그 개그맨들의 말투를 한참 흉내 냈는데 내가 훨씬 더 잘했다.
‘도파민 경제’, 그리고 역사학자 데이비드 코트라이트가 지어낸 용어라는 ‘대뇌변연계 자본주의’라는 표현에 쓴웃음. 정말 우리 시대 사회 모습이 그렇구나. 나도 꽤나 도파민에 중독된 사람이라고 느끼는데, 책에 나오는 몇몇 사례가 하도 기괴해서 읽다 보면 내 수준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