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뻔하게 시작해서 재미없다가 재미있다가 재미없다가 재미있다가 제법 무서운 장면이 두세 번 나오고 반전도 있는데 결말은 마음에 안 든다. 그리고 열 살짜리들이 너무 똑똑하다.
강렬한 표지에 이끌려 서점에서 이 책을 홀린듯이 집어들었다. 이렇게 속도감 있게 후루룩 읽히는 스릴러물은 박서련의 <마르타의 일> 이후로 처음이었다. 읽는 내내 이경미 감독이 영화로 만든다면 잘 어울리겠다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뒷표지를 보니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박서련 작가와 이경미 감독의 추천사가 적혀있었다(호오 이런 우연이). 기괴하고 괴팍한 여자들, 시니컬한 연대감, 건조한 감정 표현들이 마음에 들어왔다.
이 집에서 제일 좋아하던 시간
이때 피아노를 두드리고 있으면 차암 좋았는데~
피아노학원에 새로오신 은퇴하신 어머님께서, 핫도그를 사주시며 ㅋ 집이 안나간다고 걱정을 했더니, 안 되는걸 억지로 하려다간 되어도 고생시킨다는 연륜가득한 말씀을 한자락.
처음 쓰던 전자책 단말기는 크레마 카르타였습니다. 이후 갤럭시탭을 잠시 쓰다가 줄곧 아이패드로 전자책을 읽고 있었죠. 작년 연말부터 원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킨들앱의 iOS에서 word wise가 미지원이라 불편하더군요.
늘 집안 어딘가에 그럭저럭 쓸만한 안드로이드 기기가 항시 있었던 거 같은데 근래에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안드로이드 디바이스를 구매하자니 용도가 애매하고 no power 상태로 잠들어 있던 크레마 카르타를 다시 꺼내보니 구동은 되는데 안드로이드 버전이 맞지가 않아서 설치 가능한 킨들 앱이 없었습니다. 물론 뭔가 버전이 맞는 apk 파일을 찾아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역시 과금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거 같았습니다.
마침 그 무렵이 블프 기간이라 킨들 페이퍼 화이트 11 세대를 구매했습니다. 직구로 구매했으면 깔끔했을텐데 연말까지 포인트 소진할 일이 있어서 네이버스토어의 개인 사업자 업체를 통해 주문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배송이 2월 중순까지 되지 않아서 결국 환불처리되었습니다.
여전히 word wise 기능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10분은 원서를 읽어나가고 있었습니다. 대략 25퍼센트 정도 읽었더군요. 과거 갤럭시탭 시절에 word wise를 썼었지만 그렇다고 원서를 술술 잘 읽었던 거 같진 않고 그냥 이렇게 된 거 전자책 단말기 같은 건 필요없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정법이지만 킨들이 타이밍에 맞게 제대로 배송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달성한 25퍼센트 분량보다 더 읽었을 거 같진 않았을 거 같단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환불된 금액이 있으면 그만큼 무언가를 사고 싶어집니다. 잠시 훑어보니 전자 잉크 디바이스 기기들도 선택의 폭이 넓어졌더군요. 전자 잉크 특유의 반응 속도 느림 때문에 애써 이쪽에 시선을 두고 있지 않았었는데 작년의 킨들 페이퍼 화이트를 계기로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닉스 북스라는 업체의 전자책 리더기들을 살펴보게 되었고요.
휴대성이 우선이라 6인치 사이즈에 비교적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리더기를 선별하고 보니 BOOX Poke4, BOOX Poke4s, BOOX Poke4 lite 정도의 선택지가 남더군요. 4s와 4 lite는 내수용, 외수용의 구분이고 사실상 같은 제품이고 4와 4s는 내장 메모리와 디스플레이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격 차이는 거의 없어서 BOOX Poke4로 구매.
「가난한 사람들」은 도스토옙스키의 데뷔작인데, 아주 징글징글하게 가난한 이들이 나온다. 마까르 제부쉬낀은 하도 지질해서 연민의 감정이 별로 들지 않을 지경. 도스토옙스키의 두 번째 발표작인 〈분신〉은 꽤나 혼란스러운 심리 스릴러다.
이런 재미있는 소설집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울 정도. 초월적 존재들을 영웅 서사나 소수자에 대한 비유로 이용하지 않고 서늘하게 그린다. 결과는 불가해함과 막막함. 접근방식 자체가 신선한 데다 무척 성공적이기까지 해서 놀랍다. 스토리텔러로서도 발군. 이런 재능 있는 소설가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정도다.
끝내 HJ는 사표를 냈다. 인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에 사장은 “일을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대꾸했다고 한다. 양편의 현실 인식이 너무 간극이 크고 상대가 설득도 안 될 것 같았다. 계속 다닌다고 뭐가 바뀔까? HJ가 사표를 내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전화를 걸어 왔고 나는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8년 전 내가 사표를 내던 날과 상황이 비슷했다.
HJ의 전화를 받을 때 나는 부모님 댁에 있었다. 사표를 내겠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HJ는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3일 뒤에 나는 온라인으로 대학 강연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 강연을 마친 다음날 비행기를 타자고 얘기했다. 3월 말에 개인 약속이 있기는 했는데 양해를 구하고 미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4월 초로 예정된 다음 강연까지 최대 18일을 제주에 머물 수 있었다. 귀경할 때 공항 사정이 어떨지 모르니 16일간 머물 계획이었다. 제주보다는 해외로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해외 국가 중에서 관광객에게 자가 격리를 요구하지 않는 나라는 몇 곳 있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입국자가 2주간 격리돼야 한다. 박원순 아들처럼 예외를 적용받지 않는 한.
20년 동안 사귀면서 HJ와 내가 일주일 이상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를 다니면서 두 사람 모두 바빠서 같은 기간에 길게 휴가를 내기 어려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일주일 넘게 출장이나 여행을 가본 게 2008년이다. 샌프란시스코로 보름간 단기 연수를 갔었다. HJ는 2017년이 마지막이다. 처제가 스위스 남자와 결혼할 때 프랑스와 스위스에 다녀왔다.
두 사람이 겨우 일정을 맞출 수 있게 됐는데 왜 하필 그 해에 전염병이 대유행하는 건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제주에 간다면 3월 말, 4월 초인 이때가 가장 적기이기는 하다. 내가 이렇게 외부 일정이 없는 기간도 흔치 않다. HJ는 제주도 자전거 종주를 제안했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주도 해안을 자전거로 한 바퀴 도는데 보통 2박 3일에서 3박 4일 정도 걸리고 대여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전거도로 상태는 턱없이 좁거나 인도와 합쳐지거나 승용차 운전자들이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곳들이 있어 아주 쾌적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다음날에는 점심에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월남쌈을 먹고 공원을 걷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 있을 때 HJ에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사직을 말리는 사장의 전화가 아니라 그냥 다른 팀장이 업무와 관련해 질문하는 내용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구두방에 들러 밑창이 떨어져 나간 샌들 수선을 맡기려 했는데, 수선비가 너무 비싸서 그냥 다이소에 가서 접착제를 샀다. 근력운동용 탄력밴드도 샀다. 제주도에 가면 헬스장에 다닐 수 없을 테니. 휴대폰과 연결되는 적당한 크기의 스피커도 있으면 사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가 4월 초에 강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서울 시내 대학에서 연락이 왔다. 강연을 오프라인으로 열려던 계획을 변경하고 화상회의 방식으로 할 테니, 내가 강연일에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올 필요 없이 인터넷이 잘 되는 장소에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강연은 5월 초에 있었다. 갑자기 제주도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이 한 달 이상으로 늘어났다. 우리는 그냥 돌아오는 날짜를 정하지 않고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자전거 종주를 할지 말지도 제주도에서 머물다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사귄지 만 20년 되는 해의 기념 여행이 됐다. HJ가 이걸 소재로 에세이를 한 권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잠시 그럴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생활에 지친 40대 부부의 제주 힐링 여행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너무 뻔하게 들렸다.
그날 저녁에는 집에서 부에나베자 솔트 앤드 라임 라거와 수퍼 스윙 라거, 덕덕구스, 버드와이저, 아사히 수퍼드라이를 마셨다. 사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날이었다. 칼럼 마감들이 몰려서 닥쳐온 때였기 때문이다. 신문 두 곳의 칼럼과 출판사에 보내야 하는 원고를 써야 했다.
부에나베자 솔트 앤드 라임 라거는 탠저린 익스프레스 헤이지 IPA를 만든 스톤 브루잉의 파일럿 맥주다. 이름에도 나온 것처럼 소금과 라임을 첨가했는데, 습한 여름날 땀 흘리고 기운 없을 때 마시면 좋을 듯한 맛이었다. 멕시칸 스타일 라거라고 한다. 소금에서는 데킬라가, 라임에서는 코로나가 연상된다.
선물 같은 여행
빛을 찾아서, 봄을 꿈꾸며
더 따뜻한 섬으로
신문 칼럼 원고 한 편은 제때 보냈으나 다른 한 편은 마감일 당일에 담당 기자의 독촉을 받으며 겨우 썼다. 간만에 마감 압박으로 가슴이 죄는 느낌이었다. 기자 시절 이런 날이 많았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 기침하던 버릇도 고스란히 돌아왔다. 원고를 보낸 뒤 동네 블루클럽에 가서 머리를 자르고 부모님 댁에 갔다.
큰 조카와 함께 동물병원에 가서 새롱이 5차 예방접종을 받았다. 이제 새롱이는 드디어 산책을 해도 된다. 부모님 댁에서는 저녁에 치킨을 주문해 먹었다. 새로 설치한 간편결제 앱으로 계산하는데 성공했다. 치킨을 먹으며 버드와이저와 칼스버그 대니쉬 필스너를 마셨다. 하루 묵고 오려 했는데 조카들이 거기서 잔다고 해서 잠자리가 모자라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제주로 떠나기 전날은 엄청나게 바빴다. 오전에는 내 소설의 판권을 구입한 영화감독을 만났다. 3월 중에 만나자고만 약속을 한 상태였는데 제주 여행을 앞두고 내가 날짜를 급히 정했다. 한 시간 남짓 커피를 마시면서 현재 영화 제작 상황에 대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영화계는 투자도 제작도 상영도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영화계와 영화감독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안 풀리는 젊은 영화감독들이 괴로워하는 일화나 배우들의 간택을 받으려 애쓰는 사연들이 애처로웠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소설가가 연출자보다 편한 직업인 것 같다. 투자를 받으려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배우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되고, 작업 기간도 짧고.
그는 자신이 작업 중인 시나리오를 내가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는데 거절했다. 애초에 그 요청 때문에 나를 찾은 건지 잘 모르겠다. 내 승인을 받고 싶었는지, 아니면 조언을 구하려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낮에는 시내로 나가 오랜 친구 W를 만났다. W는 전날 내게 갑자기 문자메시지를 보내 잘 지내느냐고, ‘멘탈이 걸레가 됐다’고 했다. 우리가 다들 40대를 통과하는 중이라 이런 건가 싶었다. 놀라울 정도로 맛없는 순댓국을 먹고, 커피점에 가서 차를 마셨다. 그는 내게 정신과 진료와 항우울제에 대해 물었다.
W는 쿠팡의 초창기 멤버였고, 마켓컬리의 초창기 멤버가 될 뻔했고, 그 외에 여러 스타트업을 만드는 데 간여했다. 가장 최근의 큰 프로젝트는 SK의 지원을 받아 반품 전문 온라인 커머스 회사를 세우는 일이었다. 그런데 쿠팡에서는 스톡옵션을 받지 못하고 나왔고, 그가 세운 스타트업들은 다 이리저리 일이 꼬였다.
W가 최근 몇 년간 겪은 일을 듣고 나니 상대가 아직까지 제정신인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도 그가 잘못한 일이 없었다. 내가 그의 처지에 있었더라도 그렇게 선택하고 행동했을 터였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남아 있는지 확신이 안 선다는 우울감도 이해가 갔다. 마음이 무거워진 채로 헤어졌다.
중년 위기의 본질이 이것일까? 내 인생 꼬인 것 같다는 불안감. 그리고 자기 자신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거두면서 점차 인생과 화해하게 되는 걸까? W는 다른 분석을 내놨다. 20대에는 주변에 부잣집 자식은 있어도 진심으로 시기하고 부러워할 만한 성취를 거둔 또래가 없다. 그런데 40대가 되면 그런 동년배가 생긴다.
오후에는 음악학원에 가서 기타 레슨을 받았다. 코드 기초 이론에 대해 들었다. 이제 화성학을 조금 배워야 하는 시기인가 보다. 제주도에 기타를 들고 가지는 못한다. 한 달이면 그동안 배운 걸 다 잊지 않을까 걱정이다.
저녁에는 부엌에서 줌으로 포항에 있는 학생과 주민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도서관에서 사서들과 함께 줌으로 강연을 한 적도 있고, 집에서 온라인으로 다른 작가들과 함께 독자와의 만남을 연 적도 있지만 강연 수업을 집에서 혼자 해보기는 처음이다. 청중의 반응을 확인하지 못한 채로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하려니 적잖이 힘들었다.
짐은 대충 꾸렸다. 바퀴 달린 캐리어와 더플백 하나에 그냥 집에서 평소에 쓰던 물건을 다 집어넣었다. 약간이라도 무게를 줄이겠다고 낑낑대며 고민하는 것보다 그 편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마음도 편하다. 그래봐야 짐의 대부분은 일주일치 옷가지여서 그다지 거추장스럽지 않았다.
무려 부커 프라이즈 두 권 노미네이트되신 분☆
말씀하실때도 상당히 개성있으심:)
불쾌한 남자들과 불안해 하는 여자들. 표제작을 읽으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렸다. 남자건 여자건 글을 쓰건 아니건 우린 모두 각자의 방이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