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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튼즈 바이젠과 히가시노 게이고

 피트니스클럽에 다니면서 생활의 리듬을 되찾고 체중도 감량했다. 12월 초에는 63킬로그램 남짓이 되었다. 1킬로그램만 더 빼면 우울증에 걸리기 전으로 회복하는 건데, 그 마지막 1킬로그램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면서 피트니스클럽이 운영을 축소하다가 마침내 문을 닫았다.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아무래도 피트니스클럽을 다닐 때보다는 게을러졌다. 운동량도 줄었다.

  아침에도 6시 반에 못 일어나고 늦잠을 자는 때가 생겼다. 안 좋은 생각들, 기억들이 머리에 떠올라 한참 사라지지 않았다. 분노에 차서 벽을 치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하고, 부끄러워서 혼자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기도 한다.

  이렇게 우울증이 오는 거구나.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는 것, 내가 그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점이 사랑과 닮았다. 참으로 운명 같구나.

  아침부터 맥주를 마시면 안 된다. 침대에 기어 들어가서도 안 된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는 건 귀찮고 매사에 의욕이 안 난다. 그래서 책을 읽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었다. 단편집이 가장 좋았고, 가벼워 보이는 소설일수록 환영이었다.

  하루는 가와사키 소시의 『서장 다나카 겐이치의 우울』을, 다음날에는 모리 아키마로의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를 읽었다. 『서장 다나카 겐이치…』는 수사에 관심 없는 젊은 경찰서장과 그런 서장을 오해하는 열혈 경찰관들이 벌이는 추리극인데 만화책처럼 유쾌하다. 『검정고양이…』는 ‘인문학 미스터리’를 표방하는데 라이트노벨 같은 서술과 거창한 소재의 결합이 독특하고 흥미롭다. 로맨스도 있다.

  셋째 날에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세 권을 하루에 읽었다. 장편소설인 『하쿠바산장 살인사건』과 『11문자 살인사건』, 그리고 연작 단편집인 『살인 현장은 구름 위』. 모두 작가가 1980년대에 쓴 초기작들이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 히가시노의 작품들은 대부분 2010년대에 나왔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공허한 십자가』, 『매스커레이드 호텔』….

  『하쿠바산장 살인사건』에는 밀실 살인, 사고사로 위장한 살인, 암호 풀이가 나오는데 읽다 보면 ‘과연 이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물건을 숨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재미있으므로 넘어간다. 『11문자 살인사건』은 그보다는 조금 더 톤이 무겁다. 『살인 현장은…』에서는 승무원 콤비가 비행기나 항공사와 관련된 수수께끼들을 해결하는데 작가도 진지한 마음으로 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을 때면 늘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이렇게 꾸준히 많이 쓸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집중력에 문제가 있는 걸까? 비꼬는 말이 절대 아니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모두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성실하게 쓰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그 두 일본 작가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히가시노의 책을 세 권 읽은 날에 글은 한 자도 쓰지 않았다. 대신 바닥을 청소하고 근력 운동을 했다. 점심은 굶고, 저녁에는 집 근처 사무용 건물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이 구내식당은 점심에는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하지만 저녁식사 메뉴는 한 종류라서 뭘 먹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체로 저녁 메뉴가 점심보다 부실하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가서 페트병에 든 마튼즈 바이젠을 두 병 사 왔다. 마튼즈는 1758년에 술장사를 시작한 유서 깊은 맥주 가문이고 생산량도 벨기에 2위라지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소비자들에게는 가격 대비 성능비로 인식되는 브랜드다. 이날 내가 모처럼 이 맥주에 손을 뻗은 데에도 하루 종일 밥값을 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한 몫 했다.

  그런데 아뿔싸, 집에 와서 뚜껑을 따고는 크게 실망했다. 오래된 제품이었는지 탄산이 다 날아가 밍밍했고, 맛도 살짝 변한 것 같았다. HJ는 마실 만하다고 했지만 나는 한 잔을 겨우 비웠다. 다시는 페트병 맥주는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위스키, 보드카, 소주에는 유통기한이 없지만 맥주에는 있다. 알코올 함량이 낮고 여러 가지 첨가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수가 특이하게 높거나 람빅 스타일이 아닌 한 병맥주와 캔맥주 대부분은 유통기한이 1년, 페트병 맥주는 6개월이다.

 홉은 단백질 성분이라서 직사광선을 받으면 맛이 변질된다. 맛의 측면에서는 병맥주보다 캔맥주가 더 안전한 선택이다. 특히 페트병은 유리병과 달리 표면에 미세한 구멍이 있어서 뚜껑을 따기 전에도 바깥의 산소가 안으로 들어가고, 안의 탄산가스도 밖으로 조금씩 새어나온다. 맥주 페트병은 일반 페트병과 달리 다중막 구조로 만들거나 차폐 성분이 있는 특수 재질을 사용한다지만(그래서 재활용도 어렵다).


 김빠진 맥주

  가성비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요

  인생 짧아요


 우울증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면 좋을 텐데. 6개월만, 1년만 버텨내면 끝난다는 보장이 있으면 좋을 텐데. 김빠진 맥주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하강 나선의 입구에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불안하다. 이 우울감에는 예전에 느끼곤 했던 감미로움 따위는 없다.

  오늘은 미야지마 겐야의 『고마워, 우울증』을 펼쳤다. 저자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데 본인 스스로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생했고, 자기 병을 고치기 위해 전공을 정신과로 택했다. 환자들에게 항우울증 약을 권하지 않는 의사라고 한다.

  기록을 찾아보니 전에 이 책을 읽은 게 2016년으로 나온다. 그때는 우울증을 겪지도 않았으면서 왜 읽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덕분에 책 제목과 ‘우울증은 삶을 바꿀 기회’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아 다시 집어 들게 됐다.

  현대의학에서 우울증을 바라보는 방식을 비판하는 앞부분이 위로가 됐다.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검사 없이 오직 환자 말에만 의존해 우울증 진단을 내리며, 재발 환자에게 약을 계속 권하도록 교육받지만 그런다고 우울증이 치료되는 건 아니라고. ‘많은 정신과 의사의 치료는 약을 처방하는 것뿐’이라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람일수록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는 얘기는 듣기는 좋지만 썩 믿기지는 않는다. 뒷부분에 적힌 우울증을 극복하는 실천 방법들은 그냥 눈으로만 읽었다.

 우울증이 삶을 바꿀 기회라면, 우울증을 기회로 내 삶은 어떻게 바뀔까? 나는 희망적인 생각도 한다. 이 병을 완전히 극복하기만 한다면, 나는 보다 현명하고 의연한 사람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음영이 있는 인간이 될 것이다. 이미 얼마간은 그렇게 됐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전보다 미소를 더 자주 짓는 사람이 되어가고도 있다. ‘난 참 운이 좋다, 즐겁다’고 생각하면서 하루에 여러 번 의식적으로 미소를 짓는다. 혼자 박수를 치며 이상한 춤도 춘다. 50대, 60대에 늘 미소를 짓는 얼굴이면 좋겠다. 진심으로 “고마워,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6. 하이트제로와 항우울제

 동지가 가까워오니 우울증의 기운이 밀려오는 걸 느낀다. 역시 우울증은 일조량과 상관이 있는 거야. 거의 다 극복했다고 여기던 터라 당황스럽고 또 두렵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 올해 3월이었다. 3주가량 그 증상이 지속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무슨 동면하는 동물처럼 엄청나게 잤다. 삶에서 도피하고 싶었고, 방법이 술 아니면 잠이었다. 졸리기도 많이 졸렸고,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잠을 일부러 청하기도 했다.

  4월에 ‘이래선 안 되겠다’ 마음먹고 동네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 받았다. 정신과에 간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가 불면증이라는 이야기를 그날 듣고 멋쩍게 웃었다.

  약의 효과는 지금 생각해보면 애매하다. 다른 정신과 약을 먹어 본 적이 없으니 비교할 만한 경험도 없다. 자살 충동이 누그러들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다행이라고 여겼더랬다. 워낙 기대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다른 소설가의 우울증 경험을 뒤늦게 전해 들었는데, 그이는 항우울제를 먹고서는 너무 행복해져서 오히려 이래서는 글을 못 쓰겠는데, 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얘기를 들려준 작가가 부럽기까지 했다.

  부작용은 약하게 겪었다. 입 안이 뻑뻑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침이 말랐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져서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 신체에서 분비물이 잘 나오지 않는 게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한다. 안과에 가서 소독제와 일회용 눈물을 한아름 처방 받았는데, 안구건조증으로 안과에 간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약국에서 젊은 약사가 우울증 약을 건네며 “맛있는 거 많이 드세요” 하고 위로했다. 그래, 맛난 거 먹는 게 행복이지. 그래서 그 뒤로 한동안 다이어트 걱정 않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었다.

 그리고 불과 넉 달 사이에 7킬로그램이 쪘다. 5월 중순만 해도 몸무게가 62킬로그램 남짓이었는데, 9월 중순에는 70킬로그램을 돌파했다. 체중이 70킬로그램을 넘은 것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올해는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많다.

  얼굴도 몸도 동글동글해졌다. 66, 67킬로그램일 때 절식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나 원래 굶는 거 잘하는데…. 의사에게도 이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내가 처방 받은 항우울제인 렉사프로의 부작용 중 하나가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거라고 했다.

  정작 병세는 어느 단계에서 더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았다. 7월에 한 번, 9월에 또 한 번, 만사 귀찮아져서 1, 2주씩 침대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의사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고 좋은 분이었지만, 그 이가 아니라 현대정신의학에 대해 품고 있던 높은 기대가 꺾였다. ‘못 믿겠다’는 아니고, ‘아, 기껏 이거였어?’ 정도.

  증세가 나쁘다고 하면 복용량을 늘려주고, 그래도 차도가 없다고 하면 약을 바꾸는 식으로, 땜질 처방을 받는다고 느꼈다. 그러다 요행히 나에게 딱 맞는 약과 투여량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모든 치료가 나의 자가 진단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셈인데, 그 자기 파악에 내가 자신이 없었다. 나 상태가 좋아졌나? 나빠졌나? 잘 모르겠는데. 탄수화물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9월 중순에 항우울제 복용을 내 멋대로 중단했다. 이 경험을 솔직하게 써야겠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고백이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독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절박한 마음과 환자 특유의 오기에 잘못된 판단을 내렸고, 운이 좋았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서서히 복용량을 줄여야지, 단번에 끊으면 위험하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얼마 뒤 심각한 공황 발작을 두 번 겪었다.

  약을 찬장 안으로 치운 다음날부터 피트니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침에 무조건 6시 반에 일어나 HJ가 출근할 때 나도 피트니스클럽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매일 하루에 30분씩 달리고, 이틀에 하루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기로. 다른 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것만큼은 지키자고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그렇게 억지로 몸을 밖으로 끌고 나가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뒤부터 분명하게 차도가 있었다. 그래도 병원에 다니는 걸 멈추지는 않았는데, 운동의 효과 역시 얼마 못가고 사라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병원에 의지해야 할 터였다. 그런데 내가 다니던 동네 병원은 예약을 한번만 지키지 않아도 환자를 다시 받아주지 않는다고 엄포를 놓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석 달 동안 병원에 가서는 약 잘 먹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에는 가지 않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약 구매 기록을 의사가 검색할 수 있지 않나 우려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제 거의 다 나은 거 같으니 약은 그만 먹어도 될 거 같다”고 갈 때마다 이야기했지만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며 계속 처방전을 써주었다. 약의 용량은 줄었다.

 9월 말에 하루, 10월에 또 하루 공황 발작이 왔다. 갑자기 얼굴 앞에 투명한 벽이 생기고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어 한밤에 집밖으로 나가 근처 개천 다리 위에 한참 서 있다가 돌아왔다. 10월에는 하룻밤에 두 번이나 그랬다.

 의사도, 약사도 술을 삼가라고 했다. 그래서 대신 무알코올 맥주를 많이 마셨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하이트제로를 박스째로 주문해서 쌓아놓고 마셨다.

  무알코올 맥주는 만드는 방법이 세 가지다. 아예 효모를 발효하지 않는 것, 발효를 한 다음 알코올을 제거하는 것, 발효를 하긴 하되 억제해서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 아래인 낮은 도수의 맥주를 만드는 것. 마지막 방법이 무알코올 맥주 중에는 제일 맛이 좋다고 한다. 알코올 함량이 1퍼센트보다 낮으면 무알코올 맥주라고 팔아도 된다.

  하이트제로는 비발효 공법 맥주다. 나무위키에는 하이트제로에 대해 ‘맥주고 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탄산음료로서도 부적격’ 같은 악평이 적혀 있다. 나는 이게 어디냐, 하고 감사히 먹었다. 진짜 맥주만큼 좋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니고.

  나는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될 기질이 다분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알코올 맥주가 없었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탄산수 같은 걸로 대신했으려나?


  고마운 친구여

  지옥 가는 길을 막아줬다오

  심심하긴 해요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는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주 원인은 아니겠지만 얼마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는 요인 중에 일기를 쓰지 않게 됐다는 점도 있다. 30년 가까이 써왔던 일기를 재작년 말부터 쓰지 않고 있다. 타인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니 쓸모가 없다고 여겼고(나조차 다시 읽지 않았다), 바쁘기도 해서였다. 그리고 15개월 뒤에 우울증에 걸렸다.

  일상을 혼자 글자로 적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왔는데, 그걸 더 하지 못하게 되어 우울증이 온 것은 아닐까, 진지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맥주를 소재로 일상 에세이를 쓰는 것은 글쓰기에 있는 치유의 힘을 얻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제주도청 보도자료_ 2022년 4월 27일 제주문학관 방문

2022년 4월 27일 그믐의 김혜정 대표는 제주문학관을 방문하여 제주도민들과 독서모임이 가진 힘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도민문화학교 "더하기의 힘, 나누기의 힘" - 지식공동체 그믐 김혜정 대표

그믐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월간 채널예스> 2021년 12월호에 장강명 작가가 '지식공동체 그믐'의 시작에 관해 올린 글입니다.


[장강명 칼럼] 우리가 사라지면

111.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정아은)

지적이고 분석적인 글을 좋아하고, 이 작가의 독서 칼럼을 좋아한다. 내가 은근히 로맨틱한 남자여서 사랑 이야기도 좋아한다. 그래서 매우 취향에 맞는 책이었다. 서태지와 신해철의 음악이나 노랫말이 아닌 사랑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고개 끄덕이며 감탄. ‘결국 우리는 사랑 앞에서 버둥거리게 된다’는 표지 문구도 좋다.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5. 풀러스 런던 포터와 리어 왕

 《제인 에어》를 보고 사흘 뒤에 영화 《킹 리어》를 봤다. 그 사이에 HJ는 처가에 가서 하루 묵고 왔고, 나는 집을 청소했다. 내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HJ는 또 친정에서 반찬들을 잔뜩 가져 왔다. HJ는 “엄마가 나한테 반찬 주는 걸 좋아해, 그게 엄마의 기쁨이야”라며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장모님에게 매번 너무 미안하다.

  새해부터 신문 한 곳에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칼럼을 싣는 일간지가 두 곳이 됐다. 책 칼럼까지 포함하면 세 곳. 신문사에서는 대표 칼럼의 필진이 되어 달라고 했으나 거절하고 에세이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다. 담당 부장은 대표 필진이 되는 게 부담스러우냐고 물었는데,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찾아보니 대표 칼럼은 주로 시사 문제를 다루던데,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의성이 높은 글들은 나중에 모아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에는 낡은 느낌이 들기 일쑤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이 싫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인 정치적 사안에 대해 누가 옳다 그르다며 판관 역할을 할 마음도 없었다(그러고 보면 내가 신문에 쓰는 칼럼의 상당수가 ‘모르겠다’ 혹은 ‘두렵다’로 끝난다).

  신문사에서 연재 코너의 제목을 정해 달라고 해서 ‘장강명의 군중 속에서’ 어떻겠느냐고 답을 보냈다. 담당 부장은 너무 낡은 느낌이라며, ‘장강명의 사는 게 뭐길래’를 대안으로 내놨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가벼워 보이나, 하고 약간 발끈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제목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고, ‘사는 게 뭐길래’도 들을수록 괜찮게 들렸다.

  《킹 리어》를 보는 날 낮에는 방송국에서 신년기획 다큐멘터리의 이음새 부분과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둘 다 야외 촬영이었는데 이번에는 날도 그리 춥지 않았고 시간도 덜 걸렸다.

 선배 기자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지만 사양하고, 돌아오는 길에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 왔다. 빵 종류를 묻는 종업원의 질문에 허둥지둥 대다 흰색 기본 밀빵을 골랐는데, 다른 곡물 빵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 돌아오는 길 내내 후회되었다. 내 얘기를 들은 HJ는 “그게 사람들이 서브웨이에서 아주 흔하게 하는 실수지”라고 촌평했다.

  영화를 보려는데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의 연결이 갑자기 말썽을 일으켜 그래픽카드 드라이버를 다시 받는다, 윈도를 업데이트한다 어쩐다 하면서 한참 부산을 떨었다.

  왜 지난번에는 멀쩡히 작동됐는데 이번에는 안 되는가? 왜 이 노트북에서는 잘 돌아가는데 다른 노트북에서는 안 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고 깊은 좌절감만 든다. 전문가들은 원리를 알까? 애당초 원리가 있기는 한가? 컴퓨터 운영체제라는 것도 날씨나 주식시장처럼 복잡계 물리학의 영역 아닐까.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친 덕에 HJ나 나나 약간 기분이 꼬인 상태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애당초 『리어 왕』은 내가 좋아하는 작품도 아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에서 가장 가학적이고 인간혐오적인 작품 아닌가 싶다. 햄릿이나 오셀로나 맥베스는 리어만큼 추락하지는 않는 것 같다.

  아니, 기분이 꼬인 상태에서 감상하기에 오히려 적절한 작품인가? 나보다 더 불행한 인간을 보면서 카타르시스와 연민을 느끼는 데 비극의 유용함이 있다고 하니. 그리고 『리어 왕』도 중간에 꽤나 부조리극 같은 대목이 있는데, 우리도 그런 기분을 조금 전에 살짝 느꼈잖아?

  《킹 리어》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는 그대로 살리되 무대와 소품은 21세기로 바꾼 작품이다. 그래도 스마트폰 같은 물건은 안 나오고, 인물들은 종이로 된 편지를 주고받는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줄리엣》 같은 영화가 있으니 참신한 기획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덕분에 얄팍한 재미가 생기기는 한다. 현대 군인 복장을 한 젊은 남자들을 기사라고 부르고,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말처럼 취급하고, 결투는 이종격투기로 한다. 그런 충돌과 부조화는 일단 눈길을 끌고, 어떤 장면은 우습게, 어떤 장면은 제대로 고증했을 때보다 더 날카롭고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군복 차림의 젊은 사내들이 현대식 건물 거실에 가득 들어와 있는 장면을 보면 절로 위협감이 들고, 리어의 첫째 딸을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기분이 꼬인 상태였기에, HJ는 앤소니 홉킨스가 연기한 리어 왕이 뭐라고 대사를 읊을 때마다 “저 할아버지 왜 저래?” 하며 툴툴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앞부분을 보면서 리어의 ‘못된’ 딸들에게 꽤 감정이 이입되었다. 위에서 말한 연출 때문이기도 했고, 거너릴 역을 맡은 엠마 톰슨의 기품 덕분인 것 같기도 했다.

  감독의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영화는 뒤로 갈수록 화면 채도가 낮아져 마지막에는 거의 흑백영화처럼 보였다. 그때쯤 풀러스 런던 포터를 마셨는데, 맥주의 짙은 암갈색과 다크초콜릿 풍미, 적당한 묵직함이 영화와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리어 왕』은 주제가 뭐야?”

 영화를 다 본 뒤 HJ가 물었다.

  “글쎄, 나이가 들어도 경제권은 절대 놓으면 안 된다는 거? 그리고 부동산은 함부로 증여하지 말자?”

  내가 대답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들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며칠 뒤 방송작가와 전화로 사전 인터뷰를 할 때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대본을 써야 하는 방송작가는 내 말에 웃기는 했으나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사랑과 존경을 얻기 위해 사람들에게 경쟁을 붙이는 리어의 허영심과 오늘날의 소셜 미디어 세상, 지혜로워질수록 더 고통 받는 아이러니 등등에 대해서도 조금 떠들었다.


  허영에 빠지지 않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를 찾지 않게

  어둠의 무게를 즐길 수 있게


'초대' 기능이 생겼어요!

모임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습니다.

바로 바로 ‘초대’ 기능이에요.

 

나의 카카오톡 친구들을 모임에 초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도우리가 개발자분들에게 카카오톡 초대 기능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초대 메뉴를 찾는 방법은요,

모임 들어가서 상단 메뉴를 보시면 모임지기의 말/모임 정보/모임 소재/참여 인원/공유가 차례대로 나올 텐데요, 제일 마지막에 초대가 있어요.

스마트폰을 이용하실 때는 화면 오른쪽 상단의 점점점을 누르시면 모임 메뉴가 나올 텐데 제일 마지막에서 초대 기능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초대 아이콘을 누르시면 카카오톡 공유하기와 같은 화면이 나올 거예요. 이때 내가 초대하고 싶은 친구와 지인들을 선택한 뒤  제일 아래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면, 해당 모임에 초대한다는 메시지를 초대장처럼 보낼 수 있어요.

 

이제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마시고 친구와 지인들을 불러 책 이야기 함께 하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책 읽는 우리들이 더욱 더 많아지는 그날까지, 저는 또 새로운 기능을 들고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코스트 베니핏 - 조영주, 김의경, 이진, 주원규, 정명섭

감상평 :

요즘 시대에 '가성비' 보다 더 중요한 게 뭐가 있을까...

우리 시대의 새로운 종교, 가성비에 관한 5편의 소설들이 모였다.

단편이 두 세 편 정도 더 들어갔다면 좋았을 걸 싶기도 하고, '가성비'로 묶이기엔 좀 안 어울리는데 싶은 작품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들었을 때 혹하는 테마임은 분명

110. 미국여행기 (시몬 드 보부아르)

책장을 펼칠 때마다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있어도 고독과 자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사실을 글로 드러내고야 마는 사람….



미국여행기
미국여행기
109.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다. 평균주의와 표준화에 그런 어이없는 함정들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 ‘평등한 맞춤만이 평등한 기회의 밑거름이 된다’는 문구에 밑줄 두 번.

평균의 종말
평균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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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증정]《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저자,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 홍정기 작가와 함께 '초소년' 읽어요.[책 증정] <이대로 살아도 좋아>를 박산호 선생님과 함께 읽어요. 2024 성북구 비문학 한 책 ② 『공감의 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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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중간 참여할 수 있어요!
🎬 영화 보고 이야기해요.
[IMF외환위기 다시 보기1]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보고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어요.[인디온감] 독립영화 함께 감상하기 #1. 도시와 고독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함께 이야기 나눠요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
7월의 그믐밤은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목)! 그날 저녁 8시 29분에 만나요 ~
[그믐밤] 24. 미국에 관한 책 얘기해요.
지식이 지혜가 되는 순간! 어크로스의 책들 소개합니다.
내 안의 차별주의자를 깨우는 책 《친애하는 슐츠 씨》 마케터와 함께 읽기[어크로스/책증정] <뉴요커> 칼럼니스트 콜린 마샬과 함께 진짜 한국 탐사하기![서울국제작가축제X어크로스] 올리비아 랭 작가님의 <외로운 도시> 함께읽기 챌린지[어크로스] 이동진 강력 추천! '교류'라는 키워드로 읽는 문화사
만물이 생동하는 여름, 죽음에 관해 생각합니다.
[그믐북클럽Xsam]18.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읽고 답해요 [삶의 길. 그 종착역에 대한 질문] ㅡ'사람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죽음을 사색하는 책 읽기2-아침의 피아노
지금 가장 핫한 장르 소설!
[장르적 장르읽기] 2. <SF 보다 Vol.1 얼음> 장르적 시선으로 바라보기 [책증정]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함께 읽어요!![박소해의 장르살롱] 16. 영원한 저녁의 서윤빈 [매드앤미러] 거울 조각 조사단 선발대 출범!!!
"동물"을 읽습니다 🐋🐕🦍
[그믐북클럽Xsam]19. <아마존 분홍돌고래를 만나다> 읽고 답해요 [진공상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이들 모여주세요![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③ 『동물권력』 함께 읽기 [그믐무비클럽] 4. 동물의 집은 어디인가 with 서울동물영화제[그믐북클럽] 4. <유인원과의 산책> 읽고 생각해요
🎈서울국제도서전 함께 기다려요!
<서울국제도서전> 함께 기대하며 나누는 설렘, 그리고 책으로 가득 채울 특별한 시간!
지금 우리에게 문학이란?
[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그믐북클럽Xsam] 17. 카프카 사후 100주년, 카프카의 소설 읽고 답해요[함께읽기] 안온지기와 함께하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함께 읽으실래요?
Q.독서를 시작하는 쉽고 재미난 방법은? A. 한국 단편 소설집!
<여름엔 단편> 나는 인성에 비해 잘 풀린 걸까?[그믐북클럽] 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읽고 사유해요[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그믐밤] 19. <주종은 가리지 않습니다만> 부제: 애주가를 위한 밤
나누고 싶은 책 이야기 by 꼬모
편지들이 알려주는 먼 시절의 인생역정낙담과 희망이 뒤섞인 사우디 아라비아 이야기편안하게 명랑하고, 평범해서 비범한 일상과 성장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김빠지는 시리즈 신간
두 줄 괴담 쓰기 도전!!
[사인본 증정/라이브 채팅] 전건우 작가와 『어두운 물』을 함께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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