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란 무엇인가로 칼럼계의 아이돌이 되신 김영민 교수님의 홈페이지를 한 때 들락거렸었다. 대단히 철학적이신데 만화도 의외로 굉장히 좋아하시는구나~ 그러다 어느 순간 오지은 양의 일기를 매일 볼 수 있던 지은닷컴 jieun.com에 들락거리지 않았던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접속하지 않게되었다. 책은 읽었지만^^ 긴 호흡의 책이 더 낫지 않나? Sns 팔로우도 하고 있고.
전도서를 아주 오랜만에 펼쳤는데, 이렇게 시작한다. "헛되고 헛되고 헛되니 헛되도다!" 지혜에 통달한 솔로몬이 그 저자이다. 아플 때가 있고 나을 때가 있으며 살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고ㆍㆍ 인생에 다 때가 있고 모든 것이 허망한 이 해 아래에서의 삶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은 하나라는 결론이 등장한다.
교수님의 산책 하는 모습을 대학로 창경궁 가는 길에 두 해 전에 보았던 것 같기도. 아는 언니랑 피아노 공연을 가던 길이었는데 일찍 만나서 이러쿵 저러쿵 또 떠들며 마구 걸어다니고 있었는데 우리를 앞질러 홀로 산책하시던 모습을 뵈었던 것 같기도. 모르는 분이니 아는 척을 할 수도 없고; 더 젊을 때는 한창 영화에 빠져 있었을 때, 잘 읽었던 시네마레터의 이동진 기자님을 광화문 전철역에서 우연히 뵙고 극구;; 사인까지 받은 적이 있었으면서 ㅋ
허무를 default로 안고 가는 교수님의 책 잘 읽었네. 나무 좋아하시는구나~ 은은하게 미쳐있는 교수님이 나무를 안고 있으면 학생들이 또 그러시는구나 이해해준다고:) 그 학생들 차암 괜찮네. 나이차는 날지언정☆
이 책 번역서가 무려 1990년대 한국 군대 어느 내무반 당직실에 있었다.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를 책을 한 달여에 걸쳐 밤에 몰래 읽었다. 참으로 비밀스럽고 알찬 시간의 사용이었다. 마사 누스바움은 이 소설의 교훈을 두고 ‘회상하는데 너무 시간을 들이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썼다. 내게도 아주 실제적인 깨달음을 한 가지 준 책이다. 이후 소설의 정의를 확장했네 어쩌네 하는 실험소설들을 접하고 ‘그거 1950년대에 누보로망 작가들이 다 시도한 거야’ 하고 비웃는 일이 많아졌다.
주인공도 있고 고정 캐릭터도 있으니까 초단편 시리즈라고 부를 수도 있을 추리 퀴즈 70편과 해설이 실려 있다. 심심할 때 땅콩 먹듯 몇 개씩 읽기 괜찮다. 가끔 억지스럽다 못해 허탈한 ‘트릭’들이 나오는 것은 각오하고. 저자가 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니 이야기 배경들이 요즘과 맞지 않는다는 점도 감안하고. 원래 신문의 한 코너였다고 하는데, 그 틀에 딱 적당하다.
모든 인간 생명은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갖지만 실제로는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 대한 편향the identified person bias’이 일어나곤 한다.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 대한 편향이란 큰 피해를 입을 위험에 있는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개인과 집단을 돕고 피해를 줄이기보다는 그와 비슷한 피해를 입을 위험에 있는 신원이 확인된 개인과 집단을 돕고 피해를 줄이려는 강한 경향을 뜻한다. 생명에 관한 문제에서도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와 관련 있으며 우리의 도덕에 관한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관심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해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신원이 확인된 사람에 대한 편향이 논리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는 논변을 반박하며 이를 비판하는 입장과, 도덕 감정주의를 근거로 편향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시각을 담았다. 상충하는 두 주장 중에 옹호의 입장이 흥미로운데 도덕에서 감정은 도덕이라는 보편성에 기반한 원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옹호 입장인 슬로트는 공감을 포함한 감정이 도덕의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공감이라는 것은 때때로 편향적이고 보편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공감에 반하면 사회 집단이 그르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도덕 개념과 사고에 기본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즉, 도덕에서의 감정은 사회의 근원적 승인이다. 이는 마치 사물의 지시체가 경험으로 획득되듯이, 도덕 역시 지시체처럼 공감을 통해 획득되며 이는 보편적 공유에 해당한다. 또한 공감의 감정은 사회적 전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편향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공감의 도덕은 쉽게 2차의 공감을 유발하여 도덕의 사회적 전이를 만든다는 강점을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신원이 확인된 생명을 우선시해도 괜찮다고 말하며, 동시에 공감을 도덕적 사고와 행위의 요인으로 더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 하비 오스왈드로 시작해 메이어 오브 킹스타운 시즌 1로 갔다가 샤이닝으로 마무리.
한 장소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괴상하고 야릇한 경험담을 말하는 식으로 구성된 소설 장르가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데카메론』이 원조일 테고. 개별 이야기들이 종국에 하나로 뭉쳐지기도 하는데 그런 소설 중 최고봉이 이 작품 아닌가 한다(이미 이 책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해버린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그런 결말이 아니더라고, ‘문학성’을 논하지 않아도, 개별 이야기들만으로도 매혹적.
30세가 되기 전에 시인의 시 「삼십 세」를 읽었고 감동했다. 30세가 한참 지난 지금도 좋아한다. 전자책으로 시집을 구매해서 휴대폰에 넣어 다닌다. 좋아하는 구절은 달라졌다. 시인이 조현병과 가난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음은 나중에 알았다.
Rest In peace
Maestro.
〈장강명의 벽돌책〉을 연재하며 여태까지 두툼한 책들을 70권가량 소개했는데, 한 회에 2500쪽이 넘는 분량을 다룬 적도 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문화사가, 그리고 내게는 ‘무조건 믿고 읽는 작가’인 피터 왓슨이 쓴 『생각의 역사』 1, 2권이다. 1권 분량이 1240쪽, 2권이 1328쪽이다. 외형은 딱 찜질방 목침.
저자는 20세기 지성사에 해당하는 2권(원제 ‘A Terrible Beauty’)을 먼저 써서 유명해졌고, 그 뒤 원시시대부터 19세기까지 철학과 관념의 발전사를 훑는 1권(원제 ‘Ideas’)을 펴냈다. 그래서인지 두 책은 톤이 약간 다르다.
인물과 에피소드 중심인 2권은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나치 독일을 다루는 장에서 불륜 상대였던 제자 한나 아렌트의 곤경을 모른 체한 하이데거나, 해외 대학의 교수직 제안을 닥치는 대로 수락하고는 어설프게 연봉 협상에 나선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식이다.
1권은 훨씬 밀도가 높고 날이 서 있다. 신문기자로 일했던 시절 나는 기사 분량을 줄이면 줄일수록 오히려 사건의 본질이 선명해지는 압축의 마법을 여러 번 경험했는데, 이 책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아니라 로마 공화정’이라고 딱 부러지게 정리하고, 불교의 화두 수행에 대해서는 ‘순간적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봤기에 동원한 황당한 명상과 난감한 논쟁’이라고 풀이한다.
대단히 지적이고 방대한 저작이긴 하지만, 『총, 균, 쇠』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같은 독창적 주장이나 야심은 없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자 읽어야 할 이유가 된다. 비유하자면 이 책을 읽는 일은 머릿속에 크고 튼실한 서가를 설치하는 것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난삽하게 쌓여 있던 많은 책을 그 형이상학적 책장에 꽂아 정리하면서 새롭게 맥락과 의미를 깨칠 때의 짜릿함이란! 어떤 생각은 내용만큼이나 놓인 위치도 중요하기에. 다만 유럽인이 만든 책장이라 다소 유럽풍으로 짜여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주제나 분량이 엄청난 만큼 출간에 얽힌 일화도 많다. 1권을 옮긴 남경태 번역가는 아예 몇 달 동안 들녘 출판사 4층으로 매일 ‘출근’하면서 밤늦게까지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두 책의 색인을 만드는 데에만 보름이 걸렸다고. 담당 편집자였던 선우미정 현 푸른들녘 주간은 과연 이걸 누가 읽을까 고민하면서 작업했다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책은 잘 나갔다. ‘빅 히스토리’라는 말이 유행한 것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였다.
신간 소설을 신문, 라디오, 심지어 TV에서도 광고하던 시절, 국내 출판사가 이 책을 엄청나게 광고했었다. 존 그리샴이라는 신성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하지만 기대감이 너무 높아서였는지, 음모는 억지스럽게, 결말은 허무하게 느껴졌다. 주인공 법대생이나 초특급 킬러나 별 매력 없는 기성품 같았고. 첫 만남이 별로였던 터라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멀리하게 됐다는 슬픈 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