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들을 위한 최고의 판타지 아닐까. 문학을 향한 찬미가 가득하고, 작가들의 운명과 출판계에 대한 야유도 한 사발이다. 웃기면서 장엄하고,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이다. 그리고 책과는 관련 없는 얘기지만 주인공이 공룡이라는 점도 너무 좋다.
점심을 먹고 한나절이 지나 저녁 메뉴를 고르 듯이 빌리 서머스 다음에 읽었다. 새삼스럽지만 스티븐 킹은 길이 잘 든 줌렌즈 같은 걸 갖고 있는 느낌. 자유롭게 렌즈 사이즈를 조절하며 이야기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번에도 왼손을 거들 듯이 장편 하나를 뽑아냈다. 어쨌든 장편이지만 소품에 가까워서 반나절이면 완독 가능. 미국에서 기아 자동차 한 대가 얼마에 팔리는지 긍금해졌다. 마약 근절 교육을 위한 추천 도서.
한 인터넷서점의 서평집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제목은 ‘끝내주는 책.’ 장르소설 애호가인 작가, 번역자, 편집자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짧은 에세이를 한 편씩 쓰게 한 것이다. 뒤늦게 고백하자면, 그거 쓸 때 꽤나 기합이 걸렸더랬다. 취향에서 글 솜씨까지, 다른 필자들과 바로 비교가 될 테니. ‘내가 놀림감이 되는 건 괜찮지만, 내 인생의 소설이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다.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 다른 저자들 역시 나와 같은 심정이었음이 훤히 보여서 웃음이 났다. 행간에 애정과 자존심, 자부심이 뚝뚝 묻어났다.
이 프로젝트의 규모와 수준을 확 넓히고 높여서, 지금 활동 중인 세계적인 추리소설가 100여 명에게 그들의 ‘인생 작품’에 대해 한 편씩 글을 써달라고 하면 어떨까? 성사되기만 한다면 정말 굉장한 물건이 나올 것 같지 않은가?
존 코널리와 디클런 버크가 엮은 『죽이는 책』이 바로 그 물건이다. 제프리 디버, 리 차일드, 요 네스뵈, 엘모어 레너드, 데니스 루헤인 등 그야말로 쟁쟁한 올스타 멤버 119명이 참여했다. 대가들이 차례로 연단에 올라 땀을 뻘뻘 흘리며, “여기 이 소설로 말씀드릴 거 같으면…… 몇 쪽만 읽어도 세상 근심걱정 싹 다 사라져버려! 내 말 믿고 한번 펼쳐봐!”라고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이런 구경거리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당신이 ‘읽고 쓰는 공동체’의 일원이고, 특히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말이다.
게다가 특급 작가들의 독서 에세이다. 문학이란 무엇이고 장르란 무엇인가, 여성 작가들의 이름은 어떻게 지워졌나, 나는 왜 소설가가 되었나, 작가와 작품은 분리해야 하는가와 같은 근사한 질문과 답변이 가득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죽이는 책』이 소개하는 걸작 중 국내에 번역된 작품은 절반 남짓에 그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내게는 그것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을 읽는 일은 그만의 묘미가 있다. 뭔가 보르헤스 소설 속에 들어온 기분도 들고.
옮긴이는 격월간 〈미스테리아〉의 김용언 편집장(‘끝내주는 책’ 저자 중 한 사람이다)인데, 원고에 나오는 대상 작품의 과거 번역을 확인하려고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절판된 구간들을 사 모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출판사의 번역 청탁을 고사했다는 그는 “개인적인 욕심을 못 이기고 받아들였는데, 작업하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웃는다. 엄청 길고(816쪽), 각 나라 고유명사가 무진장이고, 여러 문장가들의 문체를 다 살려야 하니, ‘번역자를 죽이는 책’이기도 했을 듯하다.
과학철학자와 저널리스트 등 국내 필진 8명이 사이보그, 소셜 로봇, 가짜 뉴스, 마이크로워크 등의 키워드로 쓴 글을 모았다. 출판사인 아카넷은 ‘포스트휴먼 총서’와 ‘포스트휴먼 사이언스 총서’를 펴내고 있는데 책들이 다 흥미로워 보인다. 이 책은 총서의 일부는 아니지만 궁금해서 읽었는데 무척 만족스러웠고 아카넷의 다른 포스트휴먼 관련 도서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제는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이며, 그걸 뇌과학자가 아니라 러시아문학 전문가가 썼다는 게 포인트. 신경과학과 문학이 여기서 상대를 새로이 발견한다고는 못하겠지만 이어져야 할 의미 있는 시도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작업의 끝에서 뇌과학이 문학을 해명하기를 나는 바라는 걸까, 바라지 않는 걸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얘기했으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그날의 사건, 4ㆍ16
한글로는 무수히 많이 떠들었고
영어로도 한 차례 썼고
특조위 별 성과없이 종결된 이후로,
말을 해서 무엇하나에 빠져ㆍㆍ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못 그려 미안해.
오늘도 화를 내고 후회했는데, 요 며칠 화를 잘 내게 된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터 감정습관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해결책 제시해주고 있어서 매우 만족. 계속 읽어야겠다.
스티브 연의 한국어 발음이 버닝과 미나리 시절보다 좋아졌다. 메타 휴먼이 익숙한 시절에 아날로그 연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보여주는 씬들.
도스토옙스키 애호가라면 저자와 함께 “아이고, 이 양반아”를 연발하게 됨. 투르게네프는 도스토옙스키를 환자 취급했다고. 돈을 키워드로 한 작품 분석이 깊이 있고 친절하다.
도스토옙스키의 초기 중단편집으로, 수록작의 수준은 들쭉날쭉하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이 엄청 웃긴다. 「백야」는 아름다운 결말이 인상적인, 서정적이고 따뜻한 짝사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