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꼬리표를 달고 출간된 수십 종의 책들 가운데 그나마 정상적인 책. 챗GPT에 관한 비정상적인 책 하나를 출간한 김대식 교수가 한국어판 서문을 썼다.
악령을 민음사의 김연경 역자의 번역으로 읽었는데 나쁘지 않았다.(역시 초반은 좀 짜증났지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몇 년 전에 민음사본으로 사두었던 거라 (역자가 김연경이기도 해서)어쩔 수 없이 그냥 읽었는데 1권을 읽으며 여러 번 문장이 해석이 안 돼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다 1권에 부분 파본된 곳이 있어 더클래식본을 이북으로 읽었는데 다소 평이한 문장으로 민음사보다는 잘 읽혔다.
나는 고전은 다소 거북스럽더라도 고전적인 문체를 선호하는 편이다. 현대 감성과 현대인의 말투의 번역은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장을 직역하는 과정에서의 어색한 번역투는 좋아하지 않는다. 민음사본은 그 어색한 번역투가 내내 거슬렸다. 그러다, '죄와벌'을 김학수 역자의 번역으로 괜찮게 읽었기에 김학수 번역본이 있나 찾아보니 범우사본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한참 전에 품절... 결국 알라딘 중고로 다시 구매하게 됐다. 몇 군데 비교해 보니 역시 나에겐 김학수 번역본이 훨씬 맞다. ㅎㅎ 판형도 커서 눈 나쁜 내가 읽기에 더 좋다. 휴대성은 떨어지지만.
예)
민음사 2권 -29p
그때와 마찬가지로 놀라움과 혼란스러움과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한 낙타들은 그때 나의 상상력을 그토록 많이 차지했지요. 하느님과 그렇게 말하는 악마, 자신의 종을 파멸하도록 내준 하나님, "나를 벌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이름은 복될지어다."라고 영탄하는 그의 종말입니다.
범우사 중권 - 19p
그때의 낙타떼, 하느님과 이야기를 한 악마, 종을 파멸의 길로 몰아넣은 하느님, 그리고 "주여, 당신은 내게 벌을 내리셨지만 당신에게 영광이 있을지어다." 하고 외친 종, 이러한 것들이 나의 상상을 가득 채웠던 것이다.
확실히 김학수 번역이 낫지 않나. 번역을 하고 다시 자연스럽게 다듬은 느낌이다. 우리나라 1세대 번역자로 이미 돌아가셨기에 현재 그의 번역본들은 출판사 재고 아니면 중고로만 구입이 가능하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사고의 본질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범주화와 유추다. 범주화를 하기 때문에 지성이 가능해진다. 인간은 모든 사물, 관계, 개념에 수없이 많은 라벨을 붙이며, 그런 작업들 통해 새로운 개념들을 유연하게 탐구할 수 있다. 사고의 도약도 그렇게 일어난다. 일반화, 범주화를 폭력이라고 몰아붙이는 얼치기들에게 정중하게 권하고 싶은 책.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2편에서 끝마쳤다면 아주 좋았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4편에서 마무리지었어야 했다. 5편은 작가도 짜증을 내며 쓴 것 같고, 결말에서는 자포자기하는 심정마저 엿보인다.
원래 사람은 희망보다 절망에 매혹되는 법. 그런 암담한 미래 전망을 요소요소 짚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AI의 위협. 생각해보면 지금껏 인간의 창의성이라는 게 규정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실체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AI와 인간의 방식과 존재 자체의 구분과 경계가 불명확해지는 순간.
나는 생각한다. 호기심을 가지고 무언가에 관심가지거나 관찰하는 아마추어들에게 사회는 조금 더 너그러워지고 대접을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그들은 불신과 증오에 사로잡힌 현대 사회에서도 추구해야할 존재가 있다고 믿으며 실천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작업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자체에 기쁨을 느낀다. 세속의 풍랑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신의 판단을 믿으면서 도도히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름다운 진주를 키워나가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자기 만족을 충족시키는 대가로, 그들에게는 약간의 뒤틀림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존재하는 것이기에 비단 그들에게만 그런 잣대를 지적하는 것은 너무 엄격한 잣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면모를 보이는 그들에게는 그런 문제가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다.
우선 그들에게는 검증의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아마추어들은 무엇인가를 한 번 확인하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만다. 믿음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그 믿음을 타인에게서 확인받으려고 한다. 자신은 이러한 것을 알고 있으니 자랑을 지금 해야겠다는 욕망이 과하게 표출시키는 행위. 물론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는 행동이기에 언급했듯 우리는 조금 더 너그러워질 필요는 있으나 보통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다음으로는 뻔뻔함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연구하거나 만들어 놓은 것을 따라하거나 관찰하는 행동으로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상상하고 믿는다. 이 또한 믿음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그러지 않으면 문제다. 마치 자신이 알아낸듯이 다른 사람들에게 뽐내는 데, 원 출처같은 것은 절대로 병기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경우에는 소설 전집에 해설을 의뢰받았는데 그 해설에 다른 단행본의 문장을 그대로 베껴서 수록한경우도 있었다. (하긴 출판사도 펭권 북스의 판본과 홍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내놓았으니 그 출판사에 그 해설자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행위. 생각해본다면 어떠한 실수든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법인데 나는 아닌듯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는 것은 첫번째와 두번째보다 더욱 꼴사나운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첫번째와 두번째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반드시 세번째 실수를 하지는 않지만 세번째 실수를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첫번째와 두번째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이 아마추어들에게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도 이러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쓰고나니 나 자신의 믿음과 뻔뻔함에 부끄러워진다.
영장류 가운데서도 가장 가족적인 동물을 꼽는다면, 놀랍게도 그건 바로 고릴라🦍라고 해요. 이들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고 합니다. 밀렵꾼이 동물원에 매매할 목적으로 고릴라 새끼 한 마리를 빼내려고 하면 성년 가족을 몰살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하죠. 다이앤은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밀렵꾼들과 전쟁을 벌입니다. 『유인원과의 산책』에서 다이앤 포시와 고릴라 디짓의 이야기를 만나면 잠시 멈춰 서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페이지를 넘기는 게 괴롭기도 하거든요... (벌써 경험한 독자님들도 계시겠지요?🥺) 저자 사이 몽고메리가 '다이앤이 남성 지배적인 경험 과학의 가장 중요한 규칙, 자신의 연구 대상 동물과 분리의 선을 긋는 데 실패했다'고 쓴 문장을 천천히 곱씹어 봅니다.
📌 (p.101) 그러나 디짓은 결코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다이앤이 고릴라와 맺은 관계는 인간과 동물이 맺을 수 있는 관계에서 진정 최고 형태”라고 이언은 말했다. “동물을 우리에 가둔 채 먹이를 주거나 인간이 다친 동물을 도와주는 경우를 위시한 대다수 인간-동물 관계에서는 인간이 동물을 위해 뭔가를 합니다. 하지만 다이앤과 고릴라는 완전히 평등한 조건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서로 함께 있기만 원했습니다. 그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입니다.”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2편으로 끝났어야 한다’고 썼지만, 사실 4편에서 아서 일행이 신의 마지막 메시지를 찾으러 가는 에피소드도 좋아한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신의 섭리는 결국 인간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의 생각일 뿐이라 창작자의 철학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래서 신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픽션은 대개 그 지점에서 맥이 풀리곤 한다. 히치하이커 4편은 드문 예외다.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2편에서 마치는 게 적절했다. 물론 그랬다면 속편에 대한 요구가 아우성쳤을 테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 3, 4, 5편이 나오게 된 것이겠지만. 3편은 줄거리가 어수선한데 원래는 닥터 후 대본용으로 썼다고 한다. 크리켓에 대해 보다 더 잘 알았더라도 그리 재미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가배원에서 커피를 마시고 인근에 있는 수림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사진은 순서대로 비빔탄탄면, 탄탄국밥, 가지만두.
유리창이 투명하니 꼭 야외 테이블에 앉은 듯 보이는데 건물 안이다. 바깥에 바다가 보이고 싱그러운 팝송이 BGM으로 어울릴 것 같은 화창한 날이었다.
찾아보니 이 곳도 그렇고 가배원도 그렇고 다 프랜차이즈 체인점이었다. 그닥 프랜차이즈 매장스럽지 않다고 느꼈는데... 하긴 생각해보면 음식 장사 경험이 없다가 뭐든 가게를 새로 낸다고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모르는 것 투성이일 것 같다. 그나마 난이도가 높지 않은 작은 커피숍을 한다고 해도, 당장 커피컵, 커피홀더는 어떻게 주문하고, 메뉴 가격 결정은 어떻게 하고, 알바생은 어떻게 뽑아야 할지, 마케팅 방법은 뭐가 있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상황에서 본사에서 나와서 그건 이렇게 하세요. 라고 알려주면 그게 맞는지 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맘은 참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체인점은 장사가 안 되도 프랜차이즈 본사는 돈을 번다던데 본사가 제공하는 건 커피 원두와 예쁜 인테리어가 아니라 무엇에든 기대고픈 사람들에게 기댈 어깨가 되어주는 것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