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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740 (김영승 시인)

반성 740 

                                                              - 김영승 

 

어둠-컴컴한 골목

구멍가게 평상 위에 난짝 올라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옛날 돈 2만원 때문에

쫓아다니며 내 따귀를 갈기던

그 할머니가

어떻게 나를 발견하고 뛰어와

내 손을 잡고 운다 

 

머리가 홀랑 빠졌고 허리가 직각으로 굽었고……

나도 그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었다 

 

맥주까지 마시니 돈 좀 생겨지나 보지 하면서

웃는다 

 

이따가 다른 친구가 올 거예요 하면서

나도 웃었다  

조등이 있는 풍경 (문정희 시인)

조등이 있는 풍경

                                          ㅡ 문정희

이내 조등이 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80세까지 장수했으니까.

우는 척만 했다

오래 병석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가 죽었다.

내 엄마, 그 눈물이

그 사람이 죽었다

저녁이 되자 더 기막힌 일이 일어났다

내가 배가 고파지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내 위장이 밥을 부르고 있었다.

누군가 갖다 준 슬픈 밥을 못 이긴 척 먹고 있을 때

고향에서 친척들이 들이닥쳤다.

영정 앞에 그들은 잠시 고개를 숙인 뒤

몇 십 년 만에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니, 이 사람이 막내 아닌가? 폭 늙었구려."

주저 없이 나를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이어 더 정확한 조준으로 마지막 확인 사살을 했다

"못 알아보겠어.

꼭 돌아가신 어머니인 줄 알았네."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달리기 버전. 이런 식이라면 매시즌 신메뉴 개발해서 출시하는 60계 치킨처럼 영어 공부 몰입의 즐거움, 디아블로 몰입의 즐거움, 다이어트 몰입의 즐거움 이런 식으로 무한히 책을 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

귀멸의 칼날 1기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극장판인 무한 열차편은 제법 흥미롭게 봤다가 넷플릭스에 2기에 해당하는 환락의 거리편이 올라와서 보게 되었다. 만화책으로 읽었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이번 편에서 주인공 탄지로는 지극히 피학적인 부상을 입는다. 그 부상 부위가 모션으로 이어지는 애니메이션으로 보여지니 조금 더 끔찍하게 느껴짐.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 데코 스티커
귀멸의 칼날 환락의 거리편 데코 스티커
노들섬에서

노들섬에 푹 빠져서 한 동안 자주 갔다. 그래 봐야 뭐 이 주일에 한 번 정도지만 그래도 바쁜 현대인이 같은 곳을 그 정도 빈도로 방문한다는 것은 큰 애정의 표시이다.


노들섬은 섬 아래를 빙 둘러 한 바퀴 산책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 산책길이 정말 좋다. 벤치에 잠깐 앉아서 책도 읽었다. 단, 나무 그늘이 없어 여름철 뙤약볕에 걷기는 좀 곤란하고 흐린 날 가면 침울한 구름과 함께 그 특유의 분위기가 정말 좋다.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

호흡에 관한 이야기는 책 전체의 1/6 정도. 나머지는 세로토닌 분비를 위해 껌을 씹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채워져있다. 생각해보니 저자의 다른 책도 언젠가 읽은 거 같은데 거기서도 메이저리거처럼 껌을 씹어서 세로토닌 분비를 하자 이런 이야기가 있었던 듯. 제목이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인 이유는 저자가 하버드 대학교 객원 교수라서. 하버드 종합장, 하버드 크레파스 같은 컨셉인 듯.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
하버드식 호흡의 기술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안녕
안녕
안녕
음성언어와 문자언어의 우월성 비교는 가능한 것인가?

이 책을 펼치고 놀라고,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란다.


구글링을 해보니,

일부에서, 그것도 특정 그룹에서만 이 책들을 다루고 있다.

모두 훌륭한 글들이다.


필자는,

딕테에서 나타난 작가의 사상적 바탕에 대한 독법을 그려보고자 한다.


동양과 달리 서양에선 왕조에 대한 정사(定史)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글보단 말, 언어를 신성시한다.

문자언어는 음성언어의 하위개념으로 이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창세기에서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말씀은 예수에 이르러 로고스라는 절대진리, 절대명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요한 복음은 예수가 로고스임을 설명하는 대 서사이다.

아울러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은 읽는게 아니라 듣는 것에 집중했다.


그들에게 말은 문자보다 중요하다.

게다가 동양보다 훨씬 늦은 시기에 종이가 전래되었다.

종이는 십자군 전쟁 이후 중국의 문물을 간직한 흑해지방의 코카서스인들에 의해

이스탄불을 거쳐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다.

동양과는 거의 천년 이상의 기록문화 차이가 난다.

그들에게 기록이란,

수도원의 수사들이

성경과 교부(가톨릭의 신학 학자들)의 문헌을

아름답게 필사하여 전해주는 업무였다.

양피지에 기록된 종교적 텍스트는 함부로 다루어서도 안 되고

아무에게나 공개되어서도 안 되는 성스런 비밀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겐 문자보다는 말로 하는 기록인

구전과 맹세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불어의 문자는 편지라는 의미도 지닌다.

글은 편지를 쓸 때나 접하는 기호였다.

게다가 편지(=글)는 발신인이 직접 쓰는 경우보다는

누군가가 대신해서 필사, 곧 받아쓰게 하는게 대다수였다.

그래서 "받아쓰기"라는 불어 Dictee는

우리말의 받아서 쓰다라는 의미보다는,

"말해진 (것)"이라는 라틴어 dicti 에서 유래하듯,

"말이 전해졌다", "말이 발화되었다"

는 발화자, 곧 편지 발신인이 주체로 나타나는 행위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 차학경은, 딕테라는 제목에서 이미

기존의 권위에 반하는 반권력적, 반사회적, 포스트 모더니즘적 양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게다가 이 시기 불어에 심취한 차학경은

당시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한 발화자, 청자, 주체, 타자 등에 논의를 집중한

프랑스 철학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받아쓰기라는 행위를 첫 장부터 적나라하게 묘사하여

이를 교묘하게가 아니라 신랄하게 지적한다. 나는 내 맘대로 쓰고 싶다고.

게다가 받아 적는 단어를 틀리게 적는다.

이는 전적으로 쟈크 데리다의 해체, 혹은 탈구축을 암시한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혹은 반문하는 일인으로서,

데리다는 고의로 철자를 바꿔치기하여 이를 정당화한 철학자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 철자의 탈락, 변형, 도치를 모른 채

마치 이전부터 알고 있던 단어로, 개념으로 이해한 채,

권력자 내지 헤게모니 주도자에게 이용당한다.


그래서 저자는 어떠한 설명도 없는 이미지와 글자, 사진 등을

곳곳에 배치한다.

이는 기존의 근거, 원전을 중시하는 학문질서를 통째로

뒤엎는 행위예술인 것이다.

에세이, 시, 서사시, 희곡으로 서술되는 문장들은

기존질서의 해체를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형태로 치부되지만,

그에 덧붙여 차학경은 기존 질서가 품은 절대적 타자성마저

무너뜨리려 한다.


차학경은 이를 딕테 곳곳에서 불어로 보여주고,

역자는 이를 주석에서 설명한다.


한국어로 번역된 딕테는,

말도 글도 아닌, 난해한 언어로만 남았다.

가톨릭지식이 부족한 역자는 일부 단어에서 오역도 한다.

"성로 14처"는 "십자가의 길"이고,

"성안(聖顔) 데레사"는 한국 가톨릭에서 "소화小花 데레사"로 칭한다.

"9일간의 기도"는 어떤 문맥에서도 그냥 "9일 기도"이다.


한국어나 영어와 달리,

불어는 명사의 성,수,격이 독일어처럼 존재한다.

또한 라틴어의 영향을 받아 명사와 동사의 변형이 자유롭다.

그런 탓에 불어는 독일어 못지 않은 학문언어로서 표현과 단어 구성력이 뛰어나다.

차학경이 불어로 이 책을 서술한 의도에는,

본인의 가톨릭 신앙에 기초하면서,

불어로 표현되던 당시 프랑스 철학에 심취하여,

60년대 전세계를 강타한 포스트 모더니즘, 반사회적, 반권위적 문화에서

자극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차학경은 그래서 유색인종, 여성, 작가라는 3가지 굴레의(누군가는 '구속'이라고 하는) 악조건 속에서,

유관순, 잔다르크, 소화 데레사를 비슷한 맥락에서 병치하고,

여기에 자신의 어머니 허형순 여사를 덧붙여

이 땅의 여성을 하나의 카테고리만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 있는 범주 이상의 개념으로 세운다.


딕테는,

더 이상

새로울게 없어야만 하는,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불의를

대담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딕테
딕테
19. 중세의 가을 (요한 하위징아)

요한 하위징아의 명저 『중세의 가을』을 흔히 이런 식으로 요약한다.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었고, 르네상스의 씨앗이 이미 그 시대에 뿌려져 있었다’는 내용이라고.

글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생각엔 썩 제대로 된 요약도 아니다. 이 책은 르네상스의 기원을 찾아내려 애쓴다기보다는 그냥 14~15세기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어떤 풍습을 지녔고 어떤 문화를 즐겼고 세상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시간여행을 다녀온 저자가 유려한 문체로 쓴 견문록 같다고나 할까?

『중세의 가을』이 펼쳐 보이는 중세 후기는 결코 르네상스의 예고편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둠과 광기의 시대도 아니다. 성(聖)과 속(俗)은 달뜬 활기 속에 섞여 있었다. 성지순례는 데이트 여행이었고, 교회 안에서 매춘부가 호객 행위를 했다. 성 유물을 전시하는 건너편에서 알몸 공연이 벌어졌다.

중세인들은 자주 울었고, 쉽게 감동받았고, 잔인했고, 무절제했다. 죄수에게 가하는 고문은 최고의 구경거리였지만, 사형수의 마지막 참회에는 다 같이 눈물을 흘렸다. 방탕에 가까울 정도로 향락을 즐기는 동시에 종말론과 염세주의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다.

현대인의 기준으로는 이런 모순이 너무 낯설어 이해하기 어려운가?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렸을 때 익히 경험했던 감정 상태였으니까. 그런 순진한 정서가 한 사회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눈물을 부끄러워하고 감정을 다스리고 관용을 미덕으로 받드는 현대가 중세보다 더 기괴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가 참으로 다양한 모습일 수 있다는 발견은, 지금 우리 사회의 형태 역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후대인들은 21세기를 돌아보며 어떤 모순을 지적할까. 그들의 눈에는 우리 시대 역시 다른 방향으로 잔인하고 탐욕스럽게 비치는 건 아닐까.

『중세의 가을』은 국내 출판사 세 곳에서 각각 번역본을 냈는데, 연암서가의 776쪽짜리 책이 가장 두껍고 최신 번역이다. 연암서가는 홈페이지도 없이 묵직한 인문교양서를 뚝심 있게 펴내는 출판사. 권오상 연암서가 대표는 “『중세의 가을』은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와 핵심 주제가 겹치는 자매 같은 책”이라며 “2010년 『호모 루덴스』를 낼 때부터 『중세의 가을』 출간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중세의 가을
중세의 가을
652. 칵테일, 러브, 좀비 (조예은)

딱히 줄거리나 설정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한데 모여 있으니 확실히 어떤 효과를 낸다. 오, 재미있다, 오, 잘 쓰신다, 하면서 읽었다. 기분 나쁜 이야기인데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지도 않으면서 여운도 남는다. 이런 감수성은 훈련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닐 테지.

칵테일, 러브, 좀비
칵테일, 러브,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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