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 하지 말라는 행동을 아이는 꼭, 반드시, 기필코 하고 만다. 비단 아이뿐일까. 어른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자신에게 금지된 것을 서슴없이 행하고 만다. 무모함인지 어리석음인지 알 수 없는 이런 행동 패턴은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문학작품 속에서 갈등과 파멸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요즘 즐겨 보고 있는 TV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문을 열어주지 마라.”는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문을 열어주고 금지된 존재를 안으로 들이면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문을, 열었네?”
서두가 길었지만 ‘에두아르크, 한창 좋은 나이 때의 한 부유한 남작을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9쪽)’로 시작하는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을 읽는 초반의 느낌이 딱 그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열지 말았어야 하는 문.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는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헤어지고 각자 다른 상대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보다 조건을 좇은 결혼에 두 사람은 모두 실패하고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부부의 연을 맺는다. ‘드디어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괴테가 어떤 작가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파우스트> 같은 작품으로 독일 문학의 거장에 오른 그는 등장인물의 삶을, 인생 여정을 사정없이 비틀어버린다. 놀라운 건 그런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
시작은 에두아르트가 아내에게 친구 대위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말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엔 극구반대하던 샤를로테도 어느날 에두아르트에게 양녀 오틸리에를 기숙학교에서 데려오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그러자 에두아르트, 너무나 흔쾌히 받아들인다. “당신은 오틸리에를 데려오시오. 난 대위를 데려오리다. 신의 이름을 걸고 한번 실험해 봅시다!(25쪽)”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데 열두 살 먹은 애도 아닌 어른이 성인 남성과 젊은 처녀를 집으로 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정말 모르는걸까? 너무나 어처구니없지만 ‘실험’한다고 했으니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니나다를까.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듯이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만다. 에두아르트는 오틸리에를 보자마자 단박에 빠져들고, 대위는 샤를로테에게 이끌리게 된다. 오틸리에는 샤를로테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에두아르트를 거절하지 못하고 샤를로테 역시 대위를 가슴에 품게 된다.
불빛이 어두워지자마자 마음속의 애정과 상상력이 눈앞의 현실을 넘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다. - 134쪽
소설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겼던 제목에 대한 궁금증은 본문에 들어가서 풀렸다. 같이 모여 있으면 얼른 붙잡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자연 물질이 있다는 화학자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거였다. 인간도 물질이니 서로 끌리고 밀어내는 건 당연한 일이겠다 싶지만 금기시된 남녀 간의 불륜, 그것도 이중 불륜을 다룬 소설은 출간 당시 크게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가장 난해하고 다의적인 작품’이라는 <선택적 친화력>에 대해 막상 괴테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니 그의 삶과 작품이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짐작케한다.
"당신이 '우주 알 이야기'의 작가였다면, 당신의 미래를 알더라도 날 찾으러 올거야?"
"음...아니, 난 못 갈 것 같아. 당신이 나중에 너무 슬프잖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할 것 같더라. 그런데, 나는 여전히 미래를 알더라도 당신을 만나고 싶으니까 날 꼭 만나러 와줘. 나를 위한다는 마음 때문에 혹시라도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내 마음의 깊이를 당신의 걱정보다 작게 가늠하지 말아줘. 그러니까 꼭 만나러 와줘."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신랑처럼 나도 그를 만나러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남겨질 상대방을 위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보니 나도 그의 마음은 덜 헤아렸던 것 같다.
나는 어떤 일을 겪게 되더라도 그를 향해 가고 싶을 텐데,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란 생각은 못하고 정작 그가 원하는 그의 마음은 덜 헤아렸었다.
"그러니까 꼭 만나러 와줘"라고 여러번 당부하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예전같았으면 아주머니나 보람에게 감정이입을 더 했을 것 같다. 남겨진 사람의 입장을 그들의 상실감을 더 아프게 느꼈을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오롯이 자신의 선택대로 한발 한발 나아간 남자에게 더 마음이 갔다. 그 한걸음이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 하는 생각에. 그럼에도 내딛은 그 발걸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을까.
여러번 눈 맞추며 당부했지만 역시나 나는 안다. 그는 여전히 나에 대한 걱정을 더 많이 할 사람이란 걸.
더 많이 아껴주고 소중하게 대해야지.
너무나 귀하고 귀한 시간이다. 함부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그믐북클럽 6기를 모집합니다!
그믐북클럽 5기에 이어 6기에서도, 여러분과 함께 읽을 책을 투표하는 모임을 열어보았는데요, 투표에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1번 <게토의 저항자들> 10명, 2번 <구멍가게 이야기>는 3명, 3번 <실크로드>는 16명이 선택했어요.
그중 가장 많은 분들이 선택해주신 책을 그믐북클럽 도서로 정했습니다. 그믐북클럽이 여섯 번째로 선정한 책은 수전 휫필드 외 전 세계 석학 80인이 참여한 책 <실크로드>입니다.
그믐북클럽에 당첨되신 분들에게는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 드리고, 그믐북클럽 6기에 초대합니다. 이번 기회에 실크로드의 모든 것이 담긴 <실크로드>를 소장하고, 그믐북클럽 회원들과 함께 읽으며, 낯선 지명과 신비의 역사 속으로 29일간 함께 걸으실 독자 20명을 초대합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읽고 싶어요!
• 전 세계 석학 80인의 다양한 글을 통해 깊이있는 지식의 향연을 즐기고 싶은 분
• 650컷의 생생한 사진 및 글을 통해 실크로드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고 싶으신 분
• 그믐북클럽의 질문에 대답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보다 더 적극적으로 책을 읽고 싶은 분
• 29일 동안 꾸준한 독서를 통해 두꺼운 책을 끝까지 읽는 습관을 체화하고 싶은 분
- 모집 기간: 7월 18일(화) ~ 7월 27일(목) 오후 6시까지
*7월 27일 오후 6시까지 추가 정보 입력 및 참여 신청 버튼 누른 자에 한함
- 활동 기간: 7월 28일(금)~8월 25일(금) 29일간
*당첨자 발표일: 7월 28일
- 모집 인원 : 20명
*제공 가능한 책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 20분께만 도서 증정이 가능합니다.
*‘참여 신청’ 은 필수! ‘추가 정보 입력’은 책이 필요하신 분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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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북클럽 활동은 이렇게 해요!
• 그믐과 <실크로드>를 함께 읽고 모임지기의 질문에 답변을 남겨주세요.
• 모임지기가 던지는 질문 중 최소 5개 이상의 질문에 답글을 남기며 대화에 참여합니다.
• 활동 기간 중 모임에 관한 소식을 그믐 레터(이메일)와 문자로 안내 드립니다.
• 모든 질문에 답글을 달아 주신 분들께는 활동 기간이 끝난 후 ‘그믐북클럽 수료증’을 발급해드립니다.
※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광고 소재나 콘텐츠 제작에 활용될 수 있습니다.
서문에 해당하는 인트로의 글을 읽는데 해독이 안 된다. GQ 시절에는 해독이 가능했던 거 같은데, 내 문해력이 변질된 건지 작가의 글이 2023년에 안 맞는 건지 모르겠음.
창비시선 349 (230714~230717)
❝ 별점: ★★★☆
❝ 한줄평: 세상의 절반은 슬픔이지만, 그 나머지 절반은 사랑이기에 아름다운 것
❝ 키워드: #사랑 #꿈 #가난 #시작 #아름다움 #마음 #슬픔
❝ 추천: 시를 잘 모르지만 앞으로 좋아하고 싶은 사람
📝
시집을 읽는 동안 때론 슬프지만, 때론 아름다운 구절들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시를 잘 몰라도 그냥 좋을 수 있다는 것. 그냥 읽으면 된다는 것.
❝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 「있다」 (p.8)
❝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 「오필리아」 (p.10)
❝ 둥근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비의 머리카락이
내 발등을 어루만지면
너를 만나게 된 이유와 만나게 되겠지
/ 「아케이드」 (p.13)
❝ 대체 뭘 바라는 거죠? 몰라요
이 시를 몰라요 너를 몰라요 좋아요
/ 「인식론」 (p.42)
❝ 왜 마음은 어린 날 좋아했던 음료수병 같지 않을까
/ 「그런 날에는」 (p.51)
❝ 나는 기억한다, 그날 널 향해 내린 건 세상의 첫 가을비
아무래도 우리는 천년을 함께 살아온 것 같아
/ 「슬픔의 작은 섬」 (p.72)
❝ 세상의 절반은 사랑
나머지는 슬픔
/ 「세상의 절반」 (p.76)
❝ 이 향기를 전해 줄 수는 없어
너는 언젠가 부드러운 고개를 숙여 하얀 꽃잎들을 바라보았을 테고
향기를 힘껏 들이마셨을 테고
/ 「자스민」 (p.112)
2023년 7월 16일 (음력 5월 29일) 19시 29분에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무슨서점'에서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그믐밤이 열렸습니다. 온라인 그믐밤에서 모았던, 문장들을 함께 읽고 나누며 즐거운 그믐밤을 보냈습니다.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믐밤 12회 이야기는 아래에 있습니다.
무슨서점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작은 동네 책방입니다. 에세이를 중심으로, 짧은 소설과 읽고 쓰는 삶에 도움을 줄 인문교양서적을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사와 메모를 위한 필기구, 서점 베스트셀러 소설과 초록 수첩으로 구성한 '비밀책 세트' 등 서점만의 색깔이 담긴 물건들도 있지요. 서점이 있는 동네는 행정구역 상 연남동 끝자락이라 '끝남동'으로도 불립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구옥들이 나란해 고즈넉한 매력이 여전한 곳이에요. 얼기설기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보물 찾기하듯 무슨서점에 들러보세요. https://www.instagram.com/musn_books/
내용은 조금 허술한 면이 있지만 그 논지에는 상당히 공감했다. 소상인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가는 게 맞다, 더는 풍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다. 그런 사회를 설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튼, 현수동』을 쓸 때 참고했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강남 룸살롱 문화의 탄생 배경이나 예술의 전당 건설 비화 등등을 읽다 한국 현대사가 너무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워 탄식하게 된다. 그 시절에는 그게 심각하고 진지한 일이었을 텐데. 공저자 중 한 사람이 시인이자 정치인인데 다소 편향적으로 느껴지는 서술도 없지 않다.
장강명 작가가 작심하고 쓴 출판계 비평서란 것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다. 이 책을 읽은 이유는 학교 도서관에 자주 오는 학생 중에 소설가를 지망하는, 적어도 글쓰기를 밥벌이로 생각하는 학수 때문이었다.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다는 구체적인 생각을 중3 학생이 갖는 경우는 드믄데 또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는 학수 때문에, 더구나 문학 소녀도 아니고 남학생이 진로진학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는다 하여 검색해 보니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란 책이 튀어 나왔다.
평소 장강명 작가를 좋아하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학수에게 권하기 전에 한 번 읽어보려고 펼쳐 들었다가 제2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됐다. 진보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줄 알았던 대형 출판사가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책씨앗'이라는 독서 플렛폼이 해킹 당해서 개인정보가 노출됐다는 사과의 메일을 받았던, 그후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었고 한동안 이상한 문자들이 많이 왔었던, 바로 그 창비 출판사였다.
반면에 이 책을 진로 진학용으로 생각한 것은 책제목을 내맘대로 해석한 오류에서 비롯 된 것이구나 싶었다. 학수에게는 다른 책을 소개하기로 했다. 사실 밥벌이로서의 글쓰기가 이처럼 쉽지 않음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알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모르는 게 약이다' 혹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란 마음으로 학수가 그 세계에 뛰어들길 바라는 심정이라, 이 책을 슬쩍 뒤로 감추고 싶다.
어쨌든 내이름으로 된 책도 출판한 나로서는 출판계에 이런 암운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게 부끄러울 지경이다. 글로써 밥벌이 할 생각을 아예 안했기에 어떤 기대나 바람이 없어서 무심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한겨레 신문에 인터뷰 글도 실리고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하는 계기가 됐기에 불만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에 두번째 책을 낸다면 출판계의 쓴맛을 나도 좀 느끼려나?
비록 이 책을 학수에게 소개하려는 마음은 접었지만 장강명 작가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마져 접은 것은 아니다. 그가 추앙하는 도스토옙스키 못지 않은 두고두고 읽히는 고전이 될 책을 집필하길 독자로서 무조건 바랄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글쓰기 중독'에서 벗어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