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그믐과 성북구립도서관이 함께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성북구립도서관에서는 올해부터 성북구민을 비롯한 여러분들과 ‘비문학’ 도서를 선정해 함께 읽는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주민 추천도서, 검색어 분석, 의제 수집 등을 통해 성북구민들의 관심사를 조사하고, 그 관심사를 담은 비문학 한 책을 위한 한 문장을 만들었습니다. *참고 : 성북구 한 책 읽기 사업 소개(링크)
‘우리 골목을 광장으로 만드는 법’. 이 문장에 맞는 비문학 도서를 그믐 책추천 모임 '[원북성북] 올해의 성북구 비문학 한 책을 추천해 주세요.'를 통해 125권 추천 받았습니다. 그 중 4권이 최종후보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2023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최종 후보 도서
※서명: 가나다순
<같이 가면 길이 된다>(이상헌 | 생각의힘 | 2023)
<동물권력>(남종영 | 북트리거 | 2023)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이인규 | 마티 | 2023)
<에이징 솔로>(김희경 | 동아시아 | 2023)
그믐에서는 성북구 한 책 비문학 최종후보도서 4권을 함께 읽는 책 모임이 진행됩니다. 첫 번째 모임은 [성북구 한 책 플랜 비-문학] ①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함께 읽기 입니다. 7월 25일부터 시작합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성북구 한 책 읽기 사업이 궁금하다면? 👀 한책추진단에 함께 해주세요! https://bit.ly/2023withBOOK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SNS 실시간 트렌드를 점령한 그 키워드!
단행본 지면으로 무대를 옮긴 ‘악인의 서사’ 논쟁
140자의 집단적 독백을 넘어 14,000자의 심층 탐구로
콘텐츠 향유가 일상화되면서 창작 윤리에 대한 질문도 끝없이 제기되는 오늘날, 언젠가부터 많은 관객과 독자, 창작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빈번하게 화두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이 간명한 슬로건은 당초 현실의 잔혹 범죄를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규탄하기 위해 대두됐지만, 머잖아 창작 서사 전체를 아우르는 원칙으로까지 받아들여졌습니다. 매혹과 연민의 시선으로 악인과 악행을 묘사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향해 이들 작품이 악을 비호하고 합리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악인의 서사 자체를 비윤리와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 널리 확산된 것이죠.
하지만 이런 요구가 새로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물음은 없을까요? 지금껏 악인의 서사에 관한 논쟁은 소셜미디어(트위터)를 중심으로 벌어졌지만, 분량 제한(140자)과 휘발성이 강한 매체의 특성 때문인지 상호간의 공통된 이해를 바탕으로 풍부한 논의를 낳는 데까지는 충분히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악인의 서사』는 악인의 서사에 관한 논쟁의 무대를 단행본 지면으로 옮겼습니다. 소설가 겸 영화 평론가 듀나, 문학 평론가 겸 편집자 박혜진, 문학 평론가 전승민, 미스테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 김용언, 영화 평론가 강덕구, 영문학 연구자 전자영, 번역가 최리외, 웹소설 작가 겸 연구자 이융희, 비평가 윤아랑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통찰 넘치는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는 저자 아홉 명이 참여해, 창작 서사에서 악을 재현하는 문제를 두고 저마다 시의적이고도 다채로운 논점을 제기합니다.
특히 숱한 오해와 모호한 주장으로 점철된 기존 논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악인의 서사』에는 모든 저자가 (140자의 100배에 해당하는) 14,000자 분량의 글을 쓰고 실었습니다. 일찍이 수많은 문학 작품을 비롯한 창작 서사는 인간의 복합성과 양가성, 도덕적 회색지대와 윤리적 딜레마 등을 추체험하는 장소로 기능해왔습니다. 창작 서사의 이런 입체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명령만으로 특정 작품의 재현 윤리를 온전히 가늠하기란 무리에 가깝습니다. 여기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악의 서사와 재현의 문제를 엄밀히 논하려면 적어도 이 한 줄짜리 문장에 멈추기보다 이로부터 상세하고 정연한 고찰을 시작해야 합니다.
K-드라마에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아가 세계 문학 고전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작품과 장르의 사례로 들여다본 창작물 속 악인의 서사
『악인의 서사』에 수록된 많은 글들은 실제 작품의 사례를 통해 독자들이 악인의 서사라는 문제를 매우 구체적으로 고찰해보도록 유도합니다. 기존에 악인의 서사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지극히 일반론적이고 당위적인 차원에서 창작자의 윤리 법칙을 논하거나 실제 범죄를 넘어 허구의 창작물에서까지 악인의 서사를 배제하는 게 옳으냐는 물음을 중심으로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악인의 서사』는 지금껏 추상적 차원에서 되풀이된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온갖 시대, 장르, 매체를 아우르는 유명 작품 속 악인의 사례를 소환해, 창작물에서 악인 또는 악이 어떤 효과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하는 데 주된 초점을 맞춥니다.
아홉 명의 저자가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과 인물은 그야말로 동서고금을 넘나듭니다. 스펙트럼의 한쪽에는 주로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tvN의 「작은 아씨들」 같은 한국 드라마, 『주인공이 힘을 숨김』 『나 혼자만 레벨업』 등의 인기 웹소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어벤저스」 「블랙 팬서」 「변호사 쉬헐크」 등)와 DC 코믹스(『왓치맨』,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로 더욱 널리 알려진 범죄 스릴러(『양들의 침묵』 『리플리』 『미저리』 등), 또 해리 포터 시리즈, 「베터 콜 사울」, 수정주의 서부 영화 등 오랜 세월 동안 막대한 팬층을 형성해온 시리즈와 장르가 논의의 대상이 된다. 그 밖에도 『완전한 행복』(정유정) 『재수사』(장강명) 『제2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처럼 지극히 최근에 발표돼 많은 사랑을 받은 한국 소설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H마트에서 울다』 같은 논픽션 베스트셀러가 주요하게 다뤄지고, 스펙트럼의 정반대편에는 셰익스피어, 『레 미제라블』 『죄와 벌』 『제인 에어』 등 일찍이 정전의 자리를 꿰찬 세계 문학 고전이 자리합니다. 이렇듯 실로 다종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가로지르는 논의는 악인의 서사에 관해 한결 심화된 이해와 입체적 고민을 나눌 수 있게 합니다.
역사를 넘나드는 수많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각 장르에 대한 배경지식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악인의 서사』는 그 자체로 교양서로서의 면모 또한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각 원고 말미에는 저자들이 논의한 작품에 관한 정보를 목록으로 정리해 실었습니다. 책에는 국내에 잘 알려진 창작물이 다수 등장하지만, 워낙 다방면의 논의가 다뤄지는 만큼 독자 개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새롭게 접하게 되는 작품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악인의 서사』를 읽은 뒤 각 저자들이 언급한 작품들을 직접 찾아 감상하며 고민의 폭과 깊이를 확장해보길 희망하는 독자들도 존재할 텐데, 각 작품의 매체·장르, 창작자·출연자, 제작사·출판사, 발표 연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제공함으로써 독자들의 파생적 감상 및 독서가 한층 수월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취소 문화, 정치적 올바름, 해시태그 운동, 피해자 중심주의,
그리고 예술가의 도덕성과 범죄에 대한 고발이 보편화된 시대
불매, 분서갱유, 단죄로 종결되지 않는 심층적 감상 문화를 위한 제안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말이 그토록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게 된 배경에는 오늘날 소위 ‘취소 문화’라 일컬어지는 문화적 풍토 등이 직간접적으로 뒤얽혀 있습니다. 근년에는 예술가의 도덕성과 범죄에 대한 고발이 본격화되면서 ‘윤리적이지 않은’ 작품을 들추어 불매를 유도하는 것이 창작물에 대한 대중적 수용의 방식으로서 어엿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창작자 개인이 아니라 창작물 자체가 윤리적 검증의 대상이 될 때, 작품의 어떤 요소를 근거로 윤리와 비윤리의 구분할지 우리는 충분히 섬세하고 소상하게 살피고 있을까요?
『악인의 서사』에는 악인의 서사를 배제하라는 단호한 요구에 깔린 집단 정서에 관한 논의도 부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특정한 창작물을 단죄의 대상으로 지목하기에 앞서, 우리는 그 작품의 면면을 얼마나 다양한 각도와 층위에서 살펴보고 있을까요? 『악인의 서사』는 창작물을 감상하고 수용하는 과정에서 악인의 서사를 불매와 분서갱유의 구실로 섣불리 고착시키기보다 이 문제를 차근히 숙고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긴요한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데 『악인의 서사』가 기꺼이 임시방편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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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연대 숨' 소식지 2023년 7월호 '현경이랑 세상 읽기' 꼭지에 실린 글입니다.
제목: 서로가 마치 얇은 유리잔인 것처럼 / 글쓴이: 박현경(화가)
“……그러게 선생님이 잘 다독여 주셨어야죠!……”
A 학생 어머니의 날 선 말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대답할 겨를을 찾기 어려웠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심장이 쿵덕거렸다. 금요일 퇴근 무렵이었다. 그 주말 내내 A네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웃으며 A를 마주하는 데 참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내가 정신적으로 많이 취약하던 시기였다. 업무에 대한 압박감과 뿌리 깊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고, 흉부에 원인 모를 통증이 계속되고 있었고, 아무 때나 눈물이 주룩 흐르곤 했고,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엔 그냥 확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느끼던 때였다. A네 어머니는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몰랐을 것이다. 나랑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었으니까.
B 학생의 어머니는 유독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으셨고, 문자에도 전혀 답이 없으셨다. 당시 나는 늘 마음이 바빴고, 그런 와중에 B의 진학과 관련해서 혹은 B의 결석이나 조퇴와 관련해서 보호자와 연락할 일이 꽤 많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락이 안 되니 짜증스러웠다. 아마도 그 짜증스러움이 내가 B에게 하는 말들에 묻어났을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B는 언제나 나에게 공손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성인이 되어 나를 찾아온 B는 털어놓았다. 그 무렵 어머니가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셨노라고. 어떤 연락도 받기 힘든 상황이었노라고. 나는 B의 어머니가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한 번도 얼굴을 뵌 적조차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무렵 B네 어머니의 휴대전화에 찍힌 여러 통의 부재중전화와 이어서 도착한 안내 문자 메시지는 그분께 얼마나 폭력적으로 느껴졌을까.
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 C 씨는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2년 차 여교사였던 C 씨는 학부모에게서 걸려 오는 전화들로 힘들어했고, 동료 교사에게 ‘학급 운영을 하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10배 더 힘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C 씨의 사촌오빠에 따르면 C 씨의 일기장에는 ‘너무 힘들고 괴롭고 너무 지칠 대로 지쳐 있다’는 내용과 ‘갑질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7월 21일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전국에는 C 교사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있으며, C 교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아간 원인을 추측하거나 분석하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직 진상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건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척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만가만 생각해 본다. C 교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의 동료들을 통해 전해지는 내용들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생각해 보면, C 교사에게 여러 통의 전화를 한 학부모는 C 교사의 마음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고 있었을까. 아마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모르고 한 행동이라고 해서 덜 폭력적인 것은 아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일부 교원 단체는 ‘과도한 학생인권조례로 인한 교실 붕괴와 교권 추락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들이 힘드니 학생 인권을 제한하자는 논리는 다시 말하면 ‘내가 힘드니 나 대신 너를 힘들게 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교사와 학생과 학부모의 관계는 내가 이기면 네가 지고 내가 지면 네가 이기는 파워 게임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문제의 원인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상처 주기 쉽게 만드는 ‘구조’와 그런 구조 속에서 유난히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람’, 이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구조’를 꼼꼼히 살피고 고쳐야 한다. 이를테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개인 핸드폰 번호 노출 금지를 제도화하고, 근무 시간 이외에는 교사에게 연락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앞서 기술한 나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취약한 상태일 수 있는지 모른 채 어떤 이는 나에게 폭언을 퍼부었고, 나는 누군가를 짜증스러워했다. 그 얼마나 아슬아슬한 상황들이었나.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잘’ 대해야 한다. 서로가 마치 얇은 유리잔인 것처럼, 조심해서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인간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부서지기 쉽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 편히 쉬십시오.
그림_박현경, 「네가 보고 싶어서 21」
아마 국내 유일한 스크리브너 가이드북. 워드프로세서 치고는 진입 장벽이 있는 스크리브너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려주고 있고 책 쓰기에 앞서 저자가 최소한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앞자리는 엔도슈사쿠 단편선집 그믐 모임에서 뵈었던 이평춘 번역가님과 동화작가× 알고보니 목사님이신 선생님^^
@ 분위기 좋은 사서분들의 서강도서관:)